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미용인의 삶과 프로의 꿈을 이야기하다

 
 
강남구 청담동 본사에서 박준 회장을 만났다. 뷰티한국 창간 인터뷰를 위해서였다. 홍보담당자의 안내를 받아 집무실로 들어서니 박 회장은 2평 남짓의 좁은 집무실에서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새로운 이슈를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인터뷰는 90분동안 진지하면서도 재미있게 진행됐다. 내공으로 꽉 찬 그의 뷰티 세상은 넓고도 깊었다.

-바쁘실텐데도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981년도에 창업하셨으니 우리나라 미용계를 회장님께서 태동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동안 많은 발자취들을 남기셨는데 굵직한 것 몇 가지만 말씀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사회적 이슈화를 많이 시킨 것 같습니다. 남성전용 미용실과 어린이 전용 미용실을 최초로 만들었고, 프랜차이즈 사업을 국내 최초로 시작했습니다. 1995년도부터 시작한 프랜차이즈 사업을 통해 많은 미용인들과 패밀리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해외서 쇼에도 많이 참가했습니다. 파리, 북경, 모스크바, 도쿄 등에서 한국의 미용계를 대표해서 참가했어요. 세계대회에서 최초로 남성이 입상하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헤어 디자이너’와 ‘헤어 아티스트’라는 용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사회적으로 이 용어들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되는데 기여했지요. 후배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나로 인해 미용을 배우게 된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요.

1980년대 중반에는 원광대의 요청으로 뷰티디자인 학부를 만들어 5년간 정교수로 가르치기도 했어요. 방학 때를 제외하고 매주 15시간씩 강의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바빠서 1회 졸업생을 배출한 후에 그만뒀습니다.

서경대에서는 한 학기 동안 박사코스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매주 3시간 강의를 했는데 사업하랴 강의 준비하랴 힘들었습니다. 이번 봄 학기부터는 초빙교수로 활동할 예정입니다. 특강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처음에 미용분야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셨는지요.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남이 안하는 분야, 새로운 분야를 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1982년도에 첫발을 내디뎠지요. 당시는 미용계에 남자가 활동하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힘든 측면도 많았어요.

정신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프런티어 기질도 작동했고요.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꼭 해내야 하는 성격이 있어요. 저의 내면에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는 욕구가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에는 명동에 한류살롱을 오픈했습니다. 올해 2월 중에는 군 부대(미사일사령부)내에 미용실을 한국 최초로 오픈할 예정입니다. 강한석 사령관과 함게 노력했지요. 참모총장님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군인들의 사기 진작 차원에서 헤어스타일에 자존심을 세워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어요. 인디언 부족인 모히칸처럼 잠시 외출할 때 무스와 젤을 바를 수 있을 정도로 헤어스타일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부대 내에 미용실이 오픈되면 아마 사회적으로 큰 이슈화가 될 것 같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는 또 무엇으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낼까 하는 생각으로 꽉 차 있습니다.

-힘든 시절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언제가 가장 힘드셨는지요. 그리고 그 힘든 시절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요.

힘 안든 때가 없었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힘듭니다. 계속 긴장 속에 있으니 마음이 편할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할 때는 일에 미칩니다. 그리고 일에서 벗어나는 순간 잊어버리려고 노력합니다. 휴식 없이는 발전이 없습니다. 창조적 휴식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과 여유, 5대 5 정도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외부에서는 회장님께서 성공자의 반열에 오르셨다고 평가를 합니다. 이런 외부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아직은 배가 고픕니다. 진짜 성공했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아요. 활동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시도하고 발전해 나갈 겁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요.

돌이켜 보면 모든 면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새로운 것을 사회에 접목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참 힘들었어요. 남성전용 미용실을 만들 때도 그랬어요. 그 자체가 ‘꺼리’였으니까요. 사회의 통념 보다 너무 빨리 앞서 나갔나 봅니다. 사회적으로 매치시키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알려지니까 여친이 남친을, 어머니가 아들을 보내더라고요. 인산인해를 이루었죠.

-토탈 뷰티샵인 박준뷰티랩 자랑 좀 해주세요.

전통 있는 브랜드, 전문가가 운영하는 뷰티샵, 개인 사욕보다는 미용인들의 발전을 먼저 생각하는 곳, 대규모 미용행사이자 디자이너 등용문인 ‘패밀리 데이’를 10회째 개최한 헤어쇼문화 리더 등이 생각나네요. 뒷거래를 용납하지 않는 맑은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뒷돈을 요구하는 백화점에는 입점을 안 합니다. 로드샵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박준뷰티랩의 차별화 전략은 무엇인지요.

명품이라는 명성을 듣고 있지만 일선 현장에서 뒤따라 주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육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멋진 살롱을 신규로 오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 살롱들이 전체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질 높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용실을 문화체험 공간으로 변모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시설의 현대화, 고객과의 대화수준 높이기 등 변신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서비스 개발은 무궁무진합니다.

오래된 살롱 중에는 브랜드만으로 먹고 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C급에 해당되는 살롱들 이지요. 교육을 통해서 업그레이드되거나 퇴출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겁니다. 현재 교육프로그램을 개발 중에 있습니다.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현장에서 직접 시술하는 것도 차별화 전략의 일환입니다.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렇게 느낀 점은 정제해서 경영에 접목시킵니다.

-회장님의 경영철학이 궁금합니다.

첫째도 교육, 둘째도 교육, 셋째도 교육입니다. 교육은 시대흐름을 알게 하고 경쟁력을 갖추게 합니다. 교육은 생존의 필수요건입니다. 180여 가맹점의 경쟁력이 곧 박준뷰티랩의 경쟁력입니다.

-‘박준’ 이라는 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신다면.

본인이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어요. 물론 전 국민이 아는 브랜드지요. 제대로 평가받고 싶은 생각입니다. 한번은 큰 돈을 주고 브랜드를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지요. 일하는 게 즐거운데 어떻게 팔 수 있었겠어요. 또 돈이 너무 많으면 불행할 것 같기도 했지요. 가장 즐겨부르는 노래 중의 하나가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요인을 꼽는다면.

돈 버는 재주가 있는 CEO는 아닌가 봅니다. 제품과 기구 등 브랜드를 활용한 2차 3차 비즈니스 기회는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100만명이 넘는 고객 데이터베이스도 갖고 있어요. 비즈니스 유혹도 많고요. 그렇지만 본업인 미용분야 이외에는 일체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철칙입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프랜차이즈 관련 업무를 보는 직원숫자만 24명입니다. 정직과 신뢰, 차별화된 서비스를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차별화된 고객서비스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아흔아홉 번 잘하다 한 번 잘 못하면 잘한 서비스가 아닙니다. 그 한 번의 잘못이 없도록 완벽을 기해야 합니다. 제가 교육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고객이 워낙 다양하니 요구사항도 많을 수밖에요. 하루에 전국에서 1~2건 정도 클레임이 접수됩니다. 주로 요금과 시술에 대한 불만입니다. 고객의 클레임은 귀중한 교육 자료로 활용됩니다. 클레임만 전담하는 직원이 1명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비비드 칼라에 초점을 둔 트렌드를 발표하셨습니다. 임진년인 올해에는 어떤 트렌드를 만들어 가실 계획이신지요.

올해의 경우 그동안 하지 않았던 방법들을 뽑아서 접목시킬 계획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섹션’이라고 할까요. 어느 결로 빗질하느냐에 따라 색이 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색의 종류는 두세 가지면 됩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보완해서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경쟁력을 높이는 원년이 될 겁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좌우명을 말씀해주세요. 가슴에 깊게 새기고 계신 문구 말이예요.

‘생각하는 대로 된다!’입니다. 깊게 생각한 후에 올인해서 실천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습니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회장님의 성공철학을 말씀해주세요.

세상의 어떤 분야도 쉬운 것은 없습니다. 쉬운 길이 유혹하지만 그 길은 대체로 성공을 향한 길이 아닙니다. 힘들더라도 계속 가야 합니다. 피땀 흘려 고비를 넘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하면 됩니다. 첫째, 목표를 신중하게 정해야 합니다. 둘째, 결정한 분야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결정했다면 10년은 무조건 가봐야 합니다. 그 정도 세월이 흐르면 공들인 것이 아까워서라도 딴 길을 못 갑니다. 그래야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별명 있으세요.

‘머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대학원 다닐 때 교수님께서 붙여주신 별명입니다. 지금까지 중앙대, 고려대, 서울대, 한양대, 경원대, 숙대 등에서 최고경영자 과정을 13개 다녔어요. 요즘도 만나면 모두들 그렇게 부릅니다. ‘콧수염’이라는 별명도 있어요. 콧수염 기른 김흥국, 이장이 씨와 같이 방송을 한 적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단어들은.

‘정신력’이라는 단어를 제일 중시합니다. 모든 게 정신에 달려 있거든요. ‘프로’라는 단어도 좋아합니다. 명함에도 이름 앞에 프로라고 적혀있어요. 전문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정한 희열을 맛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패밀리’도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프랜차이즈 가맹점 점장들에게 무엇을 강조하시는지요.

본사와의 아이디어 공유를 강조합니다. 경쟁력을 갖추려면 통일감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점장 회의를 하는데 회의에서 도출된 아이디어는 귀한 자료로 활용됩니다.

-뷰티 분야 이외에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골프를 좋아합니다. 20년 구력이지만 보기플레이어입니다. 동반자들과 즐기면서 치려고 합니다. 타수에는 별로 욕심이 안 생기네요.

-5년쯤 후에는 박준뷰티랩이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요.

지금과 크게 다를 게 없을 것 같습니다. 통일성은 많이 강화돼 있을 것 같네요. 시스템도 많이 선진화돼 있을 겁니다.

-뷰티업계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미용업계에는 빈부격차가 심합니다. 수많은 미용인들이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환경도 열악한 편이지요. 아마 미용요금이 싸서 점장들이 굉장히 힘들 겁니다. 진입 문턱이 낮으니 경쟁력도 낮을 수밖에요. 미용산업계가 골고루 동반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활용하실 생각이신지요.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뷰티업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뷰티션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진정한 프로’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박준뷰티랩을 사랑하고 애용하시는 대한민국 고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희 브랜드를 믿고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어린 질타를 부탁드립니다. 고객여러분의 다양한 요구는 박준뷰티랩을 더 멋지고 강하게 발전시키는 원동력입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로 늘 고객여러분의 곁에 있겠습니다.

-인터넷 신문인 뷰티한국 창간을 맞아 축하메시지를 간략하게 들려주세요.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미용업계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아픈 부분을 보듬어주는, 그래서 미용업계와 동반성장하는 매체가 되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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