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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지 못하면 친척도, 부모도, 남이 된단다"제3화. 도적질을 시도하다

 

학교 갔다가 집에 와서 밥가마를 열어 보지만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책가방을 메고 농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곳은 광산이기 때문에, 아무리 둘러봐도 돌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광천역에 내리니 사람들이 올 호박을 리어카에 가득히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오는 길로 가면 호박이 가득 하겠구나'라는 생각에 그 길로 갔습니다. 가다보니 사람들이 새끼 손가락만한 애기호박을 이삭줍기를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도적질 하느니 이삭을 줍겠다고 생각하고 애기호박들을 가방에 한가득 채우고, 길 곁에 있는 새파란 개살구도 한 봉투 따서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때는 한참 9.27상무들이 꽃제비를 잡아서 집으로 돌려보낼 때였습니다. 꽃제비는 식량을 찾아 길거리로 나선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이 너무 많으니 김씨가 9월 27일에 아이들을 잡아서 고향으로 보내고, 가족이 없으면 구호소에서 먹이고 재우라고 했다고 합니다. 김정일이 9월 27일에 꽃제비들에 관해 말했다고 하여 그들을 보호하는 시설을 ‘9.27구호소’, 줄여서 ‘구이칠'이라고 불렀고 꽃제비를 잡는 사람들을 ‘9.27상무'라고 불렀습니다.

저도 기차에 오르자마자 ‘9.27상무’들에게 잡혔습니다. ‘9.27’에는 매일 잡혀 들어오는 꽃제비들이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주는 식량이 없었기 때문에 꽃제비를 ‘9.27’에 잡아다가 놔도 먹지 못해 그곳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할머니와도 같은 분들이 역전등 곳곳에서 파는 음식들을 빼앗아 꽃제비들에게 한두 개를 나눠줬습니다. 기회만 되면 꽃제비들은 도망을 치려고 했고, 도망치다가 맞아대기도 하고 탈출하면 ‘9.27상무'들을 피해서 다녔습니다. 결국 북한에서는 어디를 가나 고지식하면 죽고, 약고 빠르면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피해자보다 가해자를 잘했다고 손들어주는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사람을 영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9.27상무'들 중에 아는 형을 만나 간신히 풀려났습니다.

집에 도착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디 갔다 이제 왔냐?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니? 혹시 길에 쓰러져 있지는 않나 별의별 걱정을 다 했다. 살아서 돌아왔으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때마침 이모도 이모부와 싸우고 집에 와 있었습니다. 책가방을 열어 애기 호박을 꺼내니 이모가 저를 부둥켜안고 우셨습니다. 그 애기호박으로 국을 끓여서 이모랑 같이 먹었습니다. 배고픈 나무저 한 그릇은 게 눈 감추듯 먹었지만 두 그릇부터는 이상한 냄새가 났습니다. 애기호박국이라고 하면 달달하고 맛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정 반대입니다. 먹어본 사람만 알 것입니다. 하지만 배고플 때는 무엇을 먹든 최고의 만찬이지요.

먹을 것이 없으면 친척도 남이 된다

며칠을 굶고 있을 때 어머니는 이모 집에 가서 며칠을 놀다가 오라고 했습니다. 그 뜻은 이모 집에 가서 ‘먹고' 오라는 것입니다. 기차를 타고 이모 집으로 갔는데, 다행히 아침식사 시간에 맞춰 도착해서 며칠 만에 옥수수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나자 이모부는 “팀! 우리도 식량이 없다. 그러니 집에 가라.”고 했습니다. 기차를 타러 나왔지만, 그 지역에 많은 산 마늘을 뜯어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산으로 향했습니다. 한참 산을 올라가고 있는데 이모부가 따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가지 않고 어디 가냐? 기차가 하루에 한번 다니기 때문에 지금가지 않으면 안 된다. 내일가면 어디서 먹고 자니? 지금 가라!"
“이모부 이곳에 산 마늘이 많아서 조금만 뜯어 가지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이모부는 2미터 되는 콩대를 뽑아 들더니 때리는 것입니다. 맞을만한 잘못을 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변명도 못 하고 산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면서 속으로는 ‘철! 넌 잘 살 수 있어. 꼭 보란 듯이 살 거야!’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잘 살겠다는 뜻은 ‘이밥에 고기 국'이었던 것 같습니다.

   
▲ 어머니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 살아야 친척도 있지, 잘 살지 못하면 친척도, 부모도, 남이 된다.” ⓒ이윤경(재능기부)
그날도 배가 고파 꽃제비들처럼 도적질해서라도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몸과 생각은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감자, 옥수수, 무 등을 도적질해 간 경험은 있지만, 사람이 손에 들고 있는 음식을 도적질해본 일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먹긴 먹어야 하는데 생각처럼 행동이 옮겨지지 않으니, 도적질도 쉽지 않은 것이라고 처음 느꼈습니다. 눈에만 모든 음식을 담아 두면서 하루 종일 시장을 맴돌았어요. 저녁이 되어 같은 신세인 꽃제비에게 다가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먹다 남은 물을 먹고 있기에 “나도 네가 먹는 물 조금만 줄 수 없겠니?”라고 물었지만, 그 꽃제비는 본체만체 하고는 다 마셔버렸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굶은 채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집에는 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도 배낭을 메고 어머니와 저는 기차길을 따라 쑥을 뜯으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외할머니 집 근처까지 가게 되어 물을 마시러 들어갔습니다. 물을 마시고 있는데 부엌에 옥수수밥이 담겨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사정을 했습니다. “엄마 옥수수밥 한 그릇 좀 먹기요. 철이랑 나눠 먹고 가겠소" 라고요. 하지만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물만 먹고 그냥 가라!” 라고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사정을 했지만 끝내 한 숟가락도 얻어먹지 못하고 걸어서 집으로 내려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잘 살아야 친척도 있지, 잘 살지 못하면 친척도, 부모도, 남이 된단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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