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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스런 성경수송 작전심주일 목사의 탈북일기(18)

이제 통화에 있는 양계장을 떠나 대련으로 갈 것이다. 중국땅에서 처음으로 기차를 타게 된다. 중국인 신분증도 있으니 마음이 놓였고 비행기도 아닌 겨우 기차를 타게 되는데도 그렇게 기쁘고 설레일 수가 없었다. 원래 나는 기차든 버스든 무엇이든 타는 것을 좋아한다. 기차를 타는 것도 좋은데 중국의 이름 있는 도시 대련을 보게 되었으니 왜 기쁘지 않겠는가. 그리고 분명히 그곳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어린아이처럼 흥분되었다.

어린아이처럼 설레이며

통화에서 기차를 탔다. 순간 북한 평양을 떠나 만포에서 운봉으로 타고 오던 북한의 기차 생각이 났다. 그래도 북한에서는 일곱번째로 간다고 해서 7열차 그것도 급행 열차였지만 창문에는 유리도 없고 정시에 운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사람은 너무 많아 사람 위에 또 사람이 타는 기차만 보다가 중국의 기차를 보니 정말 화려하고 깨끗했다.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의 새마을호나 특히 KTX 같은 열차와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북한에서 이런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북한의 기차는 물 컵에 물을 담아 기차에 올려 놓으면 그 물이 기차의 진동에 의해 다 쏟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기차는 물컵에 담긴 물이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기차는 거의 진동이 없었다. 그리고 정시로 가는 것도 내게는 이상하기만 했다.

한참 가다가 문득 중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났다. 물론 양계장에서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다 중국의 한족들이었기 때문에 중국 사람을 이미 상대해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렇게 기차를 타고 나니 또 다른 중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단지 나의 중국어 실력을 객관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었지 다른 목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아무 사람에게나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또 그렇게 자유자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할 수 있는 실력도 아니었다. 그때 중국의 열차는 매 칸에 여승무원이 한명씩 있다는 생각이 났다. 아마 이것은 공산권이라면 다 그런 것 같다. 북한도 그렇다. 나는 그 승무원과라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승무원에게 중국말로 "저는 한국인입니다. 그런데 이 기차가 대련에 몇시에 도착합니까?"라고 물어보니 중국말로 답을 하는데 그 말이 분명하게 내 귀에 들렸다. 나는 그때 확신했다. "아, 나도 이제는 중국말을 할 수 있구나 "라고 말이다.

기차는 심양을 지나 대련으로 계속 달렸다. 그런데 야간 기차였기 때문에 중국 땅을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밤새 달리던 기차가 심양을 지나 날이 밝기 시작하면서 그 넓은 중국 대륙을 차창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특히 심양에서 대련으로 가는 좌우 벌판은 정말 끝이 안 보였다. 얼마나 넓은지 농사를 짓는 중국 사람들이 멀리 가물가물하게 보이거나 잘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땅이 다 농사를 짓는 땅이라는 것이다. 그 넓은 땅에 트랙터도 없고 오직 말과 소, 그리고 그것들이 끌고가는 소농기구 등으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니 참 애처롭게 보였다. 이 넓은 땅이 옛날에는 다 우리 땅이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언제 다시 이 땅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슬프기도 하였다.

대련에 도착하다

대련에 도착한 정확한 시간은 기억에 없지만 어쨌든 대낮에 도착하였고 우리를 마중 나온 분은 대련에서 조선족 교회에 출석하는 분이었다. 처음으로 2층 버스를 보았다. 길림성 통화시도 멋있고 화려한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대련에 비하면 시골 같았다. 그 집사님의 안내를 받아 대련시내를 관광했고 또 조선족교회에서 신앙생활도 시작했다. 그 분이 마련해 준 집에서 혼자 취사도 하고 잠도 잤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오직 생각과 기도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인데 도무지 그 길이 어떻게 열릴지 아직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스런 성경 수송작전에 참여하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 그 집사님이 같이 갈 곳이 있다며 무조건 기도부터 하라는 것이다. 어디에 가는지 또 무엇 때문에 가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무작정 기도만 하고 따라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막막하였지만 "하나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인데 무엇 때문에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가는 길이 오직 하나님만을 위한 길이라면 형통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 집사님은 배를 탈 수 있는 터미널로 나를 안내하였고 배를 태워줬다. 원래 나는 어렸을 때 바다에 자주 다녔고 또 수산기술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니 바다를 좀 알기도 하거니와 배를 타는 문제에 있어서는 무서운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군대에 입대할 때 해군으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해군으로 보내주지 않고 평양을 방어하는 부대로 배치된 것이다. 만일 그때 내가 해군으로 갔더라면 평양에서 성경을 받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또 대한민국으로 오는 길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앞날에 이루어질 사실을 누가 과연 알 수 있단 말인가.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며 나의 인생을 세밀하게 이끄신 분이시다. 

그 배는 밤에 항해했다.  어디를 가는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저 가는 것이다.  그 배에서 나는 요나가 떠올랐다.  하나님의 말씀에 제때에 순종하였더라면 요나는 저 푸른 만경창파에 몸을 던지지 않았을 텐데...그러나 왜 요나가 바다에 던져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측량할 길 없는 섭리는 그 후에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배에 승선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중국 사람들인 것 같은데 내가 보니 그들은 다 몸이 좋았다.  한참 항해를 하니 파도가 높아졌고 높은 파도가 밀려오다가 배를 치면 그 육중한 배도 기우뚱거리며 애써 물길을 가른다.  밀려오던 파도가 배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며 배 갑판까지 물을 뿌린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오랜만에 배를 탄 기분에 흠뻑 뻐져 있었다.  그런데 그 몸 좋은 중국 사람들이 배멀미를 하기 시작했다.  먹은 것을 토하고 또 데굴데굴 구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배타는 것이 너무 재미있는데 그들은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침에 배가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하루종일 그집사님을 따라다녔다.  만일 그 집사님을 놓치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택시를 타자면 택시를 탔고, 트럭을 타자면 트럭을 탔고, 버스를 타자면 버스를 탔다.  그리고 나서 트럭을 타고 갔는데 드디어 거기서 물동량을 상차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열심히 물동량을 상차한 후 그 트럭과 함께 다시 배를 또 탔다.  그 배는 다시 대련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트럭에 싣고 온 모든 것을 여기저기로 배달했다.  세상에!  배로 싣고 온 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었다.  거기에는 중국의 영혼들을 위한 성경도 있었고 또 북한의 영혼들을 위한 성경도 있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지금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하나님이 왜 나를 그 작전에 참가시키셨을까. 하나님은 분명한 계획을 갖고 계셨던 것이다.  나를 북한선교를 위해 쓰시려는 계획말이다.  실전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를 교육시키셨고 그렇게 일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내 눈으로 목도하게 만들어 주셨다. 그때 내 손에 의해 배달된 성경이 아마 지금은 많은 영혼들의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며 읽혀질 것이다.  그리고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구원의 반열로 옮겨질 것이다.  그렇게 옮겨진 성경이 바로 평양에 있는 나에게도 전달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제주도에 인공기를 꼽기전에는 이 손에서 총을 내려놓지 않겠다고 했던 이 손에 총 대신 그렇게 전달된 성경을 들고 여기 대한민국으로 오게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때의 비밀스런 성경수송작전에 참여했던 일에 대해서 그 후 한국으로 와서 누구에게도 이야기 한 적이 없다. 

우연은 없다. 

나는 장로회신학대학 MDV과정을 공부할 때 북한 선교라는 과목을 선택했다.  물론 필수과목은 아니었다.  북한선교라는 과목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는 몰랐지만, 내가 너무나 잘 아는 곳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선교,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불러주신 것인데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웠고 순간이나마 교만했던 것을 회개했다.  그리고 두말 할 것 없이 북한선교 과목을 선택해 한 학기동안 공부를 하였다.  그때 우리나라에 북한선교를 하는 선교단체들이 얼마나 있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중 내가 보기에 제일 합당하게 선교를 하고 있는 선교단체가 있었는데 나는 그 단체와 함께 북한선교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지금 나는 개척한 교회를 섬기면서 동시에 그 선교단체에서 동역하고 있다.  북한 영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북한의 문법, 문체, 북한의 문화를 고려한 성경을 만드는 사역이라서 감사함으로 동역하고 있다.  그 성경을 북한 영혼들이 받아보고 흥분해서 그들이 보낸 편지를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 맛을 모르고 살았다면 어쩔 뻔했나 싶을 때가 많다. 

어느날 내가 일하는 선교단체에서 사역을 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누구란 말인가.  내 앞에 불현듯 나타난 사람이 바로 대련에서 나를 이끌고 다니면서 중국과 북한에 성경을 배달하던 그 집사님이 아닌가! 나는 대련을 떠나 한국으로 온 다음 늘 그분에 대한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중국에 마음대로 왕래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만나게 해주신 것이다.  너무 놀란 우리는 얼마나 감격적인 해후를 했는지 사무실이 떠나갈 정도였다.  우리를 보던 선교단체 사무실에 있던 다른 간사님들이 도대체 이분을 어떻게 알게 되었나고 물었다.  이미 전에 중국에서 성경 배달 작전에 이분과 함께 참가했었다는 이야기를 그때야 비로소 말했다.  그러자 사무실에 있던 모든 분들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에 감격하며 심 목사가 이곳 선교단체에서 사역하고 있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이 선택하신 일이었다고 다 함께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주 극동 방송으로 편지를 쓰다. 

대련에서의 나의 삶도 오직 말씀 묵상과 기도였다.  내가 살던 방은 북한에 비하면 조건이 좋았고,  한국에 비하면 달동네라도 그런 집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집을 깨끗이 관리했고 빨래도 정성껏했다.  집 부엌에 물이 나오고 시장에 나가면 빨래비누를 언제든지 살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북한군 군인들 특히 여군들이 빨래 비누가 없어 어렵게 생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빨래도 제대로 못하는데 몸인들 언제 한번 깨끗이 씻어 보았겠는가.  나는 그때 그들을 책임진 장교들만 비판하고 욕을 많이 했었다.  진짜 욕을 먹고 비판 받아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김정일인데 말이다. 

이젠 대련에서 한국으로 가는 길을 결정적으로 찾아야 했다.  결정적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문제이지만 그 결정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북한에서부터 제주도에서 송출하는 극동방송을 대련에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계속 청취했다.  그리고 중국에 있는 특히 조선족 신앙인들이 제주 극동방송과 편지를 서로 주고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루는 기도를 하다가 나도 제주 극동방송에 편지를 하고 싶었고, 왜인지 그 편지를 통해서 한국으로 가는 길이 열려질 것만 같았다.  하루는 제주극동방송 담당부서로 편지를 썼다.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된 경위와 앞으로의 소명까지도 밝혔으며 북한에 있었을 때의 경력도 다 썼다.  다만 보안상 평양에서의 극동방송 청취소감과 나의 경력에 대해서는 쓰지 않거나 거짓으로 밝혔다.  편지는 썼지만 그 편지를 한국으로 보내는 방법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기도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그것 밖에는 다른 무슨 방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체험한 후였다.  컴퓨터도 없이 그냥 손으로 앞뒤 다섯 장을 쓴 편지를 베개 위에다 올려놓고 밤새 기도를 했다.  그 기도가 새벽녘이 되니 내 마음이 뜨거워지고 기쁨으로 넘쳐났다.  나는 이미 체험한 것이 있었기에 나에게 오는 이 기쁨이 하나님의 응답의 싸인으로 확신하고 그날로 편지를 들고 대련 시내로 나섰다.  그 넓은 시내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 또 중국말을 좀 한다고 하지만 중국 사람들처럼 유창하지는 못했다.  오직 기도만 믿고 대련 시내에 나선 것이다.  목적도 없이, 기약도 없이 하루 종일 돌아다녀 보았지만 아무런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중국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자신 있게 물어볼 수도 없는 것이고 우리말로 된 음식점 간판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그 안에서 사업하는 분들은 분명 한국 분들이겠지만 마음놓고 접근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상식적인 문제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도무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지혜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밤새 뜨거웠던 기도를 다시 기억했다.  그 뜨거웠던 기도를 믿고 편지를 들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것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대련과 대한민국 인천을 오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비행기도 다닌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배가 다니는 터미널로 가고 싶었다.  거기에 가서 한국분들을 만나 편지를 전해주면서 "이 편지를 서울에 가서 우체통에 넣어 주십시오."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 편지가 제주극동방송으로 갈 것이고, 그것으로부터 시작해서 무엇인가 결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계속)

심주일 목사의 ‘탈북 일기’는 책 ‘멈출 수 없는 소명’(토기장이)에 나온 내용을 출판사의 허락을 얻어 요약, 연재하는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편집자 주

<부천 창조교회 목사> 

심주일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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