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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안착, 통일 후 혼란 줄이려면 실리콘밸리 모델을"탈북자 대상 전문 직업훈련 하는 한국입체교육정보원 정국용 원장

서울 구일동에 위치한 한국입체교육정보원(원장 정국용) 사무실은 활력이 넘쳤다. 800㎡ 넓이에 강의실만 8곳이다. 웬만한 직업훈련 학교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사무실엔 교육을 받겠다며 찾아오는 탈북자들이 줄을 이었다. 교사와 정 원장간에는 격이 없어 보였다. 넓지 않은 사무실에 정 원장과 교사들이 같이 있지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정보원엔 14명의 탈북자 출신 교사가 있다. 이들은 포토샵, 동영상, 엑셀, 글 등 15개 IT 관련 분야를 수강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교사들의 특징은 이 정보원을 거쳐간 수강생 출신들이라는 점이다. 이밖에 무료교육, 무료 컴퓨터 정비 등 공익을 위한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 서울 구일동 한국입체교육정보원 건물. 바깥엔 '한민족문화복지진흥원'이란 간판이 내걸려 있다. ⓒ유코리아뉴스

정보원은 2009년 5월 노동부 지정 직업훈련 기관이 됐다. 2011년 10월엔 서울시로부터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공신력을 인정받고 자립의 기반도 갖춘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 기업 등으로부터 직업훈련 교육을 위탁받아 실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배출한 탈북자들은 수백 명. 이들은 일반 기업체 취업은 물론 3D 입체 콘텐츠 제작, 홈페이지 제작 및 관리, 어플리케이션 개발, PC 정비 사업 창업 지원을 받고 있다. 정 원장은 “탈북자 직업훈련을 하는 곳은 몇 개 있지만 우리 정보원은 신규 취업 준비생뿐만 아니라 한번 거쳐간 사람들도 꾸준히 찾아와 재교육을 받고 있다”며 “조만간 IT 관련 업계에서 탈북자들의 다양한 창업 사례도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처 동양미래대와 연계해 산학 협동도 하고, 수강생 중 인재들을 골라 석·박사들로 키우겠다는 게 정 원장의 계획이다.

한국입체교육정보원 정국용(54) 원장. 그는 북한에서 청진광산금속대 자동화시스템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에 와서는 40대를 넘긴 나이에 정수기능대학(현 한국폴리텍1대학) 자동화시스템학과에 학부생으로 입학했다. 이때 백석대 신학대학원 과정도 병행했다. 낮에는 신학을, 밤에는 공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엔 1년 정도 로봇회사에 다니며 역시 야간에 신대원을 다녔다. 서울산업대(현 서울과학기술대) 메카트로닉스 학과(석사)를 졸업하고, 한세대에서 유비쿼터스 관련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나 더 있다. 직업 훈련을 위해 한국교육기술대도 졸업했다. 단언컨대 한국에서 정 원장보다 가방 끈이 긴 탈북자는 없을 것이다.

“미쳤죠. 미쳐서 그랬어요.” 가방 끈이 엄청 긴 것 같다는 지적에 정 원장의 엄살 섞인 반응이다. 그가 왜 그렇게 긴 배움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는지는 ‘글쎄’다. 의욕이 많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소명이 있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 산학 협력을 통해 탈북자를 전문직업인으로 키우는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의 정국용 원장.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다만 정 원장이 주경야독을 하면서까지 백석대 신학대학원을 다니게 된 이유는 이렇다. 정 원장은 탈북과 함께 중국에서 한 재미교포 선교사를 만났다. 당시엔 정 원장에게 종교는 아편이고 기독교는 제국주의의 앞잡이였다. 어떤 선교사도 곱게 보일 리가 없었고, 누구의 말도 믿겨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 선교사는 달랐다. 온유하고 겸손했다. 선교사의 인품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가족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성경공부에도 참여했다. 하루하루가 마치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 같았다.

한국엘 와서 하나원 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아득했다. 의지할 아무도 없었다. 그때 중국에서 만났던 그 선교사가 문득 떠올랐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남한에서 그 선교사님처럼 살자.’ 신학대학원을 알아봤더니 ‘북한 대학 졸업장이 있으니 신대원 입학이 바로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주간엔 백석대 신대원, 야간엔 정수기능대를 다니게 된 것이다.

신대원 학생 중엔 유독 개척교회 목사들이 많았다. 얘기를 들어보니 과거엔 돈도 꽤 벌었던 분들인데 지금은 하나같이 어렵게들 사역하고 있었다. 사역은커녕 생계마저 위태로운 목사들이 많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때 생각했다. 스스로 돈을 벌어서 사역하자고. 결국 직업교육과 돈 버는 일을 병행하자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즈음 정 원장에겐 충격적인 또 하나의 사건이 눈앞에 펼쳐졌다. 같이 공부하던 몇몇 신학생들이 예배 시간엔 너무나 경건했지만 예배가 끝나면 행동이나 태도가 180° 달라지는 것이다. 중국에서 만난 선교사와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이 상태로 북한 주민들 선교는 가당치 않다고 봤다. 결론을 내렸다. ‘돈을 벌자.’ ‘최고 전문기술을 가지자.’ 그리고 ‘말과 행동이 다르지 말자.’ 이것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도 구상했다. 자신이 직접 돈을 벌어 그 수익금으로 직업교육을 하고, 회사 운영과 함께 목회도 병행한다는 거였다. 한국입체교육정보원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던 것이다.

정 원장의 올해 나이는 54세. 하지만 나이에 비해 주름이 많아 보였다. 세월의 흔적만은 아니었다. 입체교육정보원이 초창기 어려울 때는 말썽이 없었다. 하지만 노동부 지정 기관이 되고 사회적 기업도 되면서 서서히 삐걱대기 시작했다. 사단법인과 대안학교를 추진하면서 동업자가 자신의 사람들을 영입하고, 그 과정에서 고소·고발 문제가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 원장은 덤덤했다. “처음에는 굉장했어요. 검찰에 불려갔더니 완전 죄인 취급하더라구요. 진실은 결국 밝혀지는 겁니다. 이런 과정이 꼭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남한 사회를 잘 알 수 있는 기회가 됐고, 그만큼 더 잘 정착할 테니까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배우지 못했을 것들을 참 많이 얻었어요. 공동체, 동료애, 사명, 그리고 옳은 일이라면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을요. 지금까지는 마냥 숨어서 일을 했는데 혼자만 잘 한다고 사회가 바뀌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탈북자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목표가 뭔지 물었더니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최고가 되어야죠, 최고가.” 그는 지난 10년간 소중하게 꿈을 키워왔다. 남한의 탈북자들에게 낮에는 직업교육, 밤에는 대학교육을 통해 최고 전문가로 키우는 것, 이들을 통해 산·학을 연계한 첨단 산업단지를 북한에 세우는 것. 하지만 현실은 끊임없이 그의 꿈을 발목 잡았다. 어쩌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게 기적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그의 앞길이 탄탄대로라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여전히 가정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언제쯤 되어야 롤모델이 될 만한 최고전문가가 나올지도 알 수 없다. 3년이면 끝나는 사회적 기업 이후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조차 못세우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통과해야 할 장애물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 걱정이나 긴장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산전수전 겪어온 베테랑 같은 여유, 그리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 정국용 원장이 한국입체교육정보원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정 원장의 꿈은 북한에 미국의 실리콘밸리 같은 산학 협력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걸 위해 부단히 공부를 해왔고, 자신이 지금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론은 실습을 통해 검증되고, 실습은 이론으로 더욱 탄탄해지는 겁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론이나 지식만 있어서는 안되고 반드시 실천,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북한이 필요로하는 것은 두 가지 다 병행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야 스스로 역량을 키워 안착할 수 있고, 통일 후 혼란도 줄일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IT 시대도 지난 첨단 스마트 시대다. 아무도 서울의 변두리 구로에서 IT 교육을 받는 탈북자들을 주목하는 이가 없다. 그렇지만 정 원장은 북한 실리콘밸리의 주역들이 여기서 나올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정 원장의 마음 한켠엔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 바로 목회다. 정 원장은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필수과정인 신학(M.Div)를 마쳤다. 그런데도 목사 안수는 미루고 있다. 스스로 아직 자격, 즉 인격이 안갖춰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준은 늘 중국의 그 선교사다. 그 선교사처럼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사인을 받았을 때가 곧 목회의 시작점이 될 거란다. 그때가 바로 명실상부 최고전문가, 직업교육, 그리고 목회를 병행하는 시점인 것이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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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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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디모데 기자 2012-11-13 13:59:18

    너무 멋진 삶으로 사시는 선배님을 보고 도전이 됩니다. '언행일치'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후배들을 위해서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기를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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