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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제1화. 어린 시절.


저는 함경남도 단천시 운천이라는 작은 시골동네에서 태어났습니다. 세 살에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떠돌이 생활을 했지요. 집이 가난해 살기 어려웠던 어머니는 저를 다른 집으로 입양보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입양된 집에서 며칠 먹지도 않고 울어댔고, 결국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굶고 못살더라도 어머니 곁이 가장 포근했고, 어머니께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외할머니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먹고 살기 어려운데 입이 늘었다고 하시며 저를 가시처럼 여겼습니다. 밥값을 하려면 나무를 해와야 한다며 도끼와 끈을 쥐어주셨습니다. 그렇게 형들을 따라 나무하러 다녔던 것이 다섯 살의 일이었으니… 글을 쓰면서도 믿기지 않습니다. 산으로 밭으로, 나무와 이삭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감자, 콩, 옥수수, 무 등 보이는 것들은 모두 주웠습니다. 무언가를 집에 가져가면 할머니는 기뻐했지만, 빈손으로 들어가면 항상 욕을 퍼부었습니다.

외할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어머니와 저는 작은 식당에서 일하며 숙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단 둘이 살다보니 다른 집 아이들이 아버지와 사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엔가 식당에서 불을 때면서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엄마!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품고 있던 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새 아버지 하면 어떨까요?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 있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생각지 않은 말에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 후로 어머니는 중매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자 쌍둥이가 두 명 달린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식당일로 늦게 퇴근을 했고 새아버지는 일이 끝나는 대로 일찍 들어왔습니다. 새아버지는 여자 쌍둥이들한테는 좋은 아버지였지만 저에게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의 스트레스를 다 퍼붓듯이 때렸고, 저는 집밖으로 도망쳐 어머니를 기다리다 같이 들어가곤 했습니다. 그런 삶이 계속 반복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저 때문에 이혼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어머니는 중매가 들어 올 때마다 저를 친자식처럼 키워 줄 수 있는 분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여섯 살이 되던 해, 저는 네 번째 새아버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아버지는 천재였습니다. 1960년에 중국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을 잡고 북한으로 넘어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김일성초상화 틀을 닦다가 실수로 액자를 깨뜨렸고, 그 일이 옆집 아저씨에게 발각되어 그날 밤으로 실종되셨다고 합니다.(북한에서는 김일성에 관해 함부로 말하거나 사진, 초상화를 훼손하면 반동분자로 몰려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그 후 아버지의 집은 정치범가정이 되어 실력이 있어도 성공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새아버지는 자신은 반역자 가정 출신이어 성공할 수 없지만, 저를 잘 가르치면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아버지는 저에게 공부를 엄청나게 시켰습니다. 집에 오면 학교 숙제보다 새아버지가 내 주는 숙제가 더 많았습니다. 새아버지 숙제를 다 못한 날에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그 숙제를 다 해야만 했습니다. 숙제의 분량이 너무 많으니 밖에 나가서 논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 제일 부러웠던 것이 밖에 나가 노는 것이었습니다.

   
▲ 새아버지 숙제를 다 못한 날에는 학교를 가지 못하고 그 숙제를 다 해야만 했습니다.  ⓒ이윤경(재능기부)


그래도 학교에서 매번 글짓기나 수학 1등을 할 때면 새아버지에게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짧은 글짓기로 전교에서 유명해진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했던 시기인 1994년 7월, 선생님은 ‘뜻밖에’ 라는 단어를 가지고 짧은 글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뜻밖에 문을 열고 나가보니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등등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학교에 등교하니 뜻밖에 경애하는 김일성대원수님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라고 글을 지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은 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고 전교생들에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만나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 것이 소원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미디어를 통해 그것이 삶에서 가장 큰 영광인 것처럼 선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김 씨들이 어떤 지역을 현지 방문했다는 뉴스를 보거나 기록영화를 보면 우리고장에도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도록 했고, 그래서 거리와 마을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김 씨가 기차를 타고 올 때를 대비해서 거리에 나가서 종이꽃을 들고 환영하는 사전훈련도 했습니다. “장군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등의 노래들을 부르면서 마을과 거리를 깨끗하게 하고, 김 씨 방문에 대한 철저한 훈련을 했습니다. 한 번씩 방문하면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가난한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얻고자 했던 심리적 욕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 중요한 과목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어린시절',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김정숙어머님 어린 시절’까지 있습니다. 그들을 존경하고 따라 배워야 하는 이유는 왜놈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고, 지금의 북한을 있게 했기 때문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생일이면 1kg정도의 사탕과 과자를 주면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원수님 고맙습니다"라고 머리 숙여 초상화를 향해 인사를 하도록 시켰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탕과 과자의 양은 줄어들었고, 과자도 ‘벽돌과자'라고 불리며 맛을 잃어 갔습니다. 그렇게 사회도 맛을 잃어 갔고 사람들은 살기 어려워졌습니다. 이는 곳곳에서 가정불화와 싸움으로 번져갔습니다. 싸우는 이유는 먹을 것이 없어서였습니다.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고, 비판적인 말 한마디로 단련대나 교화소에 가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그 후로 부모님들은 입단속을 시켰습니다. "밖에 나가면 집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말하지 마라."고 말입니다.

북한은 한 동(洞)이 10세대정도 됩니다. 그 중에 보안서감시, 보위부감시(‘보안서’는 남한의 경찰서 같은 곳이고 ‘보위부’는 남한의 국정원과 같은 곳입니다.), 등 한 사람 당 한 사람 꼴로 감시를 합니다.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물감시망과도 같습니다.(‘단련대’는 일을 하기 싫어서 출근하지 않거나, 반사회적 언어, 도둑질, 사기, 도박 등의 범죄로 가는 작은 감옥입니다. 6개월에서 3년까지 수감생활을 합니다. ‘교화소’는 단련대보다는 좀 더 중범죄자들이 가는 곳으로, 1년에서 15년까지로 알고 있습니다. ‘정치범수용소’는 사회주의를 무너뜨리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이나, 김씨에 관한 비난을 한 사람들이 들어가서 죽어서 나오는 곳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치나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하면 단련대, 심하면 정치범수용소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식적으로라도 충성하는 척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마지못해 행사장에 나가고, 돈 있으면 뒤로 가만히 돈을 줘서 행사장에 가지 않거나 생활총화에 나가지 않는 모습들을 봤습니다.

단련대나 교화소 등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노동으로 단련시키고, 폭력을 통해 사회주의를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도 해결 못하는 사회주의를 찬성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사회민주주의라고 말은 멋있게 하지만, 현실은 독재와 300만이상의 아사자이니 말입니다. 역사가 어떻게 심판할지 기다려집니다.
 

강디모데 기자  jcnk1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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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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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7-10-27 17:59:58

    저번에 원코리아연합기도회에서 강디모데 전도사님의 간증 잘 들었습니다~!!!! 하루빨리라도 남북통일이 이루어져 강디모데님 고향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3만여명의 탈북민들이 나고자란 고향도 가고싶습니다~!!!!   삭제

    • Joe 2012-11-10 13:34:59

      이런 빨간모자..
      강디모데는 장군님을 기다렸을까요? 아니면 사탕을 기다렸을까요?   삭제

      • 강디모데 기자 2012-11-08 19:12:52

        제목이 조금 자극적이네요^^ 의도와는 빗나가지 않았나라는 생각은 해보지만 그런대로 괜찮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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