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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다리는 부러뜨리고 너는 왜 멀쩡하냐?"제7화. 다시 홀로서기


그 형은 어머니가 중국에 돈 벌러 간다고 갔는데 소식이 없어서 중국으로 간 경우였습니다. 집에는 아버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 불을 때지 않아 냉방인 집에 들어가 하루를 묵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제가 가진 돈을 북한 돈으로 바꿔서 머물 동안 먹을 식량과 채소를 샀습니다. 형들은 돈을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아니, 빌려 달라고 했지요. 꼭 갚겠다고. 고향에 있는 어머니에게 돈을 전달하고 중국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간수하고 있으라는 돈이었기에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중국에 가면 교회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도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신분증 없으면 살 수 없는 줄로만 알았던 제게 그것은 너무나 새로운 정보였습니다. 형들은 남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서 잘 먹고 놀았던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가면 제가 가진 돈은 쓸모없다고 했습니다. 빌면 많은 사람들이 돈을 주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면서요. 제게는 달콤한 이야기였고,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형들 따라 중국에 들어가면 교회 같은데서 공부도 하면서 살다가 겨울이 되면 어머니랑 함께 북한에 나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은 형들에게 주지 않지만 같이 중국에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형들이 시키는 대로 돈을 땅 깊숙한 곳에 숨겨 놓고 중국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여섯 명이었기 때문에 세 명씩 조를 두 개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도문다리 아래로 넘어가려고 강에 들어섰습니다. 한 형은 하나님을 믿는다며 기도하자고 했고, 하나님이 지켜주기 때문에 아무 일 없다고도 했습니다. 수시로 다니는 경비대들의 눈을 피해 강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들어서는 순간 물이 깊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에서 나와 옷을 벗은 후, 손에 쥐고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 때, 경비대들이 형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형은 물속으로 잠수했고, 저도 물에 머리를 잠그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작정 잠수했던 형은 그 후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 형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형이 잡혀서 간 다음 물에서 나왔지만 수영을 잘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다시 그 깊은 강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결국 젖은 옷을 들고 산에서 날을 새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돈을 숨겼던 자리에 가 봤지만 돈은 없었습니다. 형들은 돈을 숨겨 놓는 것을 몰래 지켜본 후, 우리 조가 강에 들어설 때 그 돈을 훔쳐 다른 데로 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으로 가려고 해도 강물을 건널 수 없고, 다시 고향으로 가려 해도 갈길이 막막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돌아갈 곳은 고향 뿐 이었습니다. 남양에서 청진까지, 청진에서 단천까지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4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도시락을 먹으면 그 냄새에 눈이 돌어가고 그 도시락을 보기만 해도 황금덩이마냥 확대되어 도적질해서 먹고 싶었어요.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그렇게 고향에 도착해 집으로 갔습니다. 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있나?' 생각하며 들어간 집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저는 “이 집이 우리 집인데…”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이 집을 한 달 전에 사서 들어왔는데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고 내년에 어머니가 돈을 벌어서 나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이모는 어머니 나올 때까지 이모랑 살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 사는 동안에는 외할머니 눈치와 이모부 눈치를 보며,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했습니다. 그나마도 외할머니와 이모부가 자주 싸웠기 때문에, 저는 외삼촌 집으로 옮겨갔습니다.

외삼촌 집까지 가는 길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옥수수 밭에 들어가서 물 냄새나는 날 옥수수를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외삼촌은 집이 없어서 돌로 집을 짓고 살고 계셨는데, 아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돌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통일되면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요. 방은 비좁았습니다. 그곳에서 삼촌, 숙모, 두 아이들, 저 이렇게 5명이 살게 되었습니다.

생땅을 일구어 농사할 땅은 많았습니다. 국가 땅이기에 불법이지만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해서 곡식을 심어 먹었습니다. 저는 새벽에 일어나서 염소 깔을 베서 염소들을 먹여야 했고, 돼지물을 주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염소들을 끌고 밭에 나가 풀 있는 곳에 묶어 두고는, 밭에서 김을 매고 생땅도 일궜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염소를 끌고 집으로 들어왔고, 다시 토끼 풀, 돼지 풀, 뜯으러 산으로 갔습니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온몸이 녹초가 되곤 했습니다. 벽에 기댄 채 ‘오늘은 저녁을 꼭 먹고 자야지’라고 외워보지만 너무 피곤한 채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잠에 들었어요. 눈을 떴을 땐 이미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면 또 염소 깔을 베러 나가야 했습니다. 일을 제대로 못할 때면 숙모는 욕을 했습니다. 그렇게 힘들 때마다 유일한 희망은 조금만 참으면 어머니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루 빨리 어머니를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윤경(재능기부)

하루는 비가 너무 많이 왔습니다. 밭에 나가지 못하고 3마리의 염소를 끌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염소는 풀을 많이 먹어야 염소젖이 잘 나옵니다. 그래서 배가 들어가면 숙모는 내가 잘못했다고 화를 냈고, 항상 염소배가 불러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인데도 염소를 몰고 산에 간 것이지요. 염소는 벼랑 끝에 있는 느릎 나무잎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날 염소는 느릎 나무잎을 뜯어 먹다가 미끄러져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벼랑에서 굴러서 다리가 부러졌어요. 저는 염소를 안고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염소 다리가 부러져서 운 것도 있지만, 숙모가 무서워서 울었던 것입니다. 집에 들어오니 숙모는 “염소는 왜 다리를 부러뜨리고 너는 멀쩡하냐?”라며 욕을 했습니다. 마치 제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하루 빨리 어머니를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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