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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사태’ 한국교회 반성해야

사이비 교주, 무당 설(說)이 파다한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한국교회 곳곳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수성향이 강한 한국교회 특성상, 한국교회가 박근혜 정부 탄생과 정부 정책에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는 게 일반적인 국민정서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도가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고, 최 씨가 사이비 교주 고 최태민 씨의 후계자라는 의혹이 짙어지는 현 시점에서, 대통령을 향한 한국교회의 시선은 냉랭해지고 있다. 경동교회 원로 박종화 목사가 최근 한 공개석상에서 “미개한 주술적 정책에 우리가 속았다”고 한 발언 역시 이 같은 한국교회의 심정을 대변한 거라 볼 수 있다.

지난 3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시국선언에 나선 교단장들도 “저희는 다시 기독교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려 한다. 분명 잘못된 부분에 대하여는 준엄하게 비판해야 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을 해야 했는데도, 그 역할은커녕 오히려 교회 자신의 옹위를 위해 권력의 편을 드는 비굴한 보좌역을 했던 것을 회개한다”고 발언했다.

일선 지역교회에서도 한국교회가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달 30일 과천교회 주현신 목사는 ‘탄핵’이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국민일보가 최태민 씨를 목사라 부르지 말라고 했다. 옳다. 최태민 씨는 목사가 아니라 사교집단 교주이다. 그러나 최태민 씨를 목사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교회 일그러진 자화상을 감출 수는 없다. 권력의 시녀 노릇을 자처했던 목사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아닌가. 그분들을 누가 세웠는가.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교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과천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으로 지역에서는 큰 교회에 속하는 편이다.

그간 박근혜 정부와 정책을 지지해왔던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마저 박 대통령에 대한 옹호발언을 삼가고 있다. 나아가 비판적 입장까지 내비치고 있다. (관련기사 - ‘미개한 주술이 통일정책 농락’ 한국교회도 뿔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교회의 민심이반을 염두 한 듯 4일 오전 대국민담화에서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고 해명했지만, 뿔난 한국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는 역부족인 듯하다. 대국민담화 이후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면 “사이비에 빠진 사람은 자기 종교가 사이비인 거 모른다” “친인척 가족을 멀리하는 것은 사이비에 빠진 사람들의 전형적인 증상” “최태민 씨가 사이비가 아니라는 건가” 등 박 대통령의 해명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많다.

최태민-최순실 부녀와 박 대통령의 인연이 4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는 건 대통령 자신도 인정한 사실이다. 최태민 씨가 사이비 교주였다는 정황이 명백한 이상 “사이비에 빠졌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박 대통령의 주장은 신뢰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는 3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최태민 씨는 사이비 교주였고, 최순실 씨가 최 씨의 후계자 역할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방송에서 탁 교수는 선친이자 이단전문가로 유명한 고 탁명환 소장이 최태민 씨에 대해 작성한 자료 내용을 일부 공개했다.

자료에는 탁명환 소장이 “1973, 74년 최태민 씨(당시 이름 원자경)를 만났을 때 다른 무당들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큰 무당이었는데, 75년 세 번째 만났을 때는 이름을 ‘최태민’으로 개명하고 목사가 돼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탁지일 교수 전언에 따르면 탁 소장은 생전에 “현 박근혜 대통령(당시 박근혜 영애)이 이런 잘못된 목사(최태민 씨)로부터 잘못된 영향을 받으면 안 되는데….”라며 박 대통령을 염려했다고 한다.

탁명환 소장은 최태민 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설립한 ‘대한구국십자군’을 비판하는 글도 썼다고 한다. 그 글의 제목은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었다. 

 

<이하 탁지일 부산장신대 교수 인터뷰 전문>

▶정관용 -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지켜보면서 자주 듣게 되는 말들. 또 들으면 참 부끄러워지는 말들. 빙의, 접신 이런 단어들이죠. 바로 최태민 때문입니다. 목사로 알려진 최 씨가 사실은 승려였고 천도교도였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런데 1970년대 대전에서 원자경이라고 불리던 무당이었다, 이런 증언이 나왔습니다. 이단 문제 전문가인 고 탁명환 소장이 남긴 기록에 나와 있는데요. 최태민. 무당들도 무서워하던 큰 무당이었다 이런 이야기예요. 고 탁명환 소장의 아드님이시죠. 부산 장신대 탁지일 교수를 연결해 자세한 이야기 듣겠습니다. 탁 교수님 나와 계시죠?

▷탁지일 - 네,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 그 기록의 일부가 보도가 됐는데 그러니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최태민을 직접 여러 차례 만나신 거죠?

▷ 탁지일 - 네, 70년대 중반에 여러 차례 직접 만나셨습니다.

▶ 정관용 - 만나서 대화하고 한 모든 것들을 기록으로 쭉 다 남기신 걸로 보이는데 우리 탁지일 교수께서도 기록을.

▷ 탁지일 - 자료를 수집하셨고 그 수집된 자료를 기초로 해서 글들을 작성하신 것이 남겨져 있습니다.

▶ 정관용 - 그리고 탁 교수께서도 그 자료들을 다 보셨죠? 그런데 핵심은 뭐예요? 원래는 이름이 최태민이 아니었다고요?

▷ 탁지일 - 네, 이번 사건이 시작되면서 제가 최태민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면서 예전 선친께서 직접 취재하고 만나고 해서 남긴 자료가 있다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 자료를 좀 확인을 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얼마 전에는 그 자료들을 기초로 해서 선친께서 직접 작성한 글들도 있고 그것이 88년에 세 차례에 걸쳐서 저희 현대 종교에 게재됐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걸 언론에 제가 제공을 했는데요. 그 이유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특별히 종교적 관련성과 관련해서 부정확하거나 또는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들이나 추측들이 세간에 떠도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일을 제대로 알아야 된다면 좀 더 명확한 사실에 접근하는 것이 좀 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 기록을 공개를 하게 됐고요. 그래서 이 기록들을 한 번 이렇게 정리를 해 보니까 이 기록에 대한 핵심적인 연도는 1973년, 1974년 그리고 1975년입니다. 이 3년 동안 만났던, 있었던 일들을 보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신 것은 1973년입니다.

선친께서 이제 그 당시에 저희 한국 신흥종교들에 대한 관한 연구들을 하시고 그 연구들에서 계룡산에 자주 출몰하셨거든요. 그리고 그 신흥종교 운동 때 종교계나 동학계나 기독교가 많다는 사실을 아시고 조사를 하고 계셨는데 이 원자경이라는 인물의 활동이 눈에 띄신 거죠. 그래서 이 원자경이라는 인물을 1973년에 직접 만나셨고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무속인을 만나서 자료들을 입수하고 그가 있던 그리고 그가 활동했던 상황들을 이제 조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두 번째 만남은 이듬해인 1974년에 이루어졌는데 선친께서 다시 활동, 그런 활동을 확대하고 있었던 최태민과 다시 만나서 그때 당시에 또 자료도 얻으시고 만나서 대화를 나눈 기록들을 또 남기셨습니다.

▶ 정관용 - 그런데 1973년도에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무속인인데 다른 무당들도 벌벌 떨고 무서워하던 큰 무당이었다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요. 왜 그렇게 다른 무당들이 무서워했을까요?

▷ 탁지일 - 1973년 당시에 최태민이 대전 선화동 쪽에 월세 방을 얻어놓고 이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보면 본인을 영세계 칙사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세계의 칙사관, 그러니까 어떤 책사나 사신 그런 뜻이겠죠. 그리고 활동을 했는데 그렇게 활동을 하면서 이제 자기가 영적인 세계에 빙의를 전수하겠다, 그리고 불치병도 고치겠다는 식의 이런 광고들을 냈다고 해요. 그리고 그 당시 어떤 예식장에서 제도 가졌는데 그 당시에 선친이 참석을 해 보니까 실제로 그 장소에 계룡산에서 활동하는 교주들도 여럿이 참석을 했고 또 무속인들도 참석을 했고 선친의 취재를 보면 기십 명이 모였다고 돼 있습니다.

이런 취재를 바탕으로 이제 선친께서는 최태민을 소위 무속인, 어떤 영력을 갖고 있는 무속인으로 판단을 하셨는데요. 선친의 기록을 그대로 보면 선친은 예를 들어서 소위 원자경, 즉 최태민이겠죠. 그 앞에 무당이 오게 되면 무당이 최태민에게 절을 하고 또 최태민의 치료를 무당이 받게 되면 신기가 떨어져서 무당업을 폐업했다고 이렇게 기록을 하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선친이 최태민만 만나서 취재를 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모임이라든지 주변 취재들을 하시면서 이러한 증언들을 이제 받으시고 기록하신 걸로 보여 집니다. 이런 기록들로 미루어보면 어쨌든 최태민이 무속인적이면서 주변 무속인들을 어떤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끄는 그런 능력은 분명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 정관용 - 그렇군요. 73년에는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무속인이었다고 조금 아까 하셨죠?

▷ 탁지일 - 네.

▶ 정관용 - 74년에도 원자경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때는 최태민입니까? 그때도 원자경이었어요?

▷ 탁지일 - 74년도에 원자경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최태민을 만나서 그때 자료들을 직접적으로 입수를 하셨어요. 당시에 원자경이 선친에게 연락을 하셔서 이대 앞에서 최태민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만나셔서 역시 그의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차례의 만남을 가졌는데 그러고 나서 만남이 끊기셨다고 합니다.

▶ 정관용 - 그러면 74년까지는 계속 원자경이었던 겁니까?

▷ 탁지일 -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75년도에 갑자기 선친께서 구국선교단에서 활동하는 최태민이라는 인물을 보게 되셨는데 그 인물이 바로 원자경이라는 걸 알게 되신 거죠. 직접 구국선교단 사무실로 찾아가게 됩니다.

▶ 정관용 - 찾아가서 최태민을 만나서 당신 원자경이냐고 그랬더니 뭐라고 돼 있습니까?

▷ 탁지일 - 본인이 이제 당황하면서 선친하고의 관계들이 그때부터 굉장히 좀 어색해졌던 것으로 그 기록들에 나타나 있습니다.

▶ 정관용 - 그러니까 매우 당황해하고 내가 최태민으로 이래서 바꿨다든지 지금은 목사다 이런 얘기들을 했다는 거예요, 뭐예요?

▷ 탁지일 - 그렇죠. 불과 1, 2년 만에 무속인 원자경이 목사 최태민으로 바뀌어 있었으니 그것을 그 스스로도 선친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웠겠죠.

▶ 정관용 - 그렇죠. 그 구국선교단은 박근혜 현 대통령하고 연결된 후에 만들어진 건가요?

▷ 탁지일 - 그렇죠. 맞습니다. 그 박근혜 대통령하고 관계가 형성이 되고 난 뒤에 최태민이 예장종합이라는 교단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안수를 받기 전에 73, 74년에 무속인으로 있던 그가 75년에 목회자, 목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든요. 게다가 선친의 기록을 보게 되면 최태민이 주관하던 기독교 행사에서 최태민이 역할을 맡기가 어색했을 정도로 기독교에 대한 이해도 충분하지 않고 목사로서의 역할도 어색했던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그런데 그 목사 안수가 어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쳤다기보다는 급조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겠죠.

▶ 정관용 - 그렇군요.

▷ 탁지일 - 그 시점에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뒤에 최태민이 현 박근혜 대통령에게 편지를 했고 그 편지를 통해서 이미 언론에 많이 나온 것처럼 육영수 여사를 잃은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위로와 격려도 하고 민족을 위한 입장을 밝히기도 하고 이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그때 만나게 되는 거죠. 그때부터 구국십자군이라든지 이러한 온갖 단체들의 어떤 결성이나 활동이 본격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정관용 - 지금 일설에 의하면 육영수 여사가 살아계실 때 이미 박근혜 현 대통령과 최태민의 연결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지금 아버님이 취재한 자료에 의하면 그건 아닙니까?

▷ 탁지일 - 저는 선친의 입장, 선친의 기록을 보면 그렇게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 정관용 - 알겠습니다.

▷ 탁지일 - 그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 정관용 - 75년 이후에는 그럼 혹시 최태민을 또 아버님께서 만나거나 그런 적은 없나요?

▷ 탁지일 - 그때 이제 그 구국선교단 사무실로 가서 그곳에서 활동하던 목사들하고 만난 것이 그 기록에 마지막으로 나와 있습니다.

▶ 정관용 - 마지막으로.

▷ 탁지일 - 그때 선친께서 만나셨던 기록이나 자료들이 있는데요. 기록들을 보게 되면 구국십자군에 최태민이 이끌고 간 당시에 아마 입수로 된 자료로 보여 지는데 구국십자군 입대 원서라든지 구국십자군의 헌장, 그리고 구국십자군의 창군십순 이런 자료들을 저희 자료실에 남겨져 있거든요. 그걸로 미루어볼 때 선친께서 직접 장소로 방문하시고 활동 관련되어진 자료들을 수집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 정관용 - 그러면 선친께서는 대한구국십자군을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이건 어떤 단체라고 평가하셨나요?

▷ 탁지일 - 선친이 그런 3년 또 73, 74, 75년 취재를 통해서 선친께서 남기신 글이 있습니다. 글을 보면 구국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들을 통해서 선친께서 구국십자군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으셨는지를 좀 알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어떤 것이냐 하면 그 당시에 구국십자군에서 활동하던 핵심 인물들이 파란 군복에 고급 계급장을 붙이고 무소불위로 활동을 했다고 그런 내용을 선친께서 자세하게 기록을 하고 계시거든요.

특별히 선친께서 쓴 그 글의 제목이 뭐냐 하면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었습니다. 그 질문하신 것처럼 선친께서 구국십자군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는 저희 선친이 쓴 글의 제목이 부끄러운 권력의 시녀 목사들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이 제목을 통해서 구국십자군에 대한 선친의 평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 게다가 현 군인도 아닌데 멋진 군복에다 계급장까지 달고 다녔다고요?

▷ 탁지일 - 교통경찰이나 이런 사람들한테도 호통을 쳤다거나 등의 그런 에피소드들이 남아 있죠.

▶ 정관용 - 그래요. 그리고 지금 딸인 최순실이 최태민의 영적 능력을 이어받은 후계자다 그런 이유로 박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를 유지해 왔다 이렇게 보는 분들이 많은데 이거 가능한 얘기라고 보세요?

▷ 탁지일 -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이기는 한데요. 저는 이제 종교학자로서 제가 볼 때는 만약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최태민의 역할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가 했던 역할이 최순실의 역할과 다르지 않고 동일했다고 한다면 어떤 종교적으로 공식적인 후계자로 선정을 했다든가 혹은 후계자로 정하는 의식은 없었다 하더라도 그 역할에 있어서는 어떤 동일한 부분이 있었다고 만약에 한다면 그 후계자라고 하는 데는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 정관용 - 그리고 우리 탁지일 교수는 탁지일 교수 자신도 이단 문제 전문가인 연구자이지 않습니까? 최태민을 목사로 불러서는 안 된다고 이렇게 주장하셨는데 그 이유는 뭡니까?

▷ 탁지일 - 초기 보도들이 이루어지면서 최태민 목사라는 호칭이 주를 이루고 있고 지금도 그렇게 알려져 있거든요.

▶ 정관용 - 그렇죠.

▷ 탁지일 - 기독교에 대한 어떤 한국 사회의 인식이 사실 요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최태민을 목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그가 75년도에 급조된 목사 호칭을 가졌기 때문인데. 최태민을 설명하는 저희 선친이 수집한 모든 자료들과 최태민을 설명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은 그가 기독교 목사가 아니라 한국의 여러 사이비 종교 단체들처럼 종교 혼합주의 배경을 갖고 있는 무속인 혹은 유사 무속인인 것을 노출해 주고 있는데 그리고 목사는 그의 어떤 사리사욕을 위한 필요성에서 급조된 것인데. 이 최태민은 목사라는 호칭을 통해서 부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 그렇군요. 그런 어떤 혼합 사이비 종교. 종교도 아니죠. 사이비 이단 유사 무속인이 국정을 좌지우지한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 탁지일 - 글쎄요, 사이비 이런 종교는 일제강점기부터 늘 정치권력에 기대고 정치권력을 통해서 부족한 자신의 정통성을 위장하고 그리고 또 그들의 사리사욕을 채워왔던 것이 한국 이런 사이비 종교의 역사거든요. 이런 사이비 종교의 이러한 속성들이 정치 현장으로 자꾸 들어오게 되었을 때는 종교적인 어떤 그런 역할들이 한국 사회에 커다란 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건전한 종교는 그 순기능이 계속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사회가 격려하고 이끌어줘야겠지만 이렇게 사이비 종교 지도자들의 혹은 사이버 종교의 역기능이 나타나지 않도록 참 저희 한국 사회에서는 아픈 시간을 지금 보내고 있지만 다시는 이런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의 어떤 종교에 대한 건강한 견제기능이 이 기회를 통해서 좀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 그렇죠. 혹시 그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탁지일 교수한테 최태민과 과거 원자경 그리고 박근혜 현 대통령 관계 이런 것에 대해서 언급하셨던 기억이 있으세요?

▷ 탁지일 - 제가 기억하는 것은 저희 선친도 저희 할머니를 일찍 여의셨지만 그 육영수 여사에 대해서 애틋한 마음을 가졌던 말씀들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최태민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적시했다는 것이 기억에 남기보다는 현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잘못된 목사로부터 이런 잘못된 영향을 받으면 안 되는데 하고 염려하셨던 그런 말씀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때 당시에는 제가 아주 어릴 때라 어떤 말씀인가라고 생각을 제가 구체적으로 못했지만 지금 이 일을 겪으면서 내용들을 파악하게 되면서 선친이 그래서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염려를 했고 어떤 권력에 유착하거나 권력을 쫓는 그런 목회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계셨구나 하는 그런 생각을 지금 하게 됩니다.

▶ 정관용 - 그렇군요. 그 걱정하셨던 게 딱 맞아떨어져버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이죠.

▷ 탁지일 -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 정관용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 탁지일 - 고맙습니다. 

이민혁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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