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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극복을 위한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연중 가장 무더운 8월의 여름이다. 필자는 얼마 전 전주를 다녀왔다. 한국적 향기가 짙게 베어나는 지방 향교와 고궁 그리고 한옥마을을 거닐 때면 왠지 모를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 근대화 이후 1980~90년대에 도심에서 성장기를 겪은 사십대 초반의 필자로서는 양옥과 아파트, 빌딩이 더 편리하고 익숙할 법도 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낮은 담과 골목길에서 오는 고즈넉함, 시간이 지나면서 다가오는 편안함과 여유는 내가 바로 조선인의 후손임을 확증 받는 유력한 증거인 듯 했다.

한옥과 초가집이 많던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은 이후 폐허가 된 논밭과 주거공간을 수리하며 전후 복구에 박차를 가한다.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격동의 1960~70년대, 근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우리 국민들은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에 젖어들게 된다. 도심 속 한옥과 초가마을들은 회색빛 콘크리트를 재료로 만든 양옥이나 스레트 집들로 대체되고 ‘한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과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어느덧 우리들에게 서구식 의식주와 생활방식을 따르도록 요구했다. 서구식 생활방식은 우리의 전통보다 우월한 것으로 비춰지게 되었고, 우리 고유의 것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국민적 기쁨과 환희에 도취되었을 즈음 도심 속 쪽방촌에서는 강제철거와 집 없는 자들의 셋방살이의 설움이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내집 마련을 위한 대규모 공영임대주택 건설을 골자로 하는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아파트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1990년대에 들어서면 한옥과 초가집들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도심뿐 아니라 변두리와 시골에서도 고층의 빌딩숲이 등장하게 된다. 어느덧 우리 도심 속에서는 전통 한옥을 목격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근대화의 과정을 겪으며 주거공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복과 식생활 등 다른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서서히 우리 전통의 생활양식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은 한국전쟁 과정을 통해 미 공군의 폭격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되고 당시 인구의 10%인 120만이 사망하게 된다. 북한 민중들의 공포는 미국에 대한 강한 공포와 혐오감으로 나타났고, 이를 간파한 김일성은 ‘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며 우상숭배와 일인 독재체제라는 통치이데올로기에 공포심을 활용하게 된다.

1962년 북한은 ‘4대 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을 발표하며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게 하였고 북한 주민들의 주거공간은 유사시 진지와 방공호로 활용할 수 있는 가상의 전쟁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북한의 군사노선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선군정치’에서 ‘선군사상’으로 발전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군사철학으로 계승 발전한다. 실로 한국전쟁은 북한 주민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로 나타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한 북한의 공산화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에서처럼 다양성과 자율성을 마비시키고 민족 고유의 전통문화와 생활양식들을 파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해 필자가 첫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의 충격은 잊지 못한다. 유럽의 오랜 도시들은 과거 고대 로마시대에서부터 중세와 근현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는 모더니티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럽 시민들은 스스로를 ‘유러피안(European)’이라 칭하며 풍요로운 문화유산에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400~500년 전에 건축된 수도원이나 고(故)성들도 부동산 시장에서 개인 간 매물로 거래되곤 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조선 이후 구한말 외세에 의한 근대화가 아닌 자발적 근대화의 과정을 겪었더라면, 그리고 파괴적인 한국전쟁을 겪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주거공간은 지금의 전주 한옥마을에서와 같은 지극히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과거와 현재,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는 매우 아늑하고 포근한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 외세 열강들의 핍박과 수많은 전쟁들을 겪으며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체화된 전쟁에 대한 공포는 폭력과 파괴에 대한 익숙함과 무감각함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건설업계의 기술과 역량, 특히 리모델링과 재건축의 붐은 가히 세계적이다. 전쟁문화에 익숙해져 있는 남북한 사회에 ‘빨리빨리’와 ‘속도전’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결과이다. 냉전과 자본주의가 결탁된 현 우리사회에 다양성과 역동성은 핵심가치가 되었고 무한경쟁시대 현대인들은 새로운 방식의 삶을 요구받게 되었다. 남성들은 조직 내 소외를 두려워 원치 않는 술자리에 참석하고, 여성들은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계속해서 거울을 응시하며 자신의 화장을 고쳐보는 습관이 생겼다. 대중들 또한 군중 속 고독과 소외감에서 오는 두려움과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수시로 스마트폰을 끊임없이 만지작거린다.

이제는 다시금 곰곰이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들을 되새겨보아야 할 시간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이다. 오천 년 한민족의 역사 한 가운데 분단된 이 땅을 밟고 살아가야하는 현대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주했던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관념과 제도, 의식주에 이르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 스스로의 얼굴을 잃어 버린 채 살아왔다. 엉켜진 실타래처럼 복잡한 우리의 모습들은 다시금 제 모습과 제 자리를 찾아가야만 한다. 그 길과 해답은 우리 고유의 오랜 전통과 가치에 있다.

한양도성 복원사업처럼 이제 우리는 잃었던 한국적 가치의 재정립과 재생산을 통해 한반도의 모더니티를 구현하는 일들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의 거시적 기초는 바로 반세기 넘게 단절된 남과 북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복원하는 일일 것이다. 다시 이전처럼 우리가 살아왔던 보편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샬롬(Shalom)’의 실현이다.

이장한 뉴코리아 사무국장 / 평화통일연대 운영위원

* 이 칼럼은 평화통일연대에서 제공했습니다. (평화통일연대 홈페이지 바로가기)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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