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스페셜
"친척 만나러 북한에서 왔습니다. 좀 도와주세요”제5화. 천국의 국경을 넘다


북한을 나온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먹고 살기 어려워서였고, 둘째로는 정부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어요. 출생성분이 좋지 않은 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즉 자유를 향해 떠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려면 ‘여행증명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친척집에 갈 때에도 시장에서 은밀히 여행증명서를 삽니다. 하지만 저처럼 돈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가다가 잡히면 돈 몇 푼을 넣어주면 보내줍니다. 돈 마저 없으면 이송당하는 중에 도망쳐야 하고요.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는 것보다 어려웠던 것은, 제가 살던 곳에서 두만강 근처까지 이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백두산에서 서해로 흐르는 강은 압록강이고, 동해로 흐르는 강이 두만강입니다. 1998년 2월, 어머니와 저는 손을 잡고 두만강 기슭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강폭은 100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경비대들은 50미터 정도마다 한 명씩 보초를 서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경비대가 보이지 않으면 중국을 향해 뛰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경비대들이 보이지 않자, 죽기 살기로 앞만 보고 뛰었습니다. 뒤에서 누가 총을 쏠 것만 같았습니다. 무슨 정신으로 강을 건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강을 건너 어느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중국 친척 만나러 북한에서 왔습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친척이 어디에 있슴다?” 연변여자가 물었습니다. 어머니는 연길에 있는 친척 주소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제가 지금 연길 가는 중임다. 같이 가기쇼" 라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북한옷차림으로 버스에 올랐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우리를 주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럴수록 당당하게 보이려고 노력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도문에서 연길로 이동했습니다. 

   
▲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 하늘아래 너무나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으니 믿겨지지 않기도 했고요. ⓒ일러스트 이윤경(재능기부)

연길에서 눈앞에 마주한 광경은, 너무나도 다른 세상 같았습니다. 높은 건물에 번쩍이는 불빛들… 모든 것이 신기했습니다. 고모할머니는 연길교회를 다니는 집사님이셨습니다. 고모할머니를 만나 집으로 가자 50평정도 되는 집에 양 옆이 거울로 되어 있었고, 형광들 불빛에 정말 화려해 보였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었어요. 처음 보는 냉장고 안에는 계란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저는 전시용으로 가득 채웠다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서 가식적인 모습만 봐 왔기에, 눈앞에 있는 현실을 보고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계란이 너무 먹고 싶어 할머니가 나간 틈을 타서 계란 세 알을 몰래 삶았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나지 않겠어요. 끓는 계란을 들고 화장실로 급히 들어갔습니다. 발각되는 날에는 죽었다는 생각으로 그런 것이지요. 화장실에서 먹는 계란은 별맛이었습니다.

고모할머니는 바나나를 먹으라고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 바나나를 봤습니다. 그리고 먹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웃으셨습니다. 

"철아 바나나는 껍질을 벗겨 먹는다."
지금도 저는 그 쓰면서 달콤한 바나나의 맛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말대로 껍질을 벗겨 먹으니 더 맛있었습니다.

리모콘도 처음 봤습니다. 무선으로 누르는 대로 된다는 것이 신기했고 또한 너무나도 많은 채널이 있다는 것에 신기했어요. 북한에서는 한 개의 채널만 나오는 것을 봐왔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60여개의 채널을 밤새 돌려 보았고, 리모콘으로 이것저것 누르다가 결국은 고장 내고 말았습니다.

화장실에도 처음 보는 기계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에 물었더니 '세탁기'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넣으면 알아서 세탁이 된다고 했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그래서 있는 옷들과 신발까지 다 넣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꺼낼 땐 이미 죽처럼 뒤틀려 있었어요. 그 후로는 세탁기보다 손빨래를 지향했습니다.

돌아보면 무엇이든 실수를 하고는 수습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 그래도 하나씩 배워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 하늘아래 너무나 다른 세상이 존재하고 있으니 믿겨지지 않기도 했고요. 북한에서는 정말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었던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도 없고, 종교의 자유도 없고,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자유도 없고, 그러면서도 주린 배 하나를 채우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디모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박혜연 2017-10-27 23:15:40

    사실 서울에 있는 동네양장점에서 파는 옷들도 북한에서 같았으면 최고위층 인사의 부인들이 입을법한 옷들이 주류이니....!!!!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