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재(에이유온그룹 회장)
▲ 이은재(에이유온그룹 회장)
국제연합(UN) 산하기구인 유엔개발계획(UNDP)에서는 매년 인간개발지수(HDI) 순위를 발표합니다. 각 국가의 교육수준, 1인당 소득, 평균수명 등 삶의 질 전반을 평가하는 인간개발지수 순위는 소위 ‘선진국 순위’로 불리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은 지난 수년간 인간개발지수 순위에서 26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가, 유럽 경제 위기의 영향으로 2011년 무려 14단계를 뛰어올라 1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2012년 15위로 잠시 순위에서 밀렸던 대한민국은 2013년 다시 12위에 입성하게 됩니다.

이는 상당히 높은 순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상위 30위권 안에 있는 선진국들은 그 격차가 매우 근소하여 순위가 올라가고 떨어지는 것이 매우 흔한 일이라고 하니, 이 순위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 반열에 진입했음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특히 인간개발지수의 평가기준을 제외하더라도, 인터넷 보급률, 대학진학률, 문맹률 등에서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월등히 우수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많이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완장 찬 사람들(사회지도자층)의 평균적인 의식수준의 부족과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부재가 그것입니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일까?’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민낯을 훤히 드러낸 일부 공무원 및 사회지도층의 의식수준과 행동은 우리 사회를 좌절과 절망 속으로 함몰되어 가게 만들었습니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널리 쓰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레스)만큼 의무(오블리주)를 다해야 한다’는 프랑스의 격언입니다.

초기 로마 사회에서는 고위층의 공공봉사와 기부, 헌납 등의 전통이 강하였고, 이러한 행위는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자발적이고 경쟁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귀족 등의 고위층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전통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더욱 확고히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현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약 300년 동안 만석꾼의 재산을 유지하면서도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데에 주력을 두고 구제에 힘쓴 ‘경주 교동 최부자 집안’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최씨 집안은 권력을 멀리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했으며,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고 겸손한 생활을 하며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사회지도층의 평균적인 의식수준과 행동이 최부자 집안사람들과 같다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완장만 차면 목과 어깨에 힘을 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복과 완장이 주는 매력은 대단한 모양입니다.

많이 좋아지긴 했어도 아직 우리나라에서 이런 모습이 생소하지 않고, 오히려 익숙하기까지 하다면 제가 혹은 너무 예민한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은행에서, 병원에서, 관공서에서, 아파트 정문에서, 주차장에서, 또 사옥이 있는 회사를 방문할 때 등에서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말입니다.

매년 11월 사법고시 최종합격자 발표 후에는, 합격자가 졸업한 학교와 합격자의 고향 대로변에 큼지막한 현수막이 내걸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학교의 영광이요, 동네의 영광이고 가문의 영광이기도 하겠지요.

사법고시 뿐 아니라 모든 고시에 합격했을 때 합격 당사자와 가족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많이 기뻐하고 부러워합니다. 필자는 이 기쁨과 부러움의 실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공무원은 ‘국가 또는 지방 공공 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으로서 사람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나 감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이 부여해준 권한을 자기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아야 합니다.

오히려 국민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도와야 하지요. 옛날에는 관리의 승진을 고과제도에 따라 성적을 매겨 결정했습니다. 고과는 덕행이 있는지, 행실이 청렴하고 신중한지, 일 처리는 공평무사한지, 업무에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은지 등의 항목을 두어 점수를 매겼습니다.

공직자 윤리법은 공직자의 재산등록, 선물신고, 퇴직공직자의 취업제한 따위를 정해 놓은 법률로서 ‘공직자의 부정행위를 방지하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여 깨끗한 공직 사회를 구현하며, 공직자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그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봉사’라 함은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따르게 하는 힘으로서의 공직자의 권위는 필요하지만, 남을 지배하려고 하는 권위주위는 철저히 지양해야 합니다.

권위주위를 내포하고 있는 대표적 단어인 ‘영전’과 ‘전관예우’를 살펴보면, ‘영전’은 같은 직급이지만 상급기관에 발령을 받았을 때나 전보다 더 좋은 자리나 직위로 옮겨 갈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더 좋은 자리’는, 즉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뜻합니다.

‘전관예우’란 ‘고위 관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같은 예우를 베푸는 일’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잣대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필자는 가진 자, 있는 자, 사회지도자들이 주어진 권한을 자기를 위해서 쓰는가, 타인을 위해서 쓰는가가 가장 핵심적인 잣대라고 생각합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돈, 명예, 권력을 중시하는 사회 풍조 속에서는 아마 이 말이 공허한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등급 단계, 계급과 상통하는 ‘직급’이라는 단어보다 마땅히 하여야 할 본분이라는 ‘직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일 것입니다.

공직자로서 첫 출발을 하든, 회사원으로 첫 출발을 하든, 일을 하는 사람은 의무감이 아닌 사명으로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는 하면 할수록 힘들고 괴로운 것이요, 사명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고 보람을 느끼는 것입니다.

또한 지도자는 권위(權威)가 아니라 덕(德)으로 일을 처리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덕’이란 강자가 약자를 위하여 자기의 권한을 다 쓰지 않는 것이요, ‘다스린다’는 말은 지배한다는 것이 아니라 잘 보살펴 편안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필자는 얼마 전 한 은행을 처음 방문했습니다.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있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있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동안 다른 은행에 갈 때는 제가 ‘고객’이라는 생각보다는 무엇인가 ‘빚진 자’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행원을 대할 때에는 마치 글 처음에 언급했던 ‘완장 찬 사람’을 대하는 기분마저 들더군요. 더구나 제가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정보가 모 카드사 시스템에 입력되어 있어 괜한 오해와 불이익을 받으며 살아온 것입니다. 이번 은행 방문 전까지는 저도 그런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보통 은행원은 해당분야의 전문가이고, 고객은 그 반대입니다. 하지만 비전문가인 고객들은 전문가에게 만족할만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은행업무가 워낙 바쁜 탓도 있지만,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은행방문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런저런 상담거리들에 친절히 응대해주던 직원은 모 카드사에 잘못된 정보가 등록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직접 나서 문제해결까지도 도와주었습니다.

해결과정과 결과, 그리고 3년여 동안 저를 괴롭혔던 오류정보의 실체까지 확인하고  나니 속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제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저를 괴롭혔던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처리한 그 날 하루는 매우 상쾌했습니다.

이러한 처리과정은 그저 기본이라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아니 제가 이번에 만난 분 외에 다른 많은 훌륭한 직원 분들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은행과의 거래에 있어서 언제나 약자일 수밖에 없는 저를 배려해서 문제 상황을 하나하나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준 그 직원에게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SC은행 오형우 과장님입니다. 정말 고마우신 분입니다. 비전문가인 고객을 배려해서, 갖고 있는 정보를 나누고, 해결과정을 함께 한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강자의 자리에 설 수 있으면서도 한 발짝 아래에서 눈높이를 맞춰주어 참으로 고맙습니다.

이것이 바로 ‘덕’이 아닐까 합니다. 모든 사회지도층들이 완장차고 거들먹거리는 모습보다는, 조금 더 희생하고, 조금 더 눈높이를 맞추고, 조금 더 원칙에 입각해서, 조금 더 약자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모습이 ‘당연한’ 모습이 되는 사회가 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이러한 모습들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직업을 떠나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의 실천과 노력이 분명 큰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실천하는 여러분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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