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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분단 조국에 통일의 물꼬를 틀 것인가세상을 거슬러 세상을 바꿀 기독 청년들의 헌신을 목말라하며

저는 에스겔 47장 1~12절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이 본문에서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성소로부터 흐르는 물에 푹 적셔진 사람입니다. 그는 구별된 사람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시대는 성소로부터 흐르는 물에 적시어진 청년들을 필요로 합니다.

세상은 혈연, 지연, 학연의 문화, 끈과 줄의 문화입니다. 세상은 끈을 만드느라고 난리법석을 뜹니다. 학생들이 하나님을 외면하면서까지 만들고자 하는 스펙이란 결국 다양한 끈입니다. 학업이나 학위의 과정도 어찌 보면 끈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명문고니 명문대니 결국 끈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끈을 굵고 튼튼하게 짤수록 소위 빽(background)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끈의 문화는 어디로 흘러갑니까. 끈의 문화는 끼리끼리 모여서 자기의 만족을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끈의 문화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만 향합니다. 끈의 문화가 형성되어진 곳에는 항상 긴장, 갈등,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끈의 문화 이면에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적자생존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길고 더 튼튼한 끈을 만들어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 더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자 가치로 삼는 이들이 우리 사회에는 흐드러져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줄 세우기를 합니다. 끈의 문화는 편 가르기로 이어집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끈의 문화는 항상 당파싸움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분열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속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의 문화를 만듭니다. 세상과는 흐르는 방향과 특징이 다릅니다. 물은 어디든지 스미어듭니다. 부드럽기 때문입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낮은 곳으로 계속 흘러가면서 자신은 죽고 가는 곳을 살려냅니다. 자신의 형체가 사라지면서 시들시들해진 곳에 파고 들어가 다시 파릇한 생명으로 충만하도록 만듭니다. 메마르고 갈라진 틈 사이사이 물이 들어가면 갈라진 틈새가 메워지면서 다시 하나가 됩니다. 물의 문화가 세워지는 곳에는 하나로 연합하는 일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스겔은 포로기에 환상을 봅니다. 성소로부터 물이 흘러 그 물은 발목, 무릎, 허리에 차고 마침내 창일한 강을 이루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그 물들이 수위가 높아질수록 생명력은 강력해집니다. 그런 까닭에 물들이 흘러가는 구석구석마다 새로워집니다. 소생케 됩니다. 치유와 회복을 가져다 줍니다. 영적 성숙과 성장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가 이 부분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가뭄에 물꼬를 만드는 일을 한 적이 많습니다. 가뭄이 오면 논바닥이 쩍쩍 갈라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죽어갑니다. 시들해집니다. 메말라 갑니다. 생명이 사라져 갑니다. 그것을 막아보고자 양동이로 물을 길러다가 논바닥에 퍼부어 봅니다. 아무리 퍼부어도 퍼부어도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입니다. 가뭄은 양동이로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것은 너무나 지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비도 오지 않는데 물꼬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물이 흘러가는 길을 만든 것입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소낙비가 내리는 날 그 물들이 물꼬를 따라 흘러서 메마른 논바닥을 적시며 다시 흘러서 시내로 흘러갔던 것입니다. 비가 순식간에 내렸기에 물이 메마른 논바닥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물꼬를 트는 작업을 했던 것이고, 적당히 채워지면 다시 시내로 흘러가도록 물 길을 여는 작업을 했던 것입니다. 물꼬가 없으면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많은 비는 때론 둑을 무너뜨리기까지 합니다. 산사태처럼 논둑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물꼬란 물이 흐르는 길을 내어주는 것이기에 소낙비가 내렸을 때 물이 너무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도 하곤 합니다.

지금 한국적 상황이 이와 비슷합니다. 물꼬를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랜 분단으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독한 가뭄에 물꼬를 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북에 오랜 가뭄을 해갈하는 은혜의 소낙비를 기대하며 그 길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힘들고 지치는 일입니다. 땡볕에서 일하는 고통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땀을 흘리면서 묵묵히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가뭄은 영원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은혜의 소낙비가 순식간에 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양동이로 물을 날라서 퍼부어주면서 동시에 은혜의 소낙비가 내리는 그때를 대비해서 물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작업이 없으면 위험합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의 물꼬를 트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사실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에게는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입니다. 성소로부터 흐르는 물은 성령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 물에 적셔진 사람들이 바로 그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르게 믿고 믿는대로 살아가는 일상의 예배자들이 이 민족의 미래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면 세상은 끈의 사람들을 찾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물의 사람들을 찾습니다. 세상은 힘 있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시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물은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강한 다이아몬드를 깍는 것은 물입니다. 섬세한 부드러운 힘이 강함을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부드럽습니다. 온유합니다. 겸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공의를 세우고 정의를 건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일을 합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은 가난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사람은 고난당함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사람은 곤고나 칼과 창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사람들은 가난한 자 같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요 고난당하는 자 같으나 고난 가운데에서도 웃음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물의 사람들이었기에 시대마다 역사적 과제를 풀어가는 사람들도 다름 아닌 예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민족의 역사의 물줄기를 보십시오. 일제 시대에 복음이 들어간 그리스도인들은 항일 운동의 중심에 섰습니다. 3ㆍ1 독립만세운동의 중심에는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6인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 또 서울, 평양, 원산, 개성, 안주, 정주, 의주 등 제1차 만세 시위처가 된 곳도 교회와 기독교 학교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교회가 파손되거나 소실된 것이 47개가 넘었습니다. 또 만세운동으로 6월까지의 투옥자 9,458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가장 많은 2,087명이었습니다. 당시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 중 1.5%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더 나아가 민족의 비참하고 비극적인 역사였던 6.25전쟁 시기에도 한국교회는 고난과 고통의 중심부에서 고아와 과부를 돌보았습니다. 헐벗은 이웃을 섬겼습니다. 전쟁 후에 교회는 고아원을 세우고 장애우 시설을 세우며 고통당한 이웃을 섬기는 십자가 리더십을 발휘하였습니다. 독재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항쟁의 중심에 서서 민족의 아픔과 고통을 부여안고 항거했습니다. 칼과 창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언자적인 신앙이 있었기에 총구 앞에서도 탱크 앞에서도 정의와 자유를 부르짖어 노래했습니다. 4.19 학생운동 때의 길거리 행진은 예수대행진으로 말해도 될 만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의에 항거하여 정의와 공의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식에 있어서 우리 안으로만 너무 매몰되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느 시대나 성경을 기초로 하여 이성과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져서 건강한 신앙을 형성합니다. 건강한 신앙은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며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는 신앙을 견지합니다. 어느 시대나 기독교는 성령의 사람들로 말씀의 바른 지식 위에 세워져 왔기에 항상 각 시대를 향한 예언자, 왕, 제사장적 역할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과업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민족과 열방의 역사의 물꼬를 어디로 만들고 계시는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메말라서 갈라지고 벌어진 틈새는 어디입니까? 제가 생각하기는 분단된 민족의 몸입니다. 부모형제끼리 친지친척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는 남과 북입니다. 다시 하나 되게 하려면 우리의 수고와 헌신의 상징인 양동이의 물을 채우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위로부터 은혜의 소낙비가 내려야 합니다. 특별히 한국교회 청년들이 역사 앞에서 이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교회는 민심(청년들의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백성(청년)들 눈에는 기독교인을 춘향전에 나오는 음란과 탐욕의 상징인 변사또의 수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틈만 나면 악플을 줄줄이 답니다.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역사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여기에 개인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민족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통일한국의 흥망성쇠가 달려 있습니다. 정신 차리고 삽시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합시다. 통일 시대의 길을 황무지를 기경하면서 함께 준비합시다. 저는 너무 처참하리만큼 암울한 영적시대에 에스겔 선지자와 함께 하나님이 주신 꿈을 다시금 노래합니다.


“성소로부터 흐르는 물에 적시어진 청년들이 가는 곳마다 통일의 꽃이 피어나리라.”

<무학교회 청년대학부 담당목사>

이상갑  sg9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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