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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서거 때 북한 조문단처럼 정부조문단 보내는 게 인간의 도리"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NCCK 주최 긴급좌담회에서 정부의 '민간조문단' 강하게 비판

갑작스런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위원장 김기택)가 긴급좌담회를 마련했다. 22일 오후 2시 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린 긴급좌담회에는 이재정(전 통일부장관) 신부, 경남대 김근식 교수가 질문에 답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유코리아뉴스는 이 중에서 이 신부의 발언을 중심으로 긴급좌담회를 정리해봤다. 좌담회 사회는 나핵집(열림교회) 목사가 맡았다. 이밖에도 이 자리엔 김영주 NCCK 총무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이 신부는 김정일 위원장 사후 북한 급변사태에 대해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북한의 시스템이 견고하다는 것이다. 부시 정권이나 이명박 정부가 불필요한 한반도 긴장을 가져왔던 원인이 바로 이같은 북한에 대한 오판에 기인한다는 게 이 신부의 지적이다. 조문정국과 관련해서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김정일 위원장을 대신해 북한의 조문단이 왔던 만큼 이번에도 남한의 정부조문단이 북한을 방문해야 한다”며 “그게 인간적인 도리”라고 주장했다.

이밖에도 향후 남북관계 진전을 위해서는 “분단의 원인부터 짚는 게 순서”라며, “북미 북일관계 개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재정(전 통일부장관) 신부

이 신부는 또 남북통일은 2020년 쯤으로 내다봤다. 2000년 6.15 정상회담과 2007년 10.4 정상선언이 남북 국가 연합을 이루기 위한 실제적인 과정이었고,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들고나오면서 모든 게 중단됐지만 내년 대선에서 새로운 지도자가 뽑히고 7년 정도 10.4 정상선언 내용을 실천해간다면 2020년에는 국가연합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다음은 이 신부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급서로 북한의 급변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미국의 부시 정권이 내걸었던 게 바로 북한의 급변사태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죽음 후 북한이 급격히 붕괴할 거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건재했다. 이명박 정부도 2년 전 김정일 수술 후 북한 급변 사태를 주장했다. 붕괴에 대한 대비로 강력한 한미 군사훈련을 매월 서해 해상에서 실시하면서 연평도 앞바다에서 함대 포격훈련까지 감행했다. 이 모든 게 급변사태가 오면 북한이 붕괴하고, 붕괴하면 무거운 짐이지만 떠맡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오만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급서 이후 북한을 바라보면서 아마 가장 당황해하는 사람이 이명박 대통령일 것이다. 급변 사태가 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급변사태 운운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북한이란 나라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다. 2차 대전 이후 정권이 교체된 나라는 있지만 국가가 붕괴돼 없어진 나라는 한 곳도 없다. 북한은 UN에 가입된 나라다. 평양엔 영국, 러시아 등 멋진 해외공관들이 즐비해 있다. 지금도 김정일 위원장을 향해 각 국가가 조문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북한 내부에 수상한 동향이 있다’ ‘북한이 20대의 지도자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는 잘못된 시각이 결국 정책 오판을 가져온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북한의 경우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넘어가는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김일성의 통치이념, 정치철학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그 틀 안에서 정권이 연장되고 있는 것이다. 서방세계가 정권 교체의 시각에서 이것을 보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김정일 서거 이후 남한 정부가 김정은 체제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나?
사람이 병이 들었을 경우 병원에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서 병의 원인을 밝힌다. 그에 따라 수술을 하거나 처방을 해서 약을 먹게 된다. 남북 문제를 얘기하기에 앞서 한반도 문제의 진짜 근원이 뭔가 짚어봐야 한다. 답은 간단하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받을 때도 분단이 안되어 있었다.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북한으로 진군했고, 남한에서는 9월 8일 미군 7사단 병력이 인천을 통해 들어오면서 남북이 다 소련과 미군의 점령하에 있게 됐다. 남한은 맥아더의 포고령에 따라 엄격한 군정이 실시됐다. 뒤이어 들어온 임시정부 사람들도 아무 역할을 못했다. 남북 분단이라는 병의 원인이 어디 있느냐. 그건 결국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를 점령한 데 있다. 그때부터 시작된 분단 통치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분단을 60년간 고착했던 것이다.

분단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분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한 축이 바로 김정일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이 1980년에 권력승계자로 지명됐을 때가 32세다. 지금 김정은과 비교했을 때 2~3세밖에 차이가 안난다. 분단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시작전권도 해결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 3000을 내놨다. 그것은 한반도 안보 문제 전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원인도 전혀 모른 채 내놓은 것이다. 결국 빛도 못보고 여기까지 왔다. 한반도 문제는 북미, 북일 관계가 해결되지 않으면 해결되기 어렵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선결조건이 바로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국제사회 정책들을 앞장서서 견인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2000년 6.15 정상회담, 2007년 10.4 정상선언이 나왔을 때 비로소 남북이 주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보였다. 이걸 근본적으로 뒤엎은 게 비핵개방 3000이다. 이명박 정부가 비록 임기가 얼마 안남았지만 회개하고 다 뒤엎지 않으면 이 정부 있는 동안 아무것도 진척되지 않을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 조문 문제는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고 보나?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김기남 당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남한에 보내준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김양건은 한반도 문제를 총괄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신해서 왔던 분들이다. 그러면 이번에 당연히 정부 조문단을 북한에 보내야 한다. 그때 왔던 조문단은 북한의 공식조문단인데 이번에 굉장히 선심 쓰듯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을 보내는 것은 유치한 논법이다. 북한 사람들이 이걸 이해 못하겠나. 동방예의지국의 조문은 고인 영전에 조문을 표하고 유가족에게 조의하는 것이다. 북한 동포들을 위로하겠다는 것은 조의가 아니다. 조의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마지막 정상회담을 하고 테이블 앞에 마지막 회의를 했던 한국측 장관이 바로 나다. 나도 조문을 가는 게 인간적 도리이자 국가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노무현재단의 일원으로 가길 원했는데 어제 통일부차관이 와서 ‘노무현 대통령 돌아갔을 때 북한에서 조문을 오지 않지 않았느냐’며 조문 불가 입장을 전해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정부가 이렇게 나오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도 맞지 않는 일이다.

-참여정부 시절 10.4 정상회담에 통일부장관으로 참석했다. 김정일 위원장을 가까이서 보면서 에피소드는?
어쩌다보니 10.4 정상회담 주역이 됐던 남북 정상이 다 이 세상을 떠났다. 회의 중 김 위원장이 ‘내가 김계관한테서 베이징 회담 결과를 보고받지 못했는데 노 대통령과 내가 같이 보고를 듣자’고 느닷없이 요청을 해왔다. 전혀 예기치 못한 제안이었다. 김계관 외상이 북경서 10.3 선언을 한 뒤 회의 결과를 보고했다. 옆에서 보면서 남북 정상이 국제회의 결과를 함께 보고받는 자리, 이것이야말로 통일 뒤의 한 모습이지 않나 생각했다. 이제까지 없었던 역사적인 현장이었다. 극적인 분위기였다. 이것이 바로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 대해 가졌던 신뢰의 표현이지 않았겠나 싶다.
 

김 위원장은 노 대통령에게 하루 더 묵었다고 가라고 할 정도로 여유있고 친밀하고, 또 치밀한 사람이었다. 김 위원장 주최 만찬이 열렸는데 김 위원장이 일어나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잔을 따르고 눈을 맞추고 뭔가 얘기를 건넸다. 전체 테이블을 다 도는데 다 한마디씩 얘기를 했다. 퍽 정겨운 장면이었다.

오전 세션에 해주공업단지를 만들고 조선산업단지를 두 군데 만들어 남북협력의 기반을 만들자고 우리측에서 제안을 하니까 김 위원장이 개성공단도 제대로 못하면서 왜 자꾸 땅을 파려고 하느냐며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창원공단도 10년 뒤에 결과가 나왔다. 서로 보완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 서해안의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면 해주공업단지가 바람직하다’고 설득했다. 김 위원장은 ‘해주공업단지는 군사시설이 촘촘히 들어서서 안된다’고 거듭 거절했다. 그런데 오후에 들어와서 김 위원장이 ‘점심시간에 긴급 군수뇌부 회동을 해서 해주 군시설을 옮기는 건 별 문제가 없다’고 발표해버렸다. 옆에서 이걸 들으면서 몇 가지 스쳐가는 의문들이 들었다. 정말 저런 문제를 군수뇌부와 저렇게 할 수 있는 건가. 해주라는 지역이 대단히 중요한 군사요충지역인데 개성에 이어 해주의 군사시설을 뺀다는 것은 보통결심이 아닌데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의 결단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북한의 내부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청중 질문)
전혀 없다고 본다. 권력 이양 과정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이다. 작년 당대표자회의를 열어 당중앙군사위를 만들어 당이 군에 대해 목소리 낼 수 있게 했다. 국방위도 강화했다. 급변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은 당중앙군사위 16명, 국방위원 12명, 정책국 비서들 몇 명이 얼마나 충성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 이들은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게 아니라 국가와 김일성에 충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급변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자스민 혁명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하는데 외부 사람들이 들어가 미칠 수 있는 통로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게 인도적 지원, 금강산 관광 재재 등이라고 본다. 이런 걸 통해 북측에 우리가 공조해 같이 가자는 의사표시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본다.

-통일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올 것 같나?
통일은 오늘밤 자고 나면 하루가 더 당겨지는 것이다. 때는 정해졌는데 다만 우리가 그때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6.15 정상회담에서 점진적 통일을 얘기했고, 10.4 정상회담에서 장관급 회담을 가지되 4가지 분야와 그 밑에 철도 산업 교육 위생 등 20가지 정도 각 분야 위원회를 두고 가동에 들어가기로 했었다. 이것은 국가연합의 한 단계로 들어간 것이었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된다면 국가연합 단계를 거쳐 통일의 단계로 갈 것이다. 아무리 길어도 정상회담이 있었던 2000년의 20년 후인 2020년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다만 내년 대선에 이것을 추동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서 7년 정도 그 위원회를 제대로 가동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말이다.

-앞으로 기독교통일운동의 방향과 전략은 어떠 해야 하는가?
제가 통일부장관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배경이 NCCK 통일위원장 경력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 통일운동은 기본적으로는 예언운동이다. 앞으로 이뤄져야 할 역사에 대한 선포와 그에 대한 실천을 해나가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현실적으로 우리 내부에 있는 상황 가운데 잘못된 이해와 잘못된 남북관계에 대한 사실규명을 해야 한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은 선언적으로는 괜찮지만 실제 우리를 제약하고 있는 정전협정에 따르면 전혀 그게 아니다. 더구나 우리는 우리가 UN이 인정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했다는데 선거를 치르지 못한 나라까지 합법정부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NLL도 일방적으로 클라크 장군이 정전협정을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 설치했다고 국방부장관이 국회 증언에서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NLL을 북한이 침범하더라도 정전협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2013년 이후 기독교통일운동의 방향은 마치 우리가 예수의 재림이 이 역사속에 분명히 이뤄진다는 것을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한반도 평화는 가능하다는 것을 신앙고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벌여온, 특히 세계교회협의회(WCC)나 아시아교회협의회(CCA)와 함께 벌여온 한국교회의 차분한 대응전략을 북한의 변화와 상관없이 제시해온 것은 업적이라고 본다. 1984년 도잔소회의를 필두로 1986년 글리온 남북 교회 지도자 모임을 기점으로 88년 한반도평화통일 선언문 발표는 지금도 그 선언문을 능가할 선언이 없을 정도로 걸작이었다.한국교회는 정부와 달리, 언론이 떠들썩하게 하는 것과 달리 과거를 바라보면서도 창의적으로 앞을 내다보면 좋겠다.

-이명박 정부가 남은 임기 1년 동안 대북관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보나?
어렵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이 붕괴될 것이다,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을 지속할 거라는 데 공감한다. 이 정부가 포기할 리가 없다. 국제사회의 변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오바마 당선자 시절 미국 민주당 12선 의원이 서울을 방문했다. 밥먹으면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을 물었더니 그분이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선거기간에 어마어마한 약속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오바마가 정책을 변화할 수 있도록 미국 사회가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패권주의, 이것은 종교의 힘을 넘어 어마어마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것을 넘어서지 않는 한 힘들다. 따라서 2013년엔 어떻게 해서든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을 바꾸는 역사적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WCC 부산총회에 참석하는 세계교회를 설득해야 한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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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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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ephzibah 2011-12-23 16:57:40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역사적 조치가 세계교회를 설득함으로 이루어진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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