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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상 나가라! 나쁜 사상 나가라!”제8화. 어머니를 찾아

온갖 일들을 하면서 일 년을 버텼습니다. 어머니와 상봉할 수 있는 겨울이 돌아왔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더 이상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또 다시 중국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단천에서 함경북도 남양까지 가는데 경비초소를 3개 통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신분증, 기차표, 통행증명서가 없는 저는 번번이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혜껏 거짓말을 했고 도망을 쳤습니다. 북한에서는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자유마저 없기 때문에 시선을 피해 도망 다녀야만 합니다. 단천에서 남양까지 6일이 걸려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국국경과 마주하고 있는 남양에 도착했습니다. 변방지역까지 온 것도 기적이었지만, 이제는 강을 넘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돈이 있으면 경비대에게 뇌물을 주어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겐 돈이 없었습니다. 시장에서 꽃제비를 만났습니다. 여섯 번이나 중국에 들어갔었다는 그 아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래 중국은 내집 마당처럼 잘 알지. 그런데 너 입은 옷, 신발 다 중국에 가면 버리게 될 거야. 팔아서 밥 사먹자." 저는 꽃제비 말에 동의를 했고, 신발과 옷을 벗어서 다 팔아서 꽃제비와 한 끼 잘 해결했습니다.

   
▲ 저는 꽃제비와 함께 경비대들에게 잡혔습니다. 경비대들이 무기를 보관하는 곳에 들어가서 오가는 경비대들에게 총 뒷자루로 마구 맞았습니다. ⓒ일러스트 이윤경(재능기부)
꽃제비의 말대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넘어가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그 기차바퀴 밑에 몸을 숨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밑에서 들여다보면 사람이 보이기 때문에, 계획을 바꾸어 기차위에 숨어 있기로 했습니다. 긴 빵통이 달려 있기 때문에 하나하나 검열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요. 그런데 경비대 검열원이 긴 기차 적지함을 하나씩 뛰어 다니며 검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꽃제비와 함께 경비대들에게 잡혔습니다. 경비대들이 무기를 보관하는 곳에 들어가서 오가는 경비대들에게 총 뒷자루로 마구 맞았습니다. 그리고는 벽 앞에 마주 서서 뒷짐을 지고 머리와 벽을 부딪치게 했습니다. 벽과 사이에 아무것도 없이 넘어져야 했기 때문에 벽과 부딪힐 때마다 머리에서는 피가 났습니다. “나쁜 사상 나가라!”라고 말하면서 하도록 시켰습니다. 그 고문이 끝나면 또 다른 고문으로 고통을 줬습니다.

그 때, 급이 있는 군관이 지나가더니 맞을 때마다 들리는 비명소리를 듣고는 “무슨 소리야?” 라며 문을 열었습니다. 경비대는 “기차 적지함을 타고 중국을 가려던 비법월경자를 잡았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군관은 “오늘이 장군님 명절인데 밥 먹여서 보내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꽃제비는 돼지고기 세 조각 있는 국수를 먹고 풀려났습니다. 얼마나 맛있던지… 하지만 풀려나서 갈 데는 없었습니다. 한 여관으로 들어가 불 때는 아궁이 앞에서 둘이 쪼그리고 잠을 잤습니다. 새벽 즈음 문이 열리더니 “이놈새끼들이 여기서 잠을 자네 너희들 벌 좀 받아봐라” 며 경비직원이 나왔습니다. 경비직원은 빗자루를 쥐여 주고는 새벽에 눈을 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눈이 내리고, 옷은 다 팔아서 춥고, 손에 들러붙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습니다. 제가 저를 볼 때에도 정말 불쌍해 보였어요. 꽃제비는 저더러 시장에 가서 먹을 걸 가지고 온다고 하고 갔습니다. 홀로 서서 꽃제비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올 거야' 생각했지만 몸만 얼어들었을 뿐, 사기를 당했던 것입니다. 수없이 꽃제비들에게 사기를 당했지만 그래도 저는 그들을 믿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상처는 컸습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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