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짜의 세계를 벗어나 타자의 세계로 돌아온 당신이 유빕이다.

 

▲ 부제 “그 누구도 믿지 마라”는 영화「타짜」의 한 장면. 허영만, 김세영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타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를 일컫는 은어로, 영화는 노름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짜릿한 승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바닥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다”며 상대(타자)를 규정하는 대사에서 보여주듯 노름판 ‘타짜’들 간의 심리전과 기 싸움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단연 백미!...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라는 주인공 고니(조승우 역)의 명대사가 많이 회자된다.
▲ 부제 “그 누구도 믿지 마라”는 영화「타짜」의 한 장면. 허영만, 김세영의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타짜’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전문도박사를 일컫는 은어로, 영화는 노름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짜릿한 승부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이 바닥엔 영원한 친구도 원수도 없다”며 상대(타자)를 규정하는 대사에서 보여주듯 노름판 ‘타짜’들 간의 심리전과 기 싸움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는 긴장감이 단연 백미!... “확실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마라! 이런 거 안 배웠어?”라는 주인공 고니(조승우 역)의 명대사가 많이 회자된다.

 

영화 <타짜(2006)>는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다.

철학에서도 특히 현상학은 드러난 현상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고로 만약 진실이 아니라면, 그 현상 배후나 바깥에 감추어진, 즉 "은폐된" 혹은 "억압된/추방된" 진실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엄밀하게 다루는 철학적 방법론이 바로 현상학인 것이다.

예컨대 '내가 웃는다'고 하자.

 

  ○ 첫째, 정말로 우스워서 웃는다면 이 경우에 현상과 진실은 일치한다.
  ○ 둘째, 우습지 않고 허탈해서 웃는다면 현상과 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
  ○ 셋째, 빈정이 상해서 아예 비웃는 경우에도 현상과 진실은 일치하지 않는다.

 

이처럼 살다보면 정말로 우스워서 웃는 때도 있지만 상황을 부정하거나 피하고 싶어서, 가식적으로 웃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상학적 측면에서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는 존재자에 의해 은폐되고 망각된 "존재 찾기"에 나선 반면, 레비나스(Levinas, 1905~1995)는 주체에 의해 부정된 "타자 찾기"에 집중한다.

요컨대 레비나스의 타자철학은 전체성이라는 '타짜'에 반기를 드는 대신, '타인의 존재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밝히는 데에 있다.

 

▲ 『전체성과 무한』. 저자 레비나스(Levinas)는 별도 논문으로 발표한 서문 ‘윤리와 종말론’에서 “되풀이되는 다툼과 전쟁에서 벗어나는 참된 평화의 길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 답으로 “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하고 장악하려는 시도를 넘어서는 윤리”를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이 윤리는 전쟁과 쌍을 이루고 전쟁을 보충하는 ‘가짜 평화’가 행세하는 전체론적 역사의 지평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참조=한국철학사상연구회刊, 시대와 철학 24권4호 '윤리와 종말론 - 전체성과 무한의 서문 읽기')
▲ 『전체성과 무한』. 저자 레비나스(Levinas)는 별도 논문으로 발표한 서문 ‘윤리와 종말론’에서 “되풀이되는 다툼과 전쟁에서 벗어나는 참된 평화의 길이 무엇인가”를 묻고, 그 답으로 “세계를 전체로서 파악하고 장악하려는 시도를 넘어서는 윤리”를 제시하려 한다. 하지만 이 윤리는 전쟁과 쌍을 이루고 전쟁을 보충하는 ‘가짜 평화’가 행세하는 전체론적 역사의 지평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참조=한국철학사상연구회刊, 시대와 철학 24권4호 '윤리와 종말론 - 전체성과 무한의 서문 읽기')

 

◇ 전체성은 타짜다

 

홀로코스트(Holocaust. 유태인 대학살)를 체험한 레비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384~BC 322) 이후의 서구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전체성' 내지 '전체화'(totalisation)로 보았고, '진리는 전체다'라는 헤겔(Hegel, 1770~1831)의 명제도 타짜로 간주, 전면 부정한다.

여기서 전체성(全體性)이란 어떠한 개체, 어떠한 단편도 '같음(동일성)' 안에 받아들여 일반화하는 존재의 로고스(logos) 내지 '모음'(집섭.集攝, rassemblement)인바, 세계사의 운동인 동시에 국가의 양태이기도 하다.

또한 자기 동일화는 자기 보존의 노력을 상정하는데, 자존케 하는 자아는 전체성의 단절을 표시하는 것임과 동시에 전체성과 전체화의 온상이기도 하다.

고로 한편으로는 익명의 전체성을,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自我)의 에고이즘(egoism)을 무한에 의해 파괴하는 것이 레비나스의 과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가 타인을 위한 윤리적 존재라면 자기 삶은 포기해야만 하는가?'(존재물음)에 대한 답변이 절실해진 것이다.

마침내 레비나스는 이 문제를 '先향유 後응답'으로 풀었다.

 

◇ 선(先)향유(동일자의 독립성) 후(後)응답(타자윤리)

 

본질적으로 인간은 타인(他人)에게서 유전자(DNA)를 이어받아 생명을 얻기에 타인들은 실존의 근거가 된다.

고로 그들에 대한 책임과 희생을 실천하는 것이 곧 존재의 실현이다. 즉 타자성이 존재의 기원이며 그 타자성을 지향해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땅한 이치인 셈이다.

나와 너의 관계는 나와 너의 분리가 전제되기에 자기의 주체성 내지는 동일자의 독립성이 우선이다.

고로 현존재의 '불안'이 아닌, '향유'(세상 사람들처럼 먹고 마시고 즐김)가 대체불가한 자기 삶의 주체성 확립에 필수조건이 되는 것이다. 즉 일상적 향유야말로 내가 세계와 만나는 접촉점이다.

하지만 이 향유는 만족되지 않고 찰나적이며 자연 등은 인간의 통제 바깥에 있기에 레비나스는 거주와 노동도 함께 중요하다고 보았다.

우리는 해외여행에서 돌아오면 예외 없이 일갈한다 :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 아무리 누추해도 제 집보다 더 안락한 곳은 없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은 주변세계를 지배하고 정복ㆍ소유하는, 보다 적극적인 방식이다. 즉 노동은 무(無)규정성과 익명성을 해제한다. 예컨대 노동력에 의해 사물이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존재 익명성을 벗어나 세계를 관리하고 노동하며 그 가운데서 집을 짓고 타자와 함께 거주하며 사회를 형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는 사물을 인식하고, 노동하고, 미래에 대해 불안을 갖는 것은 부차적인 일인 반면, 타인을 영접하고 손님으로 환대하는 것이 동일자의 독립성 확립을 위한 일차적 조건임을 강조한다.

즉 우리가 주체(主體)가 되는 것은 타자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을 상실하지 않음으로써 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 관계맺음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그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상호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외려 믿고 따르며 종속이 될 때에 주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기와 타자 사이의 '비대칭성'이 생겨나는 것이다.

결국 비대칭적 타자와의 만남으로 비로소 우리는 타자에 응답하는 '윤리적 주체'가 되는 것이다.

타짜의 세계를 벗어나 타자의 세계로 돌아온 당신이 유빕이다.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 필자 한병현 : 서울대 약학대학 및 동 대학원 졸. 미국 아이오와대 사회약학 박사. 前한국보건산업진흥원 사업단장. 前아시아약학연맹(FAPA) 사회약학분과위원장. 前사회약학연구회 회장. 前대통령자문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AIMS Medical Science’ 前객원편집장. 現유빕공동체 대표. 現압구정 예주약국 대표. 現BOC(방앤옥컨설팅)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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