상단여백
HOME 기획 스페셜
"하나님, 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 주세요"제9화. 두만강을 건너다

저녁이 다 되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날이 어두워졌고, 저는 전에 어머니와 함께 강을 건넜던 곳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전짓불을 비취더니 경비대가 나타나 "야! 어디가?" 라고 물었습니다. 겁이 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지만, 낮에 사람들이 그 길로 나무하러 다니는 것을 봤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무하러 갔는데 아직 오지 않아서 마중가고 있습니다."
"집이 어디야?"

알고 있는 집주소를 말했더니 경비대가 보내주었습니다. 큰 한 숨을 내쉬고 다시 걸었습니다. 그렇게 30분정도 걸어서 두만강에 들어섰고, 그때부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향해 뛰었습니다. 신발과 옷은 이미 다 팔아서 슬리퍼를 신고 뛰었지요. 2월이라 북쪽의 날씨는 영하 30도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춥다는 것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나니 슬리퍼는 어디로 간지 없어졌습니다.

   
▲ 신발과 옷은 이미 다 팔아서 슬리퍼를 신고 뛰었지요. 2월이라 북쪽의 날씨는 영하 30도를 오르내렸기 때문에, 춥다는 것은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나니 슬리퍼는 어디로 간지 없어졌습니다  ⓒ일러스트 이윤경(재능기부)

들러붙는 맨발로 도문까지 한 시간을 걸었습니다. 발은 동상을 입어 감각이 없었지만 어머니를 만난다는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습니다. 간신히 어머니가 있어야 하는 도문 삼촌 집에 도착했습니다. 일 년 전 여기서 어머니와 만나기로 했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반드시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너희 어머니 그때 식당에 가서 연락한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조금만 기다리면 연락이 올 것이다. 연락이 올 때까지 연길에 있는 친척집에 가서 기다려라”

저는 조선족삼촌의 말처럼 조금만 기다리면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언 발을 녹이고는 다시 기차를 타고 연길 친척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를 찾는 대로 북한에 나가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족삼촌과 연결도 끊어졌고 친척집은 이사를 해서 소식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찾을 방법이 없었습니다. 몇 문장 외운 중국어로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어머니처럼 생긴 사람을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16억 인구가 얼마나 많은 수인지를 사전에 알았더라면 그 고생은 하지 않았을 것을…

그 와중에 제게 희망의 메시지가 들렸습니다. 기도하면 뭐든지 이뤄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늘과 별들과 달들을 보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딘가에 있을 어머니를 꼭 만나게 해 주세요." 친척이 운영하는 농촌교회에 머물면서 자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라는 성경의 말씀을 붙잡고 들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기도하며 어머니를 만나기를 사모했습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디모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