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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온 손님들[칼럼] 탈북자를 주역으로 초대하는 순간, 통일이 시작된다


1983년 2월 25일 오전 11시경 수도권 일원에 갑자기 대공 사이렌이 울렸다. “여기는 민방위 본부입니다. 이것은 실제상황입니다...” 하며 방송이 흘러 나왔다.
‘혹시 북(北)에서 또 다시 전쟁을?’
긴장하던 시민들은 뉴스 속보를 통해 젊은 북한군 공군대위 이웅평(2002년 사망)이 직접 북한군 주력전투기인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 했다는 소식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를 귀순용사로 불렀고 이웅평 대위는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가 가는 곳에는 어디나 환영 인파가 넘쳤다. 지금도 기성세대들은 귀순용사 하면 이웅평 대위를 생각한다.


귀순용사와 탈북자

1987년 1월 14일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의 삼엄한 경비망을 피해 떨리는 가슴을 진정 시키며 11명의 민간인이 배에 올랐다. 68세의 노인에서부터 열한 살 고등중학교 1학년(남한의 초등학교 5학년) 학생까지 11명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김만철씨 일가의 탈북 드라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기 위해 길을 떠났고, 우여곡절끝에 일본과 대만을 거쳐 남한에 왔다.

남한에 도착 했을 때 이들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영웅이 따로 없었다. 김만철 일가에게는 살기 위한 투쟁 이었지만, 남한 정부는 체제의 우월성을 홍보할 수 있는 한편의 귀순 드라마였다.

그런데 이때로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지금은 북한에서 내려온 이들을 ‘귀순용사’로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북한을 탈출해서 왔다 하여 ‘탈북자’로 부른다. 탈북자는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권 붕괴이후 북한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증가하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은 식량을 얻기 위해 무작정 중국 국경을 넘기 시작했고 이들 중 상당수가 남한으로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남한사회에서 탈북자는 더 이상 ‘희소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지금 죽음의 고비를 넘어 남한에 온 탈북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적응하기 힘든 이질적인 문화와 치열한 경쟁, 그리고 구조적인 빈곤이다.


   
▲ 탈북자들의 힘겨운 삶을 그린 영화 <무산일기>의 포스터. 이들의 어려운 삶의 이야기들이 '귀순용사'로 대우받던 때를 무색하게 한다.

탈북자들의 고달픈 남한살이

2011년 말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수가 2만 3천명을 넘어섰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인구가 1만명, 강원도 양구군 인구가 2만명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남한 내 탈북자 수는 결코 작은 수가 아니다. 웬만한 지방의 작은 군 규모의 인구다.

이들은 대부분 남한 사람들에 비추어 평균 이하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조사한 <2009 북한이탈주민 경제활동 시래 조사>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의 고용률은 남한의 일반국민 대비 70% 수준이고 실업률은 4배 이상이다. 취업한 이들도 단순 노무직이 31.5%로 일반국민의 7.5%의 4배가 넘는다. 취업자의 월평균소득은 127만원으로 전국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 총액271만원의 47% 수준이다.

그동안 북한 이탈 주민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사회․종교 단체들이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이들이 치열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 살아가는 데는 있어서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 적응 과정에서 현실의 벽을 절감한다. 평균적으로 학력 수준이 낮은 데다 컴퓨터와 같은 첨단 사무용품을 갖춘 회사에서 일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이들이 남한에 와서 1~2년 만에 취업을 하거나 대학에 진학해 학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여기에 ‘남한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사람 중에도 실업자가 많다’는 현실의 어려움이 이들의 두려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이런 공포로 인해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시작도 해보지 않고 포기하려고 한다. 그래서 탈북자들을 고용하고 입학시킨 직장과 학교에서는 ‘탈북자들은 대학생활이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탈북자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탈북자들의 남한 살이가 어렵기는 하나 모든 탈북자들이 다 자포자기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탈북자들 모여 설립한 새터교회의 강철호 목사는 자활공동체를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백두식품 (현재 ‘미소누리’로 사명 개칭)을 창립했다. 남한 사회에서 대부분 실패를 경험해 봤던 이들은 북한산 느릅나무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아 새로이 식품 사업을 시작했다. 느릅을 이용하여 냉면과 찐빵을 만들었다. 하지만 남한 내에서 사회적 기반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판로 확보는 쉽지가 않았다.

강철호 목사와 미소누리 직원들은 교회와 사회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했다. 이들의 사정을 알게 된 교회들이 적극적인 구매를 시작했고 품질 역시 뒤지지 않는다는 입소문이 나가 시작하면서 매출이 오르고 과거에 비해 안정적인 회사 경영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미소누리 직원들은 자신들이 남한에서 받은 관심과 사랑을 사회에 돌려주고자 정기적으로 다일공동체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취약 계층을 지원하는 열매나눔재단은 기업과 정부기관의 지원을 통해 만든 박스공장 메자닌-아이팩, 블라인드 공장 메자닌-에코원, 커피숍 블리스&블리스 등은 단순 직업교육을 통한 취업 위주의 기존의 방향에서 벗어나 탈북자들을 위한 사회적 기업 설립이라는 새로운 경제 자립 모델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이들 사업은 회사의 장기적인 수익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으로 해결해야 문제점들도 많다. 하지만 ‘탈북자들은 안돼!’라는 거대한 고정관념의 빙산을 녹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탈북자 세분화를 통한 맞춤형 전략

탈북자 수가 많지 않았을 때 이들을 위한 정착 프로그램은 학업 지원과 단순 기술 교육을 통한 노무직 위주의 취업 지원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이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떠한 재능이 있는지는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 탈북자들 역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남한 사회에서의 생존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남한에 입국한 2만명 이상의 탈북자는 북한 출신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더 이상의 공통분모가 없다. 성별, 지역, 연령, 직업, 기술, 학력 등 이들이 갖고 있는 배경은 천차만별이다. 탈북자들은 북한에서의 배경과 경험을 바탕으로 남한에서 자리를 잡아 간다. 1997년 탈북당시 북한 권력서열 22위였던 故황장엽 선생은 남한에서 최고 대우를 받은 탈북자였다.

북한 김일성대학 교수 출신인 조명철 통일교육원장도 북한 정세와 경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또 남한에 와서 대학을 졸업하고 탈북자 출신 1호 공인회계가사 된 이는 북한 외교관 출신 아버지를 두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세습, 북한의 화폐 개혁, 김정일 사망 등의 특종을 세계에 알린 탈북자 단체 NK지식인연대 구성원들은 북한 사회에서 고등교육이상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엘리트 출신들이다.

하지만 남한에 있는 탈북자들의 구성을 보면 엘리트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월등히 많다. 탈북자의 자립은 언론에 비춰지는 이름 있는 탈북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생계를 위해 북한을 탈출해 제3국에서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남한에 와서는 생존 현장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하는 대다수의 탈북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먼저 탈북자들을 구체적으로 세분화 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성별, 지역, 연령, 직업, 기술, 학력, 라이프스타일 등의 세분화를 통해 이들에게 맞는 맞춤형 자립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세분화는 마케팅에서의 시장 세분화를 응용한 것이다. 시장세분화란 소비자를 그 필요와 욕구의 이질성에 따라 몇 개의 시장구분으로 나눈 다음, 이 소비자 집단의 필요와 욕구의 내용을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말한다. 시장세분화에 의해 시장표적이 명확화 되고, 표적을 위한 맞춤형 전략이 가능해 진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마케팅 전문회사 클래리터스(Claritas)가 개발한 PRIZM은 미국 전역을 54만 곳의 시장 권역으로 나누고, 그 시장을 단위로 하여 연령, 성별, 소득, 가족 수, 상품선호도 등 60여 분야별로 자료를 수집, 분석하여 체계화한 후에 다시 40개 군의 라이프스타일 영역으로 분류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정보를 제공 받은 기업들은 자료를 참고하여 자신들의 타깃을 정하고 고객들에게 접근할 전략을 세우고 실행한다.

탈북자들은 통일을 위해 남한 사회에 온 고객들이다.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고객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찾아내는 서비스 마인드가 요구된다. 최상의 서비스를 위해서 다양한 기준으로 고객을 세분화하여 그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남한 사회에서 이들의 성공적인 자립을 돕는 지혜가 필요하다. 남한에 왔으니 남한의 것을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것은 이들의 열등감과 반발심만 키울 뿐이다.


탈북자, 통일시대 리트머스 시험지

남한 내에 있는 2만명 탈북자의 성공적인 자립은 북한에 있는 2400만 명의 사람들에게 통일의 시대,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감을 줄 수 있다. 이들이 성공하면 자연스럽게 북한에 남아 있는 탈북자 가족들과 제3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 대한 큰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남한으로 가고 싶거나 남한의 것들을 취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더 강하게 생길지도 모른다.

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첫 단추가 탈북자들의 자립이다. 남한에 와서 정착한 탈북자들의 이야기들이 북한에 전해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도 않고 휴전선을 넘을 필요도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널 필요도 없다. 북한으로 밀반입된 중국 휴대전화 한통화면 남한의 소소한 일상이 시공간을 넘어 그대로 전달된다. 얼마 전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했을 때 북한 내부의 동정이 휴대폰을 통해 생생하게 밖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통일은 미래의 일이 아니다. 탈북자들은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데 있어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한다. 주변의 탈북자들을 우리 삶의 주역으로 초대하는 순간, 이미 통일은 현재 진행형(~ing)이 된다.


전병길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 대표, 저서로 '코즈 마케팅'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 '통일한국 브랜딩' 등이 있다.
 

 

전병길  holi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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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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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4-11-08 21:19:13

    특히 최고위급 탈북예술인들이나 탈북최고위층들은 그나마 잘먹고 잘사는데 빈민층출신의 탈북인들은 대한민국에서도 유럽권에서도 가난한 빈민층으로 전락한다는거!   삭제

    • 한빛 2011-12-31 10:53:03

      잘 보았습니다. 통일에 있어서 한반도인이라면 누구나, 전 세계에 있는 한민족이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인인 것 같습니다. 통일된 우리 나라에서 남,북 구분 없이 한민족으로 뭉칠 그날을 기대합니다.   삭제

      • hephzibah 2011-12-31 09:14:37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주변의 탈북자들을 우리 삶의 주역으로 초대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먼저 먼저 탈북자들을 구체적으로 세분화 시키는 전략이 필요하고 이는 성별, 지역, 연령, 직업, 기술, 학력, 라이프스타일 등의 세분화를 통해 이들에게 맞는 맞춤형 자립 정책을 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제안이 현실이 되어질 수 있길~
        우리 각자는 주변의 탈북자들을
        초대하는 삶을 살야야 겠지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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