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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논란,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행위와 생각을 넘어 존재까지도 미워해서야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함께 어떻게 보면 잔인할 정도로 철저한 하나님의 ‘공의’를 함께 보여준 일종의 모순적 사건이다. 도대체 얼마나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냥 ‘너희 죄를 나의 한량없는 사랑으로 사하노라’ 하시면 될 일을 가지고 자신의 독생자를 대속 제물로 삼으신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사랑’뿐만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동시에 기억하며 우리안의 ‘죄’와 ‘심판’에 대해 상기해야 한다.

요새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종북 논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한쪽에서는 실제 이상으로 또는 필요 이상으로 ‘종북 논란’을 키우고 있다면, 한쪽에서는 분명히 존재하는 ‘종북’의 문제를 별 것 아닌 것처럼 무시하려고 한다. 여기서 ‘종북세력’이란 ‘북한의 김일성 유일체제를 추종하거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세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중반 대학가 학생운동세력을 접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른바 주체사상파 또는 그 후신 학생운동세력을 만나본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필자 역시 학창시절에 6.25는 해방전쟁이고 북한 중심의 통일이 그때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한 친구와 몇 시간 동안 격렬한 논쟁을 해본 경험이 있다).

비록 대한민국 사회 전체와 비교할 때는 소수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그 사실 자체를 축소하려고 하는 등 여전히 통일과 북한 문제에 있어서 여론 형성 등에서 상당한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체하는 집단이다(이른바 진보논객이라고 하는 진중권씨도 2004년도 인터넷 ‘고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 진보정당에서 본인이 직접 목도한 주체사상파들의 행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이들의 제도권 내로의 진출은 이제 국회에까지 입성할 정도로 매우 활발해진 상황이며, 통일 논의에 있어서 우리 사회에 불필요한 갈등과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독교 통일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3대 세습, 나아가 북한의 김일성 왕조를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것도 이들 적극적 종북세력들의 논리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할 것이다.

하나님의 ‘공의’를 두려워하는 진정한 기독인이라면 도저히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동감할 수 없을 것이다. 1960년대 말 이래로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의 위치에서 ‘유일사상’을 강조하고 있는 체제를 어떻게 비판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 “위대한 김일성 수령이 안겨주신 정치적 생명(이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어야 한다(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 제8조 제1항)”, “개인의 육체적 생명보다는 사회적․정치적 생명이 더 중요하다(김정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문헌집」,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 -이른바 북한식 인권관)”고 전국민들에게 강요하며 가르치고 있는 체제, 전국민을 3계층 51개 부류로 분류한 고도의 신분제사회, 수십만 명의 인권이 유린되고 있는 정치범수용소를 정당화하고 있는 체제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원수를 사랑하라’라는 말씀을 악한 것을 그저 포용하고 용납해주라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처럼 악인이 하자는 대로 다 해주는 것,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악인을 깨우쳐주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타일러서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받도록 경고해 주지 않으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죽은 책임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다(에스겔서 3장 18절)”라는 말씀처럼, ‘악인에게 너의 그 행동은 악한 것이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돌이키라’고 이야기해주는 것,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진정한 자세이며 우리에게 그렇게 할 책임을 맡기신 것이다. 따라서 악한 것은 악하다고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잠언 27장 6절)”는 말씀처럼 북한 민중뿐만 아니라 지배층까지 진정한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기 전에 그 악한 체제에서 돌이키라고 이야기 해주어야 하며, 그런 북한의 체제를 추종하는 ‘종북세력’에게도 그 행위가 악함을 지적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이자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며 우리의 책임이다.

한편,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이러한 우리의 책임의 범위를 넘어서 ‘심판자’의 자리로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이 없거나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다. 위 에스겔서 3장 18절의 말씀에서처럼 악을 악하다고 강하게 꾸짖으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목적은 악인이 악에서 돌이켜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하시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악한 체제를 악하다고 지적하게 하시는 이유도 그들을 돌이켜 생명의 구원을 얻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악한체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이른바 종북세력에 대해서도 그들의 ‘행위’와 ‘생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악하다고 지적을 해주더라도 그들의 존재까지도 마치 그들 자체가 ‘사탄’인 것처럼 ‘증오’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장 7~8절)”는 말씀처럼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이 부드러우면 더 많은 지혜를 가르친다(잠언 16장 21절(표준새번역))”는 말씀처럼 경우에 따라 북한의 악한 체제에 대해서도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을 것이나, 그 체제의 악함과 그 악한 체제를 추종하거나 호감을 갖는 세력의 존재 자체에 대해 의도적으로 회피하려 하거나 외면해서는 안되며 무조건적으로 용납하는 것은 더 더욱 안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러한 행동과 생각을 하는 ‘사람들’ 자체를 ‘사탄’과 동일시하거나 마음 가운데 ‘사랑’이 아닌 ‘증오’를 품어서도 안될 것이다.

   
▲ 송인호 교수

“죄를 범한자의 속옷까지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을 베풀라(유다서 1장 23절)”는 말씀처럼 ‘악에 대해서는 단호하되 사람은 사랑하는 것’,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너무도 진부한 이 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도 없는 이 말에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의지적으로 다시 순종할 수밖에 없는 것은 ‘십자가 사건’, 무섭도록 철저한 공의와 뜨겁고 뜨거운 사랑을 동시에 추구하는 모순된 고민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이, 그분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 그분 자신을 공의를 위한 속제물로 바치는 ‘자기희생’, 즉 십자가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한동대 교수/변호사)

송인호  ihsong@handong.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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