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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첫 출근하던 날유코리아뉴스 기획 시리즈 통일의 추억(1)

2004년 광화문에서 개성공단으로 출퇴근 버스가 처음으로 시행될 때 개성공단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이때 개성공단은 땅만 파고 있는 상태였다. 직원들 숙소며 식당은 모두 컨테이너였다. 1단계도 다 완성되지 않은 지금의 개성공단이 3단계까지 다 완성되었을 때의 변화된 모습은 어떨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 2004년 개성공단 출근하던 날. 뒤로는 숙소인 컨테이너 박스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왼쪽이 필자. ⓒ정성혜

안타깝게도 2010년 5·24조치로 더 이상의 진척은 없지만, 10년 동안 기업체 수는 8배, 생산액은 30배 넘게 증가하면서, 개성공단은 폭풍 성장을 이뤘다. 지난해 한때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보루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15개 업체가 첫 입주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 2004년 6월 14일. 6개월 만에 첫 제품이 생산되면서 본격적인 개성공단 시대의 막이 올랐다. 그로부터 10년, 개성공단은 규모나 매출 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기업체 수는 15개에서 125개로 늘었고, 북한 근로자 수도 6000명에서 5만 2000여 명으로 껑충 뛰었다. 2005년 1,5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생산액은 2012년 4억 7000만 달러로 서른 배 넘게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누적 생산액은 23억 달러, 방문 인원도 94만 명에 달한다. 독일의 바늘 제조회사가 외국 기업 최초로 개성공단에 영업점을 내는 등 국제화도 서서히 추진되고 있다.

이렇게 남북교류경협은 남과 북의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고 있음을 증명하는데도 '퍼주기'
식으로 일반 국민에게 인식되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언론, 정부, 정치인 등 남북경제협력을 원하지 않고 남북의 분단을 이용하려는 세력 때문 아닐까.

그렇다면, 경제만이 아닌 다방면에서 통일의 길로 가는 법을 찾아야 하고 하나하나 집중력 있게 실천하고 이루어나갈 때 통일을 원하지 않는 세력들의 터무니없는 논리는 저절로 무너질 것이고, 통일의 길은 마침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교류경협이 나의 천직이고 그 길을 가려고 했던 게 10년이 지나가고 있다. 이 마음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을 텐데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길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하루빨리 온 국민이 우리 경제가 살아날 길은 남북교류경제협력이고 북은 대화와 타협의 대상임을 분명히 알았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다.


<통일의 추억> 글을 보내주십시오.

남북 교류·남북 화해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이나 감격, 그리고 꼭 북한 땅에 가거나 북한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통일의 감격에 가슴이 벅찼던 한때, 사건, 소감 등을 적어보내주시면 됩니다. 아울러 그 당시 사진이 있으신 분은 사진도 같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원고를 보내주신 분들께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던지고 있는 김기석 목사님의 최신 저서 『아슬아슬한 희망』을 우송해 드립니다. 책은 선착순 10명으로 제한합니다. 원고분량은 제한이 없으며 보내실 곳은 ukoreanews@gmail.com 입니다. 원고를 보내실 때 책을 받으실 주소도 함께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원고 마감시간은 당분간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 겨우 내내 계속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독자들의 관심이 그것을 좌우하겠지만요. -유코리아뉴스 드림

정성혜  ilovekumga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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