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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더 많은 마이크로크레딧이 필요하다무담보 소액대출이 통일 비용을 줄이고 경제적 자립 도울 것


“지구촌 많은 사람들이 빈곤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 우리는 지속적인 평화를 이룰 수 없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마이크로크레딧(Microcredit)이다. 그리고 저개발국의 발전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향상에도 기여한다.”
- 노벨평화상 선정위원장 올레 단볼트 미에스(Ole Danbolt Mjus)


마이크로크레딧

   
▲ 무하마드 유누스
2005년은 UN이 정한 세계 ‘마이크로크레딧의 해’(The Year of Microcredit)였다. 마이크로크레딧은 은행과 같은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소액대출해 주는 금융을 말한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UN에서 사람이나 단체가 아닌 ‘인간이 만든 제도’를 주제로 삼은 것은 최초의 사례였다. 2006년 마이크로크레딧을 전 세계에 알린 사람가운데 하나인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Grameen Bank)의 설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Muhammad Yunus) 박사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1972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는 치타공대학의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으나, 국민 대부분이 빈곤에 시달리는 현실 속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일에 고뇌하였다. 1973년 20여 달러가 없어 고리대금업자의 횡포에 시달리는 인근 주민들에게 자신의 돈을 빌려주었고, 이것이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인 마이크로크레딧의 시발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사비로 빈민들에게 담보 없이 빌려주다가 1976년 은행에서 자신이 대출을 받아 빈민들에게 소액대출을 하는 ‘그라민은행 프로젝트(Grameen Bank Project)’를 운영하였다. 그 결과 1979년까지 500여 가구를 절대빈곤에서 구제하였고, 이 성공에 고무되어 1983년 그라민은행을 법인으로 설립하였다. 극빈자에 대한 무담보 대출이었으나 회수율이 99%에 육박하여 그라민은행은 1993년 이후 흑자로 전환하였고, 대출받은 극빈자 600만 명의 58%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난 것으로 집계되었다.


마이크로크레딧 업계의 숨겨진 보석, 데이비드 부소

전 세계에는 그라민은행과 같은 3,000개 이상의 마이크로크레딧 운영기관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우리가 유심히 보아야할 사람이 있는데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를 거쳐 북한까지 진출한 오퍼튜니티 인터내셔널(Opportunity International)의 공동 설립자겸 대표로 있는 데이비드 부소(David Bussau)이다. 데이비드 부소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부소는 1940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10대 중반 축구장 스탠드에서 핫도그 장사를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해 35세에는 건설, 주방용품, 건축 자재 등 20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호주에서 제법 알아주는 백만장자가 됐다.

1974년 말 싸이클론이 몰아친 호주 다윈 지역 구호 활동을 시작으로 사회적 필요에 자신의 사업적 재능을 활용하는 사회적 기업가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이듬해인 1975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자신이 모은 재산을 출연하여 신탁기금인 마라나타 트러스트(Maranatha Trust)를 설립했다. 인도네시아 발리 지진 복구 사업을 계기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대출해주고 직업훈련을 시키는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부소가 처음 투자한 금액은 미화 100달러였는데 투자를 받은 사람은 케투 수위라(Ketut Suwira)라는 인도네시아 농부였다. 케투 수위라는 이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아내와 함께 가내 수공업 형태의 작은 기업을 차려 사업을 꾸려 나갔다. 이 사업을 통해 가난을 극복한 수위라는 현재 무역회사 및 수상 택시 회사 사장이며 지역의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는 고용주이기도 하다. 이것이 데이비드 부소가 시작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의 첫 열매다.

이후 부소는 국제적인 NGO인 오퍼튜니티(Oppirunity)와 연합하여 국제 구호개발 단체인 오퍼튜니티 인터내셔널 공동 대표가 된다. 오퍼튜니니 인터내셔널은 1970년대 초반 세계 최초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시작한 단체다. 부소는 이 단체를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무보증 소액대출 사업과 직업훈련 및 창업 프로그램을 실시해 세계 27개국 108만 고객에게 125만 건 이상의 대출 사업을 주도하게 된다. 부소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가 활동을 인정받아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인 언스트앤영(Ernst&Young)사가 주관하는 ‘2003 올해의 호주 기업인상’을 받았다. 언스트앤영사는 해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에 상을 수여하는데 일반 영리 회사가 아닌 비영리 기관의 대표가 상을 받은 것은 데이비드 부소가 처음이었다. 또한 부소는 호주의 대표적 국가 리더에게 주어지는 ‘2008 올해의 호주 시니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부소, 평양에 가다

   
▲ 데이비드 부소
부소는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의 반쪽 북녘 땅에는 이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평양 사람들은 부소가 자신의 재산을 출연하여 설립한 마라나타 트러스트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좋은 일을 하는 외국기업이란 이미지를 갖고 있다. 마라나타 트러스트는 2004년 북한 재무성과 합작으로 조선-마라나타 신용회사를 설립해 평양을 중심으로 공장, 기업소, 개인 등에 경영 활동에 필요한 자금 대출 및 컨설팅 지원을 시작했다.

북한 시장에서는 조선-마라나타 신용회사에서 빌려간 돈으로 상점을 임대해 상품을 파는 개인이나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이 내놓는 상품들은 음식과 비닐봉지, 화장지, 약품 등 다양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 북한에서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은 의외의 성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마이크로크레딧이란 시스템을 통해, 그들 나름대로 시장과 자본주의의 개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부소의 마라나타 트러스트는 기회가 허락된다면 평양 중심의 사업장을 전국 단위로 확장하고자 하는 비전을 갖고 있다. 특히 남북 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은 이들이 전략적으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지역이다. 북한 당국은 2002년 경제개혁 조치 이후 기초적인 시장경제를 도입하기 위해 각종 법률을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2006년에는 국가 중심의 단일 자금 공급체계의 탈피를 뜻하는 상업은행법을 신규로 제정했다. 데이비드 부소는 북한에서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인정받아 북한 당국으로부터 상업은행을 설립해서 운영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북한에 더 많은 마이크로크레딧이 필요하다.

2007년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정상회담 수행원으로 북한을 방문한 당시 하나은행 김승유 회장은 북한 측에 마이크로크레딧 프로그램을 제안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하나은행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나은행이 북한측에 한 제안은 남한 기업이 북한에 금융업 형태로 진출하는 것이어서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 이전에는 진출하기 어렵다. 또한 거대 금융기업의 자체 자본으로 계획된 사업으로 소액으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람들의 참여가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향후 북한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일반투자자들의 참여가 불가능 한 것만은 아니다. 북한은 남한 기업이 아니더라도 데이비드 부소의 마라나타 트러스트와 같은 글로벌 마이크로크레딧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다. 그리고 소액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마이크로 크레딧 시스템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새로운 마이크로 크레딧 시스템은 바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P2P 금융 형태의 키바(Kiva)다. 동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단합을 뜻하는 ‘키바’는 2004년 말 실리콘밸리의 프로그래머 부부에 의해 시작됐다. 간단히 말해 저소득층이 자활할 수 있게 창업 자금을 무담보로 빌려주는 마이크로크레딧을 인터넷으로 옮겨 놓은 형태다. 참여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홈페이지에 접속해 자신이 돕고 싶은 사람을 선택한 뒤 일정액(계좌당 25달러)을 신용카드로 결제하면 된다. 이 돈은 창업 희망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고 현지에서 활동하는 마이크로크레딧 단체로 보내진다. 중요한 것은 키바를 통해 후원자가 내는 돈이 기부금이 아니라 대출금이라는 것이다. 대출금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상환해야 한다. 후원자들은 자신이 빌려준 돈이 어떻게 쓰이고 빌려간 사람의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홈페이지와 인터넷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키바는 2008년 부소의 마라나타 트러스트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생계를 위한 사업 자금을 추진한 적이 있다. 주민들에게 달러를 대부해 주는 방법은 먼저 북한 주민이 키바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 페이지에 가입해 사업 계획이나 사연을 올리면 이를 검토해 인터넷을 통해 자금을 북한의 중개인에게 송금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돈을 빌려간 사람이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지 등을 사진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려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열악한 삶의 현장이 외부세계에 알려질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있어, 이 사업은 더 이상 진척 되지 못했다. 하지만 북한은 시간이 갈수록 대외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기에 외부의 도움을 계속 거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은 통일 비용을 줄인다.

마이크로크레딧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사업이다. 대출을 받는 사람은 단지 돈을 받는 것을 떠나서 받은 돈을 통해 사업을 하고 자연스레 경제를 배워 나간다. 마이크로크레딧이 경제를 체험하고 학습하는 효과를 제공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선한 목적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이견을 제시하는 파열음이 들려오고 있다. 마이크로크레딧의 대명사격인 그라민은행이 외부 지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고, 무엇보다 외부 보조금이 중단되었을 경우 마이크로크레딧 이용자들이 40~100%의 사채 이자와 같은 높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견해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처음에는 국가가 지원을 해서 저리로 돈을 빌려 줄 수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국가가 그것을 중단하자 이자가 40%에서 100%로 뛰어 올랐다고 한다. 멕시코에서는 80~100%, 방글라데시 그라민 뱅크의 이자도 40%에서 50%가 되었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높은 이자를 감당할 만한 수익성 높은 사업도 없고, 몇몇 이용자들은 사업 자금으로 대출금을 사용하지 않고 생활자금으로 소비해 결국 대출금을 못 갚는 상황마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러한 현상들이 결국은 마이크로크레딧의 부실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한다.

그의 지적처럼 마이크로크레딧은 좋은 취지를 갖고 있지만 지원 기금의 지속가능성이 보장 되지 않을 경우 특정 시점에서는 부실해 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졌다. 그리고 대출 금액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을 경우 부실의 늪은 더욱 깊어 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크로크레딧은 계속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지원 기금을 마련하고 투자된 기금 관리도 목적에 맞게 이루어져야 한다. 마이크로크레딧의 핵심은 가난한 사람들이 희망을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의 마이크로크레딧은 통일비용과 북한 주민들의 자본주의 학습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우리가 이야기 하는 통일비용은 북한 경제를 발전시키는 비용도 포함 되어 있다. 북한 주민들이 제한적이기는 하나 경제에 대해 일정 부분 학습되어 있다면 통일 비용은 그 만큼 줄어 들 수 있다. 그래서 북한에서의 마이크로크레딧은 의미가 있는 사업이다.


“영웅적인 기업가들이 등장하는 신화를 거부하고 집단 차원의 공동체적 기업가 정신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조직과 제도를 마련하도록 돕지 않으면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불가능하다."
- 장하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에서

 

전병길  holim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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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r.johnson 2019-02-22 14:3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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