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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달라고만 하지 말고 지금 통일을 살아야지"'나오미네 집' 박상희 전도사의 통일 이야기

남한 땅 곳곳에는 지금 통일을 준비하는 곳이 아닌 통일을 이미 살고 있는 곳이 있다. 통일을 미래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보는 곳이다. 이미 온 통일을 맛보며 살고 있는 곳이다. 지난 23일, 창립 9주년을 맞은 강화군 선원면의 ‘나오미네 집’이 바로 그런 곳이다.

30명 정도만 모여도 가득 찰 것 같은 거실엔 70여명이 몰려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엔 쥬빌리코리아구국기도회 이상숙 상임위원장도 있고, 배기선 전 국회의원 부부도 있고, 부흥한국 고형원 선교사도 있다. 탈북자들도 꽤 된다. 도대체 이곳이 어떤 곳이기에 이런 유‧무명의 사람들이 9주년을 기념해 참석한 것일까.

   
▲ 나오미네집 창립 9주년 감사예배 장면(위). 아래는 예배가 끝난 뒤 손님을 배웅하는 박상희 전도사 옆으로 펼쳐져 있는 그림같은 들판 풍경. ⓒ유코리아뉴스

“갈대상자에 담긴 갓난아기 모세를 하나님이 지키신 것처럼 지난 9년 동안 하나님이 나오미네집을 지켜주셨다. 이 집을 통해 북한선교의 일꾼들이 새힘을 얻고, 믿음과 비전을 발견하게 됐다.”(구영삼 선교사)

“나오미네집은 복음의 빚진 자의 마음, 민족 사랑의 마음을 갖게 한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9년을 이어온 이유다. 우리 동족 북녘, 700만 한민족 디아스포라를 품는 민족중보자, 헌신자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것을 믿는다.”(서석 목사)

“나오미네집이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것은 민족의 어려움을 치유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지금 북녘은 독재정권 때문에, 남한은 풍족과 삶의 무의미 때문에 살맛을 잃었다. 둘이 하나가 되면 모두 살맛을 되찾을 것이다. 복음적 통일을 이룰 사람들이 나오미네집에서 끊임없이 세워져나갈 것이다.”(오성훈 목사)

도대체 나오미네 집의 지난 9년이 어떤 시간이었길래 이들은 한 목소리로 나오미네집을 그토록 격려하고 있는 것일까. 창립 9주년 감사예배가 끝나고, 왔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난 뒤 나오미네집 대표 박상희(67) 전도사를 조용히 만났다.

“지난 9년간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상수도가 연결이 안돼 지하수를 3번이나 팠는데 빨간 녹물이 나왔지. 기가 막혔어. 겨우 지난달에 상수도가 들어오기 시작했지. 지난해엔 집이 온통 물에 잠기는 바람에 풍파를 겪었고. 그때 하나님 앞에 다짐했지. ‘10년째 되는 날 먹을 것만 해결해주시면 이제 그만하겠다’고. 북한선교 디딤돌, 회복과 치유를 목적으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뭘 했는지 모르겠어. 사람들이 그냥 했다고 해주니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박 전도사가 나오미네집의 비전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초반, 그러니까 박 전도사가 평신도에서 신학을 마치고 한 중형교회로 부임했을 때다. 충격을 받았다. 밖에서 생각하던 교회와 사역자로 깊숙이 들여다본 교회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섬기는 교역자’가 아닌 ‘섬김받는 교역자’의 모습에서 ‘이건 아니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성령과 치유, 쉼이 있는 공동체를 생각했다.

그러면서 90년대 중반, 박 전도사는 부흥한국의 찬양을 통해 ‘북한선교를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중국을 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몇몇 대형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다가 2000년 일산의 한 교회에 부임해서도 북한선교의 열정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2002년, 드디어 교회도 사임하고 공동체 터를 찾아다녔다. 목적은 두 가지, 북한선교와 치유‧회복이었다. 북한선교를 하려면 북한과 가까운 곳이어야 하고, 치유와 회복이 있으려면 도시가 아닌 농촌이어야 했다. 뒤는 산, 앞에는 들판이 있는 곳을 생각했다. 인생의 고난의 골짜기를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죽어서 천당 갈 뿐만 아니라 살아서도 천당 같은 곳이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다.

   
▲ 북한선교와 상한 심령의 회복을 위한 나오미네 집을 9년째 이끌어온 박상희 전도사.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박 전도사의 헌신과 기도를 익히 알고 있던 한 지인이 그녀에게 땅을 기증했다. 가보니 그녀의 마음에 꼭 들었다. 터는 얻었지만 이제 건축이 문제였다. 노후용으로 장만했던 용산 집을 처분해야 하는데 남편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고생고생하면서 모은 집을 판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사업 실패와 그로 인한 배고픔은 지금의 북한선교, 회복사역의 밑거름이 되었지만 말이다. 고민 끝에 남편의 승낙이 떨어졌다. 집지을 돈은 생겼지만 설계가 문제였다. 건축설계사가 당장 “이런 산중턱에다가는 도저히 집을 지을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이 역시 거듭된 설득 끝에 통과됐다.

드디어 건축이 완공되고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배 이름 때문에 한참을 고민했다. “가정집을 짓는 것도 아닌데 입주예배라고 할 수도 없고, 교회나 기도원도 아니니까 입당예배라고 할 수도 없고…. 그때 기도 중에 ‘봉헌’이란 단어가 떠올랐지. 이 건물은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나는 관리인에 불과하니까 딱 맞는 말이었지. 그리고는 2003년 6월 29일 봉헌예배를 드렸지.”

처음엔 옆 마을 주민들이 기도원을 짓는 줄 알고 몰려와 피켓 시위를 할 때도 있었다. 물 문제는 물론 돈이 없어 하나님만 바라보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수년 동안 박 전도사는 어느 교회에도 손을 벌리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했으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채우실 것이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선교를 처음 시작할 때 성령님이 내 안에 주시는 말씀과 생각대로 따라가보니 틀리지 않았어. 정말 하나님이 하신 거지. 10년 전에 ‘북한을 섬기고 나눠야 한다’고 말하니까 나를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어.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란 걸 확신하는 것은 지금은 누구나 다 그런 얘기를 하잖아. 그래서 요즘엔 하나님 앞에 ‘이젠 뭐라고 기도할까요?’라고 물으면 ‘통일 주면 뭐할 건데?’라고 되물으시는 것 같아. 그 말씀은 곧 통일을 달라고만 기도하지 말고 지금 통일이 됐을 때를 가정하고 통일의 삶, 통일을 살라는 뜻이지. 그 일을 남한 사람들과 탈북자들과 지금부터, 다 같이 하자는 것이지. 같이 배우고 같이 살아가다보면 같이 실패도 하고 같이 깨닫기도 하고, 그게 다 통일의 여정이 되는 것 아니겠어?”

나오미네집은 기도원이 아니다. 물론 교회도 아니다. 그것은 곧 예배나 집회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오미네집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치유를 경험하고 북한선교의 꿈을 발견하게 되는 걸까.

“별거 없어. 사람들이 오면 빙 둘러앉아 살아가는 이야기,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그 이야기를 다 듣고 있다가 성경 말씀으로 가르쳐주고, 그게 다야. 그런데 그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지. 알콜중독자도 치유되고, 이혼 직전의 부부가 회복되고, 청년부가 MT를 왔다가 북한선교의 비전을 발견하지. 나오미네집 앞의 들판은 4계절이 다 다른 모습이야. 사철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몰라. 처음에 기도했던 대로 살아서 천당을 경험하고 있는 거지.”

딱 하나 정기모임이 있긴 있다. 매월 첫째주 오전 11시에 갖는 북한선교 기도모임. 6~7명이 모이지만 이 작은 모임을 통해 박 전도사의 북한선교의 마음과 비전이 개인과 교회로 흘러간다고. 처음엔 40~50명씩 동원하다시피 해서 모였지만 무의미하다는 걸 곧 깨달았다. 진짜 북한선교를 위해 기도할 사람, 6~7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서울 내수동교회에 출석하는 오영필(프리랜서 감독)씨는 “한 달에 한번 기도모임에 오면 나도 모르게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걸 경험한다”며 “그것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제쳐놓고 기도모임에 참석하게 된다”고 말했다. 오씨는 남자로서는 유일하게 1년 동안 꼬박 이 기도모임에 나오고 있다.

   
▲ 강화군 선원면 연리 산중턱에 자리잡은 나오미네집 전경. ⓒ유코리아뉴스

박 전도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살짝 물었다. “계획? 난 지금까지 한번도 내 의지대로 한 적이 없어. 하나님 뜻대로 그냥 따라가면 편한데, 때 되면 알아서 일하시고. 괜히 내 의지가 들어가면 나는 나대로 힘들어지고 일은 일대로 꼬이거든. 앞으로 정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는 걸 경험하고 싶어.”

새벽 묵상, 오전 10시~12시 중보기도, 오후 활동. 이것이 박 전도사의 하루 스케줄이다. 그녀의 집은 경기도 일산. 남편 챙기랴, 나오미네집 관리하랴 왔다갔다 정신이 없다. 거기다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의 설교를 맡아 전국을 다닌다. 매주 목요일엔 사랑의교회에서 열리는 쥬빌리기도회에도 참석한다. 하지만 박 전도사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 가는 길엔 이상하게도 멀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이 안들어,”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며 ‘멍청하다’ ‘무식하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렇게 주님을 섬겨 왔고, 그렇게 북한선교를 해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기도 중에, 북한선교 중에 깨달은 것은 어떤 배움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오래 전부터 통일은 우리 민족의 꿈이요 환상인데 중국이 그걸 다 먹으려 한다’ ‘하나님이 그렇게 통일을 주고싶어 하시지만 교회가 정신을 못차려서 안주신다. (통일을) 주면 오히려 더 정신 못차리기 때문이다’ ‘지금의 국방비만으로도 얼마든지 통일은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민족주의자 같지만 그녀는 철저히 예수쟁이다. “내 마지막 바람은 내가 죽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박 전도사는 진짜 예수쟁이였어’라는 한마디 말을 듣고 싶어.”

창립 9주년 감사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사람들의 두 손엔 박스며 비닐봉지가 가득 들렸다. 아는 권사에게 부탁해 강화도의 오이며, 감자를 직접 캐서 선물한 것이다. 박상희 전도사를 안 지는 몇 개월 안되지만 북한선교를 위해, 사람들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주님을 위해 자신을 오롯이 내어준 지난 9년의 삶이 저렇지 않았을까 싶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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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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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sther 2012-09-07 13:17:34

    글안에 ..통일을 바라보는 기자님의 눈이 너무 아름답고 간절하고 & 간구하는것을 느끼네요 .먼나라일인냥 관심없었던 일들도 후회스럽고요.관심을 갖는다는것..그것이 새로운시작이 아닐까하는 용기를 내어봅니다   삭제

    • Esther 2012-09-07 13:12:26

      멋진 사역을 소개해준 기자 님께 감사드리고요 :) 가끔 중국인 친구랑 북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보면,10년안에 북한은 중국에 그냥 속해질꺼라고 늘 그렇게 준비들 하고 왔다고 하네요.속국도 아니라 그냥 자기나라의 일부분이 되는거라고..반감을 표현하면 듣을려고도 안하고 손사래를 치죠..그리고남한은 그냥 미국의 방파제일뿐이라고 생각한데요..그래서 전쟁은 자기들도 싫지만 미국이랑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삭제

      • ydyjmom 2012-07-04 23:23:37

        북한선교를 위한 박상희전도사님의 열정과 삶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9년간의 나오미네 사역도 멋지고 군더더기 없는 기자님의 명쾌한 기사도 멋집니다. 평범한것 같지만 비범한 삶 감동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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