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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북한이해를 위한 몇 가지 관점송인호 변호사의 소명으로 통일다지기(2)

역사를 바라보거나 성경을 살펴볼 때, 각 시대를 살아가는 각 세대(generation)에게 시대적 소명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출애굽 세대에게는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소명이 있었고, 여호수아로 대표되는 여호수아 세대의 경우 가나안 땅에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소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각 세대가 각자에게 맡겨진 소명을 잘 감당했는지에 따라 그 후대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난 100여년의 우리나라의 역사를 살펴보면 역시 분명하게 각 시대의 소명이 드러난다. 세계사의 전환기에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국가의 새로운 질서를 형성했어야 하는 구한말 세대, 일제 치하에서 독립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지고 살아간 세대, 전쟁 속에서 나라를 지켜야 했던 세대, 극심한 가난 속에서 가난 극복과 경제 성장이라는 과제를 이루어야 했던 세대, 민주주의를 이 땅에 이루어내는 역할을 맡은 세대,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우리의 선배세대들에게 ‘풍요’와 ‘자유’라는 역사의 빚을 진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의 시대적 소명은 바로 ‘통일’임은 다언을 요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통일 문제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정면으로 바라보며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는 통일 문제 및 북한 문제를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로 바라보거나 의식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 속에서 통일 문제에 대한 고민과 관심은 나와는 너무 먼 문제라고 생각되어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시대사적인 파도는 결국 거대한 쓰나미와 같이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덮쳐올 것이다. 통일은 이제 시대적 사명, 아니 시대적 필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와 방법은 예측하기 어려우나 남북한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 격차가 10년 전의 15배 차이에서, 2010년 기준 20배 차이로 더욱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남북의 분단 현실은 변화될 수밖에 없으며, 북한의 3대 세습이 현 시대의 문명사의 흐름 및 하나님의 공의에 반하는 것임이 분명한 이상 북한 정권 역시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언젠가 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즉, 이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상관없이 통일은 역사적 필연인 것이다. 100여 년 전 조선왕조의 운명이 일제의 강제병합에 의해 그 종말을 앞두고 있던 시절, 그러한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그저 개인적 차원에서 일신의 안녕에만 몰두하고 있던 조선의 백성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제에 의한 조선왕조 멸망이라는 거대한 쓰나미에 그대로 휩쓸려 일제시대라는 치욕스런 시대 속에서 개인적 차원에서도 고통을 겪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역사적 필연으로 다가올 통일에 대해서도 깨어서 정면으로 바라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각자 개인의 삶에서도 쓰나미와 같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통일이 쓰나미와 같은 재앙이 될지, 마치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힘찬 파도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지는 우리가 역사적 흐름을 분별하고 깨어서 정면으로 시대적 현실을 직시하는지에 달려있다.

총체적 시각, 폭넓은 시각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북한 문제를 바라볼 때에는 총체적 시각, 폭넓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필자가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법률 강연, 특강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북한의 다양한 계층 출신의 약 2~3000여 명의 탈북자를 접할 수 있었다(현재 국내거주 탈북자 수가 2만 3000명 정도니 그 중 최소 10% 이상은 대면접촉을 한 듯하다). 과거 고난의 행군시절 평양에서도 식량난에 시달렸다고 하나, 그 중에서도 과연 식량난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을 정도의 고위직의 부모를 두고 어린 시절을 보낸 탈북자, 근무하던 직장 동료가 지하교회 교인이라는 이유로 잡혀가는 상황을 목격한 탈북자, 강제북송 경험을 직접 가지고 있는 탈북자 등 우리 사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출신성분(북한말로 ‘토대’)에 따라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다른 다양한 북한이탈주민들과의 접촉은 북한 사회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앞으로 통일에 대한 연구에 있어서 기본적인 방향성을 형성하는 데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선별적 사고방식의 한계, 그리고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출신계급(토대)에 따라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와 입장이 다른 북한 주민에 대한 이해 부족, 필연적으로 북한 정권의 시각을 담고 있을 수밖에 없는 북한의 문헌 중심 연구의 한계, 이러한 원인들이 북한 및 통일 문제에 대한 오판과 오류, 남남간의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러한 오판과 갈등의 이유 중에서 정치적인 입장에 따른 선별적 사고방식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하겠으나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해 부족 역시 중요한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1960년대 말 전체 주민을 3개 계급, 54계층으로 분류하고, 주거, 배급, 승진 등에서 총체적인 차별을 두는 계급제 사회로 40여년을 지내왔다. 또한 북한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 자신의 거주 지역 이외의 지역에 대한 정보 또한 현저히 부족한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북한주민이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계층적 위치에 따라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와 충성도가 현저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차이는 우리 남한 주민 상호간의 각자 속한 경제적 계층에 따른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 차이를 가져온다. 한마디로 북한 전문가라고 할지라도 5~6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핵심계층을 주로 접하는 사람들의 북한에 대한 판단과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밑바닥 생활을 하는 1000만 명의 기층 민중을 접해온 사람들간에는 북한에 대한 이해도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이탈주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며 그들이 북한에서 속했던 계층에 따라 그들이 들려주는 북한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총체적으로 이해해야 북한 사회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각자의 정치적인 선입견을 벗어버리고 총체적인 시각의 관점에서 북한 및 통일 문제를 바라보게 된다면 우리 사회 내부의 북한에 대한 입장차도 상당부분 해소되리라고 본다.

 ‘공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죄를 지극히 미워하시고 ‘공의’를 세우기를 원하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나라와 권력자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관점에서 심판의 대상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의한 정권은 비록 그 심판의 시기는 달랐으나 분명히 하나님의 역사적 심판을 받았으며, 이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 공의의 실현이었다. 따라서 북한정권이 계속해서 민초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몰두하여 이들을 핍박한다면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는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 일가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고, 마치 종교와도 같은 주체사상에 빠져있으므로 이를 존중하여야 하며, 이러한 남북간의 차이를 인정하는 전제로 남북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적어도 고난의 행군 이후의 북한 주민들의 변화된 상황을 오인한 주장이다. 폐쇄사회와 유년기부터의 일방적인 교육으로 과거에 김일성에 대한 충성심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은 사실이었다고 볼 수 있으나, 고난의 행군 이후,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의 남북교류의 효과로 인하여 대다수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 체제의 실상에 대해 상당 부분 깨달은 상황이다. 이를 두고 10여 년 전에 북한을 탈출한 어느 탈북자는, “자신은 탈북한 후에도 상당기간 김일성, 김정일에 대해 극존칭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불안감과 어색함을 느꼈었는데, 최근에 북한의 현지 주민이 핸드폰으로 자신과 통화하면서 김정일 욕을 하는 것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교육 체제가 심각하게 붕괴되어 취학연령대의 세대들에게 기존의 주체사상 등 체제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적어도 앞으로 북한의 젊은 세대들은 결코 북한의 기성세대와 같지는 않을 것임을 예상하게 해준다고 할 것이다. 이른바 장마당세대 등 시장경제의 맛을 보았으나 화폐개혁으로 자신들의 부를 국가에 강제로 빼앗긴 세력들도 결코 북한 정권에 호의적일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일부 시각은 북한이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체제로서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으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환상을 품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북한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에서 한참을 벗어나 이른바 유교적 봉건 왕조체제로 변화했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북한은 1972년 헌법 개정을 통해 지도이념으로 ‘맑스-레닌주의’ 부분을 삭제하고 대신 ‘김일성 주체사상’을 명시하였으며, 1998년 헌법에서는 마치 용비어천가처럼 김일성의 업적을 헌법 서문에 기재하고 김일성헌법임을 선포하였을 뿐만 아니라, 2009년 4월 9일 또 한 번의 헌법 개정을 통해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하고(북한 헌법 제43조), 북한이 지향하는 사회체제가 이념으로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김일성이 주장한 주체사상임을 명시적으로 선언하였다. 뿐만 아니라 국방의 목표와 관련하여 ‘혁명의 수뇌부 보위’를 그 목표로 추가하여 국방의 목표 중 ‘혁명 수뇌부 보호’가 인민을 보호하는 것과 대등하거나 오히려 더 중요하다고 여겨질 수 있도록 하였다(북한 헌법 제59조). 즉 북한은 이제 공산독재도 아니고 오로지 ‘김일성 봉건왕조’에 불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위와 같은 주장은 가치에 대한 판단이 생략된 주장이다. 아무리 통일이 우리의 목표라고 하더라도 김일성 왕가의 존속을 인정하면서 이루는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우리가 그동안 추구해온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로 갔는가? 일반적으로 화해란 좋은 말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 또는 공의의 문제에서 화해는 불의에 대한 타협에 불과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점들을 모두 이해하면서도 북한의 인권 등 공의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 적절하지 않으며 남북교류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해주며 변화를 도모해가자는 주장도 있다. 대표적으로 북한인권법의 제정 취지에는 동감하나 방법론상 드러내놓고 강하게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와 같은 분단을 겪은 독일의 예를 살펴보면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다.

서독은 1961년 8월 13일 동독이 베를린 장벽을 건설하고 탈출자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자 잘쯔기터(Salzgitter)에 동독인권기록보존소를 설치하여 1990년 통일시까지 약 4만건의 동독 인권침해사례를 수집하였다. 1972년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정치적, 법적으로 동독인권기록보존소의 존폐에 대해 서독내부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동독인권기록보존소의 존재는 동독주민들에게 자신들이 겪는 침해를 서독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일종의 심리적 기대 효과, 동독 집권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인권침해행위를 서독에서 기록하고 있다는 부담감에 따른 일종의 경고적 효과가 있었음이 밝혀진 바 있다.

남북관계에 적용해보아도 북한 체제가 안정적일 때에는 이러한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북한 기득권층을 더 내적으로 공고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현재와 같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나중에 남한 위주로 통일될 때의 불이익이 두려워 극단적인 인권탄압정책의 집행자의 위치에 서는 것을 서로 피하려고 할 것이다(실제로 후술하는 바와 같이 독일 통일 과정에서 당시 18년간 집권해온 동독공산당 서기장 호네커는 동독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진압을 주장했다가 공산당 내부에서 거부당하여 실각한 바도 있다). 즉 생존권에 대한 배려를 통한 점진적인 변화 정책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나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러한 정책과 양립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며, 북한인권에 대한 지속적 문제제기 역시 그 효과가 즉각적이진 않을 수 있어도 분명히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한편에서는 북한 주민들은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으므로 자체적으로 민주화를 주장할 가능성은 없으며 북한이 민주화되려면 많은 북한 민중들이 희생해야 하는데 북한 민주화를 외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위와 같은 주장의 취지는 충분히 경청할 만한 것이고, 북한의 민주화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이지 우리가 인위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기는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보편적인 역사의 흐름을 살펴볼 때 시기의 문제일 수는 있으나 결국 북한도 민주화의 열기는 피해가기 어려우며 오히려 통일 이후를 생각할 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1970년대 스페인, 그리스, 1980년대 중반의 필리핀, 1987년의 대한민국과 대만, 그리고 1989년의 동유럽과 동독, 러시아, 2011년의 중동에 이르기까지 민주화는 각 국민의 자발적인 저항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민중의 저항 없이 독재정권이 스스로, 점진적으로 민주화를 이룬 예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한 중동 지역에서도 2011년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던 사실, 그리고 과거 조선 왕조 시절에도 동학농민혁명 등 민초들의 혁명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압제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기한 것이지 꼭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아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국민이 스스로 민주화를 이루어냈을 때, 그 국민들은 비로소 진정한 주권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임하면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무혈혁명으로 동독 공산정권을 몰락시킨 1989년 10월의 동독 민주혁명처럼 북한 역시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으며, 그렇게 될 때 북한 주민들이 통일된 나라에서 2등 국민이 아니라 대등한 국민으로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며 준비할 필요도 있다.

성경을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공의에 대적한 나라, 정권들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반드시 패망하였다. 비록 인간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달라 그 시기를 예측할 수 없고, 오래 참음과 인내가 필요할 수도 있으나 그러한 성경적 사실과,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이렇게 북한정권 및 북한의 정치 체제에 대해 우리는 ‘공의’의 관점에서 분명한 ‘선악’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어야 한다. 이는 ‘남북화해’와 ‘상호이해’, ‘양보’ 등의 어설픈 말로 타협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관점,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우리가 마냥 북한정권에 대해 ‘공의’에 기반을 둔 ‘거룩한 분노’차원에서 머무를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하며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적 개입을 신뢰해야 한다.

‘공의’의 관점만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남북교류협력이 악한 체제를 유지시켜주므로 이를 중단해야 하며 조선그리스도연맹이나 북한의 봉수교회 등과의 교류도 무의미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정권의 배급제를 다시 회복시켜 주민에 대한 통제를 강화시킬 우려가 있는 북한정권에 대한 식량지원 또는 장기적 비축 및 군량미로의 전용이 가능한 쌀류의 지원은 가급적 피해야 하겠지만 북한 주민에 대한 직접적 지급, 특히 북한의 유아들에 대한 식량, 의약품 등에 대한 직접 지원은 향후 통일을 대비해서도 시급히 필요한 일이다.

또한 1960년대 말 이른바 ‘접촉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eherung)’로 상징되는 서독의 동독에 대한 교류협력정책이 결국 동독 주민들을 깨어나게 하고 동독공산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고취시킨 것처럼 남북간에도 그 방법은 신중하고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으나 교류협력자체는 지속될 필요가 있다.

접촉을 통한 변화의 폭과 방향은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일례로 1980년대 북한은 남한의 학생시위를 수시로 TV를 통해 방영하며 북한체제의 우월성을 교육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당시 북한의 TV 보급률에 비추어 볼 때 이는 북한의 고위층에 대한 홍보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북한 사회의 엘리트 대학생으로서 TV를 시청했던 다수의 북한이탈주민들이 공통적으로, 북한 정권의 그러한 홍보 목적과는 달리 TV를 시청하며 화면에 나타난 남한 대학생들의 옷차림, 시계, 버스, 잘 포장된 도로 등을 보며 그들은 북한 정권의 선전과는 달리 남한이 북한보다 잘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지각을 뛰어넘는 접촉을 통한 변화의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고난의 행군 직후까지만 해도 북한 특유의 폐쇄적 사회 및 교육으로 인해 북한의 고위층을 제외한 일반 북한 주민들의 경우에는 남한의 풍요와 자유에 대한 정보가 차단되어 있었으며 북한정권에 대한 막연한 충성심이 상당한 정도로 존재했었으나, 지난 10여 년간의 남북교류를 통해 남한의 풍요와 자유에 대한 정보가 북한 주민들에게 전반적으로 퍼졌고 이로 인해 북한 주민들의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현저히 낮아진 것도 접촉을 통한 변화의 하나의 효과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담대한 선제적 교류를 할 필요도 있다.

북한의 봉수교회, 칠골교회가 북한 정권에 의한 어용교회, 가짜교회임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담대한 선제적 교류를 통해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조그련과의 교류를 통해 남한의 목회자들이 봉수교회, 칠골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평양체육관에서 평양의 고위층이 대거 참여하도록 하여 찬양 집회를 열면 어떻게 될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서 예배에 한 번이라도 참석하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는 체제 선전을 위해 북한 정권이 그러한 예배를 허락해주고 평양 시민들을 강제로 예배에 참여하도록 한다면 이는 복음 전파에 매우 소중한 기회라고 할 것이다. 이들이 당성이 강하고 거짓 신자라고 하더라도 이러한 예배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령의 불길이 강하게 임한다면 충분히 그러한 기적이 일어나리라 믿는다. 이러한 역발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을 신뢰하는 담대한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하며, 이미 독일 통일 과정 가운데 검증된 바 있다.

1989년 봄 이래로 동독 민주 혁명의 성지와 같은 역할을 하던 니콜라이 교회에서 열리는 ‘월요기도회’에 동독의 민주화를 열망하며 참석하는 인원이 점차 많아지자 동독정권은 비밀경찰로 알려진 국가보안부(슈타치, Stasi) 요원들을 예배에 참석시켜 이를 감시하고자 하였으나 이들 비밀경찰들은 오히려 담임목사인 크리스티안 퓌러(Christian Führer) 목사의 설교를 반복적으로 들으며 감화 감동되기 시작하였고 동독 민주혁명의 분수령이 된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찌히 시위 당일 날에도 이들 수 백 명의 비밀경찰들은 예배에 수동적으로 참여만 하였을 뿐 예배 자체를 방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당일 밤 니콜라이 교회를 나선 2000여 신도들을 필두로 하는 이른바 라이프찌히의 수만 명 시위대를 진압하려고 대기하였던 군·경찰 병력의 자진 철수라는 기적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9일 후인 1989년 10월 18일, 18년간 동독정권을 지배해온 에리히 호네커가 동독사회주의통일당 내부의 반발로 실각하게 되어 드디어 동독정권이 무너지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전권을 신뢰하고 나아간다면 이러한 기적이 이 땅에도 이루어지리라 확신한다.

또한 북한 정권 내부의 남은 자 7000명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품을 필요도 있다. 아합왕의 치세 하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남은 자 7000명을 예비하셨다. 따라서 북한정권의 압제 하에서도 동일하게 남은 자들을 예비하셨을 것임을 우리는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끝으로, 스스로 태어날 장소를 선택할 수 없는, ‘출생’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로 인하여 북한에 태어나서 그 체제하에서 구조적인 핍박을 받으면서도 때로는 북한정권에 협조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버린 북한 주민들을 긍휼하게 여길 필요가 있다. 또한 스스로 자신들이 얼마나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과 심판을 목전에 두고 있는 북한 정권의 핵심부에 대한 긍휼의 시선, 역시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마음 한 구석에 잊지 말아야 할 자세라고 할 것이다.

언뜻 보면 이렇게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이 마치 양비론 또는 양시론과 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단순히 기계적 균형을 의미하는 양비론 또는 양시론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철저히 하나님 성품에 기초하는 것이고 그분의 전능하심과 역사를 운행하시는 절대적 주권에 대한 철저한 신뢰와 담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공의를 강조한 나머지, 또는 북한정권의 음모와 체제를 두려워한 나머지 북한을 사탄과 대등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해서도 안되며, 사랑을 강조한 나머지 죄의 문제를 간과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1982년 1984년 1985년 3년에 걸쳐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의 3명의 구 소련 최고지도자들의 생명을 가져가심으로 당시 50대 중반의 개혁성향의 지도자인 고르바초프를 갑작스럽게 등장시키셔서 결국 독일 통일을 이끄신 것처럼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남북통일이 독일통일보다 먼저일 것이라는 독일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과 같은 독일통일을 이루시기도 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 믿음, 그분의 자녀들의 기도와 고통의 울부짖음에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말씀에 대한 절대적 신뢰, 그분의 때와 방법을 분별하는 지혜와 깨어있는 영안, 뱀처럼 지혜로우나 비둘기처럼 순결한 담대한 행동, 이것이 우리가 취해야할 통일에 대한 시각인 것이다.

   
 
이렇게, 통일이 우리 세대의 시대적 소명임을 분명히 자각하고 깨어서 정면으로 또한 총체적으로 바라볼 때, ‘공의’의 관점에서 선과 악에 대한 분명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면서도 ‘사랑’의 관점을 마음의 중심에 품고 그분의 전능하신 주권적 개입을 신뢰하는 열린 마음과 확고한 믿음으로 바라볼 때, 적어도 우리 크리스천들 사이에서는 정책적 차이, 역할의 차이는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서로를 불필요한 증오와 불신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하는 ‘남남갈등’은 사라지고, 북한 주민들의 ‘자유 회복’, ‘생명 회복’, ‘복음 전파’를 위한 동역자의 마음, 하나된 마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리라 믿는다.

<한동대 교수, 변호사>

송인호  ihsong@handong.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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