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도 고향도 떠난 간첩들, 그래도 돈은 못 떠난다!

▲ 고정간첩들의 고달픈 생활고를 제대로 그려낸 영화 '간첩'
▲ 고정간첩들의 고달픈 생활고를 제대로 그려낸 영화 '간첩'
올해 한국영화시장은 그야말로 호황이다. 상반기 ‘연가시’에 이어 ‘도둑들’이 천만관객을 모아 대박을 터트렸고 지난 13일 개봉한 ‘광해’가 월드스타 이병헌의 인기를 증명하듯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이런 한국 영화의 흥행바톤을 이어받기 위해 영화계 대목이라는 추석연휴를 겨냥해 개봉하는 영화가 있다. 남파된 고정간첩을 소재로한 영화 ‘간첩’이다. 소재부터 독특하다. 최근 북한과의 표면적 갈등이 드러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간첩은 언제나 금기시되는 단어 중 하나였다.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가 망명시 남한 내 고정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었다고 밝혔듯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간첩들의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에 나오는 간첩들은 뭔가 모양새가 다르다.

영화 ‘간첩’에 등장하는 고정간첩들은 은밀한 첩보활동과 비밀유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10년이 넘는 세월을 남한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최우선되는 목표는 오로지 생계유지이다. 작전계획을 세우는 김과장(김명민)은 불법 비아그라를 판매하며 아이 둘을 가진 가장노릇을 하기 바쁘고 로케이션 전문 간첩 강대리(염정아)는 특기를 살려 부동산 중개업자로 나섰다. 남파 기간 40년의 최고참 윤고문(변희봉)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귀조차 잘 들리지 않는 신세로, 동네에서 소일거리나 하는 독거노인이다. 한 때 해킹과 컴퓨터 실력으로 혁명을 꿈꿨던 우대리(정겨운)는 귀농해서 소값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남한에서 그들의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동네 편의점을 터는 강도를 때려잡거나, 부동산 중개료를 떼먹으려는 아줌마와 몸싸움을 벌일 때뿐이다.

▲ 남파 10년만에 고정간첩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 남파 10년만에 고정간첩들은 먹고살기 바쁘다...

이런 이들에게 10년 만에 북한에서 내려온 암살지령은 그저 귀찮고 먹고살기 힘든 생활에 방해만 되는 쓸모없는 일이다. 심지어 암살지령은 뒤로하고 이를 이용해 목돈을 챙길 궁리부터 한다. 이념보다 돈이 우선시되는 세상에 너무 오래 살았던 탓일까? 이제 영화 속 남파간첩들의 머릿속 붉은색은 무척 흐릿하기만 하다.

감독이 밝히기도 했듯이 이들이 보여주는 생활은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고 있는 일상 그대로이다. 남파된 간첩이 보는 세상이 아닌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는 의도이다. 실제로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고민들은 현재 이슈화되고 있는 현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전세값 폭등, 고령화시대 독거노인의 증가, FTA와 관련한 충돌, 싱글맘과 미혼모의 어려운 아이키우기 등 우리 옆에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다. 이들이 간첩이라는 설정이 아니라면 고난스럽기 그지없는 일상이지만 간첩들의 원래 목적을 상기할 때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기 어렵다.

▲ 남파 고정간첩들도 처음의 모습은 이랬을 터...
▲ 남파 고정간첩들도 처음의 모습은 이랬을 터...

영화에서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은 김명민이다. 힘을 뺀 비아그라 판매상과 아내에게 쩔쩔매는 가장 연기로 영화초반 웃음을 주며 극을 이끌어가는 김명민은 영화후반에서는 총격신을 비롯해 근접액션까지 소화하며 스토리를 주도해 나간다. 액션은 자신 있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며 믿고 보는 배우 김명민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낸다.

유해진의 존재감 또한 김명민에 밀리지 않는다. 웃음전문배우,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지는 배우에게 냉철한 암살자 역할을 맡긴다는 점에서 잠시 불안했지만, 유해진이란 배우가 가진 모습에서 웃음기를 모두 뺀다면 이렇게 멋진 카리스마가 발휘된다는 것을 보여주듯 영화 중후반부에 유해진에게 실리는 무게감은 감독의 선택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간첩들은 우리 주변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서울 도심 광화문 한복판과 명동 중심으로 복잡한 번화가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은 영화의 볼거리 중 하나다.

초반 가벼운 웃음과 함께 시작했던 영화는 중후반을 지날수록 웃음기를 배제하고 액션과 휴머니즘을 강조한다. 극을 지배했던 유머와 상황의 아이러니함은 사라지고 극중 캐릭터들은 상황이 주는 긴박함에, 궁지에 몰리게 된다. 모든 상황의 반전을 김명민 혼자 안고 가기에는 부담스러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연기파 배우다운 감정연기로 중반이 지나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연결고리를 자연스럽게 이어 나간다. 어떻게 보면 한없이 오르는 전세값에 쫒길 때보다 암살자에게 쫒기는 김과장의 모습이 더 생동감 있어 보이기도 한다.

유머와 액션, 감동을 함께 가지기에는 조금 욕심이 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추석연휴 TV를 틀어도 매번 해주는 특선영화보다는 역시 신작영화를 보는 편이 연휴 끝나고 사람들과 할말이 많지 않겠는가?

 
 

 

 

 

윤지원 기자 alzlxhxh@beauty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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