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재(에이유온그룹 회장)
▲ 이은재(에이유온그룹 회장)
지난 60~70년대는 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가난했던 때, 부모님의 희생 속에 성장했던 어린 그 시절을 추억해봅니다. 학교에 처음 입학하고 가졌던 ‘부푼 기대감’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했기에 전과(全科) 한 권이 아쉬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학교생활에 필요한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간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음은 물론이고, 꽁보리밥에 시어터진 김치가 전부인 도시락을 학교에 싸가지고 가면, 계란말이에 쇠고기 장조림 반찬으로 중무장한 도시락을 싸온 부잣집 친구 앞에서 한 없이 주눅 들고 작아졌었습니다.

대부분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유독 나에게만 그 ‘가난’이 큰 아픔이 되어 꽂히는 것 같았습니다. 상처도 받고 좌절도 할 수 있던 상황 속이었지만 때론 대통령도, 장군도, 국회의원도 꿈꾸며 무사히 초등학교 6년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적인 관심과 사랑 덕분이었을 겁니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연식 정구에 빠져서 공부는 소홀히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로 가라면 옆으로 가곤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풋내기 신입생이 무기정학이라는 무서운 징계를 받을 정도였으니 소위 ‘문제아’였음이 틀림없지요.

학교에서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할 때, 자식 잘되게 하려고 불철주야 애쓰시는 어머니께 차마 그 말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난 아들 두셨다’며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선, 내가 일으킨 문제들에 대한 꾸중을 하려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중학교 3학년쯤 됐을까요?

폭풍과도 같았던 사춘기가 마무리 될 쯤, 운동을 그만두고 학업에 전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편으론 마음속에서 큰 두려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과연 ‘운동을 그만두면 공부로 고등학교에는 들어갈 수 있을까?’ 따위의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 “선생님은 은재를 믿는다!”... 사춘기시절 선생님의 그 말씀 한 마디가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봄 소풍 때 박성배 선생님과 함께.
▲ “선생님은 은재를 믿는다!”... 사춘기시절 선생님의 그 말씀 한 마디가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중학교 3학년 봄 소풍 때 박성배 선생님과 함께.
금세 ‘차라리 체육특기생으로라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위에서 “운동을 그만두면 고등학교 진학도 어렵다”는 말들을 할 때면 자존감이 땅 밑으로 꺼지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그렇게 혼돈과 혼란 속에서 고민하고 좌절할 때 “너는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셨던 그 분은 제 질풍노도의 막바지를 함께 해주셨던 3학년 담임선생님이셨습니다.

한창 좌절의 소용돌이에 쌓여있었던 봄 소풍날 같이 사진 한 번 찍자고 하시며, 당신의 아들인양 나의 어깨를 감싸 안아 주시며 나를 다독여 주셨던 선생님!

과학시간, 쪽지시험지를 채점 하실 때 나를 과학실로 따로 부르시면서 “선생님은 은재를 믿으니, 선생님이 채점하는 것을 도와줄래?”라며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던 선생님!

선생님의 작은 배려가 내 마음 속에서는 감동의 소용돌이가 되었습니다.

“박성배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좌절의 시간을 지나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했을 때 선생님께선 저보다 더 기뻐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어디 나에게 뿐이었겠습니까. 모든 당신의 제자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아껴주시고, 보살펴주시며, 세심하게 배려해주시고, 용기를 주셨던 박성배 선생님. 선생님은 진정 위대한 분이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새 봄,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때가 되면 선생님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그대 아직 누군가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선생님을 그리워하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리움을 갖게 하신 박성배 선생님, 선생님은 진정 아름다운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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