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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민주화가 어떻게 가능하냐구요?”북한서 지하 민주화운동 하다 망명한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이윤걸 대표

지난 4월이었다. 느닷없이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유서를 입수했다는 보도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빅뉴스였다. 유서 입수 주최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NKSIS) 이윤걸 대표(44). 이 대표는 그 달 12일 세미나를 열어 김 위원장이 남겼다는 유서를 공개하고 의미를 짚었다.

유서 내용은 가족 및 후계에 대한 걱정, 선군사상 고수와 종파 투쟁 우려, 핵과 장거리 미사일 보유, 가문의 종국적 목표는 통일이라는 것과 3개 정도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이다. 더 구체적인 내용도 있다. 유서 집행은 김경희(김정일의 동생)가 맡고, 유서 내용을 읽는 순간부터 1년 내에 김정은을 최고 직책에 세우고, 중국은 가깝지만 경계하고, 남조선과 손잡고 발전하라는 것 등이다. 그후 북한의 상황은 상당 부분 유언대로 진행됐다. 상황 전개가 김정일 유언의 진위를 확인해줬던 것이다.

   
▲ 지난 4월 통일비전연구회 주최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있는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이윤걸 대표.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그렇다면 이 대표는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고 있는 것일까. 최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이에 대해 물었다. 보안 관계상 구체적인 정보 입수 경로는 함구했다. 다만 북한에서의 화려한 경력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을 뿐이다. 이 대표는 평양 리과대 출신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공과 계열 인재를 육성하는 KAIST나 포항공대 쯤 된다. 거기서 우리의 석사 과정에 해당하는 준박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엔 북한의 최고 수재들만 간다는 김일성장수연구소에서 연구원을 거쳐 국가과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러한 이력이 그의 정보력을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유서 확보, 북한 내 고위층 친구들 통해

“그 당시 내 친구들이 지금은 다 북한의 권력기관에 들어가 있습니다. 걔들은 똑똑하니까 북한 사회가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거죠. 걔들에겐 김일성, 김정일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 당시 너무 잘 알고 지냈기에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아는 거죠.”

북한은 지금 변화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도자만 젊은 인물로 바뀌었을 뿐 옛 체제,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북한이나 한반도에 관심 가진 사람들의 공통된 관심사다. 의견도 분분하다. 이 대표는 북한은 지금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본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증거는 북한 내 지인들의 귀띔과 보고들이다.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의 특화된 정보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이다.

이 대표의 부모는 지금 북한에 살고 있다. 한번은 이 대표의 아버지가 감옥에 간 적이 있다. 원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얼마 안되어 아버지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알고보니 이 대표의 친구들이 물심양면 도와줬던 것이다. 이런 것들이 이 대표가 말하는 북한 변화의 신호라는 얘기다.

이 대표가 ‘북한 민주화’에 대한 당위성과 가능성을 100% 확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이데올로기적으로 갈림길에 놓여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북한 고위급들에 대한 자료에 따른 것입니다. 그들(북한 고위급)은 지금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경제난 앞에 무엇인가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유지해온 이데올로기나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를 놓고 고민이 많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이 대표가 말하는 북한 민주화는 어떤 형태일까. 그는 지난 봄, 통일비전연구회(회장 최경희) 주최 세미나에서 ‘민주화 세력에 의한 정권 교체’를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의 변화(혹은 민주화)가 몇 사람의 엘리트에 의해 시작되겠지만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민주화 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사회주의 다수당, 중앙집권적·폭력에 의한 혁명 강조)나 멘셰비키(사회주의 소수당, 개인주의적·합법적 혁명 강조)같은 세력들이 북한에도 만들어져야 북한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혹 김정은 체제가 바뀐다 하더라도 민주화가 아닌 독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미 북한 민주화를 위해 바친 몸" 

앞으로 3년. 북한이 민주주의로 바뀔 것인지, 독재체제 강화로 이어질 것인지 이 대표가 계산하고 있는 시간표다. 3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북한은 현 김정은 체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변화가 일어난다면 김정은 체제가 아직 견고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3년 내’의 기간이 기회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탈북자들과 남한 사람들이 힘을 합쳐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민주화. 그것은 이 대표의 사명이다. 탈북 전 북한에서 했던 것도, 남한에 온 이유도 모두 이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다. “저는 이미 북한에 있을 때 북한 민주화를 위해 제 몸을 바쳤어요. 제 일생을 여기에 걸기로 했습니다.”

북한에서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게 언뜻 수긍이 안됐다. 전세계 독재국가들을 무너뜨리거나 위협했던 2년 전 중동의 쟈스민혁명도 북한만은 비켜가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 이 대표의 말이다. “1990년대 중반, 3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북한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난 그때 북한에 혁명 같은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요. 3년 6개월간 북한의 지하에서 아예 전문적으로 그 일(북한 내 혁명)을 했습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였죠. 하지만 그 아지트에서 누군가가 저를 밀고하는 바람에 탈북을 할 수밖에 없었죠. 그걸 겪으면서 북한의 노동자, 농민들이 아무리 잘못 살아도 그걸 북한 권력이나 사회의 잘못이라고 깨달아야 하는데 그게 안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겠구나’ 해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겁니다.”

   
▲ 이윤걸 대표의 발표를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남한의 고등학생들. ⓒ유코리아뉴스

어떻게 보면 그의 탈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민주화 인사의 망명 같은 것이라 하겠다. 북한을 떠났다고 북한 민주화를 포기한 건 아니다. 전략을 바꿨다. 남한 내 탈북자들과 남한 인사들, 그리고 북한 내 엘리트 세력을 연계한 북한 민주화 운동이다. 일단 남한에서 차분히 공부를 하면서 상황을 지켜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의 급사가 다시 그를 행동하게 만들었다.

“처음엔 조용히 제 일을 하다가 천천히 하려고 했는데 김정일의 갑작스런 사망 때문에 ‘때가 왔다’고 본 거죠. 그런데 탈북자 단체들의 북한 민주화 운동을 가만히 보니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탈북자 단체들을 이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통일, 북한 민주화는 한마디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통일이나 북한 민주화를 위한 준비는 거의 없고, 구호만 요란한 것이죠. 그야말로 생계를 위하거나 특정 사람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남한 내 탈북자들부터 민주주의를 배워야"

기회가 될 때마다 그는 탈북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울 것을 강조한다. 지금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하듯 삐라를 날려 보내고,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방식으로는 북한 정권을 압박할 수는 있지만 북한 변화에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는 게 이 대표의 시각이다. 남한 내 탈북자들부터 먼저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지식을 쌓아 북한의 민주화운동 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남한 내 일부 관련 단체들의 북한 민주화 운동이 북한 정권만을 겨냥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치범(북한 정권에 대한 적대세력)만 우리 편으로 만들어가지고는 통일을 할 수 없다”며 “그것은 북한의 현 체제를 압박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통일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는 대안”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독재체제 종식과 함께 인권, 민주화 등 북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자유민주주의적인 통일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그는 최근 같은 탈북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는 단호했다. 그들(몇몇 탈북자 단체들)이 민주주의사회에서 인권이나 법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온 반응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탈북자들의 경험과 여건 등을 고려할 때 그들의 일정한 한계까지 넓게 이해하려고 한다”며 “그럼에도 누가 막더라도 이 일은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김일성장수연구소에 잠깐 몸담았다. 최고 지도자 김일성, 김정일이 오래 사는 것을 연구하는 곳인 만큼 당 자금을 가지고 연구 사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1990년대 초, 이 대표가 연구사로 있을 때였다. 러시아 공산주의가 망하고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잇따라 몰락할 때였다. 출신 성분은 좋지 않지만 전문 분야의 전문가로 쓰려고 데려왔던 몇 사람을 김정일이 호위사령부 소속 관련 연구기관들에서 자른 일이 있었다. 당시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권이 망하고, 중국도 개혁개방으로 전환을 하기 때문에 북한의 핵심권력기관들인 호위사령부 내 요원들의 출신 토대를 다시 정비하라는 김정일의 방침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이 대표를 ‘지하운동’을 하도록 내민 꼴이 됐다. 이 대표는 처음에 탈북을 고려했다. 하지만 사회에 나온 다음 한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다. 러시아의 한 사관학교(프른제군사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북한 학생들이 반정부 책동을 벌였는데 그들 중 이 대표의 친구 몇 명 연루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김정일은 김일성에게서 군 권력을 대폭 넘겨받았다. 그리고는 사건 연루자들을 뿌리 뽑겠다며 공포 정치를 했다. 이 사실은 황장엽 선생의 회고록에도 잠깐 등장한다.

하지만 대학 때부터, 아니 어릴 적부터 가졌던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려면 북한 내부에서부터 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다. 거기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기로 했다. “저는 원래 대학 때부터 북한 사회는 중간 간부들이 썩어서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고 친구들과 대학 때부터 노력을 했었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최고위급들의 건강장수를 위한 연구소에 일 해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중간 간부가 아닌 소수의 최고 간부들이 일반 대중과는 동떨어진 채 호의호식하고 있었던 거죠. 제가 배운 공산주의는 간부들이 대중들보다 더 고생하고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내막은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정말 대중들이 불쌍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북한처럼 통제된 사회에서 3년 6개월간이나 지하 활동을 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북한이 통제가 강한 것 같지만 의외로 빈 곳이 많다는 것이다. 우선 주민등록부터 다른 사람 명의로 바꿨다. 뭔가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기에 개성과 평양을 중심으로 골동품 장사를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밀고로 활동은 불발되고 말았고 그는 탈북 후 중국에서 몇 년 머물다가 2005년 한국에 들어왔던 것이다.

   
▲ 이 자리에서 이윤걸 대표는 김정일 위원장의 유서 입수 경위와 내용을 비롯해 북한의 민주화 가능성, 북한 현대사, 토지개혁 등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피력했었다. ⓒ유코리아뉴스

북한을 보는 그의 시각은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김일성, 김정일이 절대적으로 잘못한 게 사실이지만 무조건 ‘북한은 나쁘다’고 접근해서는 남북 통일이나 통합에 대해 어떤 해법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북한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이 처음부터 북한을 못사는 나라로 만들려고 했던 게 아니라 김일성의 사상이나 리더십이 6.25 때의 냉전 및 스탈린주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있었고, 점차 독재를 하면서 점차 나쁜 일만 일삼았다고 봐야죠. 김정일도 해외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독재를 완성하기 위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거고요.”

"탈북자, 남한 사람, 북한 엘리트 손잡고 북한 체제 변화 꾀해야"

따라서 외국 경험이 있고, 생각이 깨인 사람들이 주축이 돼 하루빨리 북한을 개혁, 개방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시키는 게 북한이 나아가야 할, 나아갈 수밖에 없는 방향이라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다.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변화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을 위해서도 반드시 가야 할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는 흡수방식의 통일을 단호한 어조로 반대했다. 가능하지도 쌍방 누구에게 도움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사람들(북한의 지도자들)이 비록 독재를 했고 아주 나쁜 사람들이라고 할지언정 나름대로 몇 십년 동안 나라를 이뤄왔습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흡수하려고 한다면 북한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분단 고착은 물론 전쟁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통일,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외부세계에 대해 잘 모르는 북한 일반 주민들과도 자칫 적대적 관계에 놓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탈북자들과 함께 남한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어깨를 걸고 진짜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하고 동조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거듭된 주장이다. 그는 특히 북한의 입장을 남한이 깊이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한보다 결코 작지 않은 대상이라는 것이다. 남한 일각에서는 통일 과정에서 북한 지도부를 숙청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지만 일반 사람들은 깊이 생각 안하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남한 사회의 입장이 명확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북한 지도부가 더 강경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북한 사람들이 자체적으로 올바른 개혁, 개방으로 나아가고 민주주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밑바탕에서 북한을 남한 수준과 비슷하게 일으켜 세울 때 통일은 가능하고, 부작용이 적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 진실한 통일이 뭔지, 진실한 남북 윈-윈 대안이 뭔지를 남한 사람과 당장은 탈북자가 북한을 대변하여 툭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점에서 그는 안철수 교수가 말하는 ‘융합’과 ‘협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념과 계층을 뛰어넘어 서로 협력할 때 개인도, 공동체도 윈-윈 한다는 논리를 남북한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뇌수만 중요한 게 아니라 팔, 다리도 중요한 시대”라며 “이런 관점에서 북한도 개혁하고 개방하고 민주화해야 하지만 남한의 자유민주의도 선진화 방향으로 좀 바뀌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특히 통일 분야에서는 지금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북한 주민들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수긍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 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한 사회가 그런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때 북한 내부에서는 자연스럽게 남한 사회를 닮으려는 모습들, 즉 민주화세력들이 자생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북한이 언제까지나 저렇게 독재 밑에 짓눌려 살 거라고 생각하나. 절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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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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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녹준 2018-03-13 02:18:42

    잘보고갑니다.
    유럽(EU)연합과같은 국가연합을 하자고 한다면 김정은이가 찬성할것같은대요.
    내으견이 어떻한지요.

    우리는 통일해야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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