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 스페셜
"평양은 정말 그렇게 잘 사는 나라일까?"제4화. 우물 안의 개구리상식에서 벗어나다.


어느 날 오후 어머니와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에는 평양에서 친척 만나러 지방에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유엔과자를 한 봉투 주면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공짜도 있다니,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을 받은 것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출입문도, 창문도 없고 수저와 가마까지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서 사람이 시커먼 똥 솜이불을 덮고 있다고 놀라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집도 텅텅 비어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늘 보고 겪던 일들인데, 너무나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말하는 평양 사람들이 신기했습니다. ‘평양은 그렇게 잘 사는 도시, 아니 나라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평양은 아무나 가서 살 수 없으니… 제가 꿈꿀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항일 혁명투쟁에 참가했다거나, 김씨 충신들만 살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요. 지금도 평양을 가 본 사람들은 거짓말을 합니다. 북한이 잘 산다고요. 어쩌면 평양은 선전용인지도 모릅니다. 보여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보여 주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살아가는 백성들의 신음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겠지요.

   
▲ 출입문도, 창문도 없고 수저와 가마까지 아무 것도 없는 빈집에서 사람이 시커먼 똥 솜이불을 덮고 있다고 놀라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의 집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옆집도 텅텅 비어있었다고 말입니다. 저는 늘 보고 겪던 일들인데, 너무나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말하는 평양 사람들이 신기했습니다. ⓒ일러스트=이윤경(재능기부)


그 후에도, 사람들이 중국은 잘 살고, 한국은 그보다 더 잘 산다는 이야기들을 했습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북한에서 선전하는 모든 내용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살았으니, 중국에서는 개들도 이밥을 먹기 싫어 안 먹는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국의 친척들은 혜산까지 나오면 식량들을 가지고 나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1996년에 량강도 혜산에서 옷과 식량을 받았습니다. 중국 밀가루, 옷 등이 많이 넘어 왔습니다.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중국이 북한보다 잘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들은 내용과 너무나도 다른 현실은,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받은 물건 중 절반 넘게는 도둑맞고, 경찰들에게 뺏기고, 남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중국에 도와달란 편지를 보냈습니다. 편지를 보내려면 중국국경지역까지 가야 합니다. 아버지와 저는 100리도 더 되는 산길을 따라 갔습니다. 돈도 없고, 도시락도 없어서 말린 국수 두 사리를 부수어 먹으면서 갔습니다. ‘평양-혜산'열차가 역에 들어섰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기차의 찻간 위에 올라갔습니다. 가는 도중엔 기차와 기차를 이어주는 사이에 앉았다가 다리가 그 사이로 들어가 다리를 잘릴 뻔 한다거나, 기차 위에 누워서 가다가 구르거나 전기에 닿아 죽을 뻔 하는 등 오싹한 경험들을 했습니다.

그렇게 혜산에 갔지만 중국 친척은 다음해에 온다는 소식밖에는 없었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남양으로 가서, 그곳에서 중국 친척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러자 한 달만 기다리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있는 돈으로 10일도 못 살고 ‘외가리 신세’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외가리 신세'는 중국 맡은편에서 교두다리를 바라보면서 중국 친척이 언제 나오겠는가 하여 목을 쳐드는 것이 외가리와 닮았다고 하여 생긴 말입니다. 교두다리는 북한과 중국을 잇는 다리입니다.) 남양에 머물렀던 숙박집마저 식량이 없어, 같이 2~3시간 산으로 걸어서 도토리를 따서 식량대신 먹고 버텼습니다. 하지만 세 달이 지나도 친척은 나오지 않았고, 저희는 그렇게 다섯 달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와 저는 중국으로 들어가기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남겨둔 동생들을 보살핀 후 뒤따라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먹고 살기 어려우니, 중국에 있는 친척집에서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지요.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강디모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2
전체보기
  • 박혜연 2017-10-27 23:13:39

    그러던나라가 1980년대에 들어서 역전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남북의 생활수준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니....!!!!   삭제

    • 박혜연 2015-01-12 12:49:05

      북한이 불과 1970년대까지만해도 대한민국보다도 훨씬 잘살았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젊은여성들의 옷차림과 머리모양 화장등 패션에 대해서 민감한건 오히려 대한민국이 우위였지만요! 그래도 북한은 평양호텔에 벌써 이탈리아식 요구르트 아이스크림까지 판매했을정도이니 짐작이 갈것같더군요?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