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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언론보도의 선정주의를 고발한다자극적, 외설적 기사에 '오락거리'로 전락하는 탈북자 이슈들

 
2012년 3월 9일. 결국 모두 북송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탈북자들의 구출을 위해 정치, 외교, 민간 등 다각도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끝내 중국은 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2월 중순 경, 중국에 탈북자들이 잡혀있고, 북송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언론에 알려진 지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비통함에 잠겨 안타까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언론에 비춰진 탈북자들의 모습이었다. 탈북과정, 중국에서의 수감생활, 북송 후 처벌 실태, 북한 감옥에서의 가혹한 인권 유린 등등 기사 속에 다뤄진 관련 내용들 속에서, 탈북자들은 또 한 번 버려지고 다시 한 번 짓밟히고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처음 두 주 동안의 기사와 이후 두 주 동안의 기사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처음 두 주(2월 셋째 주~넷째 주) 동안 이 사안을 다룬 신문 보도는 총 215건. 이후 두 주(3월 첫째 주~둘째 주) 동안 보도된 기사 수는 총 386건. 거의 1.8배에 가까운 보도 횟수의 증가를 보이며, 더욱 이슈화되었다. 특히, 같은 기간 동안, 칼럼의 숫자가 더욱 증가하며 각 신문사별로 이 사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사진기사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하며 시각화된 정보로 독자들에게 전달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사이 우리 언론의 보도 경향은 달라진 것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앞서 올린 <이렇게 해서 언론은 탈북자를 두 번 죽인다>에서 언급했던 내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 번 기호학적 분석과 마찬가지로 신문 기사의 표제를 수집하여 범주화, 과어휘화, 전제 등을 살펴본 결과, 오히려 더욱 강화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범주화 분석을 통해, 갈등상황과 대치상황으로 범주화된 전투적 기호들 때문에, 탈북자 사안에서 발견되는 ‘폭력성’과 ‘범법행위’가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더 이상 비난 받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또한 탈북자들이 처한 현실이 ‘신체’와 관련된 기호로 표현되면서, 보다 감정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이들을 희생양이면서 무능한 존재로 인식되게 만든다는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아래 표와 같이, 이러한 경향은 오히려 더욱 두드러지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탈북자에 대한 과어휘화 경향도 마찬가지다. 부정적으로 과장되게 표현된 탈북자와 관련된 기호들 속에서, 다시 한 번 탈북자들은 동정과 연민의 대상, 무능한 사회적 약자, 한없이 불쌍한 존재, 동등한 사회적 주체이기보다는 ‘우리’가 도움을 줘야 할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언론은 신문기사를 통해 탈북자들을 소위 ‘우리’와는 다른 ‘타자’로 구분 지으며, 철저히 ‘타자화’ 시키고 있었다.

   
 

전제 분석에 있어서도, 계속 해결되지 않는 탈북자 강제송환 사안이 전쟁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전투 행위로 전제되고 있고, 자연재해나 사회 병리 현상 등으로 전제되면서 여전히 ‘인정할 수밖에 없고,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결국 해결해낼 수 있는 사안이기보다는, 체념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여기게끔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역시 두 주 전의 상황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언론 보도 속에서 재현된 기호들을 통해 중국의 탈북자 강제송환 사안 자체가 곡해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사안이 집중 보도되었던 한 달 동안 탈북자와 관련한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그 수위가 심각하였다.

그렇다면 먼저, 선정적 보도란 무엇일까?
언뜻 생각하기에 야한 옷을 입고 속살을 드러낸 예쁜 외모의 여성이 등장하는 사진기사 혹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표현이 가득한 언어 표현을 떠올릴 것이다. 보통 “본능과 호기심을 자극하여 대중의 인기를 끌어 이득을 얻으려는 보도 경향”을 말하곤 하는데, 사실상 언론의 ‘선정성’ 혹은 ‘선정주의(sensationalism)'는 좀 더 구체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선정성은 Danielson, Nelson, Flores 등의 학자들에 의해, 스릴을 주고, 병적일 만큼 매료시키며, 도덕 혹은 심미적 감각에 충격을 주고, 지속적인 긴장을 주며, 불건전한 정서적 반응을 자극하고, 공포, 범죄, 재난, 성추문 등을 듣고자 하는 인간의 채울 수 없는 욕망에 어필하는 것들로 정의된다.

이에 따라, 자극적이며, 침착하지 않고 선동적이며, 폭력적이고, 저속하면서 외설적인(즉, 부끄러워하며 삼가고 조심하는 데가 전혀 없는), 감정적이며, 과장되어 사실 전달의 측면보다 독자의 흥미와 욕구에 부응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보도를 선정적 보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다음과 같은 기사들 속에서 선정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선정적 보도는 이성보다 감정에 어필하고, 심미적·도덕적 충격을 주는 무모하고 무책임한 언론 행위이다. 선정적인 기호들 속에 갇힌 탈북자들에 대한 이미지는 그대로 대중들에게 전달되었고, 이미 신문 기사로 보도되어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기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는 언론의 윤리적 책임의 차원에서 보았을 때도 바람직하지 못한 양상이다.

특히, 민주사회에서 언론은 양식을 갖춘 시민들(informed citizen)이 사회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는 핵심 기관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해볼 때, 선정적 보도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은 뉴스 보도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이해하고, 각자 나름대로의 의견을 형성하며, 선거 등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는 사안에서 투표를 통해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뉴스가 선정적 내용으로 채워지게 되면, 민주사회의 이상은 그 전제부터 무너지게 된다. 독자인 시민의 행동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격정적인 선동에 의해 지배되고, 국가적 해결 과제 역시 사려 깊은 토론보다 자극적인 집단의식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커다란 논의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탈북자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는 대중들의 인식을 오도(誤導)하며 문제를 일으킨다.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자극적, 감정적, 외설적, 폭력적, 과장적” 방식으로 재현(represent)된 탈북자 사안은 마치, “자극적, 감정적, 외설적, 폭력적, 과장적” 오락거리를 접할 때와 마찬가지의 반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즉, 탈북자 사안을 ‘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접근하여 해결책을 모색해보고자 하는 보다 협력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보다, ‘나와 상관없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먼 ‘이야기’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게임 캐릭터나 스포츠 경기 팀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반응이라 볼 수 있다. 오락거리를 바라보며 일시적으로 감정이입이 되거나 몰두하고 있는 동안에 잠깐 주의를 집중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이고 심층적인 문제의식으로 연결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 유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잠시 흥미를 유발시키고 충동적 욕구를 자극시킨, 평소 흔하게 접하는 오락거리 중의 하나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신문이 선정적 보도를 멈출 수는 없을까? 신문은 대중들의 관심사를 보도하고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며, 여론을 형성하는 등의 공적 임무를 수행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사기업으로서 이익을 추구하는 목적을 가지기도 한다. 물론, 신문사는 사기업이라 할지라도, 언론으로서의 공공성이 선행 가치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신문 경영이 광고에 크게 의존하다보니, 신문 편집 또한 광고를 끌어오는 데 도움이 되도록 요구 받게 되고, 광고주들에게 매력 있는 신문이 되기 위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선정적인 보도를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언론의 선정적 보도는 자주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탈북자 관련 보도에서 나타난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탈북자 강제 송환 사안은 정부‧민간‧국제사회 구분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다. 모든 기사에서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의 생명이 달린 시급한 ‘인권’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경향으로 인해 대중에게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충격적이고, 딱한’ 흔해 빠진 사회면의 선정적인 ‘사건‧사고’ 기사들과 다를 바 없이 전달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보수 성향의 신문들이 이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 제시한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탈북자들의 인권 수호에 가장 적극적인 보수 신문(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서 선정적인 보도가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탈북자들을 대상화시키며, 주변화시키는 이러한 보도 경향은 탈북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더 악화시키고, 장기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탈북자들이 약자와 타자로 차별 받고 인권을 침해당할 여지를 주게 된다. 탈북자들을 가장 생각한다고 자부하는 신문들에서 막상 탈북자들에게 해가 되는 역설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안을 다룸에 있어서 마찬가지이겠지만, 특별히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기자들은 스스로 반성과 자기 성찰을 통해 언론인으로서 의무와 사명감을 자각하고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지성보다 감정의 욕구 충족에 바탕을 두고 정서에 호소하는 감각적 보도에 기댈 것이 아니라, 독자의 지성적 판단력에 의지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보도를 통해 사안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론부터 탈북자에 대한 선정 보도의 폐단을 시정하고, 탈북자들을 통일의 주역으로 인정하며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갈 때, ‘통일’이 소원으로 끝나지 않고 눈앞의 현실이 될 날이 가까워 올 것이라 믿는다. 아직은 이러한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나아지는 우리 언론의 변화를 기대해본다.

 

김단  jade4n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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