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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부족 때문에 남북 통일이 안된다?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위해서라면 하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통일을 이루신다

하나님께서 남북통일을 허락하신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 단지, 남북간에 갈라진 민족을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남북통일을 이루어주실까? 오직 그 명분 하나만으로?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나라를 이루고 사는 나라도 많은 것이 현실인데? 아니면 남북간 통일로 남북의 경제가 발전하고, 더 잘 살게 되고, 우리 민족이 세계에서 무시당하지 않는 자랑스러운 민족이 되라고? 하나님이 무슨 우리 민족의 수호신(?) 정도에 불과한 분이신가? 세계 20~30위권 정도면 되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꼭 되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위와 같은 결과가 통일의 효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성경을 통해 아는 하나님은 그렇게 좁은 분, 작은 분이 아니시다.

그분이 남북통일을 허락하신다면 가장 큰 이유는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위해서라고 본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설명할 때 항상 나오는 수식어가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돌보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한 사회 공동체에서 가장 약자들을 돌보시고 관심기울이시는 분, 그분께서 지금 이 시기에 이 한반도를 바라보시며 가장 가슴 아파하시는 대상이 있다면 그건 바로 북한 주민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핍박받고 있는 기층 주민들이 아닐까? 아니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기준으로 보더라도 한 국가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 인원이 굶어죽고 3대에 걸친 종교화된 우상숭배적 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이 북한의 기층 주민들에게 있고, 통일을 허락하신다면 그 이유도 그들을 위하심이라고 할 때, 그렇다면 우리들에게 통일의 이유는 무엇인가?

아쉽게도 2011년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실시한 전국민 설문조사에서 통일의 이유로 ‘북한 주민’들을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은 단지 5%에 불과했다(그외에는 같은 민족, 전쟁 방지, 선진국, 이산가족 등의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그런 비참한 상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도가 겨우 그 정도에 불과하다면,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실까?

어떤 이들은 우리의 이러한 준비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 통일을 허락하시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일리 있는 말이다. 또한 우리의 준비의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준비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구약 어디를 봐도 ‘인간’이 먼저 준비를 한 후, ‘자 하나님, 이제 우리가 웬만큼 준비가 되었으니 역사를 이루어 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그래 알았다’라고 하시며 역사를 이루신 예는 없다.

오히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족하고 준비 안된 사람들을 먼저 택하시고 간난신고를 겪게 하시는 등의 ‘연단’, 과 ‘훈련’을 통해 ‘준비를 시키신 후’ 사용하셨다. 즉 ‘그분의 계획’과 ‘그분의 때’가 우선인 것이다.

출애굽 사건만 해도 그렇다. 어디 이스라엘 민족이 독립국가를 건설할 준비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출애굽시키신 것인가? 노예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자, 우리가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먼저 실력을 쌓고 준비하자’ 이런 노력을 해서 준비를 완료한 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래 준비 잘했구나. 이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때를 벗어나 가나안으로 가도 되겠다.’ 이렇게 해서 인도하셨는가?

오히려 그 반대다. 그분의 때에 그분의 계획에 따라 일단 출발시키시고 광야에서의 연단을 통해 ‘훈련’을 시키셨다. 통일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본다.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준비부족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자칫 통일 자체를 머뭇거리게 하는 저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그분이 결심하셨을 때 그 어떤 상황에서도 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만약 하나님이라면? ‘30배나 잘사는 너희들의 몫을 떼어 굶어 죽어가고 있는 너희 형제들에게 나눠주라’고 강권하지 않겠는가. ‘너희는 왜 너희의 작은 자유와 인권이 침해되었을 때는 흥분하면서 자유와 인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는 너희 형제들의 고통은 외면하며 제한된 자유만 갖는 것도 좋으니 ‘전략적으로’ 더 참으라고 하는가?’ 라고 질책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그러한 하나님의 강권에 의한 통일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해온 우리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피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 없음과 무관심, 게으름과 이기심을 깨고 권징을 하시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통일’(그러나 북한 주민들에게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자유와 인권이 회복되는)을 주실지도 모른다.

자, 어떻게 하겠는가?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관심하게 방치하겠는가? ‘준비 부족’을 이유로 더 잘 준비한 후에 통일이 오도록 해달라고 ‘지연’을 부탁하겠는가?

아니면, “예 주님, 주님의 뜻이라면,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이 회복되는 길이라면, 비록 우리에게 다소간 고통과 어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를 모두 감수하겠사오니, 지금 속히 통일을 허락하소서!”라는 마음과 각오로 나아가겠는가.

어떠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통일을 원하는가? 어떠한 통일을 원하는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장 33절)

<한동대 로스쿨 교수, 변호사>

 

송인호  ihsong@handong.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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