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지만 질리지 않는 매력의 가을 영화

▲ 영화 '늑대소년'의 주연 박보영, 송중기
▲ 영화 '늑대소년'의 주연 박보영, 송중기
요즘 한국 영화의 흥행은 주연배우들의 파워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천만관객을 넘은 ‘도둑들’은 한국판 ‘오션스 11’이라고 불릴 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했다. 거기에 전지현의 재발견과 영화촬영 후 최고의 스타로 훌쩍 자란 김수현의 활약에 힘입어 한국영화 흥행1위라는 대기록도 수립했다. 현재까지도 상영되고 있는 ‘광해’도 이병헌이라는 월드스타에 류승룡이라는 믿고 보는 배우의 만남으로 올해 두 번째 천만관객을 들인 한국영화가 됐다.

‘늑대소년’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했을 때만해도 걱정이 앞섰다. 미안한 말이지만 송중기와 박보영이라는 늑대소년의 주연들은 화려한 캐스팅도 믿고 볼 만한 연기력의 소유자들도 아니었다. ‘과속스캔들’로 영화의 흥행을 이끌어낸 적이 있는 박보영도 함께 출연한 차태현과 왕석현의 시너지가 없었다면 820만이라는 경이적인 스코어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송중기는 한예슬이라는 로맨틱코미디의 달인을 파트너로 하고서도 저조한 성적을 낸 과거가 있다. 거기에 상업영화를 처음 만드는 감독까지 이래 저래 불안 요소는 많았다.

약 2주뒤 진행된 시사회가 끝난 후 ‘적어도 작품성이 없어서 망하지는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송중기와 박보영이 보여준 멜로 연기는 그들이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들 보다 한 단계 위에 있었다.

 
 
1960년대의 쌀쌀한 늦가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요양 차 한 가족이 이사를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본인의 지병에 비관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아버린 소녀 ‘순이’의 앞에 정체모를 소년 ‘철수’가 나타난다. 말하는 것도, 글씨도 못 쓰는 어딘가 수상한 야생 그대로의 소년을 두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정을 보이고, 겁을 먹고, 이용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순이와 그 가족들만이 ‘철수’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바라본다.

매일 밤 비관적인 일기를 쓰면서 삶을 원망하던 순이는 마치 강아지 같은 철수에게 밥 먹는 방법부터 글씨 쓰는 법까지 차근차근 가르쳐 나가고, 그런 순이에게 착한일을 할 때마다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까지 들이미는 철수의 모습은 60년대판 ‘나는 펫’을 보는 것 같다. 남자 주인공이 말 한 마디 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송중기의 진가는 바로 이 부분에서 나타난다.

 
 
영화 속 송중기의 대사는 채 10마디도 되지 않는다. 야생적인 동물의 모습과 차츰 순이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인간으로서의 면모까지 모두 눈빛과 동작만을 이용해 표현해 낸 송중기는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한국 영화사에 없던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실제 늑대를 관찰하고 마임을 배우고 영화 ‘가위손’의 조니 뎁, ‘반지의 제왕’의 골룸 앤디 서키스를 참고해 눈만 봐도 슬픔이 느껴지는 늑대소년의 연기를 완성해 냈다. 최근 드라마 ‘착한 남자’에서도 송중기의 호연이 화제가 되고 있지만 영화 ‘늑대소년’의 송중기에게는 분명 또 다른 매력이 존재한다.

대사가 없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송중기도 대단하지만 상대 배우인 박보영 또한 만만치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기존작품들에서 밝은 성격이지만 삶의 무게를 지닌 역할을 맡으며 다양한 개성을 보여준 박보영의 연기는 늑대소년을 통해 한층 더 빛난다.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신의 대한 실망감, 철수를 향한 애정과 증오가 섞인 감정까지 상대배우의 호응 없이도 스스로 모두 표현해낸 박보영의 연기는 영화 ‘늑대소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속에 그대로 담은 영화 '늑대소년'
▲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속에 그대로 담은 영화 '늑대소년'

또한 ‘늑대소년’의 감탄할만한 점은 1960년대 시골마을의 풍경을 정말 잘 잡아냈다는 점이다. 감독은 스토리를 진행하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며 때때로 이야기를 멈추고 주변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황금빛 노을이 비추며 집집마다 아궁이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평화 그 자체와 같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가족들과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던 감독의 의지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 같다.

물론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송중기가 너무 아름다웠던 탓인지 안타까울 정도로 어설픈 CG가 사용된 늑대변신 장면은 극 중 몰입을 방해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희석시키기 위해 사용한 군인과 박사와의 만담에 가까운 대화들도 바로 이어지는 송중기와 박보영의 가슴 아픈 멜로신과 엮기에는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소년, 거기다 씻겨 놓으니 훤칠하게 잘생기기까지 했으며 위험에 처하면 언제든 달려와서 구해주기까지 하는 송중기의 ‘늑대소년’은 올해 유난히 강세였던 한국영화의 흥행을 이어가기에 무리가 없어 보인다.

 ▲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멋진 노래 실력을 보여준 박보영
 ▲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멋진 노래 실력을 보여준 박보영

한줄 평 - 가을과 함께 찾아온 늑대소년은 극 중 박보영이 직접 통기타를 연주하며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한편의 동화 속 왕자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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