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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거리에 나서게 하는가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이 글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이름으로는 최초로 1974년 9월 26일 명동성당의 기도회에서 발표된 제1시국선언의 일절이다. 얼마 전 이 땅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통 앞에는 중립이 없다”, “교회는 약자를 돕는 야전병원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또한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라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의 정신과도 다르지 않다.

말씀의 폭풍을 몰아오다

사제단은 1974년 9월 23일, 원주에서 있었던 사제 세미나에서 3백여 신부들이 지학순 주교의 양심선언이 예언자적 입장에서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임을 확인하면서 출범하였다. 지학순 주교를 구속으로 몰아넣은 양심선언은 “소위 유신헌법이라는 것은 1972년 10월 17일에 민주헌정을 배신적으로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로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되는 것이다”로 시작하고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서품받은 젊은 사제들이 주축이 되어 사제단이 결성되면서 이제 천주교회의 현실참여는 지학순 주교의 구속에 대한 항의와 구명운동의 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 수호, 민주회복과 사회정의를 위한 민주화 투쟁으로 전환되었다. 1974년 12월 18일, 1년 전에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숨진 최종길 교수에 대한 추모미사에서 사제단은 “최종길 교수는 고문치사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발표했다. 1975년 2월 24일에는 인혁당 사건에 대한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인혁당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앙정보부에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그것은 사제단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975년 5월, 옥중의 김지하가 그의 양심선언과 함께 사제단에게 보낸 편지에서 “칼날 위를 걷는 이 어려움이야말로 사제단의 정의구현 활동을 범속한 정치운동이 아닌 집단적인 기도요 고행이며 십자가의 아픔이요 하늘에로의 성스러운 행진이도록 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부디 저들의 이언(利言)과 모략을 뚫고 이 침묵의 세계를 말씀의 폭풍으로 뒤흔들어 주십시오. 사제단만이 구원의 불빛입니다”라고 한 것은 당시의 사제단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창립 40주년을 거리에서 맞이한 사제단

1970년대와 80년대, 사제단이 선포하는 복음은 고통받는 이웃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다운 모습으로 되살리기 위한 복음이었고, 가난하고 억눌린 자를 위해 교회가 그 해방의 소식을 알리는 복음이었다.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알리는 복음이었다. 그리하여 저 짐에 눌려 신음하는 사람들, 불의에 짓밟히면서도 어디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이 명동성당에 모여들었고 사제단의 신부를 찾았다. 이렇게 사제단은 이 나라 민주화의 증인이자 그 주역이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의 전 과정에서는 물론, 중요한 역사적 고비고비마다 그 현장의 한가운데 있었다.

사제단이 올 9월로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성서에서 말하는 40년은 애급에서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보낸 세월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제단이 맞이한 40년은 가나안 땅은커녕, 거친 광야로 계속 나갈 수밖에 없게 하고 있다. 용산 철거민 참사가, 제주 강정마을이, 밀양 송전탑과 쌍용차 해고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과 국정원의 여론조작이,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그들을 거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40주년 기념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신부는 “오늘 피와 땀과 죽음으로 이룬 민주주의는 다시 짓밟히고 있다. 민생은 무너졌고, 통일의 길은 가로막혔다. 다시 40년 전 그 초심으로 돌아가 ‘암흑 속의 횃불’이 돼야 한다는 것이 오늘 기념일에 다시 세우는 소명”이라 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제단이 국민과 더불어 피땀으로 열어나온 민주화의 역주행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참으로 두렵고 두려운 일이다.

   
 

사제단에 대한 교회 안팎의 박해와 음해 또한 유신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재연되고 있다. 그들이라고 거리의 신부가 되고 싶겠는가. 그들도 지붕 덮인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싶어한다. 그들에게 무슨 현세적 욕망이 있는가. 사제단을 모략, 음해하는 사람들에게 안도현의 싯귀를 들어 이렇게 묻고 싶다. 너희는 언제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김정남/ 언론인,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김정남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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