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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선산업 몰락은 어떻게 발생했는가?

조선산업의 주기는 길고 산은 높으며 골은 깊다. 20세기 이후, 조선산업 초호황의 정점은 1, 2차 세계대전기, 1973년, 2007년으로, 20~30년의 거대한 주기로 나타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의 10여 개 중소조선사는 사라지고, 중대형사만 생존했다. 이 시기, 몰락하던 조선산업은 세계적인 양적 완화와 중국의 성장으로 다시 살아나는 듯 했다. 해운사는 저가에 선박을 구매하기 위해 다시 조선소를 찾았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심해 유전과 가스 개발도 붐을 이뤘다. 조선사는 선박 수주를 재개했고, 해양플랜트 수주로 외형 성장을 지속했다.

2013년은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선박이 발주된 해였다. 그로 인해 선박과잉이 더욱 심화되었다. 미국이 셰일 가스와 오일을 대량 생산하면서 시작된, 에너지산업 구조변화로 2014년 이후 유가도 급락했다. 선박공급과잉과 유가급락으로 2016년 5월까지 한국의 수주는 전년동기대비 95%나 줄었다. 이 와중에 한국 대형조선 3사는 해양플랜트 손실로 2015년에만 6.4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저가수주와 부족한 역량이 문제였다.

1973년 오일쇼크로 조선산업의 초호황이 끝나고, 이후 20여 년 동안 유럽과 일본에서는 대규모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있었다. 이제는 한국의 차례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스웨덴 조선산업 몰락의 상징으로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에 판매된 초대형 크레인인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ö)이 이제는 울산의 눈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더딜 수밖에 없다
조선산업은 거대한 장치산업이자 수주산업이기 때문에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선박의 수주에서 인도까지 보통 2~3년이 걸리는데, 그 기간에 대규모의 다양한 금융거래가 일어난다. 선주는 조선사에 선수금을 주면서 문제 발생에 대비해 금융기관에 선수금 환급보증(RG, Refund Guarantee)을 요청한다. 금융기관은 조선사에 선박 생산을 위한 설비자금, 제작금융뿐만 아니라 환헤지, 운영자금 등도 지원한다. 계약된 선박이 인도될 때까지 대규모의 금액이 거래될 수밖에 없다. 조선소는 동시다발적으로 선박을 건조하기 때문에, 조선소와 한번 거래를 시작한 금융기관은 쉽게 발을 뺄 수 없다. 또한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선박 건조 도중에 조선사가 파산하는 것보다 건조를 마치고 조선사를 정리하는 것이 손실을 줄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조선사가 어려워졌다고 바로 파산 절차를 밟진 않는다. 선주들은 국가신용등급과 같은 신용등급의 금융기관이 RG를 발행하길 원한다. 따라서 주로 국책금융기관이 RG를 제공한다. 국책금융기관은 단순 금융거래만이 아닌 산업 진흥의 목적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구조적 이유로 조선산업에서 빠른 구조조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조선산업의 이해관계자가 금융 분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선산업은 대규모 고용을 창출하고 관련된 기자재업체들도 많다. 즉 조선산업의 몰락은 도시의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정치권에서 조선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또한 실업자 급증과 기자재산업 부실파급으로 지역 경제가 급격한 타격을 받지 않아야 하므로 급격한 구조조정을 하기 어렵다. 따라서 불황기 대비책이 준비되고 공유되어 있지 않다면, 구조조정이 더디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쟁점이 논의되고 있다
구조조정의 가장 큰 쟁점은 ‘국책금융기관의 막대한 자금을 불확실한 산업에 지원해야 하는가?’이다. 국민은 새로운 산업이나 성장을 위한 사업에 투자되어야 할 자금을 쓸데없이 소모할 수 있다며 우려한다. 게다가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분식회계와 경영진 비리에 대해 최근 수사가 진행 중이다.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있는 회사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반감 여론도 있는 것이다.

한국 조선산업의 기술인력과 숙련된 작업자는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오히려 다음 호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이들은 1980년대 상황을 근거로 든다. 당시 최고의 조선국이던 일본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우수한 인력과 설비를 잃었다. 반면 한국은 인재를 꾸준히 육성하고 어려운 시기임에도 설비를 확장하여, 지금의 조선대국을 이룰 수 있었다. 물론 일본 조선이 회복된다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설비나 인력의 부족으로 경쟁력이 급격히 향상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영진은 단기 성과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대리인이다. 수주산업에서 수주는 당장의 성과로 나타나지만, 재무실적은 나중에 나타난다. 그래서 무리하게 수주를 추진하게 됐고, 그 결과가 수년 후의 대규모 적자로 나타났다. 다른 수주산업인 플랜트에서 한국 건설업계가 겪었던 일을 조선사도 경험하게 것이다. 경영실패의 책임을 근로자가 오롯이 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고, 의사결정을 했던 경영진이 가장 먼저 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외에도 근로자 사이에서도 비정규직의 피해만 막심하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등 여러 쟁점이 이야기되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강력한 주체가 필요하다
지금은 정부와 채권단이 협력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정부에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컨트롤 타워를 강화하기 위해,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설치하였다. 한편에서는 정부와 국책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을 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멀게는 우후죽순 생겨나는 중소조선소를 막지 못했고, 가까이는 대우조선해양을 제때 매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우조선해양의 실적 악화와 분식 회계에 정부와 국책은행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구조조정의 주체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고 실행해야 한다. 그래서 힘이 있는 공정한 조직이어야 한다. 부실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뿐만 아니라, 자원의 배분, 설비나 인력의 조정, 조선 경쟁력 유지 및 미래 기술 육성까지 수행해야 한다. 업체별 구조조정이나 적정 설비규모 도출에만 급급하지 않고, 미래의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구조조정과 지속가능한 조선산업을 위해 제대로 된 위험관리가 필요하다
조선산업 지원의 문제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영역이 아니다. 미래의 상황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산업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이런 문제에 봉착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대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미래 전망이 과연 가능할까? 해운경제학의 대가인 마틴 스토포드(Martin Stopford)는 ‘해운과 조선은 너무 복잡해서 미래 전망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미래 전망은 불확실하고, 조선산업의 규모는 크다. 위험은 불확실성과 심각성의 결합이다. 따라서 지금 한국 조선산업의 위험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늦었지만 위험관리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해야 할 시점이다.

한국은 성장지향형 수직적인 조직으로 단기간에 세계 최고의 조선강국을 이뤘다. 하지만 이런 문화에서는 위험관리가 쉽지 않다. 기업은 Bechtel과 같은 선진엔지니어링 회사처럼 전사차원의 위험관리 프로세스 운영을 제대로 해야 한다. 영업, 사업, 지원 등 여러 부서가 투명하게 협업할 수 있도록 하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국가는 이해관계자를 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수평적 조직을 상시화해야 한다. 복잡한 조선산업의 특성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포함돼야 한다. 조직은 지속적으로 조선산업의 미래와 위험을 연구해야 한다. 미래 시나리오에 맞는 산업구조로 업체가 재편하도록 지원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분석한 후, 이해관계자와 공감대를 형성하여 관리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조선 대국을 유지하면서 지금의 다양한 쟁점을 해결하고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창/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 수석연구원
이은창은 서울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에서 학/석사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경영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서 조선, 해운, 플랜트 산업분석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주 연구분야는 조선산업, 철강(후판)산업 분석, 기술경영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Large engineering project risk management using a Bayesian belief network” (2009) 등이 있다.

이은창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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