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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입법청원을 하며

다음은 29일 오전 9시 반 국회정론관에서 학계 교육계 시민단체가 국회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해 달라는 입법을 청원하면서 행한 기자회견의 모두 발언이다.

2015년 11월 3일 이 정부는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이것은 중고등·대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교수들의 의견을 무시한 것일 뿐 아니라 국민의 의사에도 반하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확정 고시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 53%, 찬성 36%로 나타난 것은 이를 잘 반영한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은 이번 4‧13 총선에서 더 분명하게 반영되었다.

역사학계는 정부가 국정화를 시도할 때부터 그 부당성과 퇴행을 지적하는 한편 정부가 현행 검인정 교과서를 비판하는 것도 논리에 맞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교육부의 비호를 받던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 현행 교과서는 정부가 제시한 집필기준과 정부의 검열에 따라 교과서로 인정받은 것이다. 정부가 검인정한 이런 교과서를 ‘좌편향이다’, ‘나쁜 교과서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 집필기준을 제시했고 그 기준에 따라 검열하여 발행을 허가한 정부가 자기를 부인하는, 자기모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교과서를 내 놓기 전에 지금이라도 현행 교과서가 왜 잘못되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죄송하지만 정부는 검인정 교과서를 비난하면서도 아직 한번도 그것이 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지적한 바가 없다. 가령 정부의 지적대로 현행 교과서가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그 개선책이 자유발행제가 아니고 하필 최악의 선택인 국정화로 가야 하느냐 하는 질문은 그대로 남는다.

역사학계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것은 먼저 그 시도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검인정에서 자유발행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이 추세를 거슬러 국정화로 퇴행하는 것은 국격을 추락시키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역사인식과 역사해석을 획일화함으로 역사 이해의 민주주의적 다양성 가치를 훼손한다. 또 교과서 내용의 정권 차원의 개입을 우려한다. 아직도 국정교과서 단계에 있는 나라는 북한을 비롯한 몇몇 전체주의국가밖에는 없다. 이 땅의 수구세력은 정부에 대한 비판을 ‘종북’이라 매도하기에 앞서, 이같이 교과서를 북한식으로 국정화하려는 행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부터 말해야 한다.

UN도 2013년 ‘역사교과서 및 역사교육’과 관련, “하나의 역사교과서를 유지하는 것은 퇴보적 조치이며 국가가 후원하는 교과서는 매우 정치화될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관점에 서서 유엔은 교과서 국정화를 시행하고 있는 베트남에 권고, 베트남이 곧 국정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로 개편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92년,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도 교과서는 국정제보다는 검·인정제나 자유발행제 채택이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직 국정교과서가 선을 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역사학계가 국정화제도를 반대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과거 유신시대 국정교과서 편찬에 참여한 저자들은 국정교과서 저술에 강제성이 있었으며 의도적인 왜곡이 있었다고 술회한 바가 있다. 우리는 다시 그런 사태가 올 것을 우려한다. 또 국정교과서 집필기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부가 암시한 두 가지 지적-근현대사보다는 상·고대사를 비중있게 다를 것이라는 것,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일로 하겠다는 것-에 대해, 역사학계는 근현대사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르칠 독립운동사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1948년 대한민국 수립설은 제헌헌법과 현행헌법을 무시한 역사인식으로 이해하며, 만약 그런 기술이 나타날 경우 앞으로 건국절 논란 등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역사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 정부가 작년에 국정화 행정예고를 하면서 교과서 개발의 전 과정에 걸쳐 단계별 의견 수렴과 검증을 실시하여 투명성과 개방성을 확보하겠다고 호언한 바가 있음을 상기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집필기준과 집필진, 편찬심의위원 명단은 물론이고 예산마저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 정부는 자신이 제정한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국민에게는 엄혹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 그렇게 정부가 자신이 정한 법규를 스스로 어기면서까지 새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최소화하려는 듯하나, 이는 새 교과서의 왜곡과 부실을 더 부추길 것이다.

   
 

우리 역사학계는 지금이라도 교육부가 국민과 전문가의 뜻에 따라 국정교과서 편찬을 중지할 것을 요구한다. 야 3당 의원은 물론 양식 있는 여당 의원들도, 4.13총선에서 보여준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아,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가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만열/ 전 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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