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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지금이 적기(適期)다

얼마 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개헌 발언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이제 개헌논의는 어느덧 노무현 정부 이후 줄곧 제기되어 오던 단골 메뉴이자 해묵은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경성 헌법체계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실정법상 개헌논의는 늘 의회 다수당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또한 개헌론을 제기해 정국을 주도해보려는 정치인들의 정치적 야심표출 내지 지배 권력의 이합집산으로 비춰질 수 있는 오해의 소지들이 다분해 그간 개헌 논의는 줄곧 무산되어 왔다.

더욱이 그간 개헌논의의 경과들을 돌이켜보면 지방선거, 총선, 대선에 이르기까지 선거정국에 이르면 당면과제와 민생법안 등의 산적한 국정현안 속으로 묻혀버리곤 했고, 반대론자들에게는 정치권력을 배분하기 위한 헤게모니 싸움이라는 비아냥을 받기 일쑤였다. 또한 천안함이나 세월호 사건에서처럼 국가적 이슈가 대두될 경우 개헌론은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자조론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었다.

개헌 논의 중 가장 뜨거운 이슈는 대통령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것일 것이다. 애초 대통령 단임제는 박정희 정권 18년, 전두환 정권 7년의 독재에서 보듯이 독재를 막아보려는 경험적 소산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두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성숙과 안정을 이루었고 국제사회에서도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중견국가이기에 과거와 같은 독재자의 출현 가능성은 낮다고 볼 수 있다.

지난 87개헌 이후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돌이켜보면 그간 단임제는 대통령 1인 엘리트에 의존하는 합헌적 독재모델 내지 수동적 정치결정의 패턴을 지녀왔다. 이에 따라 우리 정치권은 청와대 진입과 대선에서의 승리를 정권투쟁의 최종 목적이자 쟁취의 수단으로만 바라보게 되었다. 즉 선거에서 승리한 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 독식구조’라는 모순적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에 따라 대선 후보들은 선거 때면 청와대 입성을 위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기 일쑤였다.

정권 쟁취 이후에는 청와대를 비롯해 국공기업 정무직 인사들이 물갈이됨으로써 심각한 국정혼란이 발생함은 물론 직무수행의 안정성과 연속성에도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다. 대통령 취임 이후 인수위 활동이 개시되는 1년여는 인수작업에 여념이 없게 되고 집권 2, 3년차를 지나 4년차에 이르면 어느덧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대통령 퇴임을 앞둔 마지막 해에는 정무직 공무원들의 대량 이탈 및 인사이동 등 본격적인 정권인계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집권 이후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대통령에서부터 최일선 조직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과 철학을 담아내고 업무를 장악해 국정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시기는 집권 2, 3년차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단순 일회성의 정책이 아닌 외교안보전략 또는 SOC사업과 같이 보다 긴 안목 아래 펼쳐나가야 할 대규모 국책사업은 정권교체 이후 계획이 봉착되거나 폐기에 이를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현행 단임제 하에서는 3년 이상 5개년, 7개년의 중기계획은 물론이고 20~30년 가량의 장기 계획은 꿈도 꾸지 못한다. 이로 인해 대통령의 통치 철학뿐만 아니라 일선 담당 공무원들의 재량행위 준칙마저도 정권의 성향에 따라 부침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더욱이 단임제가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를 갖는 대통령의 전 방위적 통치권한과 결부될 때에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검찰, 국정원과 같은 준사법기관, 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이제는 어떤 대통령이 당선되더라도 예전처럼 1인이 홀로 독단적 의사결정을 점하기가 어려운 거버넌스(governance)에 의존한 통치개념이 일반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법은 1987년 제9차 개헌 이후 30여년의 세월이 지나오면서 그 규범상의 효력에 한계가 나타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젠 대다수 여야 국회의원들도 정당을 초월하여 개헌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는 모습이며 국민의 여론 또한 중임제에 대해 우호적이어서 개헌의 상황은 충분히 성숙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과 의지일 것이다. 개헌을 위해 국민의 대표자인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함은 물론이다. 온갖 오해와 저항을 무릅쓰고 우리 정치 발전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와 진정성이 개헌에 필수 요소가 될 것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정권이 탄력을 받은 현 시점과 내년까지가 개헌논의를 주도해 갈 수 있는 적기라 볼 수 있다. 현 정부가 역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시간들도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장한/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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