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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감옥에서 만난 북한사람과 의형제를 맺다서쪽나라(8) 조선에서. 온. 편지.

“저는 한국 사람인데 그쪽은 어디서 오셨나요?” 저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저는 조선에서 왔습니다.” 그가 바로 내 옆에 있었다니. 주님이 이곳에 오랫동안 있게 하신 이유 중의 하나를 깨달았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전에 그에게 편지를 썼다.



중국에서 감옥생활을 한 지도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며칠 전, 한 친구가 103호에 한국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동안 잊고 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이곳으로 옮겨 온 첫날 간수와의 통역을 위해 만난 한 탈북자였다. 떨리는 심정으로 103호실을 향해 외쳤다.
“거기 혹시 한국사람 계세요?”
별 반응이 없었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궁금함은 더 커졌다. 다시 외쳤다.
“안녕하세요?”
저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저는 한국 사람인데, 제게 통역해 주셨던 분 계신가요? 그쪽은 어디서 오셨나요?”
“저는 조선(북한)에서 왔습니다.”
“이곳에 언제 오셨어요?”
“오래됐습니다.”
“제 이름은 오영필입니다. 그쪽 이름은 뭐죠?”
“이형민입니다.”
예상했던 그 사람이었다.
“나는 형민 씨가 이미 다른 곳으로 이송된 줄 알았어요. 가까이 있으면서 왜 그동안 찾지 않았나요?”
“새해에 당신을 찾았습니다.”
“그러셨어요?”
“몇 번을 불렀는데 다른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나 봅니다.”
그가 이곳에 계속 있었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느꼈다.
“혹시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
“이곳 사람들이 도와줘서 불편함은 없습니다. 가족들과 편지는 하고 지냅니까?”
“예. 변호사를 통해 가족들의 소식을 듣고 있어요. 재판은 받으셨나요?”
“예. 3년형 받았습니다.”
“저는 8월 11일에 재판이 열린 후 지금까지 소식이 없어요. 이제 그곳에 있는 걸 알았으니까 자주 대화해요.”
“그러죠.”
“그럼 잘 지내세요.”
흥분된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에 그에게 편지를 썼다.

형민 씨
반갑습니다. 당신께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형민 씨에 관한 소식이 들리지 않아 전 다른 곳으로 이송된 줄 알았어요. 먼저 저를 소개할게요. 저는 방송 프로듀서입니다. 탈북자들이 광저우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 진입하는 것을 돕고 그 상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었고요. 감옥에서 보낸 시간이 벌써 10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저는 석방되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형민 씨는 어떻게 되나요? 북송되면 이보다 더 힘든 감옥 생활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유로운 몸이 되는 건가요? 형민 씨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돕고 싶습니다. 형민 씨에 대해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그럼 건강하시고 자주 연락해요.
2004년 1월 9일 영필


이렇게 편지를 쓰고 바둑판 모양으로 짜진 철제 천장의 구멍을 통해 편지를 던졌다. 얼마 후 그에게서도 편지가 날아왔다.

영필 씨
안녕하세요. 철창 속에서도 막을 수 없는 조선 민족의 열렬함에 가슴 뜨거운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제 소개를 간단히 하지요. 저희 아버님은 제가 열다섯 때 돌아가시고 고향엔 지금 어머니와 동생들이 있어요. 저는 1998년에 고향에서 고등 물리 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에 왔고 랴오닝성(遼寧省)에서 4년이란 세월을 보냈어요. 그곳에서 여자 친구를 만나 2001년에 결혼하였어요. 중국에 호구(戶口)가 없는 탓에 결혼증은 내지 못했어요. 그리고 2002년 9월 5일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고자 여기로 오게 되었어요. 광저우에 온 후 6개월을 직업 잡느라 노력하였지만 결국 불량한 자들에게 속임을 당해 9월 19일 붙잡혔고, 그들과 인연이 없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이유로 3년형을 받았어요.
저는 중국 법에 대단한 불만을 품고 있어요. 지금 저의 억울함을 당신에게만 글로 전할 뿐이에요. 그러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당신의 편지를 본 후 더욱 진심을 갖게 되어요. 여러 중국 분들이 도와주어서 전 괜찮아요. 안타깝다면, 저의 가족과 연계를 갖지 못하는 것이에요. 영필 씨, 당신이 편지에서 저의 행운을 축복하였는데 감사를 드려요. 저 또한 당신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기의 어려운 형편에서 건강하게 자유로운 몸이 될 날을 그리며 꿋꿋이 살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당신과 하루빨리 만날 그날을 마음속으로 빌어요. 저의 마음속으로 심심한 사의를 보내며 이번 글을 맺으려 해요.
2004년 1월 12일 형민


형민 씨
며칠 전부터 시작된 감기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 문제에 집중해 곤고하다가도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릴 때 나를 짓누르던 문제가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보내준 글을 통해 형민 씨는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는 긍정적인 자세를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디 석방되는 그날까지 좌절하지 마시고 몸과 정신이 더욱 강건한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곳 친구들이 말하길 형민 씨는 중국어를 아주 잘하고 운동 솜씨가 뛰어나다고 하더군요.
저는 매일 아침 8시 40분부터 9시 20분까지 화장실 청소를 합니다. 청소가 끝난 후 10시쯤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마당에 나와 있을 테니 그때를 이용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번에 형민 씨가 영어 서적을 원하셨는데 형민 씨의 영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해 막연함을 느낍니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변호사를 통해 책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이미 결혼했다고 하셨는데 부인과 왕래는 하고 있는지요? 또 중국에 있는 동안 북쪽에 있는 가족과 연락은 하셨나요? 형민 씨께 제가 쓴 시를 감히 보내드립니다. 시이기도 하면서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면 마당을 거닐면서 노래를 부르곤 하지요. 형민 씨께 이 노래를 직접 불러드렸으면 좋으련만. 한번 들어보세요. ‘ 당신의 이름은 어머니입니다’라는 시입니다.

나를 위해 무엇이든지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의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때때로 나는 당신을 잊기도 하지만
당신은 결코 나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당신의 몸은 작아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당신의 사랑은 커져만 갑니다.

나를 위해 언제라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신의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그럼, 건강하세요.
1월 28일 영필



   
▲ 오영필 감독은 옥중에서의 생활과 생각을 그때그때 기록으로 남겼다.


안녕하십니까?
영필 씨, 머나먼 이국땅에서 고국어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분을 알게 되어 다행입니다. 중국에 온 후 수많은 책을 읽어 보았어요. 책에서 읽은 남한 사회의 발전 면모와 그 속도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어요. 90년대 말 경제공황 속에서도 중지하지 않고 남한 인민 모두가 단결하여 외래 적자를 갚고 또다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일어선 데서는 고난 속에서도 강하게 살아가는 조선 민족에 대해 감동하였지요. 그리고 어제 신문을 보니까 일본이 조선에 대한 경제봉쇄를 하기로 했는데 남한 인민들이 항의를 했다더군요. 한국의 인민들이 북한을 생각하고 민족의 단합에 힘을 쓰고 있는 모습에 매우 감동하였어요.
영필 씨를 통해 깊이 느끼고 있지만 남한의 여러분들이 우리 민족을 동정하고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당신처럼 착한 마음씨를 갖고 있는 분들이 어찌하여 고생을 겪고 있는지. 그러나 영필 씨에게 행운이 오리라고 믿어요. 조선 속담에 ‘덕은 쌓은대로 가고 악은 지은대로 간다’고 하였는데, 덕을 많이 세운 사람에게 덕이 많이 간다고 믿어요. 영필 씨가 보낸 시를 읊어 보았어요. 어머니에 관한 시에 마음속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어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의 아버지는 군인이셨어요. 가정 형편은 괜찮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강원도 고성군에서 량강도 혜산시로 이사한 후 모든 것이 생설고(낯설고) 그리하여 저의 어머니는 고생 많이 하셨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사업을 무엇보다 소중히 하셨어요. 그러나 이사한 후 저희들이 고생할까봐 교직을 그만두시고 저희들을 위해 악을 쓰며 무슨 일이든 하셨어요. 자식들에게 마음속 그늘이 질까봐 재가도 하지 않으시고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노력하셨습니다. 그 덕에 저희들은 고생 한 번 겪지 않고 학교도 순조롭게 졸업하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지금 이역 땅에서 이 지경이 된 걸 생각하면 죄스럽기 그지없고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무슨 낯으로 어머니를 뵐 수 있을지 조심스럽기만 합니다. 영필 씨, 당신의 시는 몇 년째 고향 소식 모르고 우는 저에게 다시금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게 했어요. 당신이 저를 믿어 주고 또 마음속에 어머님과 연계를 맺어 주고 여러모로 정신적 힘을 준데 대하여 심심한 감사를 보내요. 영필 씨의 건강은 어떠합니까? 감기는 떨어졌는지.
당신께 염치불구하고 부탁할 일이 있는데, 변호사를 통해 영어 자전과 중일 자전을 부탁하는 것이 가능한지. 영필 씨가 전해 준 책 《해리포터》를 짬짬이 읽어봅니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주인공들의 모험적인 이야기가 생동하게 묘사됐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책을 보내 주었기에 이곳 생활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조건상 이만 쓰기로 해요. 건강에 주의를 돌리세요.
2월 2일 형민



21일부터 시작된 설 연휴가 이틀 전인 28일에야 끝났다. 설날을 맞이해 특별히 지급되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과 명절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앨런이 방장이 된 후 서로 파가 갈리는 일이 없었는데 나로 인해 조금씩 그 틈이 생겨나는 듯했다. 문제의 발단은 외국인인 나에게 새해부터 특별히 밥 대신 면이 지급된 것에 기인했다. 그때부터 슝웨이를 중심으로 한 파는 나를 이용해 자신들도 면을 지급받기 시작했다. 나는 면을 좀더 지급받기 위해 음식물이 지급되는 창구에 박스를 내밀었고 배급을 맡고 있던 이덕은은 화를 내며 내 행동을 저지했다. 이 일은 슝웨이파와 샤오핑파 간에 말다툼을 야기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을 나누었던 그들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이들에게 내가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음에 착잡해졌다.

점심 시간에 간수가 방을 점검하기 위해 들어오면서 성경을 툭 던졌다. 그토록 소망하던 성경이 내 손에 들어오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보연이가 변호사를 통해 보내온 거였다. 앞장을 폈치니 그녀가 쓴 글귀가 한눈에 들어왔다.
“I love you, Young Phil.”
그리고 예레미야 29장 4~23절이 쓰여 있었다. 바벨론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이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소망하며 쓴 예레미야의 편지였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 10~13).

반복해서 읽으면서 주님이 주신 말씀이란 것을 확신했다. 간절하게 주를 찾는 자는 여호와를 만나게 된다는 말씀이 가슴 깊게 다가왔다. 몇 달 전부터 성경을 읽고 싶어 간절히 기도했는데 보연이를 통해 응답해 주셔서 더욱 감사했다. 내가 간절히 원하듯 주님도 내게 말씀 주시기 원하셨음을 깨닫는다. 말씀이 나와 함께 있는 이상 이제 이곳은 감옥이 아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므로 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더 구하겠는가? 이제 이곳을 나가는 순간까지 오직 말씀에 집중하리라.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분의 음성을 말씀을 통해 들으리라. 벅찬 마음으로 요한복음 1장을 펼쳤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있었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


형민에게 편지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영필 씨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건강은 어떠하신지. 안건은 무슨 진전이 있는지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전 여기서 영필 씨께 아무런 방조(助)나 힘을 줄 수가 없군요. 영필 씨, 당신을 만난 그날부터 오늘까지 영필 씨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제가 영필 씨와 이국 먼 땅에서 그것도 철창 속에서 알게 된 것을 결코 우연이라고 생각치 않아요. 인연이라고 하겠지요. 처음 만났을 때 솔직히 말해서 제 마음속으로 조금 우려하기도 하였어요. 영필 씨가 제 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그 후 영필 씨가 저와 연계를 맺은 후부터 알게 되었지요. 영필 씨는 선량하고 자기 민족을 위해 마음 쓰고 또 저 같은 사람도 같은 민족이라고 도움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전 결코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인간으로서의 본분을 지키려는 사람이에요. 만약 영필 씨가 허락한다면 당신과 형제를 맺고 싶어요. 제가 무슨 자격은 없지만 영필 씨가 나무라지 않는다면 형님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저를 동생으로 받아 주세요. 저는 동생으로서 형님에 대해 본분을 지키려 합니다. 형님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 먼저 형님이라고 불러봅니다. 당신의 허락 여부를 알려 주었으면 합니다. 허망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2월 21일 형민


안녕하세요.
형민 씨, 감사합니다. 저와 형제를 맺기 원하는 것에 대해 형민 씨가 원한다면 기쁨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솔직히 저는 나이와 상관없이 편한 친구로 생각하고 싶지만 당신이 좀더 기쁠 수 있다면 형과 동생의 관계로 지내도 별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형민 씨께 해드린 것이 별로 없음에도 마치 많은 것을 베푼 것처럼 생각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형민 씨의 글에서 외로움을 보았습니다. 저 또한 가족과 여자 친구의 소식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항상 맘 편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힘들 때마다 태양을 바라보시고 그 따스함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한결 나아질 것입니다.
2월 22일 영필


안녕하세요, 형님
저를 동생으로 받아주시니 정말 기쁘고 감사합니다. 형님이 편지에서 나이의 차별 없이 친구로 지내고 싶다고 하였는데 형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소에서 만난 결코 흔치 않은 인연으로 형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싶었습니다. 형님, 저를 진실한 동생으로 여기신다면 저를 허물없이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형님이 제게 반말을 쓰면 제 마음속으로 더욱 친근함을 느낄 것 같아요. 형님과 심정을 편하게 털어놓고 의리를 존중히 여기는 친형제로 같이 지내고 싶어요. 저의 성격은 조급한 편이지만 그 무슨 악한이나 불한당이 아닙니다. 남에게 기만당해 억울하게 죄를 짓고 결국 이 지경이 되었지만 그 무슨 본의나 부정적인 심리 상태에서 생긴 결과가 아니에요. 저의 양심이 이것을 보증합니다. 비록 부족한 점 많지만 저의 진심을 믿어 주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디에 가든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 형님과 무조건 연락을 취하려 해요. 혹시 고향에 돌아가면 어떻게 처리될지 모르지만은 만약 자유로운 몸이 된다면 꼭 형님께 전화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그때에 가서 지금 못한 수많은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누어요.
저는 조만간 우리 민족이 통일되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오직 시간만이 문제겠지요. 어떻든 제 일생에서 형님을 알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또 앞날에 형님과 다시 만날 날이 있으리라 믿어요.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2월 23일 형민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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