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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는 분경(奔競)을 낳는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라는 말처럼 정치에서 인사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인사 문제와 관련하여 요즘은 ‘낙하산’이나 ‘보은인사’가 자주 거론되지만, 조선 시대에는 ‘분경(奔競)’이란 말이 자주 거론되었다. ‘분경’이란 재상이나 권문세가를 찾아다니며 엽관 운동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조선 초기에는 이러한 분경을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특히 태종은 분경 금지를 강조하여, 삼군부와 사헌부로 하여금 정승들의 집 앞에 서리를 잠복시켰다가 수상한 자가 오면 무조건 잡아다 조사하게 하였다. 그 결과 분경으로 인해 곤장을 맞거나 파직되는 사례들이 제법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세종과 문종 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권문세가 찾아가 청탁하는 분경을 처벌하기도
단종 대에는 사간원의 청으로 의정부 당상과 대군들의 집을 찾아 분경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분경 금지를 보다 강화한 것이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대군가의 분경을 금하니, 이것은 대군들을 의심하는 것이다.”라면서 반발하였다. 결국, 대군과 의정부 당상 집의 분경 금지는 취소되었다.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분경 금지 조치를 완화하였다. 세조는 “분경을 금함은 본시 어두운 밤에 청탁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붕우·친척·이웃이 경조(慶弔)하며 맞이하고 전송하는 예(禮)는 인정(人情)상 없어서는 안될 것인데 이를 일체를 금지하니, 이것은 사람의 도리를 끊는 것이다. 금후로는 재상의 집에서 종적을 비밀히 하는 자 외에는 금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였다. 종 2품 이상인 재상의 집에 친구, 친척, 이웃이 경조의 인사차 드나드는 것은 막지 말라고 한 것이다.

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예종은 세조와는 달리 분경을 강력히 단속하고 나섰다. 예종은 직속 무관인 선전관(宣傳官)들을 불시에 종친과 재상들의 집에 보내 분경하는 이들이 있으면 잡아오라 명하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함길도 관찰사 박서창이 보낸 김미라는 사람이 신숙주(申叔舟)의 집에서 잡혔다. 신숙주는 세조 대에 영의정을 지내고, 예종 대에 들어와서도 권력 실세인 원상(院相)의 지위에 있었다. 신숙주는 곧 대궐에 들어가 임금에게 “박서창이 글을 보내 저를 위문하고 아울러 표피(豹皮) 한 장을 보냈는데, 신이 이를 물리쳤고, 그 사람이 미처 돌아가지 아니한 상태에서 붙잡혔습니다.”라고 변명하였다. 이에 예종은 신숙주에게 “경의 허물이 아니다. 박서창의 잘못일 뿐이다.”라 말하고, 박서창만 처벌하도록 하였다. 열여덟 살의 예종은 마흔한 살의 권력자 신숙주 앞에서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적절치 못한 인사가 분경을 심화시켜
예종이 즉위한 지 13개월 만에 세상을 뜨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한명회와 신숙주와 같은 실력자들은 예종 때 강화된 분경의 제도를 세조 때의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해 적극 나섰다. 결국, 성종은 분경 금지의 범위를 세조대의 수준으로 되돌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성종 대에 반포된 『경국대전』의 분경 금지 조항을 보면, 그 범위를 이조와 병조의 당상관, 도승지와 좌부승지 정도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도 연산군과 중종 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사문화되어 갔다. 『중종실록』을 보면, 사관은 이렇게 기록하였다. “지금 관직을 구하는 모든 사람이 분경하는 것이 풍습이 되어 재상들에게 청탁하면서 뇌물 주는 일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노비와 전토를 서로 다투어 권문에 바치고도 조금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사를 담당하는 관청에는 청탁하는 쪽지가 구름처럼 모여든다.”

18세기 들어 영조는 『속대전』을 편찬하면서 분경 금지 대상을 더욱 축소시켰다. 이 또한 19세기 세도정치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사문화되었다. 19세기 중엽, 실학자 최한기는 『인정(人政)』이란 책에 “인재를 뇌물이나 청탁을 받고 뽑으면, 능력도 없는 자들이 분경을 일삼아 죽을 힘을 다해 백방으로 벼슬길을 뚫으려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부끄러운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게 된다.”고 썼다. 또 그는 “(인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뽑을 만한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공선(公選)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뽑아서 안 될 사람이라고 하면 그것은 사선(私選)이다. 한두 명을 사선하게 되면, 분경의 폐단이 생겨나고 민생을 괴롭게 만든다. 인사(人事)로 말미암아 치란(治亂)이 달라지는 것이다.”라고 썼다.

   
 

오늘날 문제가 되는 낙하산 인사나 보은인사는 대부분 적절치 못한 인사, 곧 사선(私選)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선이 잦아지면 능력도 없는 이들이 날뛰는 분경이 더욱 심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최근 들어 비공식적인 ‘비선인사’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심히 우려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박찬승  pcshistory@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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