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영화 「침묵」에서 엿 본 정경분리 원칙

문재인 정부는 민간인의 대북접촉을 승인하는 식으로 북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UN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와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태도를 이유로 관련 단체들의 방북을 불허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단지와 개성공단을 폐쇄하기는 쉬웠지만 이를 재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전망이다. 안타까운 것은 폐쇄 결정을 할 때 몇 년 후 정권이 바뀌면 이와 상반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시 위정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계자들의 열망과는 달리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단지의 문이 닫힌 채 언제 열릴지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권력담당자의 단견적인 판단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운명이 걸린 남북경협 창구가 여닫히는 것은 절대 막아야 하지 않을까.

반 고흐를 매료시킨 「우키요에」 그림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한 층의 전시실에는 일본의 풍속화(우키요에 浮世繪)가 여러 점 걸려 있었다. 모두 반 고흐가 모사한 것(그림 속의 한자가 삐뚤빼뚤함)들이었다. 어떻게 일본의 허접한 목판화가 유럽의 인상파 화가를 심취하게 만들었을까? 당시 일본과 교역을 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유럽에 인기가 많은 일본의 도자기를 대량으로 수입했다. 도자기는 깨지기 쉬웠으므로 사이사이 완충제를 넣어야 했는데 당시 크게 인기를 끌어 대량으로 인쇄되었던 「우키요에」 그림을 포장하는 데 썼다고 한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그림들이 시중에 흘러나와 유럽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새로운 화법에 몰두해 있던 고흐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나가사키를 통해 서유럽과 교역을 하면서 일본인들은 서양의 물품 못지않게 서구의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근대 과학기술 특히 해부학, 물리학은 큰 영향을 끼쳤고 일본에서는 ‘란가쿠’(蘭學, Dutch learning)라 하여 메이지 유신으로 국가를 근대화하는 초석이 되었다.

영화 <침묵>에서 배교한 신부의 안식처

일본의 막부 시대에 나가사키의 데지마(出島)에는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다. 일본 막부는 기독교를 비롯한 서양의 사상이나 제도를 받아들이는 데는 소극적이었고 오직 데지마를 통한 제한적인 교역만 허가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한 기독교 사상이 일본의 체제에 아주 위험하다고 보고 기독교인들을 붙잡아 처형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같은 기독교도(프로테스탄트)인 화란의 상인들은 오로지 물품교역에만 전념하고 일본 측이 요구하는 대로 수입물품 중에 기독교 상징물이 들어 있지 않은지 전수검사 받는 것도 받아들였다. 엔도 슈사쿠의 원작을 마틴 화자는 그가 풍문을 통해 알게 된 포르투갈 사제의 신앙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배교를 손바닥 뒤집듯 하지만 그를 따르며 고해를 하는 기치지로의 단순한 믿음(사진은 잘못을 저지르고 신부에게 고해를 하는 기치지로)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영화 <침묵>의 한 장면

그 과정에서 (물론 작가인 엔도 슈샤쿠가 쓴 것이지만) 영화는 일본에 기독교가 어떻게 전파되었고 기독교를 믿는 서민들이 어떠한 박해를 받았는지 재판의 절차와 순교의 양태를 아주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에게 「하멜 표류기」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표류기는 하멜이 조선에 붙잡혀 있는 동안 동인도회사에 밀린 임금을 청구하기 위해 쓴 보고서라고 하는데 유럽인의 눈에 비친 조선 사회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

개성공단을 되살릴 수 있는 정경분리 원칙

영화 <침묵>의 관점에서 개성공단 사태를 돌아보게 된다. 일본 막부의 기독교 금지령은 오래 가지 못했고 그때 뿌리내린 란가쿠 정신은 일본 근대화의 바탕이 되었다. 여러 가지 금기사항이 많았던 개성공단에서 경제활동만 제대로 했더라면 전격적인 공단의 폐쇄는 피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장기적으로 북한에도 한류를 전파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제 남한 기업이 아니어도 장마당을 통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는 북한 사람들의 자부심을 건드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군부대를 뒤로 물리면서까지 개성공단을 열어준 북한에 우리가 먼저 약속을 어긴 셈이 되었다. 종전과 같은 시스템으로는 북측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개헌 논의과정에서 헌법의 평화통일 규정 다음에 남북경협의 정경분리 원칙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라도 진정성을 보이지 않으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헌법 제4조 제2항 “국가는 남과 북의 공동선을 지향하는 경제교류와 협력이 어떤 이유로도 방해받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박훤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 칼럼은 남북물류포럼에서 제공합니다.

박훤일  onepark@khu.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