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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는 길을 가야 민족이 산다(1)기독청년 60%가 "통일비용을 낼 의사가 없다"는 통계를 접하고

도무지 남의 일에는 관심이 없고 소외되고 연약한 민족의 고통에도 관심이 없고 자기 속에 매몰된 이 시대의 청춘에게 고함.

1. 청년의 때에 신학대학교 예배실로 사용된 다락방에서 종종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저는 북한과 조선족과 고려인을 섬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 지도를 펴놓고 북한의 강원도, 황해남북도, 평안남북도, 자강도, 량강도, 함경남북도의 각 지역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임할 부흥과 하나님 나라 그리고 통일을 위해서 중보하며 부르짖곤 하였다.

2.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인 조선족과 고려인을 위한 기도도 나의 기도에서 빼먹지 않았었다. 그런데 기성세대가 된 지금 부족하지만 그때의 기도는 작은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듯하다.

3. 그 시작은 가진 것이 없고 힘들었던 학부시절부터였다. 내게는 북한동포, 고려인, 조선족 동포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때로는 식사에 초대를 하였고, 설이나 추석 명절엔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 하고, 동계나 하계 수련회 가운데도 초대를 해서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돈이 없어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돈으로 1달에 3-5만원씩 모아서 돈이 모아지면 그것으로 섬기곤 하였다.

4. 그들은 남이 아닌 나의 형제, 자매라는 의식이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청년의 때에 만났던 이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도처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달려가는 동역자들로 함께 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5. 20대에 올려 드려진 기도는 이제 제법 자라서 탈북 지체를 만나고 격려하고 섬기고 있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탈북 지체들을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고 힘이 닿는 한 아끼고 격려하고 섬기게 되었다. 무엇이든지 아비의 심정으로 도와주려고 하는 삶으로 연결되어졌다. 그리고 조선족과 고려인 동포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품고 사는 목회자가 되었다.

6. 통일운동을 거창하게 하지는 못해도 섬기는 교회의 청년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고 복음으로 민족과 열방을 섬기고자 함께 씨름하였다. 그래서 조선족과 고려인 동포들이 살고 있는 동북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청년들을 해외단기선교로 파송하여서 작은 섬김이지만 그곳에 가서 직접 동포들을 만나 섬기게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 나라 운동이요 작은 통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7. 나는 조선족, 고려인, 탈북자들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심으로 그들을 나의 형제, 자매라고 생각하고 거짓이 없는 마음으로 대한다. 이러한 생각들이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청년의 때의 기도와 작은 헌신들이 쌓이고 쌓여서 생겨난 의식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8. 이렇게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는 20대에 꿈꾸고 20대에 기도하고 작은 실천을 이어오니까 어느 사이에 꿈은 현실에서 소화되어져서 작은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크고 거창한 것만이 통일운동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 실천을 하면서 손해 보는 삶을 연습하자는 간곡한 부탁을 하고 싶어서 내 청년의 시기 자화상의 일부를 나눈 것이다.

9.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삶을 주장해 온 "하나님의 말씀"이 의식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통일한국을 생각하면서 청년의 때에 붙들고 기도하게 했었던 "그 말씀" 이 있었다.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기어져서 내 사역과 삶의 여정에 힘과 용기를 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일깨워 주곤 하였다.

10. 읽기에 부담스럽고 또 이런 장문의 글은 안 읽는 이들이 많을 줄 알면서도 굳이 이 글을 적는 이유는 이 시대 청년의 자화상이라는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대한 조사 연구에 나타난 청년들의 통일과 통일비용에 대한 의식의 결과가 내게는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11.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보고 가슴을 후벼서 파는 듯 아픔과 안타까움이 있다. 특히 통일문제에 있어서 그러하다. 한국의 청년층의 의식을 보면 남북통일의 당위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정말 꼭 필요하다고 보는 청년들이 비기독교인층은 2006년 24.8% 2009년 15.8% 2012년 6.7%로 6년간 18.1%가 감소하였다. 기독교인층은 2006년 43.5% 2009년 37.8% 2012년 7.3% 로 36.2%가 감소하였다.

12. 그리고 전체 응답자의 62.6%가 통일 비용을 낼 의향이 없다고 응답하였는데 비기독교인의 경우 63.3%가 기독교인의 경우 59.7%가 통일 비용 납부 의향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수치가 의미하는 바는 많은 청년들이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도무지 손해 보려 하지 않는 것이다. 희생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어쩌면 깊은 내면에는 남과 북을 한 민족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남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손해보지 않으려는 수치들은 이 민족 가운데 분단의 장벽이 가져다 준 불신의 장벽들이 점점 높아져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13. 결국 통일이란 거대한 물줄기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의 요청에 깨어있는 소수의 치열한 헌신을 요청하고 있다. 동시에 기독 청년이 손해보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십자가를 지는 훈련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맛을 잃은 소금 덩어리는 길가에 버려져 밟힐 뿐일 것이다. 속히 그 맛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에게는 통일한국을 생각하면서 청년의 때에 붙들고 기도하게 했었던 '그 말씀'이 있었다.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새기어져서 내 사역과 삶의 여정에 힘과 용기를 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일깨워 주곤 하였다. 그것은 이사야 58장 6-12절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에서 오늘 분단된 시대를 사는 청년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 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

사실 금식은 가장 종교적인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먹는 즐거움도 포기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행위이기에 가장 영적인 집중도가 필요하면 많은 이들은 금식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사야서는 조금 색다른 금식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추천하시는 영적인 깊은 헌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약간 다르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금식에서 그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마음의 금식을 요구하며 더 나아가 영혼의 금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흉악의 결박, 멍에의 줄, 압제 당하는 자는 누구인가? 연약하고 소외된 이웃을 말하는 것이다. 나아가 북한의 형제, 자매도 여기에 포함이 될 것이다. 아마도 결박, 멍에, 압박은 고통에 대한 3중적 강조일 것이다. 자유와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잃어버린 형제, 자매들의 비참한 삶의 실제를 기억하면서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금식의 실제적인 의미를 여기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진정한 금식은 음식의 절제와 더불어 나의 필요를 절제하면서 나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삶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일상의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어야하고 증명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종교인이 아니라 제자라면 꼭 기억해야 한다.    


" 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


주린 자가 우리 주변에 있는데 양식을 쌓아두고만 있지 말라는 것이다. “내게 있는 것을 나누라” 는 것이다. 나는 이 말씀이 분단시대의 대안이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된 사회의 치유와 회복의 비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는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고 실천하지 않는 영적치매 현상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과한 표현일까? 얼이 없는 사람들 즉 “얼빠진 사람들” 이 많은 사회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기 속에 매몰되어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영적은혜를 경험한 이들은 자신의 시선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과 마주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홀로 서지만 동시에 세상 속에서 구별됨의 능력을 가지고 세상과 더불어 서기를 한다.


이런 까닭에 함께 사는 사회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청년들이 이 땅의 희망이다. 분단된 민족을 위하여 손해를 보는 길을 가는 청년들이 민족의 희망이요 대안의 사람들인 것이다. 스펙을 쌓기에 미쳐 있는 시대일지라도 여전히 변함없는 사실은 스피릿이 살아 숨 쉬는 청년들이 이 땅의 희망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사를 통해서 항상 스펙이 아닌 스피릿이 있는 인생을 통해 일해 오셨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유리방황하며 헐벗은 이웃들이 많다. 강도를 당한 이웃들이 많다. 특히 북한 땅에는 강도당한 이웃이 부지기수이다. 우리는 이것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한 금식은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한다. 복음은 사회참여로 이어지는 것이다. 복음과 사회참여는 함께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이 없는 사회참여는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만든다. 동시에  사회참여 없는 복음은 위선과 거짓으로 가득 찬 자기중심적인 종교인을 만들기 쉽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새로운 제3의 길을 보게 된다. 복음과 사회참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세상 속에서 섬김으로 표현하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무감각, 무책임, 무기력함에서 떠나 하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세상을 치유하는 것으로 표현되어지는 것임을 청년의 때에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육체의 금식도 중요하지만 실제적으로 물질의 금식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육체의 금식을 3일, 1주일, 40일을 하듯 통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이웃을 위해 기도하면서 물질의 금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은 재정으로 이웃을 섬기고 통일과 관련된 여러 사역과 단체를 섬기고 후원해 보는 것이다.

우리 무학교회는 청년들이 컴페션을 통하여 84명을 입양하여 섬기고 있다. 국제기아대책과 월드비전을 통하여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섬기고 있다. 청년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물질의 금식을 하면서 소외되고 연약한 세상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남아공을 다녀온 청년들은 남아공 빈민촌인 칼리처 아이들을 위하여 선교시에 건축공사에 동참한 곳을 지정하여 그곳에서 진행되는 어린이 사역에 필요한 간식비와 교육비를 후원하고 지원한다. 인도 땅을 다녀 온 청년들은 그곳에서 만난 고아들을 20여명 입양하여 후원하고 섬기고 있다. 동북아를 다녀 온 팀들은 북한 을 위한 섬김과 봉사의 사역을 지원한다.  그 외에도 허다한 섬김이 물질적 금식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통일에 대해 관심도 없는 청년들, 통일 비용을 지불하기를 꺼려하는 청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네가 북한에 태어났다면 한글이라는 같은 말을 사용하고 같은 땅에 태어난 민족으로서 이런 이 시대의 이 땅의 청춘을 어떻게 생각하겠니?”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가 보일 것이다. 최소한 성경 말씀 앞에 나를 세운다면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낙심하는 대신에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소망한다. 47.4%는 여전히 통일한국을 위해서라면 통일 비용 납부 의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9.6%의 청년들이 통일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를 10% 이상을 통일 비용을 위하여 나누겠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이 땅의 십일조에 해당하는 청년들이다. 통일의 그루터기인 것이다. 바로 이 청년들이 자신의 소유의 막대한 부분을 기꺼이 통일비용으로 지불할 의향이 있기에 통일의 그날은 여전히 희망적이다.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통일한국을 꿈꾸는 그대는 민족의 축복의 통로입니다.”  

분단된 시대를 사는 이 땅의 청년들이 손해보는 길을 가기를 응원하면서
이상갑목사 (무학교회 청년대학부, 학원복음화협의회 협동총무)

이상갑  sg9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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