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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길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역사는 찬란하고 자랑스러운 과거만을 밝히지 않고 빛이 만들어 낸 어두운 그림자까지도 주목한다. 역사에서 드러나는 어둠이란 인간이 자행했거나 감당해야 했던 비인간적 행위들을 말한다. 비인간적 행위를 강요했던 사람들은 상대방을 파괴함과 동시에 자신을 무너뜨린다. 이를 경계하기 위해서 역사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주목하게 마련이다. 이른바 군대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근대사에서 드러나는 어둠 가운데 하나다.

고노 담화, 용기있는 사실 인정이요 과거청산의 계기
전쟁 말기 식민지 조선의 젊은 여성들은 더 큰 수모를 강요당했다. 그들은 근로정신대로 동원되어 끌려갔다. 그들 중 일부는 일본군의 침략 전선으로 끌려가서 성적 착취대상으로 전락해 갔다. 그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일본 군부는 여성들에 대한 회유와 사기 그리고 강압이 분명히 존재했다. 일종의 국가폭력에 의해 전선의 위안소에 동원되었던 그들은 자신에게 강요된 일을 거부할 자유가 없었다. 물론 그들은 군대의 관리 아래 놓여 있던 위안소를 떠날 수도 없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이러한 처지의 사람들을 ‘성노예’라고 부른다.

1993년 일본의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20여 개월에 걸친 조사 작업 끝에 일본군의 전시 성노예를 지칭하는 ‘위안부’가 일본군과 정부에 의한 강제동원이었음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당시 일본정부는 한일 양국간의 현안이었던 위안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자체적으로 20여 개월에 걸쳐 조사를 진행시켰다. 그 결과가 ‘고노 담화’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증명하는 사료로는 ‘바타비아 임시군법회의 기록’이 있다. 여기에는 일본군이 인도네시아 자와 섬에서 네덜란드 여성 20여 명을 강제로 연행에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삼았음이 기록되어 있다. 이 일에 책임이 있었던 일본군 장교 7명과 군속 4명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었고, 그 가운데 장교 한 명은 사형을 당했다.

이 비슷한 일들이 그들의 점령지 도처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이나 중국 그리고 그들이 점령했던 그 밖의 지역에는 그 쓰라린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당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그들 나름대로의 용기가 필요했다. 당시 일본은 그 용기로 인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가리라는 건강한 희망을 이웃 나라에 줄 수 있었다. 일본 스스로도 과거사의 청산을 통해서 어두운 과거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노 담화 재검토론은 동아시아를 들끓게 해
요즈음 일본의 보수화와 극우화는 세계의 두통거리로 등장했다. 일본의 우익들은 식민지배의 폭압성을 부인했고, 침략전쟁을 미화하고자 했다. 물론 ‘군대위안부는 매춘부였다’고 하며 세계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무장의 강화를 주장하고, 타국에 선전포고를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베 내각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내각이 출범한 직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고노 담화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고노 담화 재검토론은 동아시아를 들끓게 했다. 한국과 중국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를 기초로 하여 일본과의 국교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이에 대해 당연히 항의했고, 일본의 아베 총리대신은 고노 담화의 유지를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은 지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고 있다. 일본은 최근(2014.6.20.) 고노 담화에 대한 검증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은 외교부 대변인의 반박성명이 있었다. 그리고 이 일본군 성노예에 대한 백서를 발간하겠다고 했다. 아마도 미래의 역사가들은 오늘의 형식적이요 미온적 대응과 관련하여 이 정권의 친일성을 거론할지도 모르겠다.

일본이 보통 국가가 되려면 상식을 존중해야
일본의 아베 내각은 고노 담화의 검증작업이 담화의 작성과정에 대한 검증이지 담화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고노 담화 작성과정에 관한 검증 보고서’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담화의 주된 내용은 “일본 정부는 고노 담화를 발표한 당시에도 위안부 강제연행은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가졌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한국정부의 의향과 요망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진행된 소위 ‘검증작업’은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이란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담합의 결과로 둔갑시켜 놓았다. 그러면서도 담화의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한다. 이는 수학공식의 적용이 완전히 틀렸는데도 그 도출한 결과는 정답이라는 말이나 비슷하다. 이와 같이 비논리적 말을 구사하는 것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바보이거나 상대를 바보로 인식한다는 말 이상은 아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일본은 국제사회가 30년간 비공개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 사전 외교교섭 내용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커다란 외교적 결례이다. 그러나 이 일의 원인제공에는 우리의 책임이 일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 대통령과 북한의 ‘국가수반’ 사이의 대화록마저 정략적으로 왜곡시키며 선거전략의 일환으로 공개한 바 있다. 우리는 일방적 공개라는 그 ‘외교적 파행성’에 대한 책임을 앞으로도 얼마간은 더 져야 할 것이다. 아베 내각은 이를 감안했다. 그래서 국가원수가 아닌 일개 관방장관의 담화 작성과정을 일방적으로 검증해도 문제가 없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우리 정부는 ‘아베 담화의 검증’에 대한 대증요법적(對症療法的) 조처 이전에 외교상의 근본 원칙을 준수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 검증작업에 대한 더욱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국가원수의 항의에 대한 무시를 묵과한다면, 우리 외교의 앞날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은 아베 내각의 변명처럼 고노 담화의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한다. 바보가 아닌 그들이 이렇게 ‘동의한’ 데에는 다른 목적이 있을 터이다. 우리는 그 ‘동의’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비논리적 궤변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보통국가가 되고 싶다면, 보통의 상식을 존중해야 한다. 국제사회의 리더가 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이루려면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할 용기가 필요하다. 비논리를 구사하며 자신과 이웃을 속이려는 일은 집어치워야 한다. 어느 나라의 역사에서든지 빛과 그림자는 있을 수 있다. 그 나라의 역사에 다시금 어둠이 뒤덮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지난날 가해자로서의 역사를 인정하고 응분의 책임을 져야한다. 그래야 일본은 이웃나라들과 공동의 발전을 지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조광/ 고려대 사학과 명예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조광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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