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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소년 대안학교의 '무분별한 신설'에 대안을 묻다신설 2년차 우리들학교, 교과부·통일부로부터 신뢰 얻은 비결은?

 

근래 몇 년 사이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와 관련된 키워드는 ‘난립’이다. 대안학교가 많이 생기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이 과정에서 일부 정부기관의 지원을 목적으로 한 학교가 우후죽순 신설된 것이 문제였다. 이와 관련한 사기사건이 벌어지기도 하고 잡음이 적지 않았다. 교육이념이나 비전에 상관없이, '돈이 된다는 이유'로 탈북청소년 한 명의 '이름'이 아쉬운 학교들의 난립이었다.

‘우리들학교’도 생소한 이름이었다. 많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를 알고 있었지만,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2년 전에 생긴 신생 학교였다. 또 한곳의 ‘그런’ 대안학교가 생겼구나, 생각하고 잊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우리들학교’에 대한 언급이 멈추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 민간교육시설 교육우수사례학교 선정’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제한공무사업 선정’ ‘교과부 탈북청소년 민간교육시설 선정’ 등 화려한 이력을 쌓고 있었다.

2년도 되지 않은 학교가 이런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서울 신림동에 위치한 학교에 들어서자, 세련된 시설이 맞았다. 많은 탈북청소년 대안학교가 부러워할 만한 너비와 환경이었다. 여기까지 오도록 든든한 배경이 되어준 후원인은 누굴까, 궁금해졌다.

우리들학교는 탈북과정에서 학업시기를 놓친 탈북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맞춤형 교육을 제공하는 전일제 대안학교다. 15-20명의 아이들이 중고등학교 교육과정, 대학교 입학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 일반학교에 다니는 몇몇 학생들도 방과후 수업을 듣기 위해 찾아온다. 여기까지는 다른 대안학교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이 학교의 성미옥 연구부장에게 직접적으로 “단시간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성 부장은 “자원봉사자들 덕”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찾아오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준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과목별로 정말 최고의 선생님들이 오세요. 평생 음악을 가르치다가 은퇴하신 선생님, 인근 학교의 서울대 교수(강사)진이 와서 미술을 가르쳐주세요. 컴퓨터는 대기업 연구원으로 계셨던 분이 도와주시고요. 검도 국가대표였던 분이 검도를 가르쳐주시고요.”

그러나 이런 화려한 경력보다 더 결정적인 비결은 선생님들의 마음가짐이라는 게 윤동주 교감의 설명이다. 윤 교감은 “이분들이 돈을 받지 않고, 신앙 때문에 혹은 신념 때문에 도와주고 계신다. 오히려 후원해주시는 후원자다. 급여나 시간에 상관없이 순수하게 마음만으로 오시는 분들이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에게 공을 돌리는 성 부장과 윤 교감 역시, 각각 교직에 머물렀거나 탈북청소년교육에 종사했던 이들이다. 급여가 터무니없으면서도 외부에서 강사비를 받으면, 학교후원비로 밀어 넣는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지금은 일반학교의 정규과정, 개별과외, 특수교육 등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처음 시작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지원받기도 애매했던 25세 청년 한 명으로 시작했다. 한 명이라고 소홀히 여기거나 하지 않았다. 15명의 교사가 이 한명의 학생을 위해서 온 힘을 쏟았다. 그렇게 시작한 학교의 학생은 두 명이 되었고, 그때부터 두 반을 만들어 운영했다. 학생들은 더 많아졌고, 그만큼 반을 늘려야 했다. 연령대도 다양하고, 실력도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필요 때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채워져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윤 교감은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이러한 열심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것이 학교를 운영하는 목적은 아니라고 했다. 전인교육이 목적이라는 것이다. 시험통과를 위한 학원이 아닌 전인격적인 교육을 베푸는 곳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날도 마침 학생들은 기상청으로 현장학습을 간 터였다.

이에 성 부장은 “이것저것 경험을 많이 시켜주고 싶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잘 살아가도록 돕는 것이다. 그래서 미술, 음악, 체육을 가능하면 많이 가르친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복도와 교실 곳곳에 악기와 미술 도구 등이 널리어 있었다.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게 될까봐 봉사활동도 종종 한다. 얼마 전 빈민가에 연탄 나눔을 하고 온 아이들은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요”하면서 조금씩 베푸는 마음에 대해서 배워가기 시작했단다.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모자를 떠서 보내주는 일도 계획 중에 있다.

이런 교육의 결과로, 일반학교로의 진학을 결단한 학생도 있다. 선생님들은 온실속에서만 자라온 아이가 힘들어할 것을 알았지만 보냈다. 성 부장은 “딸 시집보내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방과 후 우리들학교로 찾아와 과외를 받기도 했다. 수업 진도 따라가는 데에 급급한 아이를 보며 안타까웠던 성 부장이었지만 “성적도 중요하지만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만큼 귀한 일”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처럼 여기는 것이다. “우리들학교는 가족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일한 보람을 느낀다는 성 부장이다.

   
▲ 윤동주 교감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학생들의 미술도구를 챙겨주는 윤동주 교감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우리들학교는 공부할 마음이 있는 아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알려졌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미술 수업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한 탈북학생이 세 번의 수업을 듣고 그린 그림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 성미옥 연구부장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남한의 교육을 따라가지 못해 조급해하는 학생들에게 윤 교감은 버릇처럼 말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이 방향이다” 한다. 두 체제를 다 겪은 학생들이기도 하고, 중국과 러시아를 경험한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탈북청소년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에 대해 불만이 많다.

“도움만 줘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보기엔 남한 청소년들보다 훨씬 나아요. 아이들 보면 하얀색 도화지에 좋은 그림을 그려가고 있는 느낌이에요. 방향만 잘 잡아 간다면 한반도에서도, 국제적으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클 수 있어요.”

막 미술 수업을 받고 나온 박영아(가명)학생과 마주했다. 이번이 세 번째 그림이라며 집을 그렸다 했다. 음악과 미술을 좋아한다는 영아는 “집에서 한 시간이 걸려도 학교에 오는 길이 즐겁다.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악기도 배울 수 있으니까 더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학교가 “재밌다”고 했다.

성 부장은 탈북학생들이 “남한에 와서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 듣고, 그 꿈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고 싶어 이곳의 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단다. 그래서 우리들학교의 탈북청소년들은 ‘재미있게’ 자신의 꿈을 꾸고 있다.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의 ‘난립’으로, 기존의 대안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은 청소년들이 갈 곳이 (전에 비해) 많아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정착하지 못하고 학교를 떠도는 것은 결코 ‘재미’난 일이 아니다. 참교육도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학교의 등장은 반갑다. 그래서 이 학교의 3주년, 5주년, 10주년이 더욱 기대된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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