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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한반도에서 사랑의 한반도로[인터뷰] 안디옥선교훈련원 대표 은퇴한 오대원(David E. Ross) 목사

대한민국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기까지는 스스로의 힘도 있었지만 타자(他者)의 손길도 필요로 했다. 그 타자들이 있었기에 복음이 들어왔고, 그들이 있었기에 자유와 민주를 지킬 수 있었다. 외국인으로써 누구보다 남북의 화해와 통일을 열망하고 기도하는 이를 꼽으라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대원 목사(본명 David E. Ross)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 목사는 1960년대 초에 한국에 들어와 한국YMCA를 설립했다. 1980년대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시애틀에 안디옥선교훈련원(YWAM-AIIM, 일명 ‘성령의 샘’)을 설립하고 남북의 통일과 화해를 통한 뉴코리아(new Korea)를 염원하며 교육과 훈련, 기도를 해왔다. 지난 9월 19일 마침내 그는 훈련원 대표직을 내려놨다. 오 목사와의 인터뷰는 이임식 직후 성령의 샘에서 이뤄졌다. 오 목사는 다음달 3일부터 서울 불광동 팀비전센터에서 열리는 2017 통일비전캠프 주강사이기도 하다. 다음은 오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배기찬 대표(이하 배) : 오대원 목사님, 안녕하세요? 지난 9월 17일 20년간 몸담았던 안디옥선교훈련원의 대표직을 피터 양 목사님께 이양하시고 이제 좀 자유롭게 되셨습니다. 우선 그 동안의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오래 전부터 대표직을 내려놓고 싶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올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지난 20년간 함께 안디옥선교훈련원을 만들고, 열방 특히 북한을 복음화하기 위해 동역해온 피터 양 목사님이 아주 적절한 시기에 대표직을 맡아 잘 하시리라 생각하며 마음이 아주 기쁩니다. 제가 비록 ‘성령의 샘’ 대표직은 그만 두지만 북한사역, 열방을 복음화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배 : 오 목사님은 1961년 한국에 선교사로 오셔서 예수전도단을 만들고, 1986년에는 미국으로 돌아오셔서 안디옥선교훈련원을 만들어 활동하셨습니다. 지난 55년간 코리안을 대상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오셨는데, 우선 어떻게 한국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시죠.

저는 1961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25살이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교하고 싶었는데 세계의 여러 나라를 보면서 어느 나라가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나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나라인가를 눈여겨봤습니다. 그런데 1960년 한국에서 4.19민주혁명이 일어났고 학생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엘렌(Ellen)과 결혼한 뒤 함께 한 달여 동안 배를 타고 한국에 왔습니다.

20년간 몸담았던 미국 시애틀 소재 안디옥선교훈련원(YWAM-AIIM, 일명 ‘성령의 샘’) 대표직을 이임한 오대원(David E. Ross) 목사. ⓒ유코리아뉴스

배 : 한국에서 오셔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우선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배우기도 하고, 제가 출석한 영락교회에서 성경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또 학생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기도 했습니다. 연희동 선교관에서 학생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집을 항상 오픈했는데, 특히 냉장고를 활짝 열어놓았습니다. 학생들이 와서 같이 먹고 마시고 잠도 같이 잤습니다. 처음부터 즐겁게 지냈습니다. 엘렌도 똑같은 마음이었는데 한국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도 이런 생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는 학생도 무엇인가를 가져와서 함께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는 항상 성찬식을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함께 먹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당시 한국 학생들이 힘든 생활을 했지만 우리가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았습니다.

배 : 예수전도단을 만드셨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습니까?

처음 한국에 온 지 10년 동안 열매가 없었습니다.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성령을 새롭게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직업적 선교사의 일로부터 벗어나 본격적인 사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1972년 서울공대에서 활동할 때 계엄령이 내려졌습니다. 학생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는데, 저희 집에 5명이 남았습니다. 함께 성경공부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릴 때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시내로 나가서 전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그러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예수전도단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찬양하고 예배할 때 200~300명이 참가한 것 같습니다.

배 : 그 동안 코리안과 같이 되셔서 코리안을 위해 또 코리안과 함께 사역을 해 오셨는데, 이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 또는 코리아안의 독특함에 대해 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한국인을 위해 한국에 왔으나 한국인과 함께 일했고, 한국인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한국인의 특징은 ‘끈기’와 ‘열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열정은 특별함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열정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열정, 선교에 대한 열정이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성경책을 찢은 부모를 전도해 아버지는 장로가 되고 어머니는 권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한 나라에서나 가난한 나라에서나 모두 도움을 주십니다.

처음에 한국 지도를 볼 때 남한지도만 봤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쪽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남쪽 반만이 아니라 또 다른 반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당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한항공에 전화해 평양행 첫째 비행기를 탈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한국인이, 한반도가 치유되고 통일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한국인을 돕는 도구가 되고 싶었습니다.

배 : 기도책자인 <북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의 맨머리에 1979년 2월 하나님께서 오 목사님께 주신 ‘코리아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실려 있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좀 말씀해주시죠.

1979년만 해도 오늘날과는 달리 북한은 기아선상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북한은 마른 뼈 같아 보였고, 남한은 맛있지만 썩은 감처럼 보였습니다. 비무장지대는 먼지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한은 많은 열매를 거두었으나 한반도 전체, 특히 원수와 같이 여기는 북한을 위해 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의 내부도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남북이 하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북한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안에 있는 부패와 불순종의 자세를 회개하며 에스겔처럼 마른 뼈에 성령을 불어넣는 담대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과 말씀에 뿌리박은 부흥의 나무가 자라 한반도, 나아가 열방에 가지를 드리우고 열매를 떨어뜨리게 됩니다. 코리아만이 아니라 동북아, 세계 전체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코리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배 : 북한사람을 만나거나 북한에 간 적이 있는지요?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1985년에 중국에 처음으로 갔습니다. 그때 연길에 갔는데, 54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다니면서 조선족을 만났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시장에도 가고 학교에도 갔는데, 학교 가까이 가니 학생들이 모두 학교 안으로 도망갔습니다. 서양인을 이상히 여긴 교사가 “왜 왔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당시 북한을 다니는 조선족을 만나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북한에 대해 좀 더 따듯함을 느꼈고, 북한에 대한 소망이 생겼습니다. 

이 여행 뒤 미국에 와서 코리아는 원코리아이고, 코리아의 화해와 통일을 위해 일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안디옥커넥션, 안디옥선교훈련원을 만든 것은 이러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90년대만 해도 북한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올바른 인식이 부족했고 통일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1998년 ‘북한연구학교’(North Korea Study School)라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북한을 몇 차례 다녀왔고 북한에서 사역하시는 분들과도 깊은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다.

배 : 오 목사님께서 오래 전에 쓰신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에 우리가 선교를 할 때 특히 북한(통일)선교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는 듯합니다. 좀 이야기 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종’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자, 즉 종의 자세로 사람을 섬기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때로는 섬기는 것보다 다스리는 것을 좋아하고 가끔 정복자의 모습으로 어떤 나라에 들어갑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의 자세는 어떤 것일까요? 우선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수영할 때, 특히 서핑하는 사람이 큰 파도에 맞서며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 모두 물 아래로 들어갑니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들어가지 않아요. 다음은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으로 환영받을 수 있어야 하고, 서로 동일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음식을 먹으며 한국인처럼 되고자 한 것도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된 것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곁에서 가기’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함께 하시듯 우리도 그들 곁에서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연합 가운데 걷기’가 필요합니다. 한반도의 가장 큰 비극은 분열이고, 기독교회의 가장 큰 죄 또한 분열과 불일치입니다. 우리가 고난당한 종의 모습으로 아무 것도 아닌 자처럼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습니다. 마더 테레사도 젊었을 때 큰 성령체험을 했지만 마지막 20년간 기도응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을 때 그녀의 사역이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배 : 오늘날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더욱 몰두하고 있고, 남한은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대북봉쇄정책을 강화하면서 사드배치 등 군사력을 확충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어 냉전시기로 되돌아갔고, 적대감 속에서 전쟁의 위기가 감돌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반도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듯하고, 우리에게 절망감과 무기력감이 밀려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어떻게 기도하고 활동해야 할지 한 말씀 주시죠.

앞에서 <두려움의 집에서 사랑의 집으로>라는 책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날 한반도의 남과 북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60여년 전 한국전쟁 이래로 한반도는 ‘두려움의 집’에 갇혀 있는 듯합니다. 남한은 북한의 남침과 공산주의를 두려워하고 북한은 미군과 남한의 경제발전을 두려워합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강제수용소를 만든 것은 모두 이 두려움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나라에서 사역할 때 종종 두려움으로 인해 무력화되곤 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애굽(이집트)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만든 애굽 사람들이 자신들이 결박한 이스라엘 사람보다 더 큰 두려움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사망을 가져옵니다. 두려움은 심한 증오를 낳고, 남을 이해함 없이 판단토록 하며, 우리가 핍박받는 것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북한에서 행하고자 하는 큰 역사를 막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높은 차원의 두려움,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낮은 차원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북한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함으로써 두려움의 집에서 나와 사랑의 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안에 걷는 사람은 통일된 코리아를 미리 바라볼 수 있으며, 21세기와 그 이후에 적합한 새 형태의 사회 또는 정부에 대해 꿈꾸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사회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을 제공하는 사회일 것입니다.

배 : 몇 년 전(2013)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이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믿음의 사람 엘리야’도 “승리 한가운데서 패배”했고, 마침내 “패배 한가운데서 승리”했습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한국교회도, 우리 크리스천들도 이런 패배를 당하고, 또 그 속에서 승리해야 할 듯합니다. 그 역동성을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아합 왕은 두려워 떨었고, 바알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제거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의 배후에 있었던 더 강력한 세력인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협박하자 엘리야는 두려워했고, 목숨을 부지하려 도망쳤습니다. 믿음의 가장 큰 적은 의심이 아니라 두려움입니다. 의심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효율성을 약화시키지만 두려움은 우리가 뒤로 물러가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두려움의 근원에는 사탄이 있지만 그것은 엘리야의 오만과 교만, 자기 의, 판단하는 마음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승리자이신 예수님에게서 눈을 떼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약함이라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의 능력은 우리의 약한 데서 온전해집니다(고후 12:9-10).

하나님은 소진되어 버린 엘리야를 7단계를 통해 회복시킵니다. 우선 엘리야를 재워 쉬게 하고, 다음으로 천사를 통해 엘리야를 보살피며, 나아가 호렙산까지 가는 긴 여행길에 오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게 함이죠. 그리고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묻는 질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낮게 속삭이는 소리와 같이 세미한 소리로 말씀하심으로써 그 분의 임재 안으로 온전히 들어올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시고, 마침내 새로운 공동체로 엘리야를 인도해 완전히 회복시키십니다. 우리가 북한선교, 통일선교를 할 때 엘리야와 같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고 그 속에서 큰 실패를 맛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교만을 고백하는 것, 즉 겸손입니다.

오대원 목사와 배기찬 통일코리아협동조합 부문대표(오른쪽). ⓒ유코리아뉴스

배 : ‘권능의 사람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에게 ‘갑절의 성령’을 구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오늘날의 한반도 상황과 세계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면 오 목사님이 가졌던 성령의 역사의 2배 아니 4배의 능력이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갑절의 성령을 구할 수 있을까요?

엘리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지식도, 지혜도, 리더십도도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스가랴가 자기 백성에게 어떻게 나라를 세우는지 설명할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말한 뜻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에게 갑절의 성령을 구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는 방법은 예수님이 그 제자들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세례를 구하고,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시키며, 기대감으로 가득 찬 큰 기쁨으로 성령이라는 선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갑절의 성령을 받았지만 초기에는 실패했습니다. 인격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능력만으로는 안됩니다. 속사람이 강건해지는 것이 없으면 안됩니다. 인격자가 필요합니다. 나라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교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선교에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몇 사람이라도 엘리야, 엘리사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고난을 당하면서도 기뻐하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독일교회 등 세계의 여러 교회, 특히 남아공 교회의 용서와 화해의 사례 등을 배워 나라와 민족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배 : 오늘 오 목사님이 하신 말씀, 그 동안 여러 권의 책을 통해 목사님이 밝히신 하나님의 원리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 있는, 두려움의 집에 갇혀 있는 한반도에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반도에서 인간의 방법이 실패로 끝난 지금 유일하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55년간 코리아를 향한 선교사역, 섬김과 말씀으로 코리안과 함께 살아오신 것, 특히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의 출범에 함께 해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배기찬  baeki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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