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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 쏙 빠진 한반도 문제[배기찬의 시중] 남북관계 최고 전문가 서훈 교수를 만나다
   
▲ 계간 <통일코리아> 배기찬 편집인이 이화여대 북한학과 서훈 교수를 만났다. 서훈 교수는 지난 30년간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 당국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만나서 대화한 남한 사람으로 꼽힌다. ⓒ계간 통일코리아

지난 30년간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해 북한 당국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고, 만나서 대화한 남한 사람을 꼽는다면? 많은 전문가가 서훈 이화여대 초빙교수를 든다.

국가정보원에서 30년간 대북업무를 담당하면서 2000년,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던 막후협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지금의 남북관계에 대해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표현했다.

두 차례의 정상회담 이후 획기적인 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의 해법이 제시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회를 그냥 흘려버린 채 지금은 전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북한핵 문제와는 별도로 미국과 중국의 대결로 인해 남북문제는 꼬일 대로 꼬인 상황, 이젠 1, 2차 방정식이 아닌 고차 방정식이 필요할 만큼 한반도 문제의 해법이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가 의지만 있다면 북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문제의 해법은 있다고 말한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겼던 그 신의 한 수가 꼬일 대로 꼬인 남북문제에도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로부터 그 해법은 물론 남북문제가 지금처럼 꼬여왔던 역사와 배경 등을 자세하게 들어봤다. 대담은 지난 6월 10일 이화여대 내 서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 서훈 교수와 배기찬 편집인은 서 교수의 연구실에서 한반도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 대담하는 시간을 가졌다. ⓒ계간 통일코리아

지금 남북관계 참담한 심정
남한이 ‘상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배기찬(이하 ‘배’): 지금의 남북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모든 관계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정희 대통령 때만 해도 7.4 공동성명도 나왔고, 적십자회담도 있었다. 전두환 정권 때도 수해물자 지원 등 접촉이 있었고, 노태우 정부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남북기본합의서 등 많은 접촉과 합의가 있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정상회담도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개성공단 중단 등 최악의 남북관계 시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국정원에서 30여 년 동안 대북 담당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이끌었던 분으로써 이런 남북 관계를 바라보는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다.

▲서훈(이하 ‘서’):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참담하다는 말, 그 이상의 표현을 찾을 수가 없다. 지금이 남북관계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라고 본다. 북한과 남한이 한반도에서 경쟁하던 과거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가 경제적으로 북한을 앞서가기 시작하고 또 어느 정도 체제에 대한 자신감이 붙으면서 대북관계가 달라진다. 그게 1970년대 들어서 가장 달라진 것이었다. 그리고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오는데 사실 그 뒤를 보면 남북관계에서 크게 4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7.4공동성명이 첫 번째 봉우리이고, 노태우 정부 때의 남북기본합의서, 그리고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2007년 2차 정상회담 등이다.

어떤 시대 어떤 정권을 통틀어서도 남북관계가 이렇게 꽉 막혀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북한과의 경쟁에서 훨씬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이 시기에 이렇게 남북관계가 닫혀 있다는 것은 한반도의 미래, 우리의 대북정책이나 전략, 통일을 향한 접근에 있어서 하나의 공백이 되어 버리는, 아주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을 자초한 결과가 되어버렸다고 본다.

특히 지난 2월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것은, 물론 대북제재는 필요했겠지만 마지막 남은 눈에 보이는 북한과의 가시적인 결과물까지도 완전히 한반도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것이 앞으로 단기간에 회복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 상황도 그렇고 핵문제도 그렇고 남북관계도 그렇고 국제정세도 그렇고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서 군사적 긴장이 더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시기에 와서 전쟁을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남북 관계가 그런 상황에 왔다는 데 대해 답답함과 걱정이 앞선다.

△배: 저도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생각하다 보니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노태우 정부 때도, 전두환 정부 때도 그렇고 지금이 7.4 남북공동성명이 이뤄질 때도 아니고, 더 올라가니까 1960년대 중반에 북한에서 무장공비를 보내서 청와대를 습격하는 기도도 하는 그런 시대로 돌아간 것인가, 아니면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53년 6.25전쟁 직후, 남북의 적대감이 아주 강했을 그런 상황으로 돌아간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2010년에 있었던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이런 것들이 결국 남북관계에 있어서 1960년대나 1950년대 중반으로 한반도 정세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서: 저는 이렇게 본다. 왜 그럼 이런 상황이 됐는가. 물론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계속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것은 맞다. 그런데 지난 시기를 거슬러 볼 때 북한이 도발적이지 않은 적도 없었고, 대화를 하면서도 항상 도발적이고 굉장히 공세적이었다. 그건 우리가 상수로 안고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도발은 우리가 상수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배: 그건 7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인가?

▲서: 그렇다. 문제는 우리가 이걸 어떻게 다뤄나갈 것이냐, 어떻게 관리해나갈 것이냐가 더 중요한 것인데 저는 지금 상황을 여기까지 가져온 것에 대해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첫 번째는 북한과 우리는 사실상 경쟁하는 시대가 끝났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것도 정상적인 경쟁과 재래식 군사력 가지고는 남쪽과 경쟁할 수 없다는 걸 이미 인정하고, 그래서 핵에 의해서 생존, 즉 체제를 보장하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과 우리와의 우열은 이미 오래 전에 가려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북한을 다루는 데서 가져야 할 입장은 ‘우리가 관리자다’, ‘우리가 한반도의 관리자다’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는데 지금 그 부분에 대한 명확한 자기 포지셔닝(positioning)이 안 되어 있다고 본다. 아직도 여전히 냉전시대 사고 속에서 북한과 우리와의 일대일 대응을 하는 관계로 남북문제를 풀려다 보니까 저 쪽의 도발에 대해서 응징한다는 그 공식밖에는 우리가 생각해내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혀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북한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고 박근혜 정부 때도 그렇고 한반도나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북한을 깊이 있게 알거나 경험해본 사람이 실질적으로 없다.

   
▲ 서훈 교수는 우리나라가 북한보다 앞선 나라 즉 상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바람직한 남북관계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계간 통일코리아

북한 몰라도 너무 몰라
9·19 공동성명 제대로 이행했어야

△배: 남북관계가 70년이나 됐는데도 아직 북한을 모른다고 할 수 있나?

▲서: 우리의 대북정책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그룹에서 북한에 대해 지식이나 판단이나 전략적인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에게 그런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북한이 워낙 비정상적이고 워낙 용납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북한에 대해 깊이 있게 알려고 하지 않고 북한에 대해 전략적 의미를 깊이 캐보려고 하지 않고 일단 북한 변수는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가는 측면이 강하다. 그것이 이런 상황을 가져온 하나의 요인이라고 본다.

또 하나 있다면 현재 남북관계는 과거 1970년대, 80년대 심지어 2000년대의 남북관계와는 또 다른 국제적인 환경 속에 있다. 과거와는 훨씬 다르게 지금은 미중간의 갈등과 문제 야기, 이해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상황에 들어와 있고, 북한 문제도 그런 갈등 구조 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그 전체적인 큰 동북아의 그림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지 않고 북한 변수가 미국과의 관계, 중국과의 관계, 동아시아 자체 내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고찰이나 판단 없이 자꾸 북한 문제를 하나로 떼어놓고 보는 그런 전략적인 관찰이나 판단의 한계, 그런 부분이 오늘날의 상황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배: 오늘날 남북관계가 중단된 상황은 교수님 말씀처럼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북한의 핵개발, 남한의 전략적 대응 실패,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이런 게 다 맞물려져 있다. 그러다 보니 9.19합의는 물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합의는 됐지만 이행은 되지 않고 있는, 그래서 이제는 사문화되고 한편으로는 용도 폐기된 느낌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거꾸로 돌아간다면 북핵 문제 해결과 관련해 가장 아쉬웠던 시기나 대목은 언제인가?

▲서: 일단 북핵 문제에 있어 가장 교과서 같은 합의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이다. 거기엔 명시적으로 북한이 할 일과 북한 외 다른 나라가 할 일이 분명하게 합의가 되어 있고, 명기되어 있다. 특히 북한 같은 경우는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한다고 완벽하게 명시했다. 앞으로도 우리의 목표는 이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가 해야 할 일이 들어 있다. 그 중 핵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게 2가지인데, 하나는 북한의 체제를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것, 두 번째는 북한의 경제 회생을 도와주는 것, 이게 다른 나라가 북한에 대해 해줘야 할 일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데 대한 반대급부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것은 미북(美北) 및 북일(北日) 관계 개선, 그리고 평화체제, 작게는 평화협정의 체결을 통해 북한정권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것이 합의가 되어 있었다. 또 하나는 북한에 경제지원을 해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정권이 그 시기에 원한 건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 이 두 가지였다. 그런데 이것이 북한의 이유도 있었고, 또 이쪽에서도 9.19합의가 나오자마자 BDA 문제라든지 굉장히 많은 걸림돌이 등장했기에 처음부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그게 이행이 됐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미국이 내부적으로 조율되지 않은 조치를 했고, 9.19 외교합의가 나오면서 동시에 북한에 대해 금융제재가 들어가면서 미국의 이러한 조율되지 않은 이중적인 모습이 처음부터 걸림돌이 된 것이다.

△배: 그 말은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면 미국 재무부한테 ‘BDA 동결하지 마라’라고 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서: 그 뒤에도 우리에게 기회가 있었다. 미국은 결국 스스로 자신들이 취한 BDA 동결 문제를 풀었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고 난 뒤에야 푼 것이다. 2006년 가을에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2007년 2월에 그걸 풀게 된다. 어쨌든 이것이 굉장히 바람직스럽지 않은 모습을 한 다음 다시 9.19성명을 이행하는 체제로 갔던 것이다. 이것이 2007년 2.13 합의이고 10.3 합의이다. 단계적으로 그것이 이행되어 나가는 과정에 있었다.

△배: 그때도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는 뜻인가?

▲서: 그렇다. 그런 것들이 가속도를 내면 기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약간의 불행한 사태가 있었던 것이, 이것을 합의해놓고 북한에 급격한 변수가 생긴다. 2008년 8월에 북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것이 그야말로 북한의 핵문제나 남북 상황에서 굉장히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사건이 되었다.

   
▲ 서훈 교수는 2008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려 했다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그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계간 통일코리아

2008년 북한의 핵무장 포기 움직임
이명박 정부 기회 제대로 못 살려

△배: 2008년 김정일의 뇌졸중이 변수였을까, 아니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기존 합의를 무시했던 게 변수였을까?

▲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2008년 6월 북한은 UN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 뒤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가 검증문제를 갖고 좀더 강경한 입장을 가지면서 더 진전이 안됐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협상의 여지가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김정일의 건강 이상이다. 이 문제가 사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김정일은 2009년에 핵실험을 하게 된다. 김정일 입장에서는 나이 어린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뭔가 미국과 커다란 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조급성, 시기의 촉박성을 많이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 발사도 하고 굉장히 과거보다 과격한 조치를 해나간다.

△배: 그것은 협상용이었을까, 아니면 핵전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을까?

▲서: 일단 김정일 입장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3대 세습을 앞뒀다는 측면에서 지금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협상 측면에 무게가 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황이 그렇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핵문제가 더 꼬이고 미국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 더군다나 오바마 정권이 출범하면서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 ‘김정일과도 협상을 할 수 있다’고까지 했는데 오바마 정권 입장에서 봤을 때는 돌아온 것이 핵실험뿐이었다. 그것이 미국의 대북정책의 스텝을 꼬이게 만드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그런 부작용적인 측면이 있는가 하면 한편 전략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때가 사실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호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이 굉장히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급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은 협상에서는 굉장히 좋은 찬스다. 김정일은 과거보다 굉장히 취약한 입장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 시기를 잘 이용했어야 하는데 커다란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2008년과 김정일이 죽기 전까지 시기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때였다. 협상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와 전략적 거래를 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처지가 곤고하고 어려우면 훨씬 더 협상하기 유리한 처지에 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를 우리는 그냥 넘겨버렸다. 이 시기에 우리가 뭔가 좀 더 공격적, 적극적, 전략적으로 협상했다면 지금 한반도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남북관계가 한계가 있다는 걸 김정일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핵문제에 대한 북핵 상황도 굉장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 3년 남짓 기간 우리도 미국도 그냥 흘려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로? 북한이 용납할 수 없는 나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우리가 북한을 잘 들여다보고 우리가 북한을 잘 안다면 김정일의 처지나 의도를 감안한 토대 위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과 협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을 것이다.

△배: 저는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은 협상을 위한 메시지도 있겠지만 동시에 핵무장력을 강화하기 위한 메시지도 있었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의 등장 이후로 기존 10.4합의가 다 무시되거나 폐기되고, 또 그 전의 BDA문제로 9.19합의가 지켜지지 않은 북한 자신들의 경험도 있는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북한핵을 둘러싼, 남북관계 합의서가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는 데 대한 강한 우려가 있었을 거고, 그것에 대한 대응책은 핵무력을 강화시키는 거다, 이 양면적인 게 다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다 발산한 것이다. 한편으론 협상의 메시지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핵무장력을 더 강화시킨다는 메시지 두 개가 동시에 발산됐을 소지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교수님 말씀대로 미국이나 한국이 그 메시지를 핵무기 강화 쪽으로만 해석했을 소지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 우리가 그 뒤에 벌어진 상황이나 사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년 8월에 북한이 핵실험, 핵무장 강화를 위한 행동을 하고 나서 2009년 8월 김정일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에서 만난다. 평양에서 만나고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남쪽의 현정은 회장을 평양으로 오도록 해서 만난다. 그러면서 그때 김정일이 던진 메시지는 명백하다. (협상이다)

△배: 그때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과 말레이시아에서도 만나지 않았나?

▲서: 그건 그 다음이다. 이런 것들이 수포로 돌아가면서 전략적 시도를 해서 임 실장과도 만나는 것이다.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가 상태가 안 좋고 어차피 시한부이기 때문에 김정은의 대외적 환경을 안정적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욕구가 강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시도한 게 남북정상회담이었다. 2009년 핵실험 하고 나서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불러들이고 현정은 회장을 불러들인 것은 다시 말해서 남북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에서는 무엇이라 했냐 하면, 그때 금강산 문제가 심하게 걸려 있었다. 우리 정부 당국에서는 민간인한테 사과한 건 의미가 없다, 정부 당국에 사과하고 당국 차원에서 얘기를 해야 한다고 이유를 들면서 실질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이 계속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클린턴이 방북해서 김정일과 면담한 결과를 오바마 대통령한테 보고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워낙 핵실험에 대한 충격과 분노가 컸었다. 그랬기에 김정일의 대미관계 개선에 대한 요구나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 뒤에 미국 정부나 정부 당국자들이 하는 얘기는 똑같다. 김정일을 만나고 와서 항상 3가지를 얘기한다. 김정일은 3년 이상 못산다, 김정일은 핵포기 의지가 없다, 김정일 사후 후계체계가 지금보다는 협상하기가 훨씬 나을 것이다.

△배: 앞의 2개가 맞은 건가?

▲서: 앞의 하나가 맞은 거다. 김정일이 3년 내로 죽는다는 말은 맞았다. 핵포기 의지가 없다? 북한이 핵포기 의지가 없다는 것이 북한의 핵포기 전략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 건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핵포기 의지를 중요시한다면 비핵화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 비핵화협상을 해도 안 된다는 얘기니까. 그러면 비핵화협상이 아닌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시간을 끌면 시간을 끄는 만큼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중요시 여길 것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아니라 김정은이 핵을 갖지 못하도록 협상하고 그 사후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독재정권이나 절대권력을 가진 정권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으면 당연히 가지려 하지 안가지려 하겠나. 핵무기를 가질 여건이 되면 당연히 가질 것이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핵무기를 갖지 못하게끔 협상을 하고 확실한 감시체계를 갖는 것이다.

△배: 그런데 그 이후로 2009년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고, 2010년엔 천안함에서 연평도 포격까지, 그리고 2011년엔 김정일의 사망까지 이어지면서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다. 김정은 체제에 들어와서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확립하고 핵개발에 일로매진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그런 면에서 2009년이라는 시점을 계기로 그 이후로는 남북관계, 한반도 상황이 급변하게 됐다. 오늘날 북한은 헌법에도 법률에도 핵경제 병진노선을 표방하고 있는데 지금은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다, 이렇게 보기엔 힘들지 않을까?

▲서: 북한핵 문제를 놓고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2005년 9.19공동성명을 낼 때와 지금 하고는 명백히 상황은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 그때보다 훨씬 더 증강됐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핵 문제를 풀기에는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어려운 조건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 없다 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법제화시켜 놓고 핵경제 병진노선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이런 것들은 우리로서는 굉장히 어려운 조건이다. 그렇지만 이걸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너무나 명백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악조건을 뚫고 우리가 어떻게 비핵화시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과 고민과 전략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법제화했다고, 자 그럼 우리가 핵보유를 인정하고 북한의 비핵화는 포기한다? 이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사실 더 어려운 숙제를 우리가 안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거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2009년 핵실험을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2013년 3차 핵실험은 성공했다. 2016년 핵실험도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북한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북한 핵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제재국면에 들어갔는데 이 제재도 빨리 효과를 내지 않으면 사실상 제재 효과보다는 제재를 하는 기간에 북한한테 핵능력을 다시 증강시킬 수 있는 결과를, 그런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 서훈 교수는 북한이 가장 바라는 건 경제지원이 아니라 체제보장이라고 했다. ⓒ계간 통일코리아

풀기 어려워진 북핵 문제
북한이 원하는 건 경제지원 아닌 체제보장

△배: 그래서 지금 미국도 그렇고 한국 정부도 그렇고 이런 상황에서 결국 대화로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제재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비핵화 이후에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고 통일을 통해서 비핵화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런 것 같다. 가마우지란 새가 있다. 이 새가 물고기를 잡아먹으면 목에 줄을 매서 눌러주면 토해 낸다. 한편으로 북한 핵능력을 보면 북한은 핵을 개발했다. 가마우지로 치면 이미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미국이나 한국, 일본 등 국제사회는 이걸 토해내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이 정책이 지금 대북제재에 대한 기대가 아닌가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재의 정책으로 북한이 지금까지 개발한 핵능력을 포기할, 다시 말해 토해낼 만한 가능성이 있는가? 다른 말로 하면 북한에 대한 여러 가지 경제적 제재, 봉쇄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서: 저는 우리가 의지만 있다면 북한핵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북한의 의도나 전략을 우리가 깊이 들여다보고 의지를 갖고 지혜로운 전략을 쓴다면 비핵화 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북한에다가 얘기하는 건 뭐냐 하면 ‘비핵화를 하면 경제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핵과 경제 병진노선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너희들이 핵을 포기하면 경제지원을 해주마, 이것이 남쪽에서 북한에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북한 입장에서 본다면 가장 우선순위는 체제 생존이다. 정권의 보존이다. 핵개발을 하면서 저 사람들이 핵을 사용하는 전략적 의도는 첫 번째는 체제 생존이고 두 번째가 경제 지원이다. 거기에 핵을 써먹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9.19 공동성명에 다 담겨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명백히 순서가 있다. 1번이 체제 생존이고 2번이 경제 지원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쪽에다가 바꾸자면서 주고자 하는 것은 체제 생존이 아니라 경제 회생이다. 이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등가성, 교환성이 없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체제 생존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핵을 토해내게 하려면 그걸 대체할 수 있는 체제 생존에 대한 확실한 제도적 보장, 확신을 줘야 한다.

△배: 그게 뭘까?

▲서: 북한 사람들이 1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다. 그리고 보조적인 수단으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다. 그리고 요즘 얘기하는 평화협정이다.

△배: 그런데 문제는 선 비핵화냐 선 관계정상화냐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걸 9.19 공동성명에서는 ‘말대 말’ ‘행동 대 행동’ 동시 진행으로 되어 있는데, 그런데 지금은 한편으로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이 선 비핵화하기 전에는 미국의 국제 패권적 위치로나 도저히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그리고 북한도 핵문제를 자신들의 체제와 동일시 해놨기 때문에 선 비핵화를 할 수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싶다. 서로 만날 수 없는 해법, 서로 평행선을 달리는 상태 아닌가 싶다. 둘을 만나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

▲서: 북한이 핵을 개발해오고 지금처럼 핵능력을 계속 증장시키는 근본적인 이유는 핵을 자기 체제의 생존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선 비핵화를 해라, 이건 북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북한은 과거에 김정일을 만나도 무슨 얘기를 하냐 하면 ‘우린 약소국이다’는 얘기를 한다. 내부적으로는 강성대국이란 말을 주민들에게 하지만 실제 협상하는 국면에서는 자기네 지위를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네가 미국이나 남한과 협상할 때는 자기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열등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 합의할 때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단계적 이행’은 북한이 주장한 것이다.

한꺼번에 자기들이 내놓기엔 불안하고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돌다리를 두들기며 가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선 비핵화를 하라고 하면 그 사람들이 선 비핵화를 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북한핵의 성격을 이해한 토대 위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저 사람들이 핵만큼 교환가치가 있는 걸 줘야 한다. 저 사람들이 느끼기에 교환성이 있는 걸 줘야지 물건을 바꾸는 것이다. 결국 그건 다른 것 없다. 김정은 정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지 않겠다는 확실한 얘기를 해줘야 한다.

△배: 그걸 어떻게 하나?

▲서: 과거 김대중 정부 시절에 ‘대북정책 3원칙’이 있었다. 북한의 무력 사용 용납 않겠다, 그게 이행되면 흡수통일 않겠다, 그리고 화해협력교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북한 입장에서 필요한 내용이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다. 무력 사용을 하지 않으면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는 건데,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정권 붕괴를 시키는 행동이나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무슨 얘기가 나오나? 흡수통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과거와 같은, 즉 흡수통일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해도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떻게 믿을 수 있나. 그러나 그 말이 있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성을 보여주고 ‘정말 너희를 붕괴시키지 않겠다’는 확신을 조금씩 조금씩 줘가면서 핵문제가 해결되는 거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는 거고 비무장지대 지뢰가 걷어지는 거고, 저 사람들이 개성공단을 내주면서 부대를 뒤로 물리는 거고,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흡수통일 안하겠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믿겠나? 안 믿는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명백하게 얘기하고 확신을 줘야 관계가 개선되는 거고 한반도 긴장이 낮아지는 거고 핵문제도 대화의 국면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비핵화, 선 비핵화, 비핵화하면 뭐 해주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비핵화’ 개념이 좀 모호하다. 명확한 행동적인 목표를 북한한테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북한한테 비핵화하라는 건 핵무기 포기하라는 건데 핵 포기하면 그 다음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그 사람들이 왜 안하겠나. 비핵화에 대한 목표를 좀 세분화할 필요가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비핵화까지 가져갈 것인가.

다시 말해 지금은 일단 현 상태에서 핵동결하고, 거기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가서 저 사람들이 그야말로 ‘우리와 거래가 가능하겠구나’ 하는 협상의 국면으로 옮겨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최종적인 비핵화에 가까이 가는 것이지, 지금 당장 비핵화 하라고 들이미는 것은 저 사람들에게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거기다 흡수통일 얘기까지 같이 들이대면 이건 비핵화가 아니라 저 사람들로 하여금 핵무장을 더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로 내모는 것이다.

△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현 정부에서는 선 비핵화, 흡수통일을 계속 강하게 얘기할까?

▲서: 저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논리 구조를 (그 사람들로부터)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북한의 비핵화, 북한의 핵무장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의 명시적인 목표다. 그러나 그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 구조나 논리에 대해 들은 바가 없고, 아까 얘기한 것처럼 ‘통일이 비핵화의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얘기를 서슴없이 한단 말이다. 이건 무슨 얘기인가? 흡수통일 해서 핵문제 해결해버리자, 이 얘기 아닌가.

 

   
 

북한 붕괴 현실적 대안 아냐
사드배치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 속 놓인 한반도

△배: 북한 붕괴를 통해 비핵화하겠다는 것이다.

▲서: 그렇기에 이것은 현실성 있는 방법이 아니다. 우리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경계심을 갖고 더 도발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배: 핵문제는 남북문제이면서 북한과 미국과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대화 방식이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 의지를 표현하고 행동을 보인 다음 미국으로서는 뭔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의 제스처를 취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미국도 보면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 상당히 강경한 정책을 쓴다. 그것은 대북정책만 아닌 한반도 정책, 동아시아 정책을 위한 지렛대로 쓰고 있는 게 있어서 한국정부의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지만 미국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서: 미국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가는 우리의 토론 범위를 넘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거기에 있어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핵문제가 더 해결이 어려워졌고 북한 문제가 해결이 더 어려워진 배경에는 미국의 입장이 있다. 미국의 입장이 과거와는 북한을 다루는 입장에서 달라졌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이나 심지어는 부시가 있던 시절에도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 정부에 어느 정도 재량권, 또 우리의 정책에 대한 일정한 부분의 지지가 있었다. 나름대로 우리가 북한 문제를 우리 주도하에 다룰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변수는 중국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다. 이제 북한 문제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이라는 개별적인 상황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와 대중(對中) 전략 차원에 포함해서 전략적 입장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배: 사드 배치도 결국 북핵이 원인 아닌가?

▲서: 북한의 핵도발이 없었으면 사드 배치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서 군사적 동맹과 군사적 축을 구성하고 강화하고 있다. 오바마가 얼마 전에 베트남엘 갔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 호주, 필리핀, 베트남 그리고 장차 남한, 이런 군사적 동맹을 구성해서 중국을 포위하겠다는 전략을 노골화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 북한 김정은의 도발이나 핵실험이나 이런 것이 좋은 명분을 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우리 입장이 어려워졌다. 우리 입지가 좁아진 것이다.

△배: 그렇다면 아까 교수님이 이야기하실 때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체제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하셨는데 사실 북한에 있어서 체제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은 남한 정부라기보다는 미국 정부라고 보고, 미국이 북한의 체제 생존을 보장해줘야 하는데 그건 국교 수립이든 평화협정이든 여러 가지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 그렇게 할 마음이 없다고 할 때, 즉 북한 체제를 보장해주고 북미 관계를 개선할 마음이 없다고 할 때 북한의 핵무기는 해결될 수 없는 거고 북한의 핵무기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한 국제제재는 풀릴 수 없고, 한편으론 국민들의 강한 반북의식을 개선해서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것도 힘들어지는 이런 상황 아닐까?

▲서: 그래서 핵문제를 포함해서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과거 우리가 1차 방정식으로 풀었다면 지금은 2차 방정식, 3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그 좋은 호기를 놓치고 지난 8년간 남북관계가 거의 제로 상태로 가면서,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와 미국이 일치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북한 문제에 대해 철저한 한미동맹을 견지해야 맞다. 이러한 상황들이 오늘날 우리가 2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할 것을 3차 방정식으로 풀어야 하는 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우리가 시간을 많이 놓쳐버린 것이다. 앞으로도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북한의 핵능력도 마찬가지고, 동북아의 미중간 갈등이나 구조도 그렇다. 실질적으로 미중간 갈등이 깊어지면 우리는 어려워진다. 반면 북한은 유리해진다. 우리가 어려워지면 북한은 유리해지는 그러한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보자. 중국이 미국의 압박과 오바마의 베트남 방문 등을 놓고 이런 상황 속에서 대북 제재에는 공조한다고 하면서 북한의 이수용 부위원장을 시진핑이 만나주지 않나. 그것도 웃으면서 만나주지 않나. 굉장히 상징적인 제스처를 중국이 지금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입지가 작아졌는데 지금부터는 굉장히 지혜를 가지고 굉장히 냉정하게 북한 상황, 동아시아 상황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고 본다. 미국 입장에서 동아시아의 4군데 분쟁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본다면 하나는 남중국해, 그 다음은 센가쿠(다오위다오), 또 하나는 대만 문제, 또 하나는 북한 문제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미국-중국 갈등 구조 속에서 4군데 분쟁가능성이 높은 지역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이 4군데 중에서 북한 문제는 어느 정도 우선순위일까. 북한 문제가 최우선의 급한 문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그런 동아시아의 미중간 갈등문제를 복합적으로 살펴보는 속에서 우리가 어떤 전략, 어떤 운신의 폭을 가질 수 있느냐를 짚어야 한다.

 

   
▲ 서훈 교수와의 대담자로 나선 배기찬 편집인. 그는 서 교수에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신의 한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계간 통일코리아

초긴장 상태의 남북관계
‘신의 한수’는?

△배: 지난 3월에 이세돌과 알파고가 바둑을 뒀다. 인공지능이 이세돌이라는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를 이길 수 없을 거라고 했는데 알파고가 막강한 능력을 발휘했다. 이세돌이 한 판을 이길 때 신의 한수가 있었다. 78번 돌이었는데 그 백돌이 신의 한 수가 되어서 그렇게 이세돌을 압박하던 알파고가 정신을 못차리고 이세돌이 승리하는 일이 일어났다.

서 교수님 말씀대로 현재의 북한 김정은 체제, 핵경제 병진노선을 천명한 상태, 오래된 남북관계, 현 정부의 정책적 패턴의 한계,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중국의 강화된 정치군사력 이런 것을 보면 현재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신의 한 수’ 외에는 극복할 수 없을 걸로 생각하는데 지금이야 말로 신의 한 수가 필요할 때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까 결국 남한, 5000만 국민, 한국 정부, 그것이 차기 정부가 될지라도 그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신의 한 수를 둬야만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정부가 신의 한 수를 둔다고 할 때 그 신의 한 수는 어떤 것일까?

▲서: 신의 한 수를 찾아야 한다. 있다. 지금 문제 제기했지만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이 없다. 우리의 목소리가 없다. 우리의 입장, 전략이 없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우리가 낭비했다. 상황은 그만큼 악화됐다. 이제라도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을 찾아야 한다. 어디에서 찾을까? 그 비밀은 남북관계에 있다. 남북관계에 열쇠가 있다.

남북관계가 없어진 지 8~9년이 되었다. 그 8~9년 동안 한국의 목소리가 실종됐다.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우리의 목소리를 찾으려면 남북관계가 열려 있어야 한다. 그건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남북관계가 없으면 미국도 중국도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입장을 비중 있게 듣지 않는다. 남북관계가 열려 있을 때 미국도 중국도 북한을 다루는 데 있어서 또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의견을 경청하고 또 북한 문제를 푸는 데 있어서 우리의 도움도 요청하고 적극적 역할도 주문한다. 우리한테 신의 한 수는 남북관계에 있다. 비록 관계가 속도를 내고 폭넓게 진전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남북관계가 열려 있을 때 우리가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당사자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우리의 역할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게 출발점인 것이다.

그리고 남북관계라는 것이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문제이고 우리 미래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이 정치적인 이해타산을 벗어나서 정말 열려진 남북관계 속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역사적인 상상력을 동원해서 남북관계의 미래를 본다면, 역사적인 비전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남북관계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 되찾아올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

△배: 남북관계를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첫 발걸음이 대화라고 저는 생각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진정성이 없으면 대화를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은 그 진정성조차도 대화를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협상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많은 책에서 보면 전쟁할 때도 협상해야 한다고 하고 필요하면 악마와도 협상해야 한다고 한다. 인질범과도 협상을 해야만 인질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신의 한수의 첫걸음은 일단 만나서 대화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 그렇다. 그게 남북관계를 여는 길이다. <끝>

*이 글은 계간 <통일코리아> 2016년 여름호에 게재됐습니다. -편집자 주

◆ 서훈 교수는 누구?

   
 

서훈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는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해 대남 책임자들을 가장 많이 만나서 대화한 사람으로 꼽힌다. 국가정보원에서 30년 동안 대북업무를 담당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여러 차례 만났고 장성택·김양건 등 북한의 주요 인사들과도 협상을 벌였다. 2000년, 2007년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7년 남북총리회담 대표로도 활동했고 개성공단 건설 협상도 주도했다. 1997~99년 북한 신포지역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시 북한에 2년간 상주한 첫 번째 한국 당국자이기도 했다.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과,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동국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북한의 선군외교』(2008)가 있다. 

배기찬  baekich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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