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해피런㈜대표이사)
▲ 노규수(해피런㈜대표이사)
박근혜 대통령의 제18대 대통령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대통령께서 취임식날 한복을 입고 광화문광장에서 국민의 꿈이 담긴 복주머니를 여시고 나서, 청와대 입구에서 주변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시는 모습에서 저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저를 어릴 때 누구보다 사랑해 주시고 같이 놀아주신 누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어머니도 생각이 났던 것은 당연하구요.

그래서 왠지 울컥했지요. 육영수 여사님도 오버랩이 됐나 봅니다. 40여 년 전의 옛 일이니 까마득히 멀어질 만도 한데, 대통령을 통해 잊혀진 저의 망막 뒤에서 어릴 적 누님의 영상이 떠오르고, 돌아가신 육영수여사님을 다시 생각하게 한 것은 무엇인지 곰곰 행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복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붉은색 두루마기와 푸른색 치마가 조화돼 통합의 상징인 태극을 떠올리게 한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여성 대통령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한복의 멋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모습이라고도 했습니다.
 
그 한복을 만든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붉은 두루마기 한복엔 금색 매화를, 그 안에 입은 짙푸른 빛깔의 치마저고리엔 여덟 가지의 상서로운 뜻을 담았다는 팔보(八寶) 문양을 새겼다”고 했습니다. 또 “추운 겨울을 이겨낸 매화의 꽃잎처럼 우리에게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우리나라의 앞날을 기원하는 뜻을 옷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서구 문물이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것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은 사라지지 않나 봅니다. 비록 관리되지 않은 옛집일지라도 한옥이면 그 기와지붕위에 솟아난 잡초까지 정겹게 느껴지고, 찢어진 창호지에서도 돌아가신 할머니의 향취를 느끼게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것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복과 한옥이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찬란했던 우리의 공동체 문화, 즉 두레와 품앗이, 계(契)와 보(寶), 향약과 대동놀이 같은 미풍양속들이 개인주의에 밀려 박물관 기록에서나 찾아보아야 하는 실정이 됐습니다.
 
제가 일본을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그들은 결코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만두집을 운영해도 100년의 역사는 흔한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친한 지인이 과대 혹평하는 한류는 “한국의 정신과 전통이 보이지 않는, 단지 한국인이 만든 서구의 문화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짧다고 했습니다. 아시아의 한류소비층이 곧 K팝과 한드(한류 드라마)에서 벗어나, 한류의 원조인 유럽의 비틀즈 음악과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나 드라마로 복귀할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일본은 그런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을 일본 1억2000만 명의 미래 먹거리 테마로 삼고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무라이와 스시, 일본도와 기모노를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 운동의 키워드로 삼고 가장 일본적인 스토리텔링과 디자인을 발굴해 그들의 수출제품에 입혀나가고 있습니다.
 
이미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 ‘킬빌(Kill Bill)’에 일본식 정원과 사무라이 검을 등장시켜 세계인들에게 “꽃을 든 사무라이”라는 아름답고도 강한 이미지를 주입시키고 있습니다. 프랑스 등 유럽에서 스시 요리의 인기를 유지하면서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 각국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벚꽃과 후지 산으로 포장해 서구사회에 일본문화의 한 부분으로 재빨리 소개해나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일본문화 운동이 비록 거대한 홍수처럼 세계에 전파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슬비라도 되어 한 방울 한 방울 세계 각지에 떨어진다면, 그들 후손들 세대에서 만큼은 또 다시 일본의 영광이 재현될 것이라고 믿는듯했습니다.
 
미국 문화가 세계의 표준이 되기 이전, 과거 일본문화의 찬란한 영광이 있었다고 합니다. 바로 자포니즘(Japonism)시대입니다. 일본 문화가 1800년대 중후반 유럽을 강타한 시기를 말하지요. 그 자포니즘은 ‘일본풍(日本風)’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프랑스·영국을 중심으로 30여 년간 일류(日流)문화로 이어지면서 ‘인상파’ 등 유럽의 미술계와 문학가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영향력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70년 전, 한국이 아직도 보유하고 있지도 못하고 있는 거대 항공모함 선단을 이끌고 하와이 진주만을 폭격한 것 이상의 파괴력이었지요. 그래서 유럽에 재패니스크(Japanesque)라는 새로운 장르의 문화가 생겨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거대 조직을 구축한 것이 지난 2006년1월이지요. ‘신일본양식협의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새로운 일본 스타일을 창조하자는 뜻에서 ‘신일본(新日本) 양식(樣式)’이라 하는데 그것을 영어로 네오 재패니스크(Neo-Japanesque), 혹은 재패니스크 모던(Japanesque modern)이라고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본이 국수주의와 민족주의로 재무장하고 있습니다. ‘신일본양식협의회’를 중심으로 경제대국을 향한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운동을 본격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 협의회에는 샤프·캐논·히타치·후지쓰·NEC(전자), 미쓰이물산·이토추·마루베니(종합상사), 덴츠·하쿠호도(광고), JAL·ANA(항공) 같이 일본의 영광을 이끌었던 대표기업들이 업종별로 총망라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일본 외무성·경제산업성·국토교통성·문화청 등의 4개 관청도 옵서버로 참가해 국가 프로젝트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지요. 당장은 해외로 나가 있는 일본기업들의 생산기지를 다시 불러들여 일자리를 늘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지요.
 
비록 고가의 인건비가 들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는 자신감이 바로 일본문화를 무기로 일본의 품격을 팔겠다는 자존심이었습니다. ‘신일본양식(新日本樣式)의 확립에 대하여’라는 보고서에는 “가격에서 질(質)로의 시대를 거쳐 질에서 ‘품위(品位)로의 시대’로 이행한다. 일본의 문화·감성·마음 등 일본 고유의 자산을 토대로 종합적인 일본의 우수함, 즉 일본 브랜드의 가치를 향상시켜 세계에 발신하는 일이 긴요해졌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GDP에서 실질적으로 미국을 누른 중국 역시 메이드 바이 차이나(Made by China)를 선언했습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이제 옛날 말이라는 거지요. 중원을 장악한 중국이 이제 온 천하 경제구조를 중국인에 의해 다시 재편하겠다는 야심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끄집어낼 때입니다. 100여 년 전 조선을 놓고 다투던 일본과 중국이 그들의 민족정신으로 재무장하는 것은 세계화에 대한 정체성 찾기일 겁니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저들은 더 민족주의로 나갈 겁니다. 우리도 우리의 정신을 다시 되살려내는 것이 시급합니다. 우리에게는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사회운동인 홍익인간 정신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혼을 국가발전의 소프트웨어로 적용시켜야 합니다.
 
대통령께서 한복을 입으신 것은 그래서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앞으로는 외국 국빈을 접견하시는 공식 석상에서도 가끔은 한복을 입으셨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한복과 홍익인간의 직접적인 연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봄을 여는 3월에 엄연한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우리의 DNA의 원형으로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세!

노규수_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뷰티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