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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신뢰하는가?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4.12.04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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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로 시작한 올해의 남북관계
금년 1월 1일 김정일 제 1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북남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할 것이다. 남조선 당국도 북남관계 개선으로 나와야 한다”고 촉구했다. 1월 6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언급으로 통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아울러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담화문을 통해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할 것임을 밝혔다. 연초 남북한 지도자의 이 같은 언급으로 2014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는 최근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각종 언론매체들이 ‘통일대박론’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으며, 통일전문가들은 통일비전과 통일이 주는 혜택을 설파하는 일에 분주했다.

3월 28일 박 대통령은 통일독일의 번영을 상징하는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드레스덴구상)을 발표했다. 드레스덴구상은 대북 인도적 지원, 북한 민생인프라 구축, 그리고 남북한 동질성 회복이라는 3대 대북제안을 담고 있다. 이를 실현해 나가기 위해서는 교류협력의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새로운 흐름이 점쳐졌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3월 28일 독일 작센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 교수 학생 등을 대상으로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

박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간의 생태통로, 민생통로, 그리고 문화통로를 제안함으로써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의지를 지속적으로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9월 24일 UN총회의 연설에서도 이를 재차 강조하고 DMZ의 평화적 이용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통일대박 담론의 전개와 통일의지의 지속적 피력은 광복 70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현실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젊은 세대들은 장기간의 분단체제에 점차 익숙해지고 있으며, 통일의식의 변화추이도 긍정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역대 대부분의 정권들이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단기적 목표를 중시했던 점에 비해 박근혜 정권은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제기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통일준비위원회의 출범 역시 의미가 있다. 통일은 미래 한국의 발전과 운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국민적 합의는 필수적이며, 정부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준비 기능의 확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리 맞은 남북관계의 현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움직임과 다른 남북관계의 현실이다. 지속적인 남북관계 개선 및 통일의지의 피력에도 불구하고 집권 2년차를 마감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은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남북관계 성적표는 이명박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의 성찬은 남북관계를 냉각상태에 묶어 놓았다. ‘대박론’과 통일준비위원회의 출범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지만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은 따르지 않았다. 대박의 실현도, 통일의 준비도 북한을 제쳐놓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금년 남북한 양측 모두 남북관계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했으며, 실행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당국은 북한에 대한 불신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고 북한은 명분과 실익을 저울질하다 대화의 문을 닫아버렸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북한주민들의 대남 인식은 악화되고 있으며, 적개심이 오히려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지원과 남북교류가 활성화되었던 시기와 정반대의 결과이다. 북한주민의 대남친화력과 한국에 대한 신뢰가 통일의 기본적인 전제라는 점은 독일통일의 가장 큰 교훈이다.

지난 5월 일민국제관계연구원이 전 세계 외교안보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반도 통일의 가장 큰 장애’를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의 준비 미흡’이 ‘북한 정권의 통일 반대’에 이어 가장 많은 응답률을 보였다. 북한변수를 제외하고 한국 정부의 준비가 미흡한 것이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이다. 세월호 여파로 7월 15일 지각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는 ‘그들만의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어느 북한전문기자가 학술회의 토론에서 한 발언이 상징적이다. “통일대박론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연구자들일 뿐이다.” 모든 통일 관련 정부부처와 전문가들이 눈코 뜰 새 없이 통일대박을 설파하고 거의 매일이다시피 통일준비위원회 관련 회의들이 개최되고 있는 이면의 현실이다.

전략적 협상력의 부재
북한의 인천아시안게임 참가는 남북관계에 새로운 모멘텀을 형성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였다. 특히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몇 차례에 불과한 최고 수준의 ‘공화국성명’을 통해 인천아시안게임 응원단 파견을 발표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자신들의 의지를 표명했다. 장기간 교착국면을 이어온 남북관계를 고려할 때 응원단 파견을 새로운 남북관계 형성의 기회로 활용할 소지가 컸다. 그러나 응원단의 규모 등 사소한 문제들에 대한 이견으로 북한응원단 파견은 성사되지 않았다. 아시아올림픽평의회 45개 회원국 모두가 참가한 인천아시안게임의 거리에서 이상하게도 만국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인공기 게양은 경기장, 시상식장, 선수촌으로 제한되었다. 인공기 게양을 둘러싼 논쟁 때문이라지만 이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규정에 어긋나며, 정부가 그동안 남북관계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국제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일에 사실상 김정은의 특사로 볼 수 있는 황병서 일행이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했다. 방문단에 북한 실세 최룡해와 남북협상 총책인 김양건까지 포함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남북협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다. 북한의 핵심실세들과 우리 측 외교안보책임자들과의 회동을 통해 남북고위급접촉 재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됨으로써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가시화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북전단 살포문제라는 장애에 부딪쳐 남북고위급 접촉은 무산되었다. 북한의 집요한 전단 살포중단 요구에 정부는 일관되게 법적인 근거의 부재를 이유로 민간단체의 행위를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결국 북한은 고위급 접촉을 포함한 일체의 남북대화를 중단했다. 그 후 정부가 막을 수 없다고 했던 대북전단 살포는 어느새 자리를 감추었으며, 관련된 민간단체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이미 남북고위급 접촉이라는 전략적인 채널이 끊어진 이후의 일이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대한 신뢰회복이 시급하다
UN이 북한의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고 책임자를 제재할 것을 안보리에 권고하는 내용의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키자 북한이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추가 핵실험 위협을 포함하여 강경한 대외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남북관계 역시 이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며, 따라서 경색국면이 장기화활 가능성도 있다.

우리가 북한을 적극 관리하지 않을 경우 그야말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일을 피할 수 없다. 분단구조는 심화될 것이며, 지속적인 국가발전을 도모해 나갈 전략도 제대로 짤 수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남북관계가 계속 대결상태로 간다면 ‘통일대박’도 ‘신뢰프로세스’도 ‘드레스덴구상’도 모두 공허한 구호에 그치게 될 공산이 크다. 2015년 분단 70주년을 앞두고 남북관계 해법을 적극 모색해야 할 이유이다.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협상을 위한 포석을 깔아두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일방적 양보가 아니라 협상의 주도력을 발휘하는 일이다.

개성공단사업의 교훈은 남북관계가 일정한 임계점을 넘을 경우 자율적인 관성을 유지하게 된다는 점이다. 북한은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중단한 개성공단사업의 재개과정에서 전례 없이 유연한 협상태도를 보였다. 개성공단은 북한에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외교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불신관계에 있는 북한을 협상의 테이블로 유도하고 이를 통해서 가능한 분야에서부터 신뢰를 형성해 나간다는 것이다. 즉, 신뢰가 없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당국의 행보는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 동안 남북대화 과정에서 당국은 북한이 먼저 신뢰를 보여야 협상하겠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경향을 보였다.

한반도신뢰프로세스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는 단계별 로드맵에 기초하기보다는 실현 가능한 남북관계의 형성에 주력하며, 신뢰를 형성하는 프로세스 자체를 중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무작정 기다리는 시간 동안 북한 주민의 인권과 민생의 문제가 심화되며, 이들의 대남 인식 역시 악화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지속적인 협상과 남북관계의 진전과정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는 전향적인 정책의 구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북한에 비해 다양한 협상의 수단과 자원을 가지고 있다. 단기적인 전술적 성과에 집착하는 북한과 달리 통일을 지향하는 중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전략적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 스스로 한반도신뢰프로세스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실현가능한 남북관계 형성의 대안을 마련하고, 북한주민의 인도적 위기해소와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과감하고도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joes@peacefoundati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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