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우리는 관계를 찾아 어디로 가는 걸까?

세월이 흐르면 세상이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현실에 좌초되는 형국이다. 그런 와중에 본 <그녀>(her)라는 영화는 지구촌 도처에서 인생 여정 고뇌에 사로잡힌 존재에 대한 성찰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시사회 분위기는 일반 극장보다 냉정한 편이다. 그러나 <그녀>의 시사회 분위기는 기이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소리로만 등장하는 스칼렛 요한슨의 관음적 음성이 남성의 성애 판타지를 자극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자의적인 추측이다. 그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컴퓨터의 관계를 파고드는 관계 욕망 탐구이다.

   
▲ 영화 '그녀'의 한 장면


컴퓨터 프로그램 소리로 등장하는 스칼렛 요한슨

“당신은 소녀 같아”, “내 사랑, 세상 끝까지~” 등등. 온갖 다정하고 달콤한 말들이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손글씨 편지 대필회사 풍경에서 영화가 열린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단골이 많은 대필 작가로, 어떤 이들에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기념일마다 편지를 써주는 일상을 영위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은 퇴근 후 외롭고 삭막한 사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던 어느 날 OS1(인공지능 운영체제)을 사면서 모든 게 변한다. 대화로 운영하는 오렌지색 프로그램 화면의 첫 질문은 목소리의 성별 선택을 묻는다. 남성인 그는 여성을 택한다. 이제 OS1은 사만다란 여성 소리로 등장한다. 산만한 이메일을 모두 정리해주고, 손편지 모음책 계약도 체결해 줄 정도로 뛰어난 비서역을 하는 사만다는 연인의 자리에 곧 진입한다. 비서 겸 아내를 거느리며 뛰어난 업적을 거둔 남성의 초상화를 보는 것만 같다.

거리에 나가보면 많은 이들이 그처럼 작은 기계장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요즘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과 접속하는 풍경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배타적인 일대일 관계, 즉 그녀가 ‘사랑하는 내 여자’란 착각을 했지만, 그녀는 8천 명 이상과 교류하며, 641명과 동시에 사랑을 나누는 몸 없는 프로그램이다. 이런 난국은 그 혼자만 직면하는 상황이 아니다.

미래사회를 다루는 S.F. 영화들에서 인간과 기계장치의 교류는 주요한 화두로 등장한다. <A.I.>는 지구온난화로 물에 잠긴 미래의 일상이 등장한다. 모든 것이 감시받는 통제 사회, 인간들은 인공지능을 가진 인조인간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하비 박사가 인간을 사랑하도록 감정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 소년 데이빗을 탄생시키면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는 애달픈 여정에 들어선다.

내 속의 나와 사귀는 친구 관계처럼

<아이, 로봇>에도 로봇의 도움으로 사는 미래의 삶을 상상해낸다.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로봇 3원칙’이 내장된 로봇은 요리하고, 아이들을 돌보며 인간의 신뢰 받는 동반자로 등장한다. 이런 로봇을 관리하는 로봇 심리학자도 나온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로봇이 인간을 공격하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지난 6월 8일, '인간처럼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사례가 영국 레딩대로부터 발표되었다. '튜링 테스트 2014' 행사에서 '유진'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이 그 주인공이다. ‘유진’ 이전에도 수차례 인공지능 컴퓨터 실험이 있었고, 이런 기술과학 문명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 인공지능 장치가 스마트폰에 이어 상품화될 것이란 예상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MIT대학에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연구한 실험도 흥미롭다. 노인요양원에 로봇 인형을 보내 할머니들과 한 달간 교류하도록 한 결과, 멀리 있는 자식보다 로봇과의 관계가 더 낫다는 반응을 전하는 라디오 뉴스를 들었다. S.F.영화가 보여주는 미래 풍경이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의 현재 풍경과 오버랩된다. 그건 마치 우리의 관계가 타자들과의 관계 이전에 본질적으로 자신과의 관계라고 일러주는 경고장처럼 보인다. 고독이 친구이기에 외롭지 않다고 노래한 조르쥬 무스타키의 <나의 고독>(Ma Solitude)이 내 속의 나와 사귀는 친구 관계처럼 들린다.

팁: <그녀>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스파이크 존즈는 ‘각본의 천재’란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이 작품의 관계탐구 몰입은 기를 차게 만든다. 수차례 각본상을 거듭 수상한 이 작품을 찾아보시길 권한다.

유지나/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이 글은 유코리아뉴스와 (사)다산연구소의 협의에 따라 게재하는 것으로써 글에 대한 저작권은 (사)다산연구소에 있습니다.

유지나  regard1@dongguk.edu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