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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서 한반도까지 1만 6,000㎞ 평화의 길을 내겠습니다”릴레이 <통일코리아> 네 번째 -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생
혁명과도 같았던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거쳐 정권이 바뀌고 우리 사회도 뭔가 움틀대고 있다. 그 배경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자리하고 있다. 변화는 누가 만들어내는 것일까. 정권이 변화를 말하고 추동할 수는 있지만 진행하고 완성할 수는 결코 없다. 상대방이 있는 남북의 화해와 통일은 더욱 그렇다. 남한에서만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심각한 갈등과 긴장이 빚어진다. 통일 분야에서 집단 지성이 꼭 필요한 이유다. 인터뷰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몇 명이나 만날지 언제까지 할지 기약할 수는 없다. 다만 수년 또는 그 이상 걸릴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와 외국인, 나아가 북한 사람들도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20여년 가까이 갈고닦았던 기자로서의 역량을 다 쏟아부어 보려 한다. 그렇게 만나고 써나가다 보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다. 중요한 건 그 자체가 통일의 과정이고, 그 과정을 통해 서로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터뷰가 쌓여가다 보면 남북의 화해와 통일도 어느 새 우리 곁에 바싹 다가와 있지 않을까. -필자 주

꿈과 도전. 누구나 생각은 한다. 가끔 의지도 솟는다. 그러나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남의 일이다. 강명구 선생(60)의 꿈은 어마어마하다. 자그마치 유라시아대륙 1만 6,000㎞를 달리기로 횡단하는 것이다. 오는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내년 11월 북한을 거쳐 한국에 돌아오는 14개월의 대장정이다. 이 꿈과 도전을 결행하기 위해 그는 오는 28일 네덜란드행 비행기에 오른다.

8월 중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하고, 최근까지 몇 차례 전화로 몇 가지를 더 물었다.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몇몇 대기업에 후원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도 못간단다. 후원금이라도 넉넉히 있으면 중고차라도 사서 따라갈 텐데 그것마저도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장소로 근사한 카페가 아니라 굳이 서울역사박물관을 고집한 강명구 선생이 꽃밭을 배경으로 소년처럼 수줍은 웃음을 웃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후원금을 더 모으든지 아니면 시간을 늦춰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이미 8월 28일 네덜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끊어놨다고 했다.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혼자서라도 횡단을 하겠다는 것이다. 가당키나 한 것일까? 42.195㎞도 아니고, 그 400배나 되는 길을 혼자서 달리겠다니?

그랬더니 2년 전 미국 횡단 얘기를 들려준다. 아직 아무도 도전해본 적 없는 미국 서부의 끝 LA에서 미국 동부의 끝자락 뉴욕까지 5,000㎞를 혈혈단신 4개월간 건넜다는 것이다. 길이 끝나는 건 다반사고 무서운 짐승들을 만나고 근육파열로 중도 포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멈추질 않았고,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혼자 달리는 건 괜찮을지 모르지만 침낭이며 옷, 식재료 등 딸린 짐은 어떡하고? 이동용 유모차에 싣고 달렸다는 것이다. 이번 유라시아여행에서도 그때 그 유모차 하나면 너끈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가 그를 막을 수 있으랴.

그는 33살이던 19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일을 전전하다 자동차 부품상으로 제법 벌이가 괜찮았지만 식당사업에 손을 대면서 낭패를 당하고 말았다. 마침 50대 늦깎이에 결혼한 태국인 부인은 극심한 향수병을 앓고 있었다. 미국 와서 제대로 된 휴가 한번 가본 적 없던 그는 미국 대륙 횡단 마라톤으로, 부인은 태국 부모님한테로 각자 휴가를 떠나기로 했다. 그때의 심정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2년 전 나는 삶이 공허하다고 느꼈고, 중년사춘기에 방황하였다. 느닷없이 미 대륙횡단 마라톤에 나섰다. 만 57세의 나이, 우리 나이 59세의 나이에 가슴 벅찬 도전가의, 탐험가의 길을 나섰다. 그리고 성공을 했다. 나는 그때 이모작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탯줄이 필요했다. 하늘과 대지에 연결하는 탯줄을 스스로의 배꼽에 연결해 모든 낡은 에너지를 방전시키고 새로운 에너지로 채우고 싶었다. 내가 작은 발걸음을 모아 뉴욕의 유엔빌딩에 도착했을 때 나의 몸은 난파선에서 구조된 사람처럼 야위었지만 강인한 생명의 의지로 충만하게 되었다. 나는 그 여행으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생활 끝자락의 휴가이자 인생 2모작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한 미국 대륙 횡단 마라톤. 유모차 앞에다가는 ‘남북평화통일’ 배너를 달았다. 교민들은 그때부터 그를 ‘평화 마라토너’ ‘통일 마라토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 대륙횡단을 끝내고서는 네팔, 베트남에도 가서 봉사 마라톤을 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국내에 정착했다. ‘사드 반대’ ‘평화 협정’ 등의 띠를 두르고 제주에서 서울까지, 성주에서 광화문까지 전국을 누볐다.

그는 왜 유라시아 횡단이라는 무모한 도전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에게 달리기란 무엇일까? 그는 정작 인터뷰에서는 이런 속깊은 얘기를 잘 틀어놓지 못했다.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기도 하고 언변이 썩 좋지 못해서다. 반면 그의 페이스북을 보면 멋진 문필가가 따로 없다. 그가 왜 달리고, 그에게 달리기가 무엇인지 그 속깊은 이야기를 그는 말보다는 글로써 잘 풀어놓고 있다. 여기 유라시아대륙에 대해, 달리기에 대해 그가 올린 몇 가지 글들을 옮겨본다. 그리고 인터뷰 중간중간 배경 설명을 위해 그의 페북 글을 인용한다.

"내가 유라시아대륙의 16개국 1만6천㎞, 16개국을 달리면서 발자국이 만들어내는 선은 유라시아대륙에 진주목걸이를 건 형상이 된다. ‘평화의 목걸이’ 그렇다 그 길이 평화의 목걸이가 되어준다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울까. 몽고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헝가리에 이르는 8천㎞의 유목벨트에 서유럽과 중국, 한국을 포함한 1만 6천㎞의 평화벨트, 평화 목걸이를 이 지구에 선사하고 싶다."

"한 사람이 지나고 두 사람이 지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 길은 만들어진다. 내가 지나는 유라시아 대륙 길이 평화의 길이 되기를 꿈꾼다. 신의주를 지나 평양을 거쳐 판문점으로 내려오는 길이 내가 지나고 또 다른 사람이 따라 지나면서 평화의 길이 되기를 꿈꾼다."

오는 9월 1일 네덜란드 헤이그를 출발해 독일, 헝가리,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세르비아, 터키,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즈스탄, 중국, 북한을 거치는 1만 6,000㎞ 1년 2개월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대장정. ⓒ강명구

그런데 왜 유라시아 대륙의 출발이 헤이그일까? 헤이그 하면 떠오르는 사람, 고종의 밀사(특사) 이준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마라토너 강명구’를 특사로 보내지 않았다. 그는 다만 시민들이 자신을 ‘평화의 특사’라 보냈다고 자부하며 헤이그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심정을 그는 지난달 중순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제 나는 110년 전 이준 열사처럼 헤이그로 ‘평화의 특사’가 되어 날아간다. 잃어버린 제국의 왕이 임명하여 외교권을 인정받지 못한 슬픈 특사처럼 스스로가 임명한 짝퉁특사는 외교관의 권리는 누리지 못하겠지만 행복한 특사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임명해 주어서 힘을 실어주었고 몰래 부산에 출장 간다고 집을 나서지도 않고, 광화문에서 시민들과 함께 성대한 출정식을 가지며 출국할 것이다."

그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출정식 및 기자회견은 오는 26일 12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거행’된다.

 

-준비는 잘 되고 있으신가?

준비가 지금 잘 안되어 있다. 그래도 9월 1일에 출발할 거다. 그래야 일이 되니까. 그러지 않으면 일이 안된다. 준비가 잘 되면 몸이 좀 덜 고달픈 거고, 준비가 잘 되면 몸이 좀 덜 고생하는 것 그 차이다.

-어떤 게 가장 준비가 안되어 있나?

차량 문제다. 차량 지원이 안되고 있다. 달리기할 때 차가 따라와줘야 짐도 싣고 음료수도 한 잔씩 마셔가면서 하는데 차량 준비가 안됐다. 경비가 충분하면 차를 렌트하든지 중고차를 사든지 할 생각인데 그것도 안됐다. 어짜피 저는 처음 이 계획을 세울 때 최선과 최악의 경우를 다 상정했다. 최악은 지난번 제가 미국 대륙 횡단할 때 했던 방법처럼 유모차에다가 싣고 달리는 거다. 그때는 제가 별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 방법밖에 없어서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다들 ‘제대로 해보자’고 해서 한 건데 안되고 있다.

-지원이 잘 안되는 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남북관계 때문인가?

그런 것과는 상관없는 것 같다. 아직도 제 개인적인 브랜드 가치가 낮다고 봐야지(웃음). 다른 사람들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얘기는 많이 하는데 실천적으로 움직여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

-기업에 프로포잘 내고 했는데도 거절된 건가?

그렇다.

-예정대로 강행하신다면 9월 1일 헤이그에서 출발인데 한국에서는 언제 출국인가?

8월 28일이다. 이미 비행기표 끊어놨다.

-같이 동행하시는 분이 있나?

원래 친구가 같이 가기로 했는데 못가게 됐다. 같이 동행하지 않으면 차도 의미가 없고 괜히 경비만 몇 곱절 더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상황만 악화될 수 있다. 뛰는 데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데 괜히 신경 예민해지고 이렇게 되면 도움이 아니라 짐이 될 것 같다.

2년 전 미국 대륙 횡단 때. 혼자 달리는 것만도 전부인데 거기다 70㎏의 짐을 싣고 유모차를 끌고 달려야 했던 그의 끈기와 집념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인터뷰를 하는 내내 인터뷰가 끝난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강명구

 

 

 

 

 

 

 

 

 

 

4개월의 장정을 마치고 마침내 미국 대륙횡단 종착지인 뉴욕에 입성하고 있는 강명구 선생과 교포들 ⓒ강명구

-그 먼 거리를 혼자 뛰시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유모차로 할 수 있다. 조깅용 유모차, 제가 미 대륙 횡단할 때 쓰던 게 있다. 70~80㎏는 실을 수 있다. 먹고 입고 자는 데 충분하다. 혼자 가나 여럿이 가나 저는 별 신경 안쓴다. 물론 여럿이 가면 조금 심리적으로 안정은 있을 수 있다. 일장일단이 있는 게 여럿이 가면 의견 대립이 있을 수도 있고, 내 맘대로 시간을 활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사람마다 생체리듬이 다르고 식성도 다르고 그런 여러 가지 염려되는 부분도 있다.

-원래 생중계도 한다고 들었는데?

제 친구가 같이 가서 차량 운전도 하고 생중계도 하려고 했는데 그건 안될 것 같다. 일단 제가 출발하고 난 다음 중간에 보도가 되고 관심이 집중되면 여건이 마련될 수도 있으니까 일단은 제가 출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그리고 꼭 출발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제가 이걸 위해 2년 정도 준비를 했는데, 2년이 지난 오늘날 하나도 준비된 게 없다. 또 2년을 기다린다고 한들 크게 변화될 게 없을 것 같다. 2년 더 나이 먹으면 신체적으로도 어려울 것도 같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몇 달 늦추는 문제도 그렇다. 9월에 네덜란드에서 출발해 내년 1~3월 가장 추울 때 이란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그걸 늦추면 추위를 톈산(天山)산맥 넘어가면서 맞게 되는데 그러면 도저히 못견딜 것 같다. 여러 가지 고려해서 지금 출발 안하면 안된다. 내년으로 미룰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선생님 입장에서는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1년 넘게 마라톤을 하는 건데, 두고가는 가족들은 괜찮나?

제가 미국에 갈 때 만 30세였다. 이미 노총각이었다. 지금은 30살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무척 노총각이었다. 가서도 찬스(기회)가 없어서 결혼을 50세 넘어서 했다. 아내는 태국 사람이다. 인터넷에서 보고 채팅하다가 만나 결혼하게 됐다. 아직 결혼한 지 10년도 채 안됐다. 아직 자녀도 없다. 결혼해서 5년 정도 살다가 아내가 향수병에 심하게 걸렸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안와본 사람들은 천국으로 아는데 살아보니까 태국서 사는 것보다 힘들었던 거다. 저도 26년 정도 미국에 살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 상태였다. 그때까지 휴가다운 휴가를 한번도 못갔다. 그래서 휴가 한번 찾아먹고 가겠다고 해서 저는 미국 대륙횡단을 떠나고, 아내는 태국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집안도 괜찮고 자기가 다니던 직장도 다시 다닐 수 있으니까 가 있으라고 하고선 출발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완주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그때는 마라톤 시작한 지도 얼마 안되고,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저 휴가라고 생각하고 하는 데까지만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돌아오겠다, 하고 시작한 것이 마무리를 짓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식으로 사람들한테 ‘통일 마라토너’라고 불려지게 됐다. 그리고 그걸(미국 대륙횡단) 끝내고 나니까 이것도(유럽 횡단) 해보고 싶고, 글도 계속 써보고 싶었다.

"우선 아내와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의 이해를 구해야했다. 그리고 사업부터 정리를 해야 했다. 떠나겠다는 마음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하자 마치 소용돌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휘감아 올려 날려버리는 토네이도처럼 나는 식당은 그대로 날려 보내고 자동차 액서사리 도매업은 내 일을 도와주던 사촌에게 양도하고 거의 모든 것을 다 날려 보내고 그야말로 이 여행이 끝나면 맨손으로 새 출발을 할 각오를 했다. 마치 가을나무처럼 다 떨구고 비워서 새봄을 기다리는 나목이 되기로 했다. 몸은 고달프고 힘들겠지만 마음이 그렇게 특별한 휴가를 통해서 쉬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배짱이 생겼다."(2월 10일)

-미국 건너가서 안해본 일이 없으신데, 통일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나?

제가 통일에 대해 의식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붙은 '국경을 넘어, 경계를 넘어' 전시회가 마치 강명구 선생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대장정을 기념해주는 듯하다. ⓒ유코리아뉴스

-페이스북에 쓰신 글들은 통일에 굉장히 식견이 있으시던데?

대륙횡단 하면서 유모차 앞에 뭔가 장식하고 싶어서 ‘평화통일’이라는 배너를 붙인 거다. 그래서 ‘통일 마라토너’ ‘평화 마라토너’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대륙횡단이 나에겐 인생 2모작의 시작점이었는데, ‘이렇게 통일운동 하면서 인생2모작을 하는구나. 지금까지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외국까지 나가서 아등바등 했는데 혼자서도 잘 살지 못하고 어짜피 그럴 거라면 통일운동 같은 뜻있는 일에 뛰어들어보자’ 그렇게 해서 남들에 의해 뛰어들어진 거다. 한국에 오자마자 ‘평화통일’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일주를 했다. 몇 번 그런 행사를 했다. 사드 반대도 하고, 베트남, 네팔 봉사도 하고.

-베트남, 네팔은 언제 가셨나?

작년이다. 네팔은 카트만두에서 룸비니까지 달렸다. 그러면서 ‘평화 마라토너’로 확실히 자리매김을 하게 됐다. 저도 그것을 즐기게 된 거고. 의미도 있었다. 저도 이산가족이니까.

-한국전쟁 때 내려오신 건가?

할머니가 아버지 5형제를 데리고 있었는데, 고모는 시집을 가서 못데리고 나오고 올망졸망한 아들들만 데리고 나왔다. 지금은 5형제 넷째 작은아버지만 남고 다 돌아가셨다. 북한에는 지금 사촌들이 살고 있을 텐데, 이번에 기회가 된다면 할아버지 묘소를 찾아가고 싶다.

-아버지 고향은 어디신가?

황해도다.

"내 아버지는 시인이었다. 두고 온 강 대동강변 송림(松林)을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아버지는 같이 못 온 누이와 대동강과 그곳의 명물 황주사과를 그리다가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잠시 피난 내려왔다가 살아서는 다시 못 밟은 땅, 육신의 무게를 벗어던지고서야 비로소 고향으로 갔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어깨가 처져 있었고 길을 걸을 때도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걸어서 늘 지나가는 사람을 먼저 알아보지 못해 핀잔을 듣곤 하였다. 지독한 그리움은 시인에게는 훌륭한 양식이었겠지만 나와 어머니에겐 애정결핍으로 다가왔다. 분단은 아버지와 자식 사이로 흐르는, 부부지간에 흐르는 애정의 강물마저도 막아서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지금까지도 아버지와의 화해를 하지 못했다. 내가 두렵고 고통스럽기까지 할 유라시아대륙횡단 평화마라톤에 나서는 것은 아버지와 화해를 하는 엄숙한 시간을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핏줄이란 것이 무서운 것이어서 아버지의 핏줄에 흐르던 대동강의 푸른 일렁임이 내 핏줄에서 이렇게 요동을 치고 있다. 아버지의 귓가에 환청으로 들리며 늘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던 대동강의 뱃고동 소리가 내게 이제는 희망의 행진곡이 되어 들려오는 것 같다."(7월 31일)

-제주 강정마을도 가시고, 성주 사드배치 지역도 가셨는데, 지금까지 국내외를 달리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나 에피소드가 있으시다면?

이번에 제주 강정마을부터 시작해서 쭉 올라오는 동안 저 자신도 깜짝 놀란 것이 있다. 마라톤이란 단순한 것인데 여기에 사람들이 많이 감동하고 호응해줬다. 가는 곳마다 시민들이 몇 십명씩 오셔서 같이 행진도 하고 저녁엔 같이 회식도 했다. 지역에서 시민단체 활동을 각자 따로따로 하시던 분들이 저로 인해서 한 자리에 모였다는 얘길 들었다. 같은 지역에서 같은 민주화운동을 하고 시민운동을 해도 만날 기회가 없이 따로따로였는데 저로 인해 한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는 계기가 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참 보람을 느꼈다. 그런 것이 이번 유라시아 횡단 때도 더 큰 증폭작용을 하면서 나타나리라 기대한다. 국내에선 663㎞ 도는데 사람들이 그만큼 감동을 해주는데 1만 6,000㎞면 그것의 몇 십배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

"성주의 밤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났다. 맑고 조용한 초전면 소성리 계곡에 청아하게 목탁소리와 기도문소리가 메아리를 울리며 퍼져나갔다. 롯데 성주골프장으로 올라가는 입구 진밭교에 30여 명의 원불교 교무들과 교도들 그리고 개신교 목사와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음을 모았다. 이들은 벌써 일주일째 밤이면 영하로 떨어지는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밤샘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이 땅에 평화를 위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소리는 별빛 따라 밤하늘에 번져나갔다. … 우리는 어쩌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혁명으로 기록될 촛불혁명으로 부정한 대통령을 몰아냈다. 그러나 이 땅에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다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평화를 이루어내면 더 넓은 세상의 출발지가 되고, 평화와 상생의 발원지가 되며, 세계의 정신적 지도국이 되며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3월 19일)

'사드 배치 반대'를 슬로건으로 전국 달리기를 하고 있는 강명구 선생(왼쪽). 전북 김제를 지나고 있다. ⓒ강명구
아마 경북 성주 어디 쯤일 것 같다. '사드 배치 반대' 달리기를 하다가 쉬게 된 어느 냇가에서 천렵을 하고 있다. 강명구 선생은 아버지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대동강에서도 이렇게 천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강명구

-네덜란드 헤이그나 독일 같은 나라는 가보신 곳인가?

이번에 가는 나라들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다 미지의 세계다.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한다.

-언어도 안통하는 나라일 텐데, 사전에 연락하고 일정이나 루트는 조율하셨나?

헤이그 대사관엔 연락을 취했는데 공무원들이 외무부 허가서나 협조전을 받아오라는 고리타분한 얘기만 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전화를 안하고 있다.

-그럼 아직 사전조율이 안된 건데?

그렇다. 제 생각엔 일단 시작하기 전엔 사람들이 고리타분한 얘기를 계속할 거다. 중요한 건 시작하고 나서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지, 때가 되면 협조전이나 이런 거 없이 그냥 ‘내가 돕고 싶은데’ 하면서 나오리라는 것이다. 절차가 중요하겠나. 저는 굳이 신경 안쓴다. 일단 제가 28일 헤이그에 도착하면 교민 한 분이 출발할 때까지 묵도록 해주셨다.

-일단 그것만 된 건가?

그렇다. 출발하고 나면 알음알음 도움의 손길이 오지 않겠나.

-미국 시민권자신가?

아니다. 완전히 한국에 들어온 거다.

-그럼 북에는 못가보셨겠는데?

아직 못 가봤다.

-미국 계시는 동안 남북이 마치 금방이라도 통일될 것 같은 시절이 10년 정도 있었고, 반대로 금방이라도 전쟁날 것 같은 때가 10여년 있었다. 남북이 이렇게 전쟁과 평화를 오가는 걸 보면서 미국에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

저는 그동안 소시민으로서 별로 그렇게 나라 문제에 신경 안쓰고 살았다. 그런데 외국 살면 누구나 다 애국자가 된다고, 그런 거는 좀 있었다.

-정권이 바뀌어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는데 어떻게 보시나?

촛불민심에 의해 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기대가 무지하게 컸고, 지금도 기대를 하고 있지만 요즘 돌아가는 걸 보면 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인가 보다’, ‘넘을 수 없는 힘(미국을 지칭하는 듯)이라는 게 뒤에서 저렇게 무서운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성을 좀더 가지면 좋겠다. 과거 60년에 비해 우리 국력이 많이 신장되지 않았나. 이제 미국 눈치 그렇게 많이 보지 말고 승부수를 던져도 될 것 같다. 여하튼 제가 깊은 내막은 알 수 없으니까.

-지난해 추석 즈음인가 페이스북에 ‘김정은과 박근혜가 DMZ에서 만나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밥사기 하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셨는데 아주 신선했다.

코미디 같은 발상이지만 그런 역발상이 새로운 역사를 쓰기도 하니까. 지금 같은 상황도 도저히 정상 루트를 통해서는 풀릴 수 없기 때문에 김정은과 문재인 대통령이 됐든 트럼프와 김정은이 됐든 햄버거나 맥주를 같이 먹고 얘기하는 단순한 그런 이벤트를 한다면 한방에 풀릴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근 한반도 상황을 보며 획기적인 구상 안하셨나?

(웃음) 핵감축, 핵동결 하라 하면 조율이 안되니까 ‘우리 밥 한 끼 먹자’ 아니면 ‘호프 미팅 한번 하자’고 해서 대동강이든 여의나루에서든 갖는다면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리지 않을까. 지금 만남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니까 답답한 거 아닌가. 저는 북한 통과를 먼저 생각한 게 아니라 유라시아를 먼저 생각했다. 단둥에서 끝나거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끝나서 배타고 들어온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런데 유라시아로 달려서 오면 분명 북한이 열어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몇 천 명도 아니고 나 혼자 뛰는 건데 북에서 안열어 줄 리 없지 않겠나. 난 100% 그런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다. 김정은 자신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저를 반드시 통과시켜 줄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남북관계가 안풀리면 북한 통과 어렵지 않겠나?

제가 평양 통과한다니까 ‘통일부 허가 받았어?’ 이걸 제일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건 걱정하지 않는다. 거기(북한)까지 가는 게 걱정이지 거기까지 갔는데 안열어 줄 리 없다. 통일부에서 ‘안된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같았으면 모르지만 그러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거기서 시위를 할 거다. 단둥이나 이런 데서 말이다. 이제 정권이 바뀌어서 통일부에서 저를 허가 안해줄 리 없고, 북한도 저를 충분히 선전용으로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청년시절에 남으로 내려오셔서 보기에는 멀끔한 넥타이 같은 휴전선의 그 옥죄이는 지독한 억압에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늘 고향을 그리워하다 생을 마치셨다. 어서 빨리 한반도의 목덜미를 꼭 졸라맨 휴전선을 넥타이 풀어 젖히듯 벗어 던져야겠다. 휴전선은 넥타이처럼 멋지지도 않다. 통일은 대박도 쪽박도 아닌 역사의 숨통을 터트리는 것이다. 나의 이민생활이라는 것도 언어장벽과 문화충격 그리고 밀려드는 고지서에 숨돌릴 겨를 없이 달려온 세월이었다."(4월 5일)

-미국에서 소시민으로 살았다고 하시지만 역사의식이나 굽히지 않는 소신 이런 게 분명하신 것 같다. 그런 건 어디서 오나?

대학생 땐 학생운동 조금 했다(웃음).

-마라톤 하시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릴 때가 있지 않나. 가령, 가기로 예정이 되어 있는데 길이 끊겼다든지 못들어가는 경우? 어떻게 해결하시나?

그런 경우가 많다. 미리 어떤 게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으니까. 미 대륙 횡단할 때는 이상한 동물도 나타나고, 길이 끊겼다든지, 지도에는 나타나는데 보수공사를 하지 않아 길이 닫혀 있는 경우도 있고. 물 떨어지고 기온 떨어지거나 더울 때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순간들이 꽤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앞이 암담하다. 되돌아오기도 하고, 새벽 5시에 길을 나서서 그 다음날 새벽 5시까지 24시간 꼬박 쉬지도 못하고 움직인 경우도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들이 많다.

"그냥 침낭 속에 들어가 바닥에 누우니 밤하늘의 별들이 아이맥스 영화관에 들어온 듯 찬란하게 쏟아져 내린다. 저렇게 맑고 깨끗한 것을 바라보니 내 눈빛도 맑아지고 마음도 찬란해지는 것 같다. 천상에서 지상으로 쏟아져 내리는 빛의 향연을 즐기는 기분은 대단하다. 빛은 빛과 만난다. 하나의 별빛은 이 빛과도 교제를 하고 저 빛과도 교제를 한다. 밤하늘에서 별빛과 별빛은 서로 썸타기 하기에 바쁘다. 별빛이 서로 만나서 떨리는 것은 사춘기 연인들의 떨림처럼 파르르하고 앳되다. 몸은 비록 며칠씩 씻지 못했지만 별빛으로 마음의 떼를 말끔히 씻어내는 의식을 치른다. 기분 좋은 에너지가 온몸의 기공을 타고 충만하게 들어온다."(모하비 사막에서의 야영 중, 2016년 3월)

미국 대륙횡단 내낸 이름없는 그를 중간중간 찾아와 격려해준 이름없는 미국인들. ⓒ강명구
강명구 선생이 시민들과 함께 남녘 어느 이름모를 도로를 들리고 있다. ⓒ강명구

 

-선생님이 마라톤을 하실 때 병원에 실려가거나 중간에 포기했다는 얘기는 못들어봤는데?

미 대륙 횡단할 적에 제일 큰 고비는 중간지점 통과할 때였다. 긴장도 풀리고, 마켓이 한번 나타나면 가득 사야 하는데 마켓에서 장을 잔뜩 보고 나서 출발하는데, 미시령고개보다 더 심한 고개를 넘어야 했다. 70~80㎏ 넘는 짐을 싣고 유모차를 밀고 올라가는데 장단지에서 ‘뚝’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근육에 파열이 온 거다. 거의 포기할 상황이었다. 제가 그 전엔 테니스도 치고 운동을 많이 했다. 운동하다가 부상이 오면 보통 6개월 정도는 아무것도 못한다. 침 맞으러 다녀도 하루이틀 사이에 낫지가 않는다. 거기까지가 다였던 것 같다. 사람들은 대륙횡단 하기 전에 저한테 그랬다. ‘죽으려고 달리기 하는 건 아니니까 다시 돌아오라’고. ‘병신이 될 각오하고 뛰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런 거다. 하루 정도 쉬었다. 미국엔 모텔에 얼음이 다 준비되어 있다. 숙소에 가서 얼음찜질 하고 다음날 절뚝거리며 다시 길을 떠났다. 이 상태로 끝마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가는 데까진 해보자는 생각으로 가는데 1주일 남짓 사투를 벌였는데 1주일 넘으니까 내 몸이 쭉쭉 나가는 거다.

-다리 통증은 없으셨나?

그렇다. ‘내가 뛸 수 있어도 최고로 자제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해도 몸이 알아서 자꾸 뛰어나가는 거다. 1주일 만에 저절로 고쳐졌다. 저는 그래서 몸이라는 것은 극한 상황에서는 스스로 치유한다는 것, 몸도 비상상황에서는 스스로 작동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처럼 한반도에 미사일이 왔다갔다 하면 데프콘이 발령되듯이 우리 몸도 목숨과 관련되어 있을 때는 저절로 아드레날린이 나와서 다른 때보다 민감하게 치유하는 것 같다. 몸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살아나가기 위해서 이성과는 상관없이 어떤 치사한 짓도 다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극한 상황에서는 인육도 먹으면서 살아간다고 하지 않나. 정신으로는 그렇지 못할 텐데 몸이 시켜서 하는 거라고 본다.

-그런 경험으로 봤을 때 1년 2개월의 유라시아 횡단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는 건가?

그렇다. 거기서도 여러 가지 좋은 경험, 아픈 고통이 교차할 것이다.

-마라톤이 끝나고 났을 때, 그러니까 내년 11월 이후. 그때는 어떤 일을 계획하시나?

일단 다녀오면 원고 정리해서 책을 낼 거다. 지난번에 미국 대륙 4개월 횡단하고 책 한 권(『59세에 떠나는 아주 특별한 여행 : 미대륙 5200km 마라톤 횡단기』) 썼는데 이번엔 더 두꺼운 분량으로 한 3~4권 짜리 책을 쓰려고 한다. 이걸 위해 2년 동안 준비도 많이 했다. 미국이란 나라는 사전에 공부할 만한 게 별로 없는데 유럽이나 중앙아시아는 역사가 오래되고 문화가 다르고 해서 문화, 역사 이런 걸 계속 공부해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나. 사실 저는 무방비 상태로 닥쳐오는 희로애락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여행가기 전에 사전준비를 한다. 1주일 여행가는 데 몇 년씩 사전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어디에 가면 뭐가 있고 이런 걸 해박하게 알고 간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재미 하나도 없게 뭣하러 미리 준비하나?’ 하면서 핀잔을 준다. 전혀 새로운 것들을 무방비상태로 느껴야 놀랍고 경이로운데 미리 생각한 걸 가서 보면 재미없지 않겠나. 그런데 이번엔 내가 좀 많이 공부했다. 그럼에도 많은 것들을 새로 접하고 보고 올 거라는 기대가 있다.

"나는 온갖 낯설음에 매료될 준비가 되었다. 알아서는 안 될 욕망을 쫓아 발정 난 수캐처럼 온갖 낯선 것들과 질펀하게 사랑을 나누고 올 것이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명명하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던 길을 달리며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자연과 인간과 질펀하게 교감을 나누며 온 인류가 소통하고 화합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문명세계를 그리어낼 것이다. … 나는 달리면서 보고 느끼고 감촉하고 냄새 맡는다. 그러므로 나의 여행 복장은 이러하다. 엄니와 함께 태국의 와이프 만나러 와서 태국을 달리다 길을 잃어 방콕을 더 알게 되었다. 나는 언재나 길 잃어버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2월 10일)

-유라시아 횡단을 앞두고 어떤 것들이 제일 기대가 되나?

저는 인류는 뿌리가 하나라는 걸 믿는다. 생긴 것, 문화도 다 다른 것 같지만 올라가다보면 다 같다. 몇 천년 전 매스컴도 없을 때인데 이미 비슷한 얘기들을 서로 공유했다. 예를 들어 신데렐라 얘기는 콩쥐팥쥐 얘기다. 100년, 200년 전 얘기가 아니라 몇 천년 전 이야기인데 그 기간에 이미 문화가 왔다갔다 한 거다. 또,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가 독일에도 비슷하게 전해져 온다. 천사가 목욕하러 내려왔는데 천사 옷을 감춘 그런 얘기가 늘려 있다. 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는 삼국시대 경순왕 때 얘기라고 한다. 터키 쪽에도 그런 얘기가 있다. 또 이란의 쿠쉬나메 라는 대서사시에는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푸치니가 그걸 보고서 영감을 얻어 나비부인을 만들었다고 한다. 푸치니 시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은둔의 나라였고 일본과만 교류했다. 그게 일본인 줄 알고 나가사키를 무대로 나비부인을 썼다고 한다. 바보 온달도 중앙아시아에 늘려 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같은 데 가면 우리나라의 온다르라는 이름이 김씨 이씨처럼 흔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바보가 바보가 아니었던 거다. 생긴 게 우리와 좀 다르게 생기고 언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니까 ‘저 바보놈’ 하면서 왕따를 놓은 거지, 바보가 여자 하나 잘 얻었다고 갑자기 장군감이 되지 않을 것 아닌가. 아무튼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을 떠나느 강명구 선생을 격려해줬다. ⓒ강명구

-소시민에서 통일 마라토너가 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통일 하면 정치인이나 전문가, 시민운동 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자기와는 상관없다고 여긴다. 이런 사람들에게 ‘나 한 사람’이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해주신다면?

촛불집회에서 봤듯이 작은 마음들이 모아지면 큰 역사를 이뤄내는 것 아닌가. 제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일(마라톤)이 마음들을 모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달리기에 그치지 않고 마음을 모으는 일, 마음을 모으기 위해서는 감동을 줘야 하는데 감동을 주려면 내가 편하게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내가 뭔가 고생하고, 남들이 안하는 고생을 했을 적에 사람들이 감동한다. 그 감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큰 마음이 되면, 조그만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듯이 통일이 어느 순간 불길처럼 타오르지 않을까. 그게 단순한 제 달리기로부터 시작된다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고 태어나서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보람이 될 거라 생각한다.

-달리기 하실 때 하루 30-40㎞ 정도 달리시는 것 같은데, 달릴 때는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

별 생각 다 든다. 저는 개인적으로 달리기 명상도 완성해보고 싶은 영역이다. 저는 달리기할 때 무아지경에 빠지고 잡념이 없어지는 경험을 한다. 반면에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그런 사막을 지날 때는 어머니나 마누라 생각하면서 눈물도 흘린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펑펑 울면서 달린다.

"모든 종교가 궁극적으로 나를 찾는 것이라면 마라톤은 나의 종교이다. 무용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라면 마라톤이 나의 무용이다. 모든 문학이 자기를 찾는 안내서라면 마라톤은 나의 문학이다. 나의 마라톤은 궁극적으로 ‘나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는 진지한 몸부림이다."(2016년 11월)

-어떻게 보면 달리기의 경지에 이르신 거라고 보는데? 선생님께 달리기는 일종의 자기 회복, 자기 치유 같은 거라고 할 수 있나?

그렇다. 단순히 통일만 생각하고 고통만 있다면 못할 짓이다. 자기 치유 이런 게 더 많기 때문에 뛰는 거다. 사실 16개국은 제가 한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지만 그렇기에 더 설레임이 있는 거다. 새로운 경관이나 인연을 만났을 때의 설렘 그런 것들이 뒷받침돼 주기 때문에 길에서 만나는 고통을 이겨낼 힘을 얻는 거다. 통일만 위해서 그 고통을 다 감내하라고 한다면 몇 백만 불을 준다고 해도 못할 것 같다.

"달리며 나는 누구도 상상 못할 생명력을 자신의 내면에 비축하고 있었다. 달리며 바람에 묻어오는 세상을 읽었으며, 달릴 때 나는 그 어떤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을 때보다도 더한 집중력으로 나의 내장 속에 수줍게 숨어 있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된다. 달리기는 에너지를 소모하면 기운이 쇠락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달리기는 사랑과도 같아서 자신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게 해준다."(8월 3일)

"나의 몸 어느 구석에는 압록강 저 넘어 광활한 벌판을 달리던 조상의 흙먼지 유전자가 섞여 있는 것 같다. 달리면서 몸에 흥건히 땀이 나기 시작하면 박수무당처럼 무아경에 빠지면서 그 어느 만주벌판의 흙먼지 영혼과 영매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달리기는 내게 무속신앙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 땀을 흘리고 달리다 보면 천상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마치 그 신통력 있는 예언을 받아들기 위하여 작두 위에서 춤을 추듯 혼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최대한 중력을 잊고 달리는 것이다. 중력을 잊지 않고서야 어떻게 혼신의 힘을 다해 세 시간 혹은 네 시간, 다섯 시간을 끊임없이 달릴 수 있겠나. 땀과 함께 몸속의 모든 노폐물과 마음속에 욕망과 고뇌를 길 위에 쏟아낼 때의 가벼움은 모든 것을 끌어내리는 만유의 인력이란 것조차도 끌어내릴 수가 없게 된다."(2016년 10월)

이준 열사 묘역 앞에서. 스스로 '평화의 특사'가 된 그는 110년 전 이준 열사의 그 굳은 결의를 안고 며칠 후면 헤이그로 떠난다. ⓒ강명구
까맣게 그을린 작은 그의 두 다리는 미국 횡단과 남한 일주를 거쳐 이제 유라시아와 한반도 종단을 앞두고 있다. ⓒ강명구

-하여튼 지금 여러 가지 상황이 어렵지만 달리시는 동안 놀라운 반응들이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유코리아뉴스는 ‘평화 마라토너’ 강명구 선생의 1년 2개월 대장정을 그의 페이스북과 동시에 생생하게 중계할 예정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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