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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감옥 생활, 그것은 나를 향한 당신의 흔적입니다.”서쪽나라(10) - 아버지와의 화해

 
중국에서의 두 번의 감옥 체험은 오랜 세월 잊었던 아버지의 숨겨진 과거사를 이해하고 그분과의 화해를 통해 왜곡된 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감옥은 자유의 소중함만큼이나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나라에서 느껴야 했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특별히 기억에 희미해진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으로, 이미 고향에서 한 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셨으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쪽으로 피난 오셨다. 그리고 대전에 정착하신 후 어머니를 만나 새 가정을 이루시고 형과 나를 낳으셨다. 모범생이며 우등생인 형과 달리 어린 시절의 나는 말썽꾸러기에다 공부도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등상을 탔다.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상을 타서라기보다 아버지의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칭찬은 끝내 들어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1923년 생으로 어머니와 나이 차가 무려 17년이나 났다. 무뚝뚝하고 나이 많은 아버지가 늘 불만이었다. 날씨 좋은 주말에 나들이를 갈 때면 아버지가 너무 늙어 보여 같이 다니기가 싫었다. 게다가 중풍을 앓으신 후 더욱 건강이 좋지 않아 아버지와 나는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겨울부터 아버지는 거리에서 과일 장사를 하셨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우연히 아버지의 장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그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도 과일을 사지 않았다. 찬바람을 맞으며 허공을 응시해야만 했던 처량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아버지가 불쌍하면서도 창피했다. 결국 수많은 무리 속에 나를 숨기고 아버지를 외면했다.

아버지와 행복했던 시간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른 아침 아버지와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가기도 했는데, 아버지의 등을 뒤에서 꼭 안고 있으면 얼굴을 만져 주는 바람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아버지와 나는 고향 친구 분 댁에 종종 놀러 갔는데, 그분들 집에서 먹은 음식은 우리 집 음식과 질적으로 다른 것들이었다. 하루는 이층으로 된 신식 양옥집에 사시는 친구 분 댁에서 화장실에 갔는데, 난생 처음 수세식 변기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대던 기억도 있다.
피난 오시기 전 고향에서 아버지는 면사무소 서기였다. 남쪽에 오신 후부터는 화물회사에서 짐 나르는 일을 하셨다. 중풍이 있기 전까지 15~16년간 아버지는 가장으로서 성실하게 일하셨다. 나와 형은 집에서 노는 것이 심심할 때면 대전역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회사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100원을 주셨는데, 그 돈으로 군것질을 하는 것이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입학을 앞둔 형과 동네 친구 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친구가 분에 못 이겨 형의 허벅지를 조각칼로 찔렀는데, 형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대학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무려 15시간이나 걸리는 대수술을 하고서도 한동안 중환자실에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면서 형의 간호를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병원에서 주무시면서 코를 심하게 골아 다른 환자와 가족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는 큰 불편을 겪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간호를 하고 싶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에 오셔야 했다. 평소와 달리 너무 아파하는 형을 두고 아버지는 마음이 힘드셨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초콜릿 색깔의 고체 덩어리를 입에서 토해 내시더니 그대로 쓰러지시고 말았다. 자식의 고통을 당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괴로워하시다가 결국 고혈압으로 쓰러지신 것이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기에 급하게 리어카에 태우고 형이 있는 대학병원까지 한달음에 달려갔지만,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당시 내가 경험한 죽음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날, 나를 향해 내리쬐는 태양은 너무도 따스했다. 햇살의 따스함이 이렇게 좋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마음은 슬픈데 몸은 따스한, 울어야 되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낯선 느낌을 그때 경험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때를 생각해 보니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가 어린 나의 슬픔을 위로하기 위해 허락하신 섬세한 배려였다는 생각이 든다.

최종 사망 소식을 확인하고 흰 천에 덥힌 아버지를 보았다. 그동안 잘못했던 일들을 낱낱이 고백하면 “깜짝 놀랐지?”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만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께 잘못했던 일을 고백하고 또 고백했다. 특히 늙고 병든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일이 너무나 죄송했다. 아무리 울고 사정해도 단단히 화가 나셨는지 아버지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계셨다.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묻고 집으로 왔다. 그때까지 우리는 형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지 못했다. 일주일이 흐르고 한 달이 흐르면서 아버지의 빈 자리가 현실로 느껴졌다.

두 달 동안의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형은 예상과 달리 아버지의 부재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형은 이미 직감적으로 아버지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때부터 형은 묵묵히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한 번도 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겉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그리워 남모르게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형은 점점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극복하려 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러다 문득문득 ‘푸른 하늘 은하수’로 시작하는 <반달>이라는 동요를 부를 때면 아버지의 모습이 되살아난다. 고향을 그리워할 때마다 아버지가 구슬프게 그 노래를 부르셨기 때문이다. 솔직히 최근까지 아버지의 죽음이 내 인생을 꼬이게 했던 시발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가난에 시달려야 했고 어머니가 평생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의 기형적인 역할 분담을 초래했고, 나의 성장기를 매우 힘들게 했다. 특히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성향을 닮아 나도 현실 도피적인 성향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가?
그러나 전혀 뜻하지 않은 감옥 생활을 통해 아버지가 새롭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갇혀 있는 동안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가 고향을 생각하며 부르시던 <반달>이란 노래를 불렀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나라로

이 노래를 부를 때면 가끔씩 술을 마시고 마루에 앉아 구슬프게 노래를 부르시던 아버지의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아, 아버지가 고향에 두고 오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렇게 아버지에 대한 얼었던 마음이 서서히 물이 되어 흘렀다.

   
▲ 중국에서의 두 번의 감옥 체험은 오랜 세월 잊었던 아버지의 숨겨진 과거사를 이해하고 그분과의 화해를 통해 왜곡된 나 자신의 모습을 회복하게 된 찬란하고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이윤경(재능기부)


아버지를 이해하고 나서야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가족과 생이별했던 재영 씨의 마음도 새롭게 다가왔다. 그는 국경에서 붙잡힌 후 가족의 생사를 모른 채 남쪽으로 돌아왔다. 고향 친구들과 느릅 냉면 공장을 만들어 사업도 하고 좋은 여자를 만나서 한 가정도 이루었다. 하지만 남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난 알 수 있었다.
재영 씨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60년 전 아버지가 전쟁으로 가족을 떠나야 했던 것처럼,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지금 가족과 헤어져야만 하는 재영 씨의 모습은 남북 분단으로 인한 가슴 아픈 역사의 되풀이다. 북쪽에서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남쪽에서 새롭게 정착하려는 새터민들은 또 다른 형태의 나의 가족인 것이다.

하나님이 왜 나를 두 번이나 탈북자들을 만나게 하시고 그토록 힘든 시간을 허락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듯하다. 나의 굴곡진 시간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 안에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나의 특별한 가족사를 아셨고,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탈북자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내 은밀한 상처까지 치유하시려 하셨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성경 말씀을, 눈에서 흘리는 눈물과 입에서 나오는 탄성과 찢겨진 내 몸의 상처를 통해 나는 진리로 받아들인다. 진리는 그렇게 내 삶에 들어와 내가 되어 나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진리가 점점 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다.

두 번의 감옥 생활은 인간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극단을 체험하게 함으로 내 인식의 틀을 좀더 깊고 넓게 심화하고 확장해 주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크게 당황하던 이전과 달리 이젠 빠른 시간 안에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문제 해결에 집중하게 되었다. 한계상황에 직면해 본 사람이 갖는 여유라고 할까?
역설적이게도 그곳에서 보낸 시간은 첫사랑만큼이나 인생에서 아름답고도 잊지 못할 시간으로 채색되었다. 당시에는 열 가지 중 아홉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홉의 아홉을 곱해 되돌려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 주님은 젊은 날 당신만을 위해 살고 싶다던 한 청년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오해받으실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온전한 제자로 삼으시려고 당신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경험케 하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이었습니다. 그 시간이 더욱 힘들었던 것은 그 고통의 세기보다 함께 계셨다고 믿었던 주님의 부재였습니다. 길 잃은 아이처럼 애타게 찾았을 때 주님은 어디에 계셨나요? 절박한 저의 질문에 침묵하시는 주님을 보면서 원망했습니다. 그때 난 상처는 흉터가 되었고, 부끄러워 숨기고 싶었습니다.

이제 담대하게 그것은 흉터가 아니라 흔적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살아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신다는 우리 둘만의 특별한 사인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사인을 당신의 길을 진정으로 따르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만 특별히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느낀 고통은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당하신 그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 손과 허리에 난 흔적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지워지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선명할 것입니다. 주님은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지만 실제로 그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주님이 남겨 주신 흔적을 만져 보겠습니다. 그 고통을 느끼면서 내 영혼 다시 깨어나겠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이 흔적이 있는 한 주님은 나와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흔적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의 감옥 생활, 그것은 나를 향한 당신의 흔적입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내게 그 분의 음성이 들렸다.
“영필아.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두 번씩이나 힘든 광야로 내몰아서 미안하다. 그러나 너를 향한 나의 계획을 위해서는 이 시간이 꼭 필요했단다. 너는 내가 하늘 위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네가 감옥에 있는 동안 한 번도 너를 떠난 적이 없었다. 네가 눕던 시멘트 바닥 위에서 함께 잤고 너와 함께 양념 없는 삶은 배추를 먹었다. 네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 줄까? 네가 감옥에 오기 오래전부터 나는 그곳에 있었단다. 너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세상 사람들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경멸하더구나. 잘못한 짓을 한 만큼 고생을 해야 한다고. 그러나 너도 알겠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치고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감옥 바깥에 있건 안에 있건 모두 나의 은혜가 필요한 불쌍한 죄인들일 뿐이다.

내가 그들과 함께 있는 이유는 나의 자비로운 손길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본질은 사랑이다. 사랑은 나와 너를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네가 곧 나고 내가 곧 너다. 그래서 너의 고통은 너만의 고통이 아니라 나의 고통이며, 나의 기쁨은 나에게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너의 것이 되어야 한다. 너의 울음이 나의 울음이고 나의 미소가 너의 미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이란다. 감옥에 있으면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성경에 언급한 것처럼 나의 계명을 따르는 자만이 온전한 제자들이다. 세상에서 나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는 참된 제자들을 애타게 찾고 찾았다. 그러나 나의 기쁨과 나의 능력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내가 흘리는 눈물을 함께 흘리기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더구나. 그러는 중에 네가 젊은 시절 교회 옥상에서 드린 기도가 생각났다.

나의 사랑을 알고 싶다고. 너를 사랑했기에 죽어야만 했던 그 심정을 알고 싶다고, 그래서 나를 위해 죽고 싶다고. 물론 그때 너는 너무 어렸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안한 아이였다. 그러나 나는 너의 마음 깊은 곳을 보았다. 그 마음이 진짜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기뻤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진실로 눈물을 흘려줘서. 시간이 흐르면서 너는 그런 기도를 드린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더구나. 그러나 나는 그 기도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리고 마음먹었지. 작고 보잘것없지만 나의 아픔에 민감히 반응하는 너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한 도구로 사용하겠다고. 그 나라의 일꾼이 되려면 훈련 과정이 필요했단다. 그래서 너를 이곳저곳 데려가고 이 일 저 일 시켜도 보고 결국 이곳까지 데려온 거란다. 때로는 나의 참뜻을 오해하고 원망도 했지만, 그럼에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그것은 이들을 위해 함께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내가 찾는 사람은 지극히 작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그들과 친구가 되어 주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왔을 때 너도 눈에 잘 보이지 않은 지극히 작은 자였거든. 알다시피 나는 너의 눈물을 닦아 주고 상처를 싸매 주고 먹을 것을 주었다. 그렇게 어린 너를 키웠단다. 너는 날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세상의 재미에 빠져 있었다. 나의 나라를 위해 너를 쓰고 싶은데 이리저리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순수함과 열정을 잃어버릴 것 같아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끌고 올 수는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나의 진심을 더욱 더 외면했을 거야. 그리고 의지적으로 나에게서 더욱 멀어졌을 거야.

너를 인격적으로 사랑한다. 그 말은 너에게 허락한 자유의지를 나조차도 침범할 수 없다는 말이다. 너에게서 건강도 가져가고 재산도 가져가고 아름다움도 가져갈 수 있지만 자유의지만큼은 가져갈 수 없다. 그것은 나 자신과 한 약속이란다. 나는 세상을 창조하고 시간을 초월하며 사람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지만, 유일하게 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스스로 어기는 것이다. 나는 나의 성품을 거스를 수 없단다. 이제 그 시절의 끝에 선 너를 보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른다. 아직은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을 나에게로 틀었으니 조금만 인내하고 기다리면 곧 나에게 오리라 확신한다. 그날 너는 마치 디베랴 바닷가에서 만난 베드로와 같을 것이다. 그때 너에게 질문할 것이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그러면 너는 답해야 한다. 한 번의 물음에 답했다고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더 물을 것이고, 한 번 더 대답해야 할 것이며, 또 한 번 더 물을 것이고, 너는 또 한 번 더 대답해야 할 것이다.

질문을 받는 순간 마음속에 떠오르는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실망, 수치, 위선, 허약함의 쓴 뿌리들을 잊지 않기 바란다. 그것을 망각하는 순간 너는 다시 배반하겠고, 그것을 기억하는 너는 하늘의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를 먹이고 양육하는 권한과 역할을 주는 것은 너를 통해 나의 일을 이루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이적을 행했다면 너도 행할 것이다. 이제 내가 행한 것 이상의 것을 행할 수도 있다. 하늘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여라. 위로 향했던 시선을 아래로 향하여라. 거기서 네 이웃을 찾아라. 네가 찾은 그 이웃을 먹이고 입혀라. 내가 무릎을 꿇고 너의 발을 씻긴 것처럼 네 이웃을 섬겨라. 일상 속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어라. 마음을 가난하게 만들어라. 세상을 향해 애통한 눈물을 흘려라. 하나님 앞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온유한 자가 되어라. 하나님의 의와 그의 나라에 마음을 집중하여라. 도움의 손길을 구하는 자를 외면하지 마라.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여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중보하는 자가 되어라. 나를 위해 고난당하고 멸시 당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가 이 땅에서 천국을 이룰 것이요 나를 볼 것이다. 이로 인해 세상이 구원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할 것이다.”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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