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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서쪽나라(7) 문틈. 사이로. 들어온. 빛.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 주었다. 중국 내 외국 영사관은 국경 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북자들이 영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중국 법을 어기지 않은 것이므로 나의 행동은 무죄라는 것이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259호에서 257호로 옮긴 지 일주일이 지났다. 옆방에 있을 때 인상 좋은 아저씨로만 보이던 루쉰은 이곳에서 방장이었다. 특별히 이곳에는 의사소통이 불편한 나를 위해 성륜강이라는 사람을 배정해 주었는데, 그의 영어실력은 원어민 수준이었다. 그를 통해 내 요구사항을 전달받아 이곳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각별히 신경을 썼다. 그는 상하이에서 사업을 운영하다 세금 문제 관련 경제사범으로 이곳에 왔다. 그의 경제적·교육적 수준은 중국 내 최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것으로, 그는 칭화대학(淸華大學)을 나와 10년 전 예일대학에서 생화학 관련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베이징대 교수이고 첫째 형은 베이징에서 신문 기자이며 둘째 형은 일본 도쿄에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한다고 했다.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인을 만난다는 것은 바깥에서도 흔치 않은 일인데 이런 감옥에서 만나다니. 더욱 놀라운 것은 중국 공안이 이 사람을 나를 위해 이곳에 배정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람은 두진위다. 그는 사형이 거의 확정된 마약 사범이다. 2년 전 마약 40킬로그램을 거래하다 체포되어 발목에 무거운 체인이 채워져 있다. 또 스무 살 때는 강도·폭행으로 체포되어 이미 15년 형을 산 사람이다. 5년 전에 출소하여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 큰돈을 벌 목적으로 마약을 거래하다 체포된 것이다. 성륜강은 그를 소개하면서 머지않아 사형에 처하게 될 사람이라고 귀띔해 주었다. 그런데도 그의 얼굴에서 시름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호탕한 웃음과 유쾌한 표정을 짓는 그가 나를 각별히 챙기는 까닭에 다른 사람들은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뜬금없이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 온 지 5일 후부터 그에게 매일 두 시간씩 알파벳부터 기본적인 단어들을 가르쳤다. 나이가 많아 쉬운 단어들조차 자주 까먹었음에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외우고 또 외워 한 달 후에는 기본적인 대화가 될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하지만 곧 사형당할 처지의 그에게 영어가 무슨 의미인가? 그런데 그의 한마디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

“내가 살아서 다시 아들을 보기는 힘들겠지만 만약 그 일이 가능하다면 아들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요.”

누가 봐도 그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에게 희망이란 단 1퍼센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1퍼센트의 희망이 현실화될 때를 대비하여 그는 오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가? 사건이 잘 풀리지 않아 최고형을 받아도 3년이다. 사형과 3년,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99퍼센트의 희망 대신 1퍼센트의 절망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그를 마약 사범이라고 손가락질하고 곧 죽을 놈이라고 비아냥거렸지만 나에게 그는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해준 스승이었다.

7월 27일 일요일. 오랜만에 대청소를 했다. 마룻바닥에 깔려 있는 합판을 전부 걷어 마당으로 옮겼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수세미로 열심히 합판을 닦았다. 이곳에서 처음 경험하는 노동이었다. 밖에서 합판을 닦는 동안 안쪽에선 마룻바닥을 물로 씻어냈다. 일을 마쳤을 때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감쌌다. 스피커에서는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 식사로 쌀밥에 삶은 콩나물이 나왔다. 주님과 함께 주말을 기분 좋게 보내고 있다.

검찰의 기소장을 받은 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6월 30일 현재 재판에 관한 소식이 없다. 지쳐 가는 내 마음을 믿음으로 부여잡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과연 끝은 있는 걸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걸까?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이 밤낮으로 변했다. 감정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재판 날짜를 알지 못하는 한 망망대해의 돛단배처럼 감정이라는 거대한 바람에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매월 실시하는 소지품 검사가 있는 날이다.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밖에서 간수가 내 번호를 불렀다. 간수는 문틈 사이로 서류 한 통을 내밀었다. 변호사 선임에 대한 내용이었다. 선임을 수락하겠다고 했다. 사인을 하고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내 이름을 불렀다. 이번엔 변호사와의 면담이라고 했다. 이송된 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었다. 철문 건너편에 은테 안경을 쓴 남자와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 그들이 먼저 나를 알아보았다. 면담 장소에서 그가 건네는 명함을 보았다. 제임슨. 영국에 있는 친형이 제이슨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를 선임한 듯했다. 옆에 앉아 있는 여성의 이름은 바니후. 그녀도 변호사이고 그들은 부부라고 했다. 제임슨 변호사가 중국말로 하면 바니후는 영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제임슨은 검찰의 기소장을 보여주면서 사실 확인을 부탁했다. 재판일이 8월 11일이라고 했다.

일주일 만에 제임슨과 바니후 변호사가 다시 찾아왔다. 제임슨 변호사는 가족이 송금한 영수증을 보여 주었다. 송금액이 1회에 500위안으로 제한되어 있다며 조만간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통역을 돕던 바니후가 뜬금없이 무료로 나를 변호하고 싶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고마운 마음을 구구절절 표현하고 싶었지만 짧은 영어 실력 탓에 ‘땡큐’만 반복했다. 그녀가 준비한 서류에 사인을 했다. 재판에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확인했다. 첫째, 이번 일은 강 목사가 계획하고 그의 계획에 따라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것, 둘째, 탈북자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것, 셋째, 최종 목표는 그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안전하게 외국 영사관에 들여보내는 것 등이었다. 제임슨은 재판관을 자극하는 말을 되도록 자제하고 질문에는 단답식으로만 답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알려 주었다. 중국 내 외국 영사관은 국경 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탈북자들이 영사관 진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중국 법을 어기지 않은 것이므로 나의 행동은 무죄라는 것이다. 흥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재판이 열리고 언제쯤이면 판결이 납니까?”
“최소 두 달은 예상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나요?”

어쨌든 편안한 마음으로 재판을 기다리기로 했다. 김 부장의 안부를 물었다. 그는 김 부장 아내를 만나 변호사 고용을 권했지만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안타까워 하는 내게 변호사는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는 당신보다 혐의가 훨씬 적기에 당신이 무죄를 받으면 그도 무죄를 받을 겁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내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16).

내가 보낸 편지에 법원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신속한 재판 결과를 촉구하기 위한 금식을 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허공을 치는 행동일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흔들리지 말자.

평소 관계가 좋지 않던 이덕은과 저녁에 큰 싸움이 생겼다. 사건은 청소에서 비롯되었다. 순요는 내가 먼저 청소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나는 평소처럼 그가 먼저 하고 내가 나중에 하겠다고 했다. 이 과정에 이덕은이 개입하여 시비를 걸었다. 그는 나에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며 큰 소리를 질렀다.
“Fuck you.”
욕을 듣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함께 뒹굴었다. 앨런은 침울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만 보았다. 힘겹게 유지해 왔던 평안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미움이 들어섰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금식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금식 첫날. 마당을 서성거렸다. 누구도 나의 금식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저녁 식사마저 거르자 샤오핑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였다. ‘올드 맨’ 왕수도 근심어린 표정으로 왜 밥을 먹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 이들은 나의 행동을 어제 이덕은과의 싸움에 대한 화풀이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금식 3일째. 마음이 평안했다. 육체적인 힘이 조금씩 밖으로 빠져 나간다. 의사가 혈압을 쟀다. 아직까지 특이 사항은 없었다. 간수가 나를 불렀다. 앨런과 함께 사무실로 가니 사복 차림의 경찰 고위 간부들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법원으로부터 사건의 진행 상황을 듣고 온 듯했다. 그들은 내 사건이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어 신중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중간에서 통역을 담당한 앨런은 서로의 신경전이 부담스러운 듯 진땀을 흘렸다. 장시간의 대화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어쨌든 법원과 공안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앨런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오랜 설득 끝에 다음 날부터 우유를 마시기로 했다. 낮아진 기온 탓에 추위와 배고픔을 심하게 느꼈다. 그동안 섭취해 온 음식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실감했다.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것들이 어찌 음식뿐이랴? 사랑하는 가족, 소중한 교회 공동체, 건강한 몸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 생각에 잠길수록 하나하나 그 목록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금식 4일째. 아침에 우유를 마셨다. 목으로 내려가는 따뜻한 기운은 그동안 팽팽했던 긴장을 이완시켰다. 그러나 이내 뱃속이 요동을 쳤다. 추위를 민감하게 느껴 겨울 코트를 꺼내 입었다. 의사가 몸 상태를 확인했다. 진찰 후 마당에 홀로 앉아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행하신 일을 떠올리며 그분의 사랑을 가슴에 새겼다. 성령님이 내 몸을 휘감고 있음에 전율을 느꼈다.

금식 6일째. 불침번을 섰다. 위 아래로 내복을 입고 코트를 입고 담요까지 뒤집어 썼다. 하지만 슬쩍 부는 바람에도 온몸이 떨렸다. 앨런이 몸 상태를 살폈다. 그를 통해 나를 걱정하는 주님의 시선을 느꼈다. 주님은 나를 세심하게 체크하시고 그때마다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황원에게 물었다.

“내 모습이 어떻게 보여?”
“매우 평안해 보이는 걸.”

금식 7일째. 귀하신 주님께서 짐승의 밥그릇에 누우실 수밖에 없었던 걸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왔다. 순간 뒤를 돌아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사형선고를 받아 날짜를 기다리는 사람, 15년형 선고를 받은 사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평생 한 번밖에 없는 청춘을 도둑맞은 사람, 배운 것 없고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해야 했던 사람……. 저들을 바라보는 주님의 시선이 이렇게 슬픈 것이었을까? 내가 느끼는 이 마음이 주님의 마음일까?

금식 8일째. 무의식적으로 시선이 음식으로 향했다. 늘 보던 흰 밥에 삶은 배추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먹고 싶은지……. 석방되는 것보다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이 더 큰 소망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흐트러진 걸까? 앨런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불만이 쌓여 갔다. 공안을 상대로 하는 이 싸움은 무모한 짓이라고 했다. 그의 직설적인 충고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이번 주까지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더욱 공안을 압박하리라고 다짐했는데 결과에 상관없이 이번 주말에 금식을 풀기로 결심했다. 금식을 통해 내면의 깊은 평화를 얻게 되었지만 동료들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했다. 더 이상 그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금식 9일째. 고위 간부의 순찰 때문에 아침부터 대청소로 분주했다. 청소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다 마당 문이 곧 닫힌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쿵하는 소리가 나서야 본능적으로 방으로 몸을 돌렸다. 문이 닫혔고, 그제서야 밖에 걸어 놓은 걸레를 가져온다는 것을 깜빡 잊었다. 아뿔싸! 며칠 전에도 이런 실수를 했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식사 후 앨런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실수를 고백했다. 그가 한마디 던졌다.

“Don’t think too much.”

문이 열리고 오후 점호를 위해 간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수개월 동안 묶여 있던 샤오핑의 체인을 풀어 주었다. 간수가 나가자마자 환호성이 방안에 가득했다. 그들의 얼굴엔 연신 함박웃음이 피었다. 나의 실수가 그들의 기쁨에 잊혀졌다.

금식 10일째. 앨런이 삶은 감자를 권했다. 어제 그렇게 실망을 시켰음에도 오늘 다시 관심을 보이는 그의 마음에 감동되었다. 그가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내게 와서 네가 왜 금식을 하는지 물어. 그때마다 어떤 말을 해야 할 지 정말 난처해. 이들 대부분은 자기 형량을 줄이는 것에 골몰하는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너의 행동을 아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거야.”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언행이 끼치는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해. 금요일까지만 기다려 줄 수 있어?”
그가 고개를 저었다.
“오늘 당장 금식을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결국 그의 요구를 수용했다.

금식을 마친 첫째 날, 조심스레 비스킷을 깨물었다. 목을 타고 음식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이렇게 달콤한 과자를 감옥에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한지. 금식 이후 변화된 일들을 돌아보았다. 이덕은과 화해, 경찰 고위 간부와의 만남, 가족들에게 편지 보냄, 앨런과의 깊은 대화, 샤오핑의 체인이 풀림…….

조속한 재판 결과를 위해 금식을 했는데 금식 후에 주어진 것이 어쩌면 더 소중한 건지도 모른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는 심령의 가난함이 정말 놀랍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금식이, 이미 소유했음에도 미처 깨닫지 못한 내 안의 부요를 깨닫게 했다. 친구가 건네는 사과를 한 입 물었다. 정말 꿀맛이다.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떤 노래보다 나를 행복하게 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3, 7, 8).

 

오영필  zero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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