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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있으면 북한이 살기 좋지 않아?"제6화. 북송되다.

 

기쁨도 잠시, 배는 부르고 콧노래는 절로 나지만 고향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에는 친구가 없으니 북한에서 친한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많이 났습니다. 어려서일 것입니다. 탈북자 신분 때문에 밖에도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으니, 집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돈만 있으면 내가 살아왔고 정든 고향이 좋았어요. 할머니도 "돈만 있으면 북한이 살기 좋지 않냐? 여기는 신분증이 있어야 해. 없으면 잡혀 북송되거든"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2백 달러를 손에 쥐어주시며 "단속이 심하니 북한에서 장사를 해서 살면 거기가 더 좋을 거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뒤따라 오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있겠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아버지가 오면 그때 보내신다며 우선은 먼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2백 달러를 가지고 다시 연길에서 도문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곳까지 할머니는 같이 오셨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강가까지 나왔지만 이미 3월초라 강의 가운데가 녹아 있었습니다. 강을 건너다 빠지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물살도 강했고 수심도 깊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섰지만 갈 곳이 없었어요. 할머니에게 강을 건너 북한으로 간다고 했는데 다시 찾아 가면 미움을 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만강을 건너 처음 들렀던 집에 다시 들어가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일을 해서 돈을 더 벌고, 다음 해에 강이 얼면 그때 건너가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국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조선족의 도움으로 여러 식당으로 일자리를 찾아다녀보았지만, 북한에서 온데다가 아이까지 있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한 조선족은 제가 있어서 일을 할 수 없고, 아이들은 잡혀도 북한에서 놓아준다며 저에게 공안국에 잡히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돈을 벌어 다음해에 만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 길이 어머니와 내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2백 달러를 손에 꼭 쥐어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비닐에 돌돌 말아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넣었습니다. 북한에 가면 옷부터 시작해서 다 검사를 하기 때문에, 돈을 숨겨서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중국 도문 교두다리가 있는 데로 갔습니다. 총을 메고 지키는 보초병이 있었습니다. "보초병삼촌, 저는 북한에서 왔습니다. 고향이 그리워 다시 가려고 합니다. 도와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중국 사람이라 중국어로 뭐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서로 대화를 하다가, 손이 북한 쪽을 가리키길래 저는 가라는 뜻인 줄 알고 다리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야 감옥에 잡혔습니다.
 

   
▲ 추운 겨울인지라 작은 방에 감금했는데, 열 명 정도 앉을 자리에 서른 명 정도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자리는 없어졌습니다. ⓒ이윤경(재능기부)



감옥 안에는 이미 잡혀 있는 형들이 있었는데, 제가 원해서 잡혔다는 소리를 듣고는 ‘스파이'라고 했습니다. 임무를 받았거나 돈을 숨겼다고 말입니다. 저는 숨길 수 없어 사정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은 북한에서 나가면 같이 움직이자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제게 있는 돈을 뜯으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자 여섯 명과 여자 열두 명 정도가 함께 봉고차를 타고, 수쇄에 채워진 채 도문교두다리를 지나 남양으로 향했습니다. 북한 남양에 도착하니 중국의 수쇄를 풀었고, 북한 보위부에 넘겨졌습니다.

"야 이 간나 새끼들아 신발 끈을 풀어라!"

저는 신발 끈을 풀었습니다. 그러자 그 신발 끈으로 사람들끼리 서로 연결되도록 손을 묶었습니다. 한 사람의 손을 올리면 다른 사람들도 같이 오르게 한 것입니다. 남양에서 온성까지 이송도중 도망자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온성보위부로 이송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인지라 작은 방에 감금했는데, 열 명 정도 앉을 자리에 서른 명 정도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자리는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않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 방에 다 넣었습니다. 한 끼는 굶기고 두 번째 끼는 옥수수 국수 죽을 줬습니다. 두 숟가락 되는 강냉이국수죽을 들이켰습니다. 돼지물 같으면서도 구수한 그 맛은 고향 맛이었습니다.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남자들을 불러내더니 옷을 다 벗겼습니다. 돈을 어디에 숨겨 오지 않았나 검문하기 위해서 입니다. 의심이 되는 곳은 날카로운 면도날로 옷을 다 찢고, 앉았다 일어났다 뽐뿌를 백 번 시켰습니다. 다행히 저는 들키지 않았지만 제가 입었던 좋은 바지는 자기 아들을 주겠다고 빼앗아 갔습니다.

다음으로는 여자들이 불려 나갔습니다. 여자들도 옷을 다 벗었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했습니다. 그리고 "야 이 간나들아 임신 몇 개월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친척집에 갔다 왔습니다."라고 말해도 사정없이 때렸기 때문에, 맞지 않으려면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습니다. "똑바로 말해라 이 간나들아 몇 개월이야?", "네 3개월입니다", "그럼 그렇지." 그리고서 다시 한 감옥 안에 들어오면 서로 “언니 몇 개월이라고 했소?”, “'3개월이라고 거짓말 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중국에 팔려가서 정말 임신한 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간 사람들인데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다뤘습니다.

저와 형들은 2.13구호소에 보내졌습니다. 그곳에는 꽃제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저와 형들은 옷은 다 빼앗기고 팬티만 입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새끼들아 이 옷과 신발은 집에 갈 때 주겠다." 라고 했습니다. 4월이라 날씨는 추웠는데, 창문에 유리는 없고 쇠창살만 박아 놓아 바람이 다 들어왔습니다. 이불도 없고, 시멘트바닥이었지요. 도망을 치려고 문을 밀어보았습니다. 잘 열리지 않아 포기했다가 또다시 문을 밀었는데, 문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열쇠가 없어 굵은 쇠로 걸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와 형들은 도망을 쳤습니다. 그리고 온성에 집이 있는 형네로 피신했습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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