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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에도 교회 안에서 남북을 구분할 겁니까?"탈북 사역자 마요한 목사 "통일은 교회가 준비되는 만큼만"

가을 햇살이 따사롭던 10월 중순, 서울 상암동 마요한(45) 목사의 집을 찾았다. 흐트러지지 않은 머리, 평상복이지만 단정한 옷매무새, 그는 특유의 점잖음으로 그렇게 손님을 맞았다. 화사한 얼굴의 김연희(40) 사모도 청소를 하다 말고 나와서 반겨주었다. 사모는 정성스레 깎은 사과와 커피를 내오고, 마 목사는 기구한 개인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 새희망샛별교회 마요한 목사. 순진무구해 보이는 그의 웃음속엔 순수 신앙, 목회관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마 목사는 1998년 8월에 탈북해 2002년 6월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서는 고등중학교에서 역사학 교사를 했다. 이후 종교학을 배우기 위해 김일성종합대에 진학하려다가 좌절됐다. 탈북을 결심한 건 기업소에서 청년간부를 하면서 장마당 규찰대로 나갔을 때 가난한 북한 주민들의 물건마저 빼앗는 규찰대의 행패를 보면서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 알고지내던 조선족 상인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

탈북 후 국내 입국까지 4년 동안은 그를 평범한 사람이 아닌 사역자로 만든 훈련 기간이었다. 한국 선교사를 만나 성경을 알았고, 이후 공안에 붙잡힌 동료들을 위해 스스로 공안을 찾아간 적도 있다. 이후부터는 탈북자나 중국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가르치는 사역을 했다. 목숨 같은 건 이미 내놓은 상태였다.

탈북자가 탈북자를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고 양육한다는 정보는 오래지 않아 북한 보위부에 들어갔고, 2001년엔 북한 보위부에 끌려갔지만 기적처럼 탈출했다. 그가 살아오자 중국 내 선교사들조차 ‘북한 보위부가 보낸 스파이’라고 오인할 정도였다. 마 목사는 “그때 일은 기적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며 “분명한 것은 ‘네가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살려두는 것’이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고, 그 이후로 오래지 않아 석방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와서는 9년간 대형교회에서 탈북자 공동체를 만들어 섬겼다. 장신대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건 지난해 4월, 개척은 석 달 후인 7월에 했다. 대형교회에서 10년 가까이 목회를 했으면 개척 교회쯤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그는 손사래를 쳤다. “저는 대형교회에서 사역을 오랫동안 했지만 목회 방법은 잘 몰라요. 뭘 모르면서 그냥 가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에 있었으면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웠을 텐데 아쉬운 부분이죠. 제가 잘 모르니까 하나님께서 알아서 동역자들을 붙여주시겠죠 뭐.”

개척교회는 그래도 불과 1년이 안돼 사무실 임대료도 다 낼 수 있을 정도로 자립이 됐다. 교인들이 30명으로 불어나다보니 자리가 부족해 결국 교회는 다음달 5일 서울 신정동 새 건물로 이사를 간다. 예배당 크기는 훨씬 넓어졌고 그만큼 임대료도 몇 배나 된다. 이제 며칠 후면 이전해야 하는데 아직 계약금조차 다 마련을 못한 상태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 어디에도 염려의 기미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1년 전 교회를 개척할 때도 장소나 돈, 사람이 없이 시작했는걸요. 첫 준비 모임에 10명 넘는 분들이 참석했는데 200만원의 헌금이 걷혔어요. 완전 빈손으로 시작했는데 하나님께서 사무실도, 사람도, 돈도 주신 거죠.”

그가 그토록 확신하는 데는 또 다른 믿을 구석이 있다. 그가 추구하는 분명한 목회 방침 때문이다. 그는 교회 이름을 내세우거나 건물을 앞세우지 않는다. 남한 사람과 탈북자의 구분을 없앴다. 그래서 남북 통일의 모델 교회가 되는 것이 그가 추구하는 교회의 방향이다. 교회의 이름이나 크기를 자랑하지 않고 북한의 온전한 회복에 초점을 맞춘 만큼 어떤 식으로든 필요가 채워질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다. “우리 교회는 탈북자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남한 사람들만의 교회도 아닙니다. 남북이나 빈부나 사회적 지위 고하 구분 없이 누구든 복음 안에서 통일을 위해 함께 세워지고 준비되자는 게 목표입니다.”

마 목사가 대형교회에서 탈북자 사역을 하는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교회 내에서 탈북자와 남한 사람을 구분 짓는 일이었다. 직분을 줄 때 탈북자를 제외하는 것도 거슬렸지만 탈북자만 구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탈북자 사역이 장애인 사역처럼 교회의 특수사역으로 굳어져 있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탈북자 교회는 탈북자 교회로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는 게 마 목사의 확고한 지론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북의 구분이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게 안되면 통일 후에도 북한에 ‘남한 사람들 교회’ ‘서울 교회’, 그리고 남한엔 ‘북한 사람들 교회’ ‘평양 교회’가 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진정한 통일일까요? 그게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됨의 회복일까요?”

탈북자로서 마 목사가 남한에서 흔들림없이 목회의 길을 가는 데는 김연희(40) 사모가 있기에 가능하다. 마 목사가 김 사모를 만난 것은 2002년 한국 땅을 밟기 전 몇 개월간 지냈던 캄보디아에서다. 두 사람은 100명이 넘는 탈북자 중에서 같은 조에 속했었다. 마 목사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신앙과 성경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선생님’으로 통했다. 하지만 김 사모는 복음을 몰랐고, 더군다나 북한에서 낳은 딸 아이까지 딸린 상태였다. 아이를 데리고 탈북하다가 몇 번이나 잡혔다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마 목사는 짠해졌다. ‘이 사람과 함께 아픔을 짊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도 만만찮았다. ‘목사 될 사람이 애 딸린 여자랑 결혼하면 안된다’는 거였다.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겼다. 자신은 이미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졌는데 애 딸린 여자라고 외면한다면 ‘역시 그리스도인도 어쩔 수 없구나’라는 인상을 탈북자들에게 줄 것 같았다. 그를 한국으로 인도했던 선교사도 그녀와의 결혼을 말릴 정도였다. 결국 두 사람은 2003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 마요한 목사와 김연희 사모는 2002년 캄보디아에서 만났다. 마 목사는 김 사모를 향해 "아내가 없다면 지금의 목회는 결코 시작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그래요. ‘아내 잘 만났다’고. 탈북자 가정 보면 깨어지는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교회 개척하는 데 아내가 준비가 안되면 힘들거나 불가능하죠. 아내가 처음엔 무척 힘들어하면서도 하나님께 매어달리면서 이겨가는 모습을 보면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초창기 김 사모의 남한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남편은 당시 전도사로서 사역하고 있었다. 김 사모는 신앙도 없으면서 사모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했다. 거기다 남편의 권유로 한 신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배우고 있었던 터라 공부에, 가사에, 사역에 짓눌려갔다. 나중엔 안면마비까지 찾아왔다. 결국 김 사모는 학교를 휴학하고 교회마저 옮겼다. 마 목사는 마 목사대로 힘든 시절이었다. 탈북자가 소외되는 교회의 현실을 보며 사표를 들고 주일예배에 참석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두 사람은 깨달았다. 이 극심한 고통의 터널은 바로 연단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김 사모의 말이다. “믿음에 서 있지 못하다 보니 저는 저 나름대로 ‘왜 남편이 이 길을 가서 나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고, 그런 저를 보며 남편은 남편대로 괴로워했어요. 알고보니 내가 남한 사람들의 시선을 자꾸 의식하면서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었던 거더라구요. 보통 신앙이 있는 탈북자들은 중국이나 제3세계에서 이걸 경험하고 오는데 저는 남한에 와서 겪다보니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걸 다 극복하고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어요. 하루하루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마 목사는 인터뷰 내내 ‘저는 뭘 모르는 목사’라는 말을 반복했다. 목회 방법이나 수완 등 모든 게 부족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이 오히려 그의 능력으로 보였다. 그만큼 자신을 의지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더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과 함께 복음에 확고히 선 모습은 그의 목회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새벽기도회의 경우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지만 동기는 주로 ‘자기 자신’에게 맞춰진 경우가 많다. 마 목사는 반대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신을 성찰하고 깨뜨리고, 그래서 자신보다는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위해 끊임없이 자기를 드리는 것, 그것이 새벽기도회 참석의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선교도 마찬가지다. 조급함이나 물량이 아닌 북한선교 담당자가 먼저 복음 안에 바로 서는 것이 북한선교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래야 하나님 마음을 알 수 있고, 그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에서 제대로 헌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마요한 목사가 아파트 아래를 내려다보며 과거 회상에 젖어 있다. ⓒ유코리아뉴스

그는 누차 ‘북한 회복’을 강조했다. 북한의 우상체제가 무너지고 교육이나 문화 등 모든 영역이 회복되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북한의 급격한 변화, 즉 급변사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북한의 회복은 한국교회가 준비됐을 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급변사태 같은 것으로 주시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통일은 가장 안정적이고 옳은 방향의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그걸 위해 가장 중요한 게 한국교회가 준비되는 것인데 안타깝지만 지금은 한국교회가 준비가 안됐다고 봅니다. 북한의 체제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한국교회가 준비가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봐요. 사람들이 ‘언제 북한의 체제가 무너지나’라고 궁금해하는데 저는 거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북한은 껍데기만 남았다고 생각해요. 그건 하나님의 때와 방법에 따라 분명 바뀔 겁니다. 중국이 북한을 점령하거나 차지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성경에도 보면 이스라엘이 주변 열강 때문에 고난을 받지만 결국 열방도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거나 심판에 처하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한국 사회, 특히 한국교회가 통일을 준비하는 겁니다.”

‘남북통일은 한국교회가 준비되는 만큼만 주어진다.’ 탈북의 사선(死線)에서 복음을 접하고, 그 복음 때문에 생명마저 초개처럼 내던졌던 그가 10년간 한국교회를 경험한 뒤 내린 결론이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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