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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북한인권법은 '요란한 빈수레'인가탈북자 130여명 중 '난민 인정'은 고작 20명도 안 해주는 현실

 
현재 미국에는 약 130명의 탈북자들이 살고 있다. 더 많은 탈북자들이 미국땅을 밟았지만 지금은 다른 나라로 가거나, 한국 등으로 돌아갔다. 130명 중 약 20명만 ‘난민’임이 인정되어 영주권을 받았다는 데서 미국에서의 정착이 쉽지 않음을 예측할 수 있다. 나머지 난민임을 증명하지 못한 100명이 넘는 탈북자들은 근근히 노동비자(노동허가)를 받아 살아가고 있다.

2004년 10월 제정된 <북한인권법>(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을 통해 많은 탈북자들이 미국으로 향했다. 2006년 5월 동남아 제3국을 거친 탈북자 6명이 <북한인권법>의 효력에 따라 미국으로의 망명이 수용되었다. 난민프로그램을 적용해 탈북자의 미국 정착을 실현시킨 최초의 사례였다. 당시 국내외 언론은 떠들썩했다. 그러나 <북한인권법>이 적용된 지 8년이 다되어가는 현재 영주권을 받아 미국사회에 안착할 수 있던 탈북자는 단 20명도 되지 않았던 것.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옛말이 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빈수레가 된 요인을 알아봤다.

먼저 찾은 곳은 미국의 쥬디 우드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쥬디 변호사는 미국에서 탈북자들에게 유일하게 영주권을 안겨준 변호사다. 현재 영주권을 받아 정착하고 있는 탈북자들은 모두 쥬디 변호사를 거친 것이다.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노동비자로 살아가는 탈북자들도 수시로 그와 연락을 취하며 영주권을 받기 위한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 쥬디 우드 변호사. 미국에서 탈북자들에게 유일하게 영주권을 안겨준 변호사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 이때까지 망명 허가를 받은 탈북자들은 몇 명인가?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20명이 망명신청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중 5명은 다시 재판을 해야 할 것 같다. 완전 거절은 아니지만, 미국정부에서 다시 재판을 하라고 한다. 허가했던 것을 다시 뒤집으려는 의도이다. 이민법원에서 대법원까지 간 적이 없는데, 대법원으로 가져갈 케이스이다. 대법원에서 이기더라도 앞으로 탈북자들을 받아주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 마지막으로 탈북자들이 난민 인정을 받은 것이 언제인가?
6년 전이다.

- 6년 전부터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 탈북자들을 받지 않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가 드러난 것은 아닌가? 난민 인정이 어려워진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초창기 10개 케이스는 계속 이겼다. 그 후에 점점 더 힘들어졌다. 한국에서 기자들이 와서 탈북자들이 미국에 망명하는 것을 좋지 않게 전달한 것이 시작인 것 같다.

- 왜 한국에서 탈북자들이 미국에 망명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가?
한국을 거쳐 온 탈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망명 신청을 허가받으려면 한국에서 학대받은 것에 대해서 증명해야 하지 않나. 남한이 인권탄압국가로 비추어지는 것에 대해서 부담스러웠던 남한 정부가 미국 정부와 로비를 한 것 같다. 남한과 미국은 친하니까 말이다. 미국 내에 살고 있는 남한 사람들도 탈북자들이 미국에 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전화를 몇 번씩이나 받았다. 왜 북한 사람들을 미국에 발붙이게 하느냐는 항의 전화였다. 이런 정서들이 반영된 것 아니겠나.

한 마디로 쥬디 변호사의 주장은 “남한의 압박으로 미국정부가 탈북자들의 망명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한을 거쳐 온 탈북자의 경우, 남한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데, 남한 정부의 정치적인 개입으로 그것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 재미탈북자지원회 로버트 홍 변호사.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그러나 쥬디 우드 변호사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던 재미탈북자지원회의 로버트 홍 변호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홍 변호사는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탈북자들은 미국에 오기만하면 다 받아주는 줄 알고 왔지만, 많은 사람들이 추방되었다고 전했다. 캐나다, 독일 등에 수백명의 탈북자들이 정착해 살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요란을 떨었던 미국은 130명뿐”이라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의 <북한인권법> 자체가 매우 정치적인 법이다. 미국 정부가 생각하기에 써먹을 수 있는 사람들만 데려가려고 만든 법으로밖에 안 보인다. 앞으로도 자기네가 받아주고 싶은 사람만 받아줄 것이다. 미국은 정보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는 나라다.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산 탈북자들도 있다. 떠밀려서 간 사람들이 미국에 오려고 한 것인데, 그 길이 막힌 것이다.”

문제는 한국을 거치지 않고 태국이나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오는 경우다. 한국을 거친 탈북자들의 난민 인정이 어렵다 치더라도, 제3국에서 직접 들어오는 탈북자의 경우는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 또한 길이 막혀 있다. 홍 변호사에게 물었다.

- 제3국에서 오는 경우는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태국 사무국에 수용되었던 탈북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다. 미국에 가고 싶다고 하니까 3년, 4년을 그곳에서 머물게 하더란다. 심지어 어떤 분은 북한 내부보다 더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항의를 하면 한국에 가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응했단다.

- 그럼 지금은 거의 들어오지 못하는지?
돈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되면 미국으로 오기가 힘들다. 내가 알기론 천기원 목사나 ‘링크’ 줄이 아니면 미국으로 오기가 힘들다. 나머지는 돈을 지불할 능력이 안 되니까, 미국을 오겠다고 하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참지 못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국으로 가는 것이다.

제3국에서 바로 미국으로 온 탈북자들도 난민 인정을 못 받는 이유에 대해 쥬디 변호사는 “다른 나라 영사관에 들어가도 무조건 남한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에서 살 기회가 있었는데 미국에 온 이유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남한에서 정착할 기회를 버리고 온 것이라 판단해서 난민 인정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2004년 10월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였지만, 20명이 안 되는 탈북자들에게만 난민 신청을 받아주었다. 나머지 100여 명의 탈북자들은 노동비자 등을 통해 망명대기자 신분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몇 배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실망을 하고 다른 나라로 떠났다. 한국을 거쳐서 오거나, 제3국에서 직접 오거나에 상관없이 탈북자가 미국에 들어와 살기에는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망명대기자 신분으로 미국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 쥬디 우드 변호사  ⓒ유코리아뉴스 이범진
쥬디 변호사는 “나머지 100여 명의 망명을 돕기 위해 뛸 것”이라면서도 “많은 탈북자들이 이 과정에서 지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미국이 발표한 ‘탈북자 실태와 미국의 탈북자 정책(2005)’(The Status of North Korean Asylum Seekers and U.S. Government Policy Toward Them)에 따르면, 미국의 입장은 분명해 보인다. 테러지원국인 북한에서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탈북자들을 선별하는 방안 마련이 쉽지 않고, 한국이나 제3국이 아닌 미국에 재정착해야 하는 ‘절박한 사유’ 등 다양한 기준을 만족시켜야 하는 만큼 ‘난민 선별’이 어렵다는 것이다.

2008년에 <북한인권법>의 효력이 만료되었지만, 2012년까지 그 효력을 연장하는 <북한인권재승인법>이 채택되었다. 그리고 다시 2017년까지 기간을 5년 연장하는 재승인법안이 구두표결로 통과되어 현재 상원 전체회의에서의 표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법안의 내용은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 인도적 지원, 탈북자 보호를 주요 골자로 한다. 최근에는 탈북 고아 입양 법안이 상정되어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당초 <북한인권법>은 탈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미국에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는 법적인 기반이 되었다. 탈북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하지만 꿈에서 깬 결과는 참담했다. 탈북자 보호활동에 지원하기로 했던 2천만 달러의 재정은 여러 가지 이유로 책정되지 못하였고, 망명자로 인정받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유명무실한 <북한인권법>의 단순한 효력 연장은 무의미할 수도 있지만, 홍 변호사는 다소 희망적인 말을 전했다.

“미국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시간이 오래 지나면 어떤 것을 받아들여 주는 때가 있다는 것이다. 10년, 20년이 지나면 반대하던 것들도 받아들여 주는 여유를 발휘한다. 미국 내 탈북자들의 삶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주권을 못 받고 있지만, 성실하게 살다보면 어느 순간 받아들여질 때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큰 LA 한인타운의 시작도 처음은 힘들었던 것과 같다.”


* 통역 더글라스 박 선교사
* 이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진흥기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미국=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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