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
▲ <노규수 해피런(주) 대표>
3년 전 호스피스 전문의 김여환이 낸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죽기 전에, 또한 더 늦기 전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하라는 내용의 책이다. 당시까지 좋은 삶을 사는 웰빙(well-being) 만을 중요하게 여겨온 필자에게 어렴풋이 ‘죽음에 대한 준비’, 즉 웰 다잉(well-dying)을 생각하게 했던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 만큼이나 ‘어떻게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필자는 주초에 사랑하는 형님 한 분을 떠나 보내드려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게 되면 일순간의 슬픔과 심리적 충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또 인생무상(人生無常)을 경험한다고 한다. 

필자 역시 형님과 이승에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니, 진한 허무(虛無)와 공허(空虛)감이 몰려왔다. 

서산대사는 생자일편부운기(生者 一片浮雲起)요, 사자일편부운멸(死者 一片浮雲 滅)이라는 법어를 남겼다고 한다. 삶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다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인생은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라고 한다. 누구든지 빈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빈손으로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이다.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 대왕도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관 옆을 뚫어 양손을 밖으로 내보이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이다. 천하무적의 권력과 부를 손에 쥔 대제국의 황제도 갈 때는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사실을 많은 백성들에게 보여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현대 의학에 있어 환자들이 ‘빈손’으로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웰 다잉(well-dying)이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삶은 허락했지만 죽음을 피할 능력은 주지 않았으므로 이 세상에서 생명을 받은 사람은 죽음의 관문을 넘어야 한다”는 말처럼, 그 관문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죽음에 대한 자세다. 

따라서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을 다루는 호스피스 의사들에게 특히 웰 다잉(well-dying)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어느 말기 혈액암(백혈병) 환자가 있었다. 평소 건강했던 70대 중반의 그 환자는,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자신이 말기 암환자이고, 곧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단지 속이 불편해 병원에 왔을 뿐이고, 과거 앓았던 감기처럼 의사들의 치료로 곧 일어나 평소와 같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가족들도 그 모습에 안도했다. 비록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에 생(生)의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의사에게도 신신당부했다. 절대 말기암환자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의사는 가족들의 부탁을 외면하고, “내일이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말기 암환자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남아 있는 삶이 한 달도 되지 않는다”는 충격정인 의사의 진단결과를 환자 본인에게 직접 말하고 만 것이다. 환자 아들은 강하게 항의했다. 

“여보시오. 말씀드리지 말라고 얼마나 우리가 부탁했소. 아버지는 지금 크게 낙담하여 거의 실성상태요” 

의사는 환자 가족들에게 말했다. 

“병의 진실을 환자에게 말하는 것이 좋은지 아닌지는 우리 의사들이 늘 딜레마를 겪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의 아버님께 며칠 남지 않은 그 시간에 인생의 마무리를 잘 하시도록 말씀드리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에게 죽음을 준비하도록 솔직히 말하지 않았을 때 남아 있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매우 크다는 것이 그 의사의 설명이었다. 

자녀들에 대한 유산 상속도 살아계실 때 명확히 해야지, 그렇지 않을 경우 아버지 장례도 치르기 전에 자식들이 재산다툼을 하는 집안도 많이 봤다는 것이었다. 

또 환자 자신이 비상금으로 비축한 현찰이나 예금, 또는 타인 명의로 해놓은 부동산도 죽음을 앞 둔 상태에서 정리해 정말 ‘빈손’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는 설명이었다. 

또 아버지 개인의 감정들도 죽기 전에 풀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원한이 있던 사람도 불러 병상에서나마 마지막으로 화해하도록 도와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정말 ‘빈손’으로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것이라는 의사의 소신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김여환이 <죽기 전에 더 늦기 전에>라는 책에서 말하는 웰 다잉(well-dying) 10계명 중에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말을 오늘 하자”는 말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는 “‘사랑해, 고마워, 행복해’라는 말을 임종 순간에 말하면 떠나는 내가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일 것 같은가?”라고 직설적으로 묻고 있다. 그런 말을 “마지막에 하지 말고, 오늘 그리고 지금 하자”는 것이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겠다”는 윤동주 시인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글_노규수 : 1963년 서울 출생. 법학박사. 2001년 (사)불법다단계추방운동본부 설립 사무총장. 2002년 시민단체 서민고통신문고 대표. 2012년 소셜네트워킹 BM발명특허. 2012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상. 2012년 홍익인간. 해피런㈜ 대표이사. 2013년 포춘코리아 선정 ‘2013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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